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청맹검귀

7화

가슴이 뛰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그건 내 것이 아니었다. 폐약창 바닥 위, 토혈 섞인 호흡 옆에서 석대의 심장이 부상 탓에 빠르게 뛰고 있었다.

강휘는 안대 아래로 눈을 감고 그 소리 하나만 남겨 두었다. 흡성귀는 여전히 창고의 공기를 삼키고 있었다. 바람도, 나무 껍질이 떨어지는 소리도, 서리화의 침이 옷깃에 스치는 작은 소리도 전부 잘려나간 자리였다.

그런데도 몸이 바닥에 닿는 진동만은 남아 있었다. 간격이 좁은 무언가가 폐약창 안쪽에 서 있었다.

석대의 숨은 어깨 가죽이 찢긴 자리에서 불규칙하게 들썩였다. 서리화가 그 옆에서 손가락을 펴는 온기와 약포지 닿는 결이 공기 없이도 느껴졌다. 말도 없이 움직이는 둘의 거리는 강휘의 등 뒤에 있었다.

그는 검을 쥐지 않은 오른손으로 바닥의 진동을 짚으려다 멈췄다. 손끝으로 읽는 것과 귀로 읽는 것이 다른 세계라면 지금은 손끝이 정확했다. 흡성귀가 삼킨 것은 공기뿐이었으니까.

“석대, 그 호흡. 어깨가 아니라 옆구리지.”

강휘가 물었다. 뒤에서 서리화의 손이 잠깐 멎었다.

“옆구리예요. 뼈가 갈라졌는지는 아직. 어깨 찢긴 곳보다 깊어요. 금속선이 돌아 들어왔어요.”

서리화의 목소리는 무음진 안에서 겉돌지 않고 바로 들렸다. 백무혼이 풀어 준 일각이 아직 닫히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무음진이라도 가까운 소리는 먹지 못하는 것인지. 강휘는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백무혼의 살기는 다섯 보 안 어딘가에서 사라져 있었다. 아까는 분명 있었다. 서리화에게서 거래 기록 반쪽을 빼앗을 때, 그 손이 칼선보다 먼저 지나갔을 때. 그때 강휘는 검을 뽑았고, 상대는 검집에 손을 대지 않았다.

지금은 달랐다. 백무혼이 폐약창 밖으로 나갔다고 보기엔 창호지 너머 풀잎이 기울었다. 바람이 아닌데도 풀잎이 눌렸다면 그쪽으로 몸을 던진 게 아니라 다른 축으로 옮긴 것이다.

“움직였다.”

강휘가 검집을 왼손으로 짚으며 일어섰다. 무릎을 폈을 때 바닥의 가는 모래가 십여 알 굴러갔다. 그 진동이 닿는 축이 있었다. 세 칸쯤 오른쪽, 썩은 약재 선반과 기둥 사이. 강휘는 그 방향으로 상체를 틀었다.

“너는 거기서 더 오지 마라.”

강휘가 서리화에게 말했다. 석대의 입에서 짧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서리화가 석대의 옆구리를 눌렀는지, 숨이 한 번 거꾸로 들이쉬어졌다.

강휘는 서리화의 위치를 잊지 않았다. 셋은 서로를 이었다. 그런데 백무혼은 그 사이에 없었다.

“강휘. 놈은 소리를 지웠소.”

석대가 입을 열었다. 혀가 잇몸에 붙는 소리가 났다.

“내 귀엔 이제 어깨 터진 내 숨소리만 들리니…… 소리를 지운 게 아니라 나를 병신으로 만든 거요.”

“닥쳐라.”

강휘는 한 걸음 왼쪽으로 옮겼다. 석대의 목소리가 끊기고, 그 자리에서 약한 나무 틀 떠는 소리가 났다. 서리화가 석대의 팔을 누른 것이다. 둘 다 움직임을 줄이고 있었다.

폐약창 안쪽에서 검은 돌가루 냄새가 났다. 아무리 오래 묵은 약재라 해도 이런 냄새는 나지 않는다. 강휘는 그 냄새의 방향을 쫓아 발을 내디뎠다.

소리가 없는 공간에서 냄새는 길이 되었다. 딱 한 걸음, 그 앞에서 진동이 멎었다. 백무혼이 섰다.

“알아차리셨군요.”

