FeverStory

청맹검귀

2화

약재 골목의 해질녘 공기는 썩은 풀과 달여낸 탕약 냄새가 반반이었다. 강휘는 그 경계에서 발을 멈추고 약방 문 앞에 섰다. 문풍지가 바람에 들썩이는 소리 너머로 안쪽에서 약연기와 함께 낮은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서문 밖 약재 골목, 사흘째 비가 그친 골목 바닥은 아직 질었다.

약방 문을 밀었다. 문지방을 넘자 마룻바닥이 오래된 무게로 끼익 눌렸다. 서리화의 숨소리가 약장 쪽에서 멎었다. 이어서 침통을 여닫는 작은 쇠붙이 소리, 약가위를 내려놓는 날의 부딪힘이 들렸다.

“문은 두드리고 들어와 주시죠.”

서리화의 목소리는 약간 올라가 있었지만 끝은 가라앉아 있었다. 강휘는 대답 없이 한 걸음 더 들어섰다. 젖은 도포자락에서 빗물 냄새가 배어 나와 약방 안 탕약 냄새와 겹쳤다.

“그 빗물, 어젯밤 것이죠.”

서리화가 말했다. 약장 앞에서 몸을 돌리는 소리가 났다. 발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 강휘는 그 발소리가 없는 걸음의 폭을 짚었다. 체구가 작고 중심이 낮다.

“서진악이란 이름을 안다.”

강휘가 품에서 반쪽 목패를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렸다. 젖은 나무패가 약방의 마른 공기에 닿자 미세하게 오그라드는 소리를 냈다. 서리화의 숨이 한 박자 멎었다.

“그거, 어디서 났습니까.”

“흑음회 외곽 살수 시신.”

“흑음회라면.”

서리화의 목소리가 반 톤 낮아졌다. 약장 문을 닫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그 살수가 서진악에게 약재를 넘겼다. 네 약방 이름과 거리가 목패 뒤에 새겨져 있더군.”

강휘는 목패를 약간 들어 올렸다. 서리화가 움직이지 않았다. 숨소리만 약간 빨라지는 게 들렸다. 약장 위에 놓인 저울 접시가 바람에 울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서진악을 찾으러.”

“아니다. 서진악은 세 번째 줄이다. 지금은 거래 흔적을 쫓는다.”

서리화가 두 걸음 다가섰다. 발소리가 아니라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와 허리춤 침통의 침끝들이 부딪히는 미세한 쇳소리로 거리를 알 수 있었다. 다섯 보 안. 강휘는 검집을 쥐지 않았다.

“내 약방 이름이 왜 거기 있는지 저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거짓이었다. 숨이 끝을 삼켰기 때문이다. 서리화가 호흡의 마지막을 억지로 눌렀다.

강휘는 그 눌린 호흡의 길이를 기억했다. 목패를 다시 품에 넣지 않고 손에 쥔 채로 약장 쪽으로 걸어갔다. 서리화가 반 보 물러섰다.

“네가 설명할 수 없다면 이 목패는 쓸모없는 거다.”

“장사치와 거래한 기록이겠죠. 저야 숱한 약재상에게 약을 삽니다.”

“장사치가 흑음회 살수와 거래했고, 그 목패 뒤에 네 약방이 적혔다. 소문이 퍼지기 전에 내가 이름을 따라 여기까지 왔다.”

강휘는 목패를 약장 모서리에 올려놓았다. 마른 나무와 젖은 나무가 맞닿는 소리가 났다.

“내게 거래 기록이 있는지 묻는 눈치로군. 시선은 모르지만 숨소리가 그렇게 말한다.”

서리화가 잠시 멈칫했다. 약가위를 집는 손이 허공에서 멎는 바람결이 들렸다.

“있다 해도 손님께 내놓을 수 없는 것이겠죠.”

“없다고 해라. 그러면 나는 다른 곳을 뒤진다.”

강휘가 돌아서려 했다. 서리화가 입을 열었다.

“있어요.”

강휘가 멈췄다.

“거래 기록 반쪽이요. 반쪽뿐이에요. 나머진 아버지가 가진 채 사라졌고.”

서리화의 목소리가 약재 서랍을 여는 소리에 잠시 묻혔다. 약장 둘째 칸, 안쪽에서 종이 꺼내는 소리가 났다. 접힌 종이가 펴질 때의 마찰음. 강휘는 귀를 열었다.

“그런데 그걸 보여드리기 전에 묻고 싶습니다.”

“물어라.”

“그 살수, 손으로 직접 베셨습니까.”

