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맹검귀
4화
약봉지 뒷면이 식탁 위에서 말려들었다. 서리화가 손끝으로 모서리를 눌러 편 자리, 종이에 약간 물기가 배어 있었다.
단목 객잔 2층 방. 밤은 깊었고 창호 밖으로 객잔 마당의 늦은 바람이 지나갔다.
강휘는 문 옆에서 한 걸음 안으로 옮겼다. 석대의 호흡이 아직 얕았다. 목구멍에서 두 번, 가슴에서 한 번 끊기는 소리가 났다.
“앉아 있지 않아도.”
서리화가 등잔불을 약방 기름에서 객잔 촛불 쪽으로 옮기며 말했다. 심지가 타는 소리가 짧게 튀었다.
“강휘 씨. 문 쪽은 바람이 들어오니까요.”
“여기서 듣는다.”
강휘가 허리춤의 검집을 식탁 모서리에 기대어 세웠다. 나무와 나무가 맞닿는 소리가 방 안에 낮게 깔렸다.
석대가 의자 끝에 걸친 채 상체를 앞으로 굽혔다. 오른손이 허리춤을 더듬다 멈췄다. 주판은 서리화가 식탁 가운데에 내려놓았다. 알들이 서로 닿지 않게, 푸른 천 위에 눕혀 있었다.
“내가 가진 것도 이제 다 내놨고.”
석대가 목소리를 낮췄다.
“이 밤중에 방까지 붙잡아 놓고 무슨 말을 더 하자는 건지, 그것부터 듣고 싶소.”
“네가 그 방에 있었는지 묻는다.”
강휘가 석대 쪽을 향해 턱을 들었다. 두 겹의 흰 무명 아래로 시선은 없었다.
“삼 년 전. 비 오는 밤. 스승의 은신처 밖.”
석대가 숨을 들이켰다. 이번에는 멎지 않고 가슴 깊이 들어갔다. 심장이 빨라지는 소리가 식탁 너머까지 들렸다. 서리화의 손이 등잔 심지 옆에서 멈췄다.
“아니오. 나는 모르는 곳이요.”
석대가 고개를 저었다. 턱이 옷깃에 스치는 소리가 났다.
“거기 대고 주판을 멈추는 버릇. 네 소리와 같았다.”
“소리만으로 사람을.”
“새끼손가락부터 알을 누르고, 끊고, 다시 한 번.”
강휘가 손가락으로 검집을 한 번 톡 쳤다. 단단한 가죽이 울렸다.
“그날도 세 번 끊기고 다시 한 번 눌렸다.”
서리화가 숨을 참는 게 들렸다. 석대의 심장이 목젖 쪽에서 빠르게 뛰었다. 방 안의 촛불이 바람에 한 번 흔들렸다가 곧게 섰다.
“그건 계산을 하다 보면 누구든.”
“아니다.”
강휘가 한 걸음 다가섰다. 석대의 무릎이 의자에 닿은 채로 뒤로 밀렸다. 의자 다리가 마룻바닥을 짧게 긁었다.
“거짓을 말할 때 네 숨이 먼저 멎는다. 방금 네가 그랬다.”
“그걸 어떻게.”
“들은 것뿐이다.”
강휘가 식탁 앞에 섰다. 두 사람 사이로 등잔불 심지가 가늘게 타는 소리만 이어졌다. 서리화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석대가 두 손으로 무릎을 움켜쥐었다. 손아귀에 땀이 배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날, 그 집을 몰랐소.”
“두 번은 봐주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강휘가 오른손을 검집 띠에 걸었다.
“네가 넘겼느냐.”
석대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아래턱이 부딪히는 작은 소리가 났다. 서리화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약봉지 하나를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숨이 멎는다. 군말이 없는 건 겁이 난 게 아니라 답을 고르는 중이다.”
강휘가 말했다.
“맞소.”
석대가 굽은 등을 더 굽혔다. 이마가 거의 무릎에 닿았다.
“내가 팔았소.”
서리화가 약봉지를 쥔 손을 멈췄다. 촛불이 심지에서 두 번 꺾였다.
“은신처를 흑음회에 넘겼소. 은자 열 냥 받았고.”
석대의 목소리가 떨리다가, 한 번 꺾였다.
“뒤에 사람이 죽은 줄은 몰랐소. 나는 위치만 알려준 거라.”
