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음검가(斬音劍歌)
1화
연기가 먼저였다. 송진 타는 냄새와 함께 대들보가 갈라지는 소리가 머리 위에서 났다.
하진운은 약재골 남쪽 어귀에서 걸음을 멈췄다. 밤이었지만 화염은 그에게 온도를 일러줬다. 왼쪽 뺨이 뜨거웠다.
가건물이 무너지고 있었다.
“사람이 있다!”
아닌 건 아닌 걸로 봐서는 안 된다. 하진운은 불길 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눈가리개 아래 회백색 눈동자는 아무것도 담지 않았지만, 귀는 이미 건물 안을 훑고 있었다.
기왓장 깨지는 소리. 불길이 서까래를 집어삼키며 내는 탁음. 그 너머로 세 사람의 발소리가 방향을 바꿨다. 불이 난 쪽에서 도망치는 게 아니라, 불길을 등지고 안쪽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사냥이다.
하진운은 도포 자락을 날리며 무너지는 가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뜨거운 공기가 폐를 눌렀다. 숨을 낮게 가른 뒤, 귀를 연다.
첫째 — 발뒤꿈치부터 디디는 버릇이 있다. 오른손에 도리깨 비슷한 걸 쥐고 있다. 골패 흔들리는 소리가 난다.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려 있다.
둘째 — 어깨를 좌우로 크게 흔들며 걷는다. 단검을 거꾸로 쥐었고, 손바닥에 땀이 밴 소리가 난다. 놈의 심박이 가장 빠르다.
셋째 — 부채를 접었다 폈다 한다. 발소리는 나지 않는다. 대신 부채살 접히는 소리가 리듬을 만든다. 숨이 가장 깊다. 우두머리다.
연기가 방향 감각을 흔들었지만 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객상의 뒤편에서 여자의 숨이 들렸다. 얕고 빠르되 끝에서 한 번씩 끊긴다. 연기를 마셨다. 허파가 절반쯤 막혔다.
“살려...”
목소리는 면역이 없었다. 그게 신호였다.
첫째가 골패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오른발 축에서 왼발로 체중이 넘어가는 소리. 쇠고리가 바닥을 긁었다.
하진운의 검이 먼저였다.
허공에서 골패가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쇠고리 두 개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바닥에 떨어졌다. 첫째가 왼손으로 손목을 감쌌다. 피 냄새는 연기보다 진했다.
“뭐야, 저 맹인!”
둘째가 단검을 뽑아 들었다. 칼집에서 쇠가 빠지는 마찰음이 가늘게 울렸다. 놈은 오른발을 반 보 앞으로 밀며 찌르려 했다. 하진운은 그 발바닥이 바닥을 미는 순간, 몸을 왼쪽으로 반 걸음 틀었다.
참음검은 소리의 끝점을 벤다.
단검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귀 옆을 스쳤다. 하진운은 바로 그 소리가 끝나는 지점을 베었다. 검끝이 둘째의 오른쪽 팔목을 짧게 끊었다. 단검이 손에서 빠졌다.
둘째는 신음도 못 하고 무릎을 꿇었다.
셋째가 부채를 완전히 폈다. 열두 살이 한 번에 갈라지는 소리. 이어서 공기가 갈라졌다. 부채에는 쇠침이 박혀 있었다. 셋이 동시에 날아왔다.
하진운은 고개를 왼쪽으로 젖혔다. 쇠침 하나가 눈가리개 끈을 스쳤다. 두 개는 어깨 너머로 지나갔다. 나머지 하나는 오른쪽 소매를 찢고 가죽 손목 보호대를 강타했다.
평소라면 20보 안에서 내공으로 관절 소리까지 잡아냈지만, 불길과 연기로 반이 줄었다. 그래도 우두머리의 다음 호흡은 들릴 만큼 가까웠다.
하진운은 무릎을 굽히지 않고 상체만 앞으로 숙였다. 검집을 짚은 왼손이 바닥을 한 번 때렸다. 그 소리가 불길 소리에 묻히는 순간, 오른손 검이 위로 솟았다.