“소리로 확인하고 벴다. 손가락 관절 꺾는 버릇과 발소리로 동일하다고 확정했다.”

서리화가 종이를 든 채로 걸어와 강휘 앞 세 걸음쯤에서 멈췄다.

“그거, 세상 사람들은 복수라 안 부르고 살인이라 부릅니다.”

“나는 소리가 기억하는 사실만 따른다.”

강휘는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이 위로 향했다. 서리화가 움직이지 않았다. 종이 냄새가 가까이서 났다. 오래된 한지와 그 안에 눌린 방습재 냄새.

“거래 기록은 내 약방의 것. 보여드리는 대신 오늘 밤 이곳을 지켜주셔야 합니다.”

“거래 조건은 내가 정한다.”

강휘가 손을 거두지 않고 말했다.

“내가 왜 그 기록을 봐야 하는지는 그것을 보면 안다. 다만 네가 그것을 숨기려는 건, 기록에 네 약방만으로 끝나지 않는 게 있기 때문이겠지.”

서리화의 호흡이 한 번 짧게 끊겼다. 약가위를 허리춤에 꽂는 소리가 났다.

“내일 해 질 무렵까지 기다리십시오. 지금 드릴 수 없는 사정이 있습니다.”

“오늘 초저녁까지다.”

강휘가 돌아서며 목패를 집었다.

“그때까지 가지 않으면 나는 약방 뒤편과 골목을 다 뒤진 뒤 물길 쪽으로 흘러가는 소리를 쫓는다.”

서리화가 대답하지 않았다. 강휘는 문턱에 서서 잠시 귀를 기울였다. 약방 안에는 서리화의 심박이 약장 나무에 울려 퍼지는 소리가 겹쳐 들렸다. 긴장한 심박이었다.

강휘는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문 옆 벽에 어깨를 기댔다. 해 질 녘이 지나고 약방 밖 소리가 점점 낮아졌다. 초저녁이었다.

그때였다.

약방 뒤편 창문 쪽에서 흙바닥을 밟는 소리가 아주 짧게 끊겼다. 세 걸음. 발뒤꿈치를 먼저 대고 앞축에 힘을 싣는 방식. 걸음이 끝날 때마다 호흡의 끝이 잘리는, 청음 수련자 특유의 보법이었다.

서리화도 그 기척을 알아챘다. 숨을 삼키고 약장 뒷벽으로 붙는 소리가 났다.

“뒤로.”

강휘가 낮게 말했다. 검을 뽑지 않았다. 청음사의 걸음이 다시 움직였다. 뒤창 문틀을 넘는 순간 살기가 열렸다. 다섯 보 안에서만 감지되는 그 살기가, 약방 안의 촛불이 없는 어둠과 겹쳐 서리화를 향해 쏠렸다.

청음사가 약장 위를 넘어왔다. 강휘는 검집 째로 허리를 끊었다. 검집이 상대의 손목을 향해 호를 그렸다. 청음사가 몸을 뒤로 젖히며 무언가를 던졌다.

바람을 가르는 가느다란 침 소리. 아니, 도침이었다. 강휘는 그 소리를 따라 왼팔을 올렸다. 도침 하나는 검집에 맞고 튕겼지만, 다른 하나가 왼팔 소매를 찢고 살에 박혔다.

독침이었다.

감각은 작았다. 대신 이내 왼팔이 뜨거워졌다. 강휘는 상체를 낮추고 검집을 버렸다. 검날이 칼집을 떠나는 청명한 쇳소리. 어둠 속에서 청음사가 뒷걸음으로 물러나며 허리춤 단검을 꺼냈다.

“여기서 죽을 짓이군.”

강휘가 한 번 베었다. 검기는 필요 없었다. 초식이 세 걸음 안에서 청음사의 단검 위로 떨어졌다. 쇠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약방 안을 울렸다. 청음사가 왼쪽 소매를 끌리며 뒤창으로 몸을 날렸다.

서리화가 뒤에서 숨을 집어삼켰다. 강휘는 쫓지 않았다. 대신 뒤편 골목으로 사라지는 발소리를 귀에 남겼다. 그 걸음은 백무혼의 청음보라기엔 절반만 닮아 있었다. 다만 걸음의 끝을 숨기는 습관만은 분명히 그 흔적이었다.

강휘는 몸을 돌렸다.

“쫓아야 합니다.”

서리화가 말했다. 급한 목소리였다.

“독침이지. 네가 뽑아라.”

강휘가 검을 집어넣으며 바닥에 걸터앉았다. 서리화가 침통을 들고 다가왔다. 손끝이 왼팔 위를 짚었다. 차가운 손가락이 찢긴 소매를 벌리고 침을 뽑았다. 강휘는 숨을 짧게 멈췄다.