“누구에게서 의뢰를 받았느냐.”
강휘가 말했다. 검집에 걸친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름은 몰랐소. 흑음회 외곽 무리라는 것만. 뒷돈은 단목 서문 밖 서까래 밑에 두라고.”
석대가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손가락이 떨리는 소리가 옷소매에 스쳤다.
“조카가. 내 조카 석아가 그 뒤에 잡혔소. 정보를 넘기고 나면 풀어준다 했는데.”
“백무혼이지.”
강휘가 말했다.
석대가 대답 대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심장 소리가 다시 빨라졌다.
“그 사람이 직접 나서진 않았소. 청음사라는 이가 중간에서 말을 전했고. 석아의 머리끈을 보여주며 다음 지시를 기다리라 했소.”
서리화가 약봉지를 식탁 위에 펼쳤다. 종이가 바람에 살짝 들렸다 눌렸다.
“기록할게요. 은자 열 냥. 조카 석아의 인질. 청음사 중개.”
서리화가 품에서 먹을 꺼내려다, 객잔 방에는 벼루가 없어 멈췄다. 허리춤 침통 옆에 달린 짧은 붓을 꺼냈다. 약봉지 뒷면에 침으로 먹 대신 눌러쓰려다 손을 바꿨다.
“식탁에 촛농이 있어요. 그걸로라도 지금 적어두죠.”
서리화가 촛대 아래 굳은 촛농을 손톱으로 긁어 약봉지 뒷면에 눌렀다. 흰 자국이 몇 획을 남겼다.
“대가와 인질 위치. 조카가 어디 있는지 아는 대로.”
강휘가 말했다.
“모르오. 아무도 안 가르쳐 줬소. 정보 동선만 계속 바뀌고, 나는 시키는 대로 움직였소.”
석대가 고개를 들었다.
“죽을 줄 알았소. 머리끈 한 번 보여준 뒤로.”
강휘가 검집에서 손을 떼고 품속에서 복수 점검표를 꺼냈다. 접힌 종이를 손끝으로 살폈다. 서리화가 작은 숨을 들이쉬었다.
“펼쳐요. 뒤집힌 것 같은데.”
“아니다. 이대로.”
강휘가 손끝으로 종이 위의 줄을 짚었다. 점자처럼 파인 흔적은 없었다. 그는 왼손 검지로 종이 끝을 한 번 눌러 방향을 확인했다.
“석대. 정보원.”
강휘가 낮게 말했다.
“삼 년 전 은신처를 흑음회에 넘기고 은자 열 냥을 받았다. 백무혼이 조카를 쥐고 있다.”
서리화가 촛농으로 약봉지 뒷면에 마저 적고 있었다. 긁히는 소리가 방 안에 차게 퍼졌다.
“기록은 저쪽에 적어도 되겠어요. 점검표에는 먹이 없으니.”
“여기에 새긴다.”
강휘가 점검표를 반쯤 접어 서리화 쪽으로 내밀었다.
“네가 대신 써라. 내 손으론 종이를 상하게 할 뿐이다.”
서리화가 잠시 그를 보다가, 점검표를 받아 펼쳤다. 강휘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자리, 두 번째 이름이 비어 있는 줄 바로 아래에 촛농을 긁어 석대의 배신을 두 줄로 눌러 적었다.
석대가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가 살에 닿는 작은 소리가 났다.
“나는 이제 여기서 죽는 거요.”
“아니.”
강휘가 말했다.
“너는 길잡이다. 조카를 되찾는 대가로 백무혼의 정보 동선을 안내해라.”
“내가 아는 건 반토막이오. 그 사람들이 나를 믿고 전부를 가르칠 리가.”
“네가 살아서 옮기는 정보가 더 많다.”
강휘가 몸을 곧게 세웠다.
“거짓이 확인되면 거기서 거래는 끝이다. 그다음은 내가 정한다.”
서리화가 점검표를 강휘에게 돌려주었다. 종이가 공기 중에서 가볍게 떨렸다.
“석대 씨. 조건은 다시 말하지만.”
서리화가 석대를 똑바로 보았다.
“저는 강휘 씨 기준에 반대했어요. 하지만 조카 문제는 다르게 들려요. 확인될 때까지 제가 당신의 말을 기록할게요.”