셋째의 부채가 복부 높이에서 멈췄다. 부채살과 부채살 사이로 하진운의 검이 들어가 있었다. 손잡이를 쥔 손가락 세 개가 베였다.
부채가 바닥에 떨어졌다.
“물러나라.”
하진운이 처음으로 말했다. 목소리는 연기 탓인지 낮게 갈렸다.
셋째가 반 발 물러섰다. 피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리듬을 잃었다. 첫째와 둘째가 서로를 부축하며 비틀거렸다.
“살려주세요...”
그 사내들이 아니라 안쪽에서 다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진운은 습격자들의 발소리가 어귀 쪽으로 멀어질 때까지 서 있었다. 놈들이 남쪽으로 퇴각한 게 아니라 동쪽 골목으로 흩어졌다. 쫓지는 않았다.
불길이 가건물 중앙 기둥을 삼켰다. 기와가 쏟아지는 소리가 천장에서 났다. 구조는 남아 있으나 버틸 시간이 길지 않았다.
그는 소리가 난 곳으로 걸었다. 연기 때문에 들숨이 거칠어졌지만 발걸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객상 뒤편, 약초 더미가 무너져 내린 자리에 여자가 웅크리고 있었다. 숨이 일정하지 않았다. 오른손이 뭔가를 움켜쥐고 있었다. 가죽 약통 끈이 벽에 걸린 채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일어나.”
소류화는 번번이 기침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약통...”
“나중이다.”
하진운은 왼손으로 약통 끈을 잡아당겼다. 벽에 걸린 고리가 끊어졌다. 동시에 천장 서까래가 기울었다.
그는 오른팔로 소류화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몸이 가볍게 들렸다. 발로 바닥을 박차자 온몸에 불길의 온기가 쏟아졌다.
가건물 남쪽 벽이 무너지는 소리를 등 뒤로 흘리며 두 사람은 바깥으로 나왔다.
소류화가 바닥에 무릎을 짚고 연기를 뱉어냈다. 목구멍이 타는지 자꾸 기침을 반복했다.
“뭐 하는 자들이지?”
소류화가 겨우 대답했다.
“모릅니다. 약재골에 불부터 지르고... 약초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짐작이 갑니다.”
소류화가 일어나 옷깃을 여몄다. 손끝이 떨렸지만 목소리는 차분했다. 연기 때문에 다소 갈라졌을 뿐이었다.
“아버지가 남긴 처방 기록을요.”
하진운이 고개를 반쯤 돌렸다.
그때 남쪽 길에서 방울 소리가 났다.
청아한 은방울 하나가 아니라, 무리를 지어 흔들리며 걸어오는 소리였다. 열에서 스무 명에 가까운 발소리가 그 뒤를 따랐다. 그 앞에서 방울이 한 번 더 울렸다.
허리춤에서 나는 소리였다. 좌우로 흔들리는 리듬이 일정했다. 걸음걸이에 실려 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일부러 차고 흔드는 손길이 있었다.
하진운이 멈췄다.
방울 소리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남쪽에서 다가오는 자가 손을 쓸어 올리며 다시 울렸다.
하진운의 손이 검집을 향했다.
소리가 다르다.
사부의 숨이 끊기던 밤, 복수표에 새겨야 할 세 가지 소리 중 방울 소리는 반쪽뿐이었다. 검집을 치는 금속음과 방울이 헛도는 공명이 만나면서 소리가 꺾였다. 그러나 지금의 방울은 맑았다. 방울에 금이 가지 않았고, 그 안의 알갱이가 온전했다.
회전하며 허공을 맴도는 여운이 검객의 귀에 또렷하게 박혔다.
“하 사제.”
하진운의 어깨가 굳었다.
“내가 어찌 여기 올 줄 알았겠냐.”
서문혁이었다. 목소리는 미소를 머금은 채 낮게 울렸다. 걸음걸이의 보폭이 가지런했다. 흰 비단 무복의 옷깃 여미는 소리가 났다.
