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청맹검귀

5화

새벽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단목 객잔 마구간에는 이미 세 필의 말이 굴레를 채웠다. 마부가 등자를 매만질 때마다 낡은 가죽 끈이 짧게 끊어졌다 이어졌다.

강휘는 마구간 기둥 옆에 서서 말이 코를 고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어젯밤 전서구가 떨어뜨린 머리끈은 서리화의 소매 깊숙이 접혀 있었다. 그 작은 천 조각이 백무혼의 지시를 품은 채였다.

“탁현부터 간다.”

강휘가 말했다.

서리화가 말 머리에 얹은 약초 궤짝 끈을 당겨 묶다가 손을 멈췄다.

“석아는요? 머리끈을 보냈는데.”

“백무혼은 인질을 먼저 내놓지 않는다. 검증이 먼저다.”

석대가 마구간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섰다. 한 손에는 아직 주판을 쥐지 못하고 있었다. 대신 겉옷 자락을 엄지로 꾹 눌러 쥔 채였다.

“내가 주판 받기 전에 하는 말인데, 사음협곡은 밤에 가면 안 되는 길이오.”

“왜.”

“바람 소리가 사람 목소리처럼 겹쳐서 들리는 데요. 낮에도 길 잘못 들으면 하루를 헤매고.”

석대가 신발 앞코로 마구간 바닥의 짚을 밀었다. 짚이 바닥 돌에 부딪히며 가볍게 쓸리는 소리가 났다.

강휘는 그 소리가 몇 번 겹치는지 귀로 세고 있었다. 아침 바람이 마구간 들보 위에 걸린 마구를 흔들자, 소리가 흩어졌다.

서리화가 말 등에 거래 기록 반쪽을 넣은 비단 보자기를 다시 단단히 동여맸다. 손끝이 마른 비단을 눌러 접는 대로 자국이 났다. 그 상태로 더 오래 말렸다간 약재 상자와 갈라질 것 같았다.

“백무혼 추적과 탁현 목격지가 한 줄이라면서요. 사음협곡이 그 줄이에요?”

“석대가 길을 잡아라.”

강휘가 고삐를 당겨 말 목을 돌리며 말했다.

“나는 뒤에서 듣는다.”

석대가 우물쭉물하다가 말 안장 앞에 달린 작은 고리에 주판을 걸었다. 손목에 두른 끈을 풀어 이동할 때는 이렇게 다니는 버릇이었다. 그의 왼손 새끼손가락이 고리를 확인하듯 주판알 하나를 짧게 눌렀다.

“예. 이왕 갈 거면 북문으로 나가자고. 시장 골목 안 거치는 길이오.”

단목 북문은 새벽 문이 열린 직후라 아직 병사 두 명이 문설주에 등을 기댄 채였다. 강휘가 말을 몰아 문을 넘자 바깥 흙길에 낮은 강안개가 깔려 있었다. 석대가 맨 앞에 섰다. 말발굽 소리가 손가락 마디를 튕기듯 흙을 짚었다.

서리화가 중간에서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새벽에 떠나는 사람치고는 세 필 모두 걸음이 조용해요.”

“조용한 게 좋은 거요. 사음협곡 가는 길치고는 이것도 시끄러운 편이다.”

석대의 목소리가 안개를 뚫고 앞에서 들려왔다. 강휘는 그 두 목소리 사이로 길옆 풀잎에 이슬 떨어지는 간격을 듣고 있었다. 아침 공기 속에 무쇠 냄새가 섞이기 시작했다. 협곡 쪽 바람이 땅 밑에서부터 밀려오고 있었다.

해가 늦게 걸쳤다. 셋이 사음협곡 어귀에 닿은 것은 해질녘이었지만, 하늘은 이미 협곡 입구에서부터 어둠이 번지고 있었다. 바람이 골짜기 벽에 부딪혀 돌아나가며 자기 소리를 다시 던졌다.

강휘가 말을 세웠다.

“뒤로.”

“벌써 함정이란 말이오?”

석대가 고삐를 당겨 말을 물리고 뒤를 살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서리화가 멈춰 선 말 위에서 몸을 낮췄다.

“들려요? 저는 바람 소리만.”

“그 바람이 이상하다.”