“기록이 사람을 살리겠소.”
“대가는 치르게 될 거예요. 이미 치르고 있고요.”
서리화가 약봉지를 접어 품속에 넣으려다, 강휘가 말했다.
“그 약봉지. 네가 가져라.”
“자백 기록이잖아요.”
“그래서다. 나는 내용을 못 본다. 네가 읽어야 꺼낼 수 있다.”
서리화가 약봉지를 품에 넣었다. 석대가 두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손바닥이 거친 살갗을 쓸리는 소리가 났다.
“내 조카는 말이지, 이름이 석아요. 열여섯이고, 나보다 요리솜씨가 나아요.”
석대가 웃으려다 실패했다.
“그 애 머리끈 하나로 나를 끌고 다녔소. 몇 번이고.”
서리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이라는 증거, 지금은 머리끈만 있지요.”
“내가 본 건 분명 그 애 것이오. 연두색 끈에 산호 알 두 개.”
석대가 손을 내려다보았다.
“백무혼은 그 애를 죽이지 않았소. 그걸 미끼로 나를 계속 쓴다는 뜻이오.”
“네 정보 동선을 뒤집을 수 있겠군.”
강휘가 말했다.
“어떻게.”
“네가 움직일 때마다 그쪽에서 지시가 갱신된다. 그 틈에 우리가 그 방향을 미리 읽는다.”
서리화가 아버지의 거래 기록 반쪽을 품에서 꺼냈다. 종이 모서리가 약간 구겨진 것이 그녀의 손끝에 닿았다.
“여기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거래처가 있어요. 백무혼의 옛 약재 거래처 인근이에요. 이 지금 상황이면 같은 길을 가게 될지 몰라요.”
“장소를 확인하자.”
강휘가 말했다.
“백무혼의 추적과 두 번째 원수의 목격지를 한 줄로 합친다. 어디부터 가야 하느냐는 네가 먼저 잡아라.”
석대가 식탁 위의 주판을 향해 손을 뻗다가 멈췄다. 서리화가 주판을 천천히 석대 쪽으로 밀어주었다.
“이거, 가져도 되는 거요.”
“길잡이는 할 테니.”
석대가 주판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알 하나가 손가락에 눌려 가볍게 부딪혔다. 그 소리가 방 안에 짧게 남았다.
강휘가 검을 다시 쥐려고 손을 뻗었다. 그때였다.
창밖에서 날갯짓 소리가 났다. 크지 않았다. 비둘기보다 묵직하고, 바람을 두 번 끊는 박자였다.
강휘의 상체가 먼저 창 쪽으로 돌아갔다.
“새다.”
서리화가 일어서려다 촛불을 쳤다. 방 안이 어두워졌다. 창호 살이 바깥 쪽에서 한 번 가볍게 울었다. 창호를 밀지도 않았는데 바람이 세어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무언가가 마룻바닥에 떨어졌다. 명주실 같은 것이 나무에 닿으며 나는 가벼운 소리. 이어서 작은 알이 두 개, 바닥을 통통 튀었다.
서리화가 어둠 속에서 몸을 낮췄다. 손끝이 바닥을 짚으며 떨어진 것을 찾았다. 강휘는 검을 빼지 않았다. 창 쪽으로 발끝을 돌리고 숨을 멈춘 채 바깥 소리를 들었다.
날갯짓은 이미 멀어지고 있었다.
“전서구요.”
석대가 낮게 말했다.
“전서구가 헛날아드는 일은 없소.”
서리화가 바닥을 더듬어 끈 하나를 집어 들었다. 연두색 끈에 산호 알 두 개. 촛불은 없었지만 손끝에 알 두 개의 맺힌 모양이 다 들어왔다.
“석아의 머리끈이에요.”
서리화가 말했다. 목소리에 표정이 깃들었다.
“석대 씨가 말한 그대로예요.”
석대가 일어나다 말고 벽 쪽에 한 손을 짚었다. 그 손이 벽을 짚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심장이 목까지 올라와 있었다.
강휘가 그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검을 쥔 손으로 검집을 한 자 뽑았다. 칼날이 달빛 없이도 미세하게 떨었다.
“지시가 왔다. 방금 전서구가 머리끈을 다시 떨어뜨렸다.”
강휘가 말했다.
“이제 이동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