“불 좀 보려고 왔더니 사제가 난리를 치고 말이야.”
하진운은 몸을 돌리지 않았다. 귀만 서문혁에게 열려 있었다.
“난 화재를 수습하러 왔다. 가짜 구조주가 아니라.”
“그게 무슨 말이야?”
“방울 소리.”
하진운이 짧게 말했다. 오른손은 검집 위에 얹혀 있었지만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네가 울린 방울. 몇 번이나 울렸지?”
“세 번.”
서문혁이 발걸음을 멈췄다. 화재의 잔불이 사방에서 소리를 냈다. 그의 옆에 선 무리들이 횃불을 들고 있었다. 기름 타는 냄새가 불길의 냄새를 눌렀다.
“그게 어쨌다?”
“듣고 싶은 소리가 아니었다.”
서문혁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부, 그때 일이냐?”
하진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문혁이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검은 무복 자락이 땅을 스쳤다. 발소리보다 허리춤 은방울이 조용히 한 번 더 흔들렸다. 이번에는 방울을 손으로 짚으며 흔들었다.
하진운은 귀를 닫지 않았다. 그 소리에 집중했다.
- 방울의 몸체는 얇았다. 쇠붙이라고 해도 손가락으로 눌렀을 정도로 가볍게 휘는 소리가 났다. 안쪽 알갱이는 하나였다.
그래서 방울 하나로 종음 하나만 나왔다. 사부 살해 밤의 반쪽 소리는 알갱이가 두 개 부딪히며 만드는 박자였다. 그날 밤 방울은 깨져 있어 소리가 반으로 나뉘었다.
지금 것은 아니다.
하진운은 손을 검집에서 뗐다.
“너 방울, 어디서 났지?”
“우리 문파에 대대로 내려오던 거다. 네가 알 거 있느냐, 내가 있는데.”
서문혁의 어세가 반말로 꺾였다. 하진운은 그걸 무시했다.
“소류화.”
“예?”
“네게 묻는다. 방금 그 방울 소리, 들은 적 있느냐?”
소류화가 걸음을 반 발 물렸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었다. 하진운은 들었다. 심박이 세 번은 더 뛰었다. 진정하려는 것치고는 빨랐다.
“모릅니다.”
목소리는 차분했다. 거짓말하는 자 특유의 높은 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심박은 더 빨라졌고, 왼쪽 목의 맥이 세게 두 번 뛰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 소리를 들어온 사람처럼, 몸이 먼저 반응했다.
“모르는 게 다행이군.”
하진운이 서문혁에게 몸을 정면으로 돌렸다.
“서문혁.”
“어어, 불이라도 꺼주러 온 은인한테 너 참—”
“사부의 복수표가 아직 남아 있다. 세 가지 소리 증거가 채워지기 전에는 칼을 뽑지 않는다.”
서문혁이 움직이지 않았다. 숨이 미세하게 달라졌다. 나지막이 웃었지만 어깨가 살짝 올라간 소리가 났다.
“그거 참 다행이네. 오늘 같은 날 칼부림이라도 나면 뒷수습이 어디냐.”
“나는 소리를 추적한다. 소리는 남는다.”
“오늘 밤은 불길이 다 삼켰을 텐데.”
“내 귀는 연기에 묻히지 않아.”
서문혁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 손이 허리춤에서 방울을 한 번 더 쓸어 올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방울은 울리지 않았다.
“갑시다.”
소류화가 작게 말했다.
“약방에 가서 상처부터—”
“좋지.”
하진운이 소류화의 말을 잘랐다. 서문혁에게 등을 보이지 않았다. 반 걸음 뒤로 물러나며 소류화의 팔을 잡았다. 손목이 아니라 팔꿈치 위를 단단히 쥐었다.
“나는 이 여자와 함께 간다. 화재 수습, 네 몫이다.”
서문혁의 숨소리가 변했다. 화를 억누르는 소리가 아니라 재미있다는 듯한 소리였다.