강휘가 말에서 내렸다. 흙이 축축하게 밟혔다. 발뒤꿈치를 들지 않고 그대로 한 걸음 들여다 놓자, 발 앞쪽에서 낮은 돌울음이 돌아왔다. 두 번 만에 소리가 갈라졌다. 한 번은 바위에 스친 바람, 한 번은 그 바람을 다시 흘려보내는 검날의 떨림.

“반사음이다. 일부러 겹쳐 놨다.”

강휘가 검집 끈을 허리에서 풀어 검을 고쳐 쥐었다. 뽑지는 않았다.

“입구에 대기해라.”

“혼자 가시게요?”

서리화의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갔다.

“저건 나를 부르는 소리다. 탁현의 칼날 떨림을 확인해야 다음 이름으로 넘어간다.”

“그럼 저도.”

“안 된다. 함정 중심에 사람이 둘 들어가면 반사음이 뒤섞여 방향이 지워진다.”

강휘가 몸을 협곡 쪽으로 반쯤 돌렸다. 석대가 말 목을 잡은 채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손바닥으로 말 옆구리를 두드렸다. 말이 긴장해서 코를 세게 내뿜는 소리가 골짜기에 들어가자, 들어간 소리가 다섯 번쯤 겹쳐 돌아오는 것처럼 들렸다.

“저 소리 들었소? 들어갔다가 다섯 번은 돌아오는 데요. 이런 데 들어가면.”

“다섯 번은 네 말이 만든 소리다.”

강휘가 고개를 똑바로 하지 않고 협곡 벽 쪽으로 귀를 돌린 채 말했다.

“내가 들어가서 소리 방향을 세운다. 너희는 말과 함께 입구에 있어라.”

서리화가 약초 궤짝 끈을 만졌다. 식은 비단 보자기 위로 바람이 스치자 겉이 금세 차가워졌다. 거래 기록 반쪽이 그 안에서 함께 떨리고 있었다.

“돌아오실 거죠?”

서리화가 물었다.

강휘는 대답 대신 땅을 한 번 찬 뒤 협곡 입구를 넘어섰다. 발소리가 좁은 바위 사이로 빨려들어가며 쓸쓸히 작아졌다.

석대가 말 고삐를 두 손으로 감아쥐고 입구 바깥쪽 바위에 섰다. 서리화도 말에서 내려 약초 궤짝을 가슴 앞으로 당겼다. 강휘의 그림자가 골짜기 안쪽으로 갈라지는 어둠과 겹쳐 사라질 때까지 두 사람은 감히 한 발짝도 옮기지 못했다.

협곡 안쪽에서 다시 칼날 떨림이 한 번 길게 끓어올랐다. 이번에는 골짜기 전체의 반사가 아니라 한 줄로 뻗어 오는 소리였다. 강휘는 그 소리를 따라 더 깊이 들어갔다. 검은 아직 칼집에 붙어 있었지만, 손아귀를 옮겨 쥘 때 검집 안에서 칼날이 허리에 닿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렸다. 골짜기가 그 소리를 삼켰다가 돌려주지 않았다.

입구에서는 말 세 필이 서로 몸을 부비며 낮게 울었다. 서리화는 그 울음소리 속에서 강휘의 발소리가 아닌 다른 기척 하나를 들으려 귀를 세웠다. 아직 없었다. 석대가 주판알 하나를 눌렀다 놓는 소리가 바람에 쓸려 들어갔다.

“저 사람, 아까 다섯 번이라 했소. 자기 소리는 몇 번으로 돌아오는지 알기나 하고 들어간 거요?”

석대가 소시라도 낮춘 듯 혼잣말을 했다.

서리화는 대꾸하지 않았다. 손에 쥔 약초 궤짝 끈이 점점 찬 바람에 뻣뻣해지는 감촉만 남았다.

협곡 안으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입구에서 대기하던 두 사람의 기척은 점점 희미해졌다. 강휘는 열 걸음째에서 발을 멈췄고, 그제야 돌벽이 밤공기 속에서 열기를 뱉는 소리가 사방에서 겹쳐 들렸다.

