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청맹검귀

3화

“부종이 덜 가라앉았어요.”

약방 내실은 아침인데도 나무 냄새가 밤보다 짙었다. 강휘는 앉은 채 왼팔을 내밀고 있었다. 서리화의 손끝이 소매를 걷자 옷감이 팔을 타고 밀리는 감촉이 생겼다.

“잔독은 억제됐는데 독침 구멍 주변이 부었네요. 오늘 안으로는 가라앉지 않을 겁니다.”

“쓸 수는 있느냐.”

“쓰시면 안 돼요. 걸음이나 일상 움직임은 무리가 없어요.”

서리화가 봉대를 새로 감았다. 손놀림이 빠르되 매듭을 지을 때만 힘 조절이 길었다. 봉대 끝이 두 번 겹쳐 묶이는 소리로, 부목 없이 움직임만 통제할 것임을 알았다.

“두 번째 원수를 매복하자고요.”

서리화가 약장 앞이 아니라 문 쪽에서 말했다. 목소리 방향이 흔들리지 않았다.

“아직 후보의 동선을 확정하지 않았다. 어디서 매복을 잡지.”

“거래 기록 반쪽에 중개 흔적이 남았어요. 백무혼 쪽에서 노리는 걸 보면, 반대쪽 정보도 같은 길로 움직였을 거예요.”

“네 아버지 기록과 같은 길이냐.”

“그건 아직 몰라요. 다만 서진악의 약재 꼬리표와 이 반쪽이 같은 약방을 거쳤다면, 움직인 건 화물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강휘는 약정서가 품에 닿아 있음을 알면서도 만지지 않았다. 서리화가 이 제안을 꺼낸 이유는 해독 대가를 넘어 백무혼의 흔적을 아버지 실종 쪽으로 당기고 있었다.

“정보를 확인할 곳이 있느냐.”

“단목 객잔에 석대라는 정보상이 있어요. 서문 밖 소문 값을 쥐고 도는 사람이죠.”

“놈은 믿을 수 없는 쪽이군.”

“돈을 준 만큼만 판다는 쪽이에요. 약방 거리에서는 쓸 만한 사람이에요.”

강휘는 일어섰다. 왼팔을 어깨까지 올리지 않았다. 검을 찰 때는 오른손을 허리춤에 두고 상체를 덜 틀었다. 서리화가 침통을 허리에 차고 약고리를 어깨에 건 뒤, 거래 기록 반쪽을 약재 포장지 사이에 겹쳐 짚어 넣는 소리가 났다.

“두 번째는 소리로 확정되기 전엔 베지 않는다. 네가 제안했지만, 매복은 내 기준이다.”

“기억하고 있어요. 약정서에도 있죠.”

서리화가 문을 잠그지 않고 따라왔다. 걸음은 거의 나지 않았지만, 마른 흙을 밟을 때 약초 궤짝 끈고리가 한 번씩 가볍게 울렸다.

단목 객잔은 서문 밖 약재 골목에서 큰길 쪽으로 꺾어 올라간 자리였다. 오전이라 객잔 안은 비어 있었다. 정면에서 주판알 부딪히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번졌다. 강휘가 문을 밀자 소리가 반 박자 멎었다.

“또 온 손님이구먼. 약방 의원님까지. 검은 옷 손님은 얼굴을 가리고 다니시니 알아보기 좋지.”

석대의 목소리가 주방 쪽에서 다가왔다. 걸음은 무겁고 빨랐다.

“소문 값을 묻고 싶어서요. 서문 쪽 물길을 밤에 지나는 사람.”

서리화가 말을 붙였다. 석대가 가까이 오는 동안 주판알을 손끝으로 굴리는 소리가 들렸다. 세 알 굴리고, 한 알 멈췄다가, 다시 두 알 굴리는 버릇. 강휘는 그 간격을 세었다.

“물길 소문이면 값이 좀 나가는데.”

“먼저 시세를 부르세요.”

서리화가 약고리를 바닥에 가볍게 내려놓았다. 석대가 말폭을 좁혔다.

“이틀 전부터 단목 객잔 북쪽 짐간을 밤에 쓰는 발소리 억제 수련자가 있지. 그 자는 밤마다 은신처 서쪽 물길을 건넌다고 해. 해가 완전히 진 뒤, 짐간 골목으로 들어갔다가 물길 돌다리 쪽으로 나온대.”

강휘는 석대의 말을 하나하나 소리 위치로 겹쳤다. 석대의 심박이 값 이야기를 꺼낸 직후 한 번 빨라졌다. 거짓이라기보다, 팔려야 할 물건이라는 뜻이었다.