“됐네, 맹인 하나에 의원 하나. 실종돼도 난 몰라.”
“실종되면 그때 네 방울을 확인하러 가겠다.”
하진운이 등을 돌렸다. 소류화가 반 보 앞에서 걸었다. 불길이 아직도 뒤편에서 기름을 태웠다. 서문혁의 부하들이 횃불을 내리며 잔불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서문혁의 마지막 말이 등에 와 박혔다.
“사제, 그 칼 함부로 뽑지 마라. 눈이 멀었으니 보이는 것도 소리뿐이지, 그쯤 남겨 놔야지.”
하진운은 돌아보지 않았다.
소류화의 약방은 약재골에서 서쪽으로 반 리쯤 떨어진 골목 끝에 있었다. 밤 늦은 길이라 바람이 약초 냄새를 날렸다.
숨을 곳은 어둡고 좁았다. 약방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하진운이 먼저 들어섰다.
발소리부터 깔았다. 약장 나무결이 밤공기에 수축하며 내는 소리. 문지방 밑 쥐가 도망가는 소리. 천장 서까래에서 좀벌레가 갉는 소리. 사람의 숨은 없었다.
세 평 남짓한 구조. 약장이 왼쪽 벽을 채웠고, 탕약을 끓이는 화덕은 안쪽에 있었다. 벽에 걸린 약초 단들이 바람에 부딪히며 바스락거렸다.
하진운은 세 걸음 더 들어가서 검집 끝으로 바닥을 두 번 톡톡 두드렸다. 반향이 길지 않았다. 함정 없음.
“들어와.”
소류화가 문을 닫았다. 빗장을 걸었다. 손끝이 떨렸는지 빗장이 두 번 헛돌았다.
“앉으세요. 연기를 많이 마셨습니다.”
“약방 주인이 진맥부터 해라.”
소류화는 대꾸하지 않고 화덕에 불을 붙였다. 부싯돌은 세 번 만에 불이 붙었다. 탕관에 물을 올리는 소리.
그녀가 약장 앞에 서서 손을 움직였다. 약재 이름을 부르지 않고 서랍을 열고 닫았다. 손끝이 그리는 소리, 종이 봉지 펼치는 소리.
하진운은 문에서 등을 돌려 방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방울 소리 물었지.”
“네.”
소류화가 약장 앞에서 돌아섰다. 숨이 정지했다가 이내 더 빨라졌다.
“모른다더니, 왜 네 심장은 빨라지지?”
“연기를 마셔서 그렇습니다.”
“거짓말할 때 맥이 빨라진다. 목 왼쪽에서 피가 뛰는 소리가 난다. 처음에 한 번. 방울 얘기를 꺼냈을 때 두 번. 지금 또 뛴다.”
소류화는 대꾸하지 않고 걸어와 탕관을 내려놓았다. 젓가락을 뜨거운 물에 담그는 소리가 났다.
하진운은 검을 품에서 세웠다. 앉지는 않았다.
“나는 복수표에 새길 소리 증거를 찾고 있다. 그중 하나가 은방울이다. 사부가 숨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은 방울 소리. 지금 서문혁의 방울은 그 반쪽과 다르다.”
“그래서 저를 의심하신다는 겁니까.”
“네가 모른다는 걸 의심하지. 모르는 자가 그 소리에 몸부터 반응하지 않는다.”
소류화가 숨을 참았다. 하진운은 들었다. 폐에 공기가 머무는 동안 심박이 두 번 뛰고, 그다음 천천히 내쉬었다. 사실을 숨기려는 자의 호흡이었다.
“거짓말은 두 번 하지 마라.”
하진운이 검집으로 바닥을 한 번 더 두드렸다.
“방울 소리를 다시 확인하기 전까지 네 곁에 있겠다.”
약장 앞에서 소류화가 움직임을 멈췄다. 숨이 허파에서 반쯤 나온 채로 끊겼다. 탕관의 물만 보글하고 끓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