사음협곡은 밤이 되면 소리가 뒤집혀 들렸다. 돌벽에 부딪힌 물소리가 협곡 입구 쪽에서 나는 것처럼 겹쳐 왔다. 강휘는 그 반사음 사이로 자신의 발소리가 먼저 돌아오는 지점을 따라 안쪽으로 열 걸음쯤 걸었다.

뒤쪽 입구엔 서리화와 석대가 남아 있었다. 강휘가 그들에게 몸짓 없이 말했다.

“소리 나는 대로 정리한다. 들어오지 마라.”

발걸음을 멈추자 반사음도 흩어졌다. 바위에 스민 낮 동안의 열이 밤바람과 만나 갈라지는 소리가 사방에서 났다. 강휘는 검집을 왼손으로 감아 쥐고 오른손은 검자루 위에 얹었다.

협곡 중심부는 바닥이 얕게 퍼져 있었다. 바람이 위쪽 벽을 따라 돌며 먼지 낀 공기를 밀어냈다. 그때, 강휘의 오른쪽 여섯 걸음 너머에서 작은 돌 하나가 굴러갔다.

아니, 굴러간 게 아니라 바닥을 긁는 소리였다. 장검 끝이 암반을 한 번 스친 소리. 바람에 실린 소리가 아니었다. 진동이 바닥을 타고 와 신발 안까지 들어왔다.

강휘는 몸을 낮추지 않았다. 목을 오른쪽으로 돌리고 호흡을 반 토막으로 끊었다. 반사음이 그의 귀를 속이려는 방향과 반대로, 돌벽 두 겹 사이로 좁게 빠지는 기척이 있었다.

탁현이 숨어 있었다. 숨을 얕게 나누며 반사음이 몰아치는 어깨 뒤에 몸을 붙이고 있었다. 협곡은 소리가 한 번 돌아붙기 때문에 정면에서 듣는 위치와 실제 위치가 달랐다.

강휘가 그 틈을 노리는 기척을 역으로 밟았다. 반사음이 강한 곳으로 먼저 반 걸음 옮기자, 숨을 죽인 상대의 왼발이 미세하게 돌아갔다. 등 뒤에서 나는 물소리보다 낮은, 칼자루를 고쳐 쥐는 마디 소리.

새끼손가락부터 걸고 약지, 중지 순서로 검자루를 조였다. 손아귀가 칼날 떨림을 흡수하면서도 쇠가 울리는 잔향이 사방 벽에 세 번 부딪혔다. 강휘는 그 세 번의 잔향 중 가운데 음을 따라 몸을 틀었다.

칼날이 이미 나와 있었다. 바람을 두 번 갈랐다. 왼쪽에서 들어왔다.

강휘가 검을 한 자 뽑았다. 칼날이 검집을 떠나는 소리는 반사음에 삼켜지지 않고 오히려 반대쪽 벽을 때렸다. 그 소리 사이로 상대의 칼날 떨림이 분리됐다. 5보 안에서 살기가 열렸고, 칼을 뽑을 때 손등 관절이 걸리는 소리가 세 번째로 났다.

“탁현.”

강휘가 낮게 불렀다.

“네 검 맞다.”

상대가 반사음 뒤로 물러서며 칼을 높이 세웠다. 강휘는 그대로 앞으로 두 걸음. 상대가 언덕진 바위를 차며 올라가려는 소리를 냈다. 강휘의 검이 그 앞을 끊었다. 초식의 허리 회전에서 발현된 검기가 3보 안쪽으로 상대의 퇴로를 막았다.

탁현이 강하게 숨을 들이켰다. 빗나간 숨소리였다. 검이 어깨부터 허리 선으로 들어가며 갈비가 갈라지는 저항이 손에 전해졌다. 강휘는 검을 빼며 뒤로 반 걸음 물러섰다.

피비린내보다 먼저, 검에서 떨어지는 붉은 물이 바위 위에 세 방울 떨어졌다. 탁현의 몸이 무릎부터 꺾여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검이 암반에 부딪히는 끝소리가 협곡을 따라 멀리 번졌다.

강휘는 검날의 피를 아래로 훑어 닦았다. 숨이 옅은 피를 끓는 소리로 데웠다.

“이름을 확인했다. 검 마디 소리와 칼날 떨림. 네가 스승을 벤 자다.”