백무혼의 음성이 폐약창의 정적을 갈랐다. 강휘는 그 소리를 처음 들었다. 목소리는 낮고, 끝이 위로 가지 않았으며, 마지막 글자가 짧게 끊어졌다.

사람의 소리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맑았다. 강휘는 칼을 쥔 손아귀에 힘을 주지 않았다. 목소리만으로는 점검표를 넘길 수 없었다.

“네가 나를 불렀다.”

강휘가 말했다.

“무음진 일각을 열고 목소리를 줬다. 이제 검을 뽑아라.”

백무혼이 한 발 물러나는 소리가 났다. 강휘는 듣지 못했다. 바닥 진동이 그렇게 전해졌다.

“검을 뽑지 않으셔도, 저는 이 자리에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사실을요.”

백무혼이 천천히 말했다.

“네가 무슨 말을 하셔도, 저는 소리 증거로만 복수를 확정합니다.”

강휘가 백무혼의 말투를 그대로 받아 넘겼다. 바닥 진동이 한 치 왼쪽으로 밀렸다. 백무혼이 어깨를 낮춘 것이다. 강휘는 검집을 다시 짚으며 말했다.

“네 스승은 마지막 구결을 제게 주지 않고, 당신께 주려고 하셨습니다.”

백무혼이 말했다. 강휘의 숨이 한 박자 늦게 멎었다. 스승이 마지막 구결을 두고 남긴 말은 단 한 줄이었다.

“흡성귀의 끝은 소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소리에 닿지 않는 것이다.” 그건 마지막 구결이 아니었다. 그건 입에서 나온 주의 적 한 조각이었다. 강휘는 그 말을 들었고, 그날 밤 스승은 죽었다.

“그래서 그 무공을 네가 가로챘다.”

강휘가 짧게 답했다.

“제가 가로챈 것이 아니라, 제가 마무리한 것입니다. 당신 스승은 완성되지 않은 구결은 주지 않겠다고 버티셨습니다. 거래를 어긴 것은 스승 쪽이었습니다.”

강휘는 백무혼이 서 있는 축을 향해 반 걸음 좁혔다. 냄새가 옅어지고 진동이 흐려졌다. 흡성귀가 다시 두터워지고 있었다.

그래도 아까와 같은 무음은 아니었다. 백무혼이 일각을 다 닫지 못한 것이다. 그가 입을 열었던 순간, 무음진에 균열이 생겼다.

“네가 말한 사실은 들었다. 필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강휘가 검손잡이를 조금 뽑았다. 칼날이 마구리에 스치는 쇳소리가 폐약창 안에서 겉돌았다. 백무혼은 여전히 검을 쥐지 않은 듯, 옷자락도 움직이지 않았다. 서리화의 약재 궤짝 쪽에서 무언가 구르는 소리가 났다. 약재 가위였다.

“그날, 왜 발소리만 남겼나.”

강휘가 물었다.

“스승을 베는 자리에서 나는 발소리와 손아귀 마디 소리만 기억한다. 숨소리도, 옷 스치는 소리도 없었다. 네가 그런 식으로 다가갔다.”

백무혼은 곧 대답하지 않았다. 바닥 진동이 한 치 왼쪽으로 밀렸다. 강휘는 놓치지 않았다. 백무혼이 자세를 바꾸었다는 것을. 그것은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비켜 서는 움직임이었다.

“당신 스승이 마지막 구결을 제게 주지 않고, 당신께 전하려 하신 것은 그 무공의 주인을 당신으로 삼으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것을 바로잡고자 했을 뿐입니다. 그날 제가 당신 목숨까지 거두지 않은 것은 당신 귀가 죽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강휘는 미간을 좁혔다. 스승을 벤 자가 자신의 눈을 멀게 한 것은 아니었다. 그건 다른 자였다. 다만 백무혼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째서 강휘가 살아남았는지를 안다면, 그 말은 곧 처음부터 강휘는 백무혼의 목록에 없었다는 뜻이 된다. 그게 더 불쾌했다.

“내 눈을 그대로 둔 것은 개를 살려 두는 것과 같았겠지.”

“지금 보니 그것이 실수였습니다.”

백무혼이 말했다. 강휘는 그 말을 복수 점검표의 빈 칸에 적을 이유로 삼지 않았다. 말만으론 부족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여기서 너를 그날로 되돌려 놓을 것이다.”