“값은.”

“은자 세 냥이면 매복 자리와 물길 진입로까지 앉혀 드리지. 두 분 몫으로 한 번에.”

서리화가 한 걸음 옆으로 섰다. 옷소매 방향으로 시선이 석대 얼굴 아래로 내려가는 게 읽혔다. 그 순간 숨이 짧게 끊겼다.

“석대 님, 왼쪽 귓불이요. 흉터가 있으시네요.”

석대가 움직이는 소리가 커졌다. 주판을 허리춤으로 내리며 어깨가 올라갔다.

“그게 어쨌다는 겁니까.”

“아무것도 아녜요. 흉터가 낫지 않은 모양이라 눈에 들어왔을 뿐이에요.”

서리화가 한 박자 늦게 답했다. 목소리 끝이 살짝 낮아졌다. 강휘는 서리화가 석대의 흉터를 눈으로 기억하고 있음을 알았다. 주판알 간격은 값을 부르는 동안에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은자 세 냥은 줄 수 없다. 네가 판 정보에 사람이 붙는다. 절반은 성공한 뒤 주겠다.”

“사후 지급은 안 받지. 이 바닥에서 그게 무슨 소린지 아시잖수.”

“그럼 일 냥은 지금. 낮에 네 이름으로 물길 쪽 짐간 문까지 표시해 둬라. 매복이 빗나가면 나머지는 없다.”

석대의 발이 바닥을 한 번 옮겨졌다. 주판알이 세로로 한 번, 가로로 한 번 부딪혔다.

“좋수다. 대신 물길에 사람이 나타나든 안 나타나든 먼저 준 건 제겁니다.”

서리화가 강휘에게 반 보 가까이 붙어 낮게 말했다.

“짐간 골목은 서쪽 물길 위쪽이에요. 돌다리에서 물소리가 겹쳐 발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곳이에요.”

강휘는 객잔 문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밖에서 짐수레가 오전 길을 한 번 갈랐다. 석대가 은자를 받은 뒤 주판을 다시 꺼내며 안쪽으로 물러났다.

“매복 시각은 해가 지고 나서 한 시진 안이다.”

강휘가 말했다. 석대가 대답하지 않았다. 주판알 소리 한 번이 길게 끌렸다가 뚝 끊겼다.

서리화가 약고리를 다시 어깨에 걸었다. 강휘는 객잔 문을 먼저 나섰다. 길에는 오전 볕의 감각이 없고, 바람이 문틈으로 먼지를 끌고 가는 소리만 남았다.

해가 지자 서리화가 약고리를 두르고 왔고, 강휘는 낮에 표시해 둔 짐간 골목을 피해 돌다리 아래 수풀로 몸을 낮췄다. 밤이 한 시진 가까이 이르는 동안 물소리만 오가다가, 서쪽 물길 위쪽 흙길을 밟는 발소리가 처음 끊어져 들렸다.

밤 물길은 바람이 불 때마다 수풀을 긁는 소리가 겹쳤다. 강휘는 몸을 낮춘 채 물 흐름과 바람 사이로 사람의 발소리를 골라 들었다. 서리화가 한 호흡 뒤로 엎드려 있었고 숨이 짧았다.

물길 위쪽에서 흙이 눌리는 소리가 났다. 오른발부터 디뎠다. 걸음 폭은 일정했고 마지막에 왼발을 살짝 끄는 버릇이 있었다. 강휘는 숨을 죽였다.

후보자가 멈춰 섰다. 물 소리를 등지고 목을 돌리는지 어깨 옷깃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서리화가 숨소리만큼 낮게 물었다. “지금 발소리는 어때요?”

“다르다.”

“어떤 점이요?”

“스승을 벤 날, 그 자는 칼을 쥐기 전에 손가락을 한 번 풀었다. 마디가 새끼손가락부터 차례로 걸렸다.”

후보자가 허리를 굽혀 물을 움켜 마시고, 몸을 세우며 칼자루를 고쳐 쥐는 소리가 들렸다. 가죽 띠가 한 번 끼익하고, 손아귀 안에서 검지부터 약지 순으로 마디가 눌렸다. 손가락이 아닌 손바닥 쪽 굳은살이 먼저 닿았다. 쥐는 힘이 실릴수록 마디가 한 번에 묻혔다.

강휘는 왼손을 검자루에서 뗐다. “달라. 마디가 두 번 걸리지 않는다. 이 녀석은 손바닥부터 쥔다.”

서리화의 숨이 끊겼다가 이어졌다. “그러면 그냥 보내자는 거예요? 여기까지 와서?”