강휘가 품에서 복수 점검표를 꺼내 손끝으로 첫 이름 아래 둘째 줄을 짚었다. 작은 칼집을 내어 검날에 남은 피를 손가락에 묻혀 그 줄 위에 한 획을 그었다. 점검표가 젖은 소리를 내며 밀렸다.

“두 번째다.”

강휘가 검집에 검을 꽂았다. 그 소리가 협곡의 반사음보다 먼저 입구로 뻗어 나갔다.

잠시 뒤 서리화가 들어왔다. 발소리가 급했지만 한 번씩 바위에 손을 짚어 몸을 지탱했다. 석대가 뒤에서 주판을 왼손으로 움켜쥔 채 따라왔다.

서리화는 탁현의 시신 옆에 무릎 꿇고 촛불을 켰다. 죽은 자의 옷자락부터 소매, 허리춤을 손끝으로 짚어 갔다.

“움직이지 말아요. 바닥에 뭐가 있는지 확인할게요.”

석대가 시신의 반대편 옆에 쪼그려 앉아 촛불을 들었다. 서리화는 탁현의 허리춤 안쪽에서 기름종이로 싼 조각을 꺼냈다. 두 겹을 벗기자 누른 자국이 남은 약재 교환 주문서가 나왔다. 좌측 하단에 백무혼이 중개자로서 찍어 둔 흔적이 있었다.

“이 기록. 반쪽과 붙여 볼게요.”

서리화가 품에서 거래 기록 반쪽을 꺼냈다. 촛불 가까이 두 종이를 나란히 댔다. 오른손으로 주문서의 약재 이름을 한 줄씩 짚으며 반쪽에 적힌 수량과 대조했다.

“명이초. 무음 시험 재료가 분명해요. 수량도 같은 회차 기록이에요.”

석대가 시신 옆에서 낮게 말했다.

“흡성귀 소문에 명이초가 든다는 것까진 시장 바닥에도 돌았소. 이 종이엔 그보다 흉한 게 적혀 있소.”

서리화가 약재 교환 주문서 안쪽에 낀 두툼한 종이를 꺼냈다. 봉서였다. 겉면에 약방 도장처럼 찍힌 표식이 없고, 끈 묶음이 다르지 않게 눌려 있었다.

“요구 봉서네요. 받는 이가 정해져 있고, 구결을 넣는 행이 비어 있어요.”

강휘가 다가와 손을 뻗어 받았다. 종이를 가볍게 젖혀 바람을 쐬며 결을 읽었다.

“읽어라.”

“흡성귀 마지막 구결 요구예요. 약재를 먼저 보내고, 구결은 이 행에 채워 받는 거래 구조예요. 그런데.”

서리화가 손가락으로 종이 하단의 빈 칸을 누르며 말했다.

“여기, 백무혼이 마지막 구결을 채워 달라고 요구한 부분이에요.”

강휘가 서리화가 쥔 거래 기록 반쪽을 찾아 손끝으로 한쪽 끝을 잡았다. 두 사람이 종이를 촛불 쪽으로 함께 기울였다. 기록 반쪽의 마지막 행이 빛을 받자 윤곽이 드러났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빈 구결 행이었다.

“너도 이걸 보았군.”

강휘가 말했다.

“백무혼은 이 빈 구결을 채우려는 것이다.”

서리화가 반쪽을 들어 더 가까이 불빛에 비췄다. 기록 반쪽에서 빈 행의 가장자리가 지면을 따라 움푹 눌려 있었다.

“이 반쪽이 출고장과 닿아야 어디서 받기로 했는지 나와요. 구결을 요구한 자리도요.”

강휘가 봉서를 접어 서리화에게 건넸다.

“백무혼이 우리보다 먼저 폐약창에 갔을 것이다. 빈 구결은 거기서 채우려 한 거다.”

서리화가 두 종이를 제몸 쪽으로 거둬 쥐었다. 석대가 주판을 옆구리에 끼고 돌아섰다.

“폐약창까지는 반나절이면 닿소. 밤길 서두르면 새벽 지나 도착하오.”

강휘가 검을 다시 한 번 매만지며 말했다.

“서둘러라.”

바람이 협곡 안을 훑었다. 촛불이 한 번 기울었고, 빈 마지막 행에 어른거렸다.

청맹검귀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