강휘가 한 번에 검을 뽑았다. 칼끝이 폐약창의 무게를 가르며 앞을 향했다.

“네가 나를 볼 수 없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하지만 내 검은 네가 발 딛는 축 위에 있다.”

“검만 뽑으면 그날이 재현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날의 네 손아귀가 기억나게 될 것이다.”

강휘가 말했다. 그 순간 백무혼도 검을 뽑았다. 칼집에서 쇠가 빠져나오는 소리는 아니었다.

손가락 마디가 새끼손가락부터 차례로 걸리는 소리와 동시에, 바닥을 딛는 백무혼의 발이 미세한 모래를 갈았다. 무음진이 강해지는 한가운데서도 그 두 소리는 지워지지 않았다. 삼 년 전, 스승의 피가 식기 전에 바닥을 떠났던 발소리와 같은 결이었다. 새끼손가락 마디가 부러지듯 꺾이는 그 습관은 검을 뽑을 때에만 나오는 소리였다.

강휘는 칼날을 백무혼에게 고정하지 않았다. 대신 왼손으로 품 안의 복수 점검표를 눌렀다. 이제 다음 칸으로 넘어가도 된다는 증거가 손안에 떨어졌다.

심장이 한 번 느리게 뛰었다. 공포가 아니라 확정이 몸을 지나갔다. 강휘는 검을 어깨 높이로 올리며 백무혼을 원수로 불렀다.

“백무혼.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강휘의 어미가 백무혼을 겨누었다. 백무혼이 흡성귀를 강화했다. 폐약창 안의 미세한 소리들이 사라지는 대신, 바닥의 진동이 오히려 더 컸다.

빈 약재 선반이 뒤늦게 떨었다. 백무혼의 옷깃이 모래를 끌며 왼쪽으로 붙자 강휘가 따라섰다. 둘의 거리는 세 걸음 안이었다.

백무혼의 칼끝이 공기를 가르며 강휘의 목 옆을 스쳤다. 강휘는 칼날을 기울여 그 결을 흘리고, 백무혼의 손목을 겨누어 쇠를 밀어 넣었다.

첫 합. 백무혼의 검이 강휘의 검을 한 치 밀어 내는 힘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정확했다.

강휘는 그 힘의 방향을 다 알 수 있었다. 삼 보 안에서 검기가 선을 만들며 강휘의 오른쪽 어깨를 향해 번졌다. 강휘는 몸을 낮춘 채 그 선을 따라 반 박자 먼저 검을 틀어 넣었다. 검기가 아니라 쇠끼리 맞붙는 맑은 울림이 손바닥을 타고 내려왔다.

백무혼이 그 자리에서 흡성귀를 틀었다. 무음의 장막이 강휘의 앞이 아니라 뒤로 휘돌았다. 강휘는 뒤쪽 두 사람의 심장 쪽으로 축이 눌리는 걸 느꼈다. 서리화의 손이 멎고, 석대의 들숨이 한 번 끊어졌다. 백무혼이 그쪽을 향해 물러나는 진동이 바닥에 찍혔다.

“두 사람 곁으로 흡성귀를 틀었군.”

강휘가 낮게 말했다.

“당신의 귀를 남겨 두기로 하셨으니, 이제 그 둘의 소리부터 거두어야겠습니다.”

백무혼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강휘는 몸을 돌려 서리화와 석대의 사이로 검끝을 밀어 넣었다. 등 뒤로 사람을 숨기지 않았다. 백무혼이 그들 곁으로 가기 전에 강휘가 먼저 두 심장의 중간으로 들어섰다.

서리화의 호흡은 오히려 규칙적으로 바뀌었다. 그녀가 석대의 지혈을 이어 가며 강휘에게 길을 내준 것이다. 강휘는 원수를 코앞에 두고도 검끝을 백무혼의 빈틈에 고정했다.

축이 하나로 겹쳤다. 백무혼의 발이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강휘는 눈이 보이지 않는 검객으로서, 셋의 심박과 백무혼의 살기 사이에 서 있었다.

무음진은 여전했고, 폐약창의 바깥 소리는 아직 삼켜진 채였다. 백무혼이 양보하지 않는 한 걸음을 강휘가 밀어냈다. 그 소리는 나지 않았으나, 바닥이 떨었다.

청맹검귀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