강휘는 상체를 그대로 유지했다. “소리로 확인 안 된 상대는 내 칼을 받을 자격이 없다.”

“하지만 그 사람도 흑음회 외곽이에요. 서진악의 옛 은신처를 쓴 것도 확인했잖아요.”

“그건 사는 자리다. 벤 자리에 대한 증거가 못 된다.”

후보자가 몸을 돌렸다. 걸음이 물길을 따라 아래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한 발, 두 발, 세 발째에 바람 소리와 겹쳤다. 서리화가 상체를 일으키려 했다. 풀잎이 크게 꺾였다.

“저대로 놓치면 두 번째 이름은 어떻게 찾아요. 흔적은 지금뿐일 텐데.”

“찾기는 한다. 소리가 맞을 때까지.”

“기준이 그렇게 까다로우면 백무혼 놈들은 다 도망치겠네요.”

“도망치는 자는 어차피 그 소리를 남긴다.”

서리화가 이를 악무는 소리가 들렸다. 곧 그녀가 풀 사이로 무릎을 세워 앉았다. “저는 이해 못 해요. 이미 와서, 칼도 쥐고, 뒤통수 한 자락 거린데. 그걸 소리 하나 다르다고 돌리는 게 무슨 복수예요?”

강휘는 뒤늦게 몸을 일으켰다. 무릎에 붙은 흙을 털지 않았다. “누구를 베느냐의 문제다. 소리로 죽은 스승이 남겼다.”

“그럼 방금 그 자가 스승님을 안 벤 게 확실하단 말이에요?”

“발소리는 닮았다. 칼 쥐는 마디가 다르다.”

강휘는 서진악을 벨 때 몸에 새겨 둔 소리를 하나씩 되짚었다. 서진악은 검보다 단검을 먼저 빼려 드는 왼손잡이였다. 칼자루에 걸리는 마디도 왼손 검지에서 새끼손가락으로 내려갔다. 방금 후보자의 소리는 오른손에 가까웠다. 힘받이도 달랐다.

“그런 미세한 차이를 이 밤중에, 그것도 바람 부는 물길에서 어떻게 구분해요.”

“듣는다.”

서리화가 입을 다물었다. 후보자의 발소리는 이제 완전히 물결 소리에 먹혔다. 강휘는 풀밭에서 한 발 물러나 서쪽 물길을 등졌다. “약방으로 돌아간다.”

“가다가 다시 마주치면 어떻게 하게요.”

“같은 소리를 듣는다.”

서리화가 약재 궤짝 끈을 매만졌다. 어깨에 메는 소리가 평소보다 거칠었다. “저는 소리로 사람을 벤다는 걸 그렇게만 듣던 때는 아니긴 한데, 오늘 같은 거 보면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네요.”

강휘가 걸음을 옮겼다. 물길에서 약방 쪽으로 난 좁은 흙길을 밟자 작은 돌이 두어 개 굴렀다. 서리화가 두어 걸음 뒤에서 따라왔다.

“따지고 싶으면 걸으면서 해라.”

“아뇨. 어차피 약정서대로라면 제가 이 결정에 참견할 자격은 없으니까.”

“그건 네 아버지 기록을 지키기 위한 조건이다. 내 소리 기준까지 네가 정하란 말은 없었다.”

서리화가 한 박자 늦게 대꾸했다. “정하자는 게 아니라 제보를 받아 온 밤이 허비됐다는 거예요. 죽을 각오로 온 사람들을 소리 몇 번 듣고 그냥 풀어 주면, 다음엔 제가 제보받은 길도 알려 드릴 수 없어요.”

“네가 아니어도 길은 안다.”

“그거야 그러시겠죠.”

두 사람의 걸음은 흙이 단단한 길로 올라서면서 빨라졌다. 뒤쪽 물길 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서문 쪽 약재 골목에서 풍기는 밤바람이 앞에서 내려왔다. 강휘는 그 바람 속에서 서리화의 숨이 여전히 고르지 않음을 들었다.

묻지 않았다. 그가 살려 보낸 후보자는 소리 증거를 맞추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품은 제보의 출처, 그리고 그 제보가 이 밤에 정확히 맞아떨어진 일은 다음에 따져야 할 목록으로 남았다.

약방으로 돌아오는 길은 서문 약재 골목을 지나 뒤문 쪽으로 이어졌고, 두 사람은 말없이 어두운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밤이 깊어 약재 골목의 냄새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약방 문을 닫자 서리화가 강휘의 왼팔 소매를 걷어 올렸다. 부은 자리는 낮보다 줄었고 독침 자국만 붉게 남았다. 그가 소독한 헝겊을 대자 강휘는 팔을 거두지 않았다.