“썩은 복령 맛이 나는 독입니다. 열이 퍼지는 것보단 오한이 먼저 올 거예요.”

서리화가 침통에서 바늘을 꺼냈다. 이어 약재 궤짝을 열었다.

“청음사가 여길 어떻게 알았습니까.”

“거래 기록 반쪽. 그게 목적이었다.”

강휘가 말했다. 서리화가 침을 놓으며 대답했다.

“그럼 그쪽 일이군요. 그댄 여기 오기 전부터 쫓기고 있었던 거예요.”

강휘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청음사의 발소리가 다시 머릿속을 스쳤다. 걸음 끝을 자르는 습관은 백무혼의 청음보. 그러나 결정적으로 확인할 만한 소리 증거는 아직 없었다.

“해독은 받는다. 대신 네 거래 기록 반쪽을 보여라. 그리고 네 아버지 실종을 백무혼 쪽에 두고 내가 아는 소리를 알려준다.”

서리화가 침을 놓던 손을 멈췄다.

“백무혼을 아십니까.”

“이름만. 쫓아가야 할 두 번째 줄에 가깝다.”

서리화가 침통을 내려놓고 약장 둘째 칸을 열었다. 종이 꺼내는 소리, 그리고 몇 걸음 다가와 강휘의 손등 위에 종이 반쪽을 올렸다. 촉감은 거칠고 유연했다. 한지 반쪽이었다.

“그대에게 보여드립니다. 대신 두 가지를 약속하세요.”

“말해라.”

“하나는 소리로 확정하기 전에 사람을 베지 않는 것. 둘은 백무혼을 쫓는 동안 제 아버지 기록을 찾는 일.”

강휘가 왼손으로 종이의 모서리를 쓸었다. 오래된 접힌 자국과 잉크의 뭉침이 손끝에 읽혔다.

“약정서를 써라. 조건은 두 가지로 갈라 가진다.”

서리화가 약재 포장지를 두 쪽으로 찢어 약연기 냄새가 밴 붓을 꺼냈다. 붓질이 종이 위를 빠르게 움직였다.

“해독 대가 동행, 아버지 실종 공유. 소리 증거 전 무력 금지. 여기까지 조문으로 합시다.”

서리화가 한쪽을 강휘에게 주고 다른 한쪽을 자신이 접었다. 강휘는 약정서 반쪽을 손끝으로 짚었다. 글자가 도드라진 방향과 종이 결로 두 사람의 합의가 같은 내용임을 확인했다.

“거래 기록 반쪽의 표식.”

강휘가 종이 반쪽을 집은 채 물었다.

“백무혼의 중개 흔적이 있어요. 아래쪽에 새겨진 음각 서명이요.”

강휘는 왼손 검지로 그 아래쪽을 더듬었다. 종이 뒷면에 눌린 작은 음각. 도장이 아니라 칼끝으로 그은 흔적이었다. 그는 그 획을 백무혼의 것이라 단정하지 않았다. 다만 청음사가 이걸 노렸다는 사실과 걸음 끝을 숨기는 습관을 겹쳐 두었다.

“오늘 밤은 약방 뒤문을 잠가라.”

강휘가 말했다.

“그 청음사, 소매에 검상을 입었을 겁니다. 멀리 가지 못했을 거예요.”

서리화가 뒤문 쪽을 돌아봤다. 강휘는 돌아보지 않았다. 굳이 보지 않아도 뒤문 빗장이 올바르게 걸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둘은 내실로 들어왔다. 서리화가 해독침을 한 번 더 놓았다. 강휘는 그러나 청음사의 잔여 흔적을 떠올렸다.

약방 뒤편 골목, 물에 젖은 흙바닥에 발소리가 딱 두 발짝 찍힌 뒤 끊긴 자리. 그 끊긴 자리가 문이 아니라 벽 쪽으로 붙어 있었다. 청음보의 보법대로라면 담장 위로 사라졌을 것이다.

강휘는 약정서 반쪽을 품에 넣었다.

“백무혼을 쫓는 동안 네 아버지 기록은 네가 지켜라. 나는 소리로 증명하기 전엔 칼을 쓰지 않는다.”

서리화가 고개를 끄덕이는 소리가 아닌, 숨을 짧게 고르는 소리로 답했다. 촛불 없이 찾아든 밤공기가 내실의 나무 결을 따라 낮게 울었다. 강휘는 그 밤 소리 속에 아직 남아 있는 청음사의 발소리 여운을 지우지 않았다.

청맹검귀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