“상처는 가라앉았습니다. 열도 없고요.”

서리화가 말했다. 강휘는 약장 아래 걸터앉은 채 귀를 문 쪽에 두었다.

“이제 그 후보 말입니다.”

서리화가 헝겊을 쟁반에 내려놓았다.

“소리 증거가 안 맞았으면 그 사람은 아닙니다.”

강휘가 답했다.

“기준이 그렇습니까.”

“그래.”

서리화가 약장 앞에서 멈췄다. 신발 소리가 없었다.

“그럼 두 번째 이름은 비워 둡니까.”

강휘가 대꾸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약방 바깥에서 주판알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한 번, 두 번, 세 번. 손가락이 알을 굴리다 멈췄다. 그 멈춤의 간격이 강휘의 귀에 착 달라붙었다.

“밖에 누가.”

서리화가 뒤문 틈으로 골목을 확인했다.

“석대예요. 주막 심부름꾼 출신 정보상.”

서리화가 문을 열었다. 석대가 머뭇거리며 문지방 앞에 섰다. 주판이 허리춤에서 달그락거렸다.

“휴, 진작 문 열 사람이 없어서.”

석대가 한 걸음 안으로 들였다. 강휘는 일어나지 않았다. 상체만 약간 앞으로 꺾였다.

“주판 소리. 네가 방금 멈춘 그 버릇, 왼손이지.”

석대가 짧게 웃었다.

“주판은 원래 왼손으로 튀겨야 계산이 빠르지 않소.”

“아니.”

강휘가 몸을 일으켜 문지방까지 다가섰다.

“너는 셈을 멈출 때 새끼손가락부터 알을 눌렀다. 그 소리, 내가 들은 적 있다.”

“장사치들은 다들 그리 튀기오.”

석대가 반 걸음 물러났다. 강휘는 더 다가서지 않았다. 손끝이 허리 검자루 근처에서 한 번 멎었다가 떨어졌다.

“석대 씨, 방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서리화가 두 사람 사이로 비껴 섰다.

“다친 사람 앞에서 문턱에 세워 두는 법은 아니고요.”

석대가 문 안으로 들어왔다. 걸음이 평소보다 무거웠다. 서리화가 의자를 내줬지만 석대는 앉지 않고 등 뒤로 손을 돌려 주판을 만졌다.

“괜히 왔다. 가는 게 낫겠소.”

“앉아요.”

서리화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았다. 석대가 의자 끝에 걸터앉았다.

강휘는 문 옆 벽에 어깨를 붙였다. 석대의 호흡을 들었다. 숨이 얕고, 드문드문 멎었다. 겁이 섞인 호흡이었다.

“석대 씨는 정보상이라면서요.”

서리화가 두 손을 앞으로 모았다.

“저 거래 기록 반쪽, 누가 중개했는지 아는 사람이 있으면 붙여 주세요.”

석대가 손을 내저었다.

“나는 힘도 없고, 정보는 팔 만해야 파는 거라. 이런 건 목숨값이 비싸요.”

석대가 다시 주판을 만지려다 멈췄다. 멈추는 순간 새끼손가락이 알 하나를 가볍게 누르는 소리가 났다. 강휘가 그 소리를 다시 새겼다.

3년 전 스승의 은신처 밖에서 들었던 그 리듬과 겹쳤다. 빗속에서 세 번, 끊어지고 다시 한 번. 그때 누가 주판을 멈췄는지는 끝내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잊히지 않았다.

“석대.”

강휘가 말했다. 석대의 어깨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넌 지금부터 내가 의심하는 사람이다. 소리가 맞을 때까지 가까이 둔다.”

“무슨 소리요. 나는 그런 적.”

“말하지 마.”

강휘가 벽에서 등을 뗐다. 석대가 일어나려다 멈췄다.

서리화가 두 사람 사이에 섰다. 오른손으로 거래 기록 반쪽을 꺼냈다. 종이 모서리가 약간 구겨졌다.

“석대 씨. 강휘 씨 기준을 저는 반대했어요. 하지만 지금 이 주판 소리와 왼쪽 귓불 자리를 두고만 말하자면.”

서리화가 석대 쪽으로 반 걸음 다가섰다.

“확인될 때까지 제가 놓지 않을게요.”

강휘가 고개를 약간 들었다. 석대의 숨소리가 턱에서 막혔다. 골목 밖에서 늦은 바람이 약방 문을 스쳤다. 강휘는 그 바람에 실린 골목의 출구 소리까지 들으며 문 안쪽으로 위치를 옮겼다. 석대가 물러나지 못하게, 그리고 자신은 칼을 쓰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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