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참음검가(斬音劍歌)

2화

“소문이 빠르군.”

하진운이 몸을 반쯤 돌리며 낮게 뱉었다. 발끝이 잿더미를 눌렀다. 새벽 공기 속에서 불에 탄 약초 냄새가 아직 바람을 따라 흩어져 있었다. 약재골 어귀에는 횃불 세 개가 나란히 서 있었고, 그 뒤로 문파 집행자들의 칼집이 허리에서 일제히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하 소협, 모처럼 강호에 돌아왔으면 몸조심부터 하시지.”

선두의 남자가 한 걸음 나서며 말했다. 목소리는 사십 대, 호흡이 깊고 발뒤꿈치가 땅에 닿는 순간이 고르다. 내공이 제법 실린 자였다. 하진운은 그가 오른손을 칼자루에 얹는 소리를 들었다.

“약재골 화재는 사고가 아니다. 습격 세 명은 살아서 무림맹으로 갔다. 약방 주인을 데려가야겠다.”

“이유가 뭐냐.”

“해열독에 쓸 약재들이 불 타기 전에 반량이 줄어 있었지. 화재 전에 이미 반을 뽑아낸 흔적이다. 인근에서 해열독을 취급하는 약방은 한 곳이요. 독 공급자를 잡으러 온 것이다.”

하진운은 소류화 쪽을 보지 않고 그녀의 어깨 근처 숨소리의 깊이를 쟀다. 연기 흡입이 남아서인지 들숨이 얕고, 견갑이 옷 위로 미세하게 들썩였다.

“근거가 빈약하다. 약재가 줄었다는 것과 저 여자가 독을 냈다는 것은 다른 소리다.”

선두의 집행자가 코웃음을 쳤다.

“약방 주인은 소가의 외동딸. 아비가 해열독을 만들던 자였다. 소협도 아실 것 아니냐.”

소류화의 목덜미가 곧게 세워졌다. 하진운은 그 근육이 당기는 소리를 들었다. 항변이 아니라 분노에 가까운 긴장이었다. 그녀가 반 발짝 앞으로 나서려 하자, 하진운이 왼손을 들어 그 앞을 가로막았다.

“잠깐.”

집행자들이 잠시 멈췄다. 선두가 숨을 한 번 짧게 뱉었다.

“하 소협, 무림맹 복수표를 품은 자가 사사로이 수사를 막으면 안 됩니다.”

“막는 게 아니라 묻는 거다.”

하진운이 검집을 뽑지 않은 채 그대로 세웠다. 검집 끝이 잿더미 위에 닿았다. 금속이 부서진 기와 조각을 살짝 긁었다.

“화재가 났을 때 누가 어디에 있었냐. 반량이 맞는지 기록을 내밀어라. 습격자 셋 중 누가 약방 주인과 말을 섞었는지도 아직 듣지 못했다.”

선두가 침묵했다. 횃불이 피우는 소리에 바람이 섞였다. 하진운은 등 뒤에서 소류화의 맥이 빨라지는지 들었다. 두 번 뛰고, 한 번 멎는 듯했다.

“그건 조사 후에 판결할 일입니다.”

“조사도 다 안 했으면 지금 데려갈 명분도 아직 없다.”

집행자 둘이 옆으로 조금씩 갈라서는 소리가 났다. 하진운은 오른손 검지가 검집 고리에 닿았다. 뽑을 만한 거리는 아니었다. 아직.

“한 가지 더 듣겠다. 사부를 죽인 자의 소리 증거를 찾는 중인데, 약방 주인에게 확인할 일이 있다. 확인이 끝날 때까지 그녀는 내가 데리고 있는다.”

선두의 칼자루가 가죽끈에서 빠질 듯 움직이다가 멈췄다. 망설임이 손목에 실렸다.

“무림맹에 말씀을 남기겠습니다. 그 여자를 풀어준 최종 책임은 하 소협이 지는 겁니다.”

“좋다.”

하진운이 허리를 폈다. 어깨에서 힘이 빠지지 않았다. 집행자들이 물러나는 발소리가 남쪽 어귀를 벗어날 때까지 검집을 세워 두고 섰다. 횃불 하나가 마지막으로 창고 잔해 모서리에 붙은 재를 떨어뜨렸다.

“왜 저를 변호하십니까.”

소류화가 옆에서 물었다. 목소리는 건조하고 차분했다. 그녀의 등이 아직 곧게 서 있었으나, 하진운은 손끝이 옷고름을 한 번 비트는 소리를 들었다.

“너를 지킨 게 아니다. 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끌려가면 귀찮으니까.”

“냉정하시네요.”

하진운은 뭐라 덧붙이지 않았다. 소류화가 숨을 크게 한 번 내쉬었다. 연기를 삼켰던 숨이 목에서 갈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가 품 안에서 종이 묶음을 꺼냈다. 약재 봉지와 다른 마른 종잇소리였다.

“아버지가 남긴 처방 기록입니다.”

손을 내미는 기척이 있었다. 하진운은 받지 않았다.

“읽어라.”

소류화가 종이를 폈다. 첫 장의 귀퉁이가 바람에 접히는 소리가 났다.

“해열독 처방에 들어가는 자초와 감초는 각 열 돈 반이 한 제 분량입니다. 아버지는 화상 후 해열에 쓸 때 반수를 먼저 달여 먹이고 열이 떨어지면 남은 반을 걷는 법을 남겼습니다. 어젯밤 불이 나기 전 약재골에는 반 제만 있었어요. 그래서 반량이 남은 겁니다.”

소류화가 종이를 다시 접었다. 그녀의 숨은 고르지 못했지만 말은 또박또박 이어졌다.

“아버지의 처방에는 즉사량이 될 만큼의 해열독 배합은 없습니다. 기껏해야 탕약 두 첩 분량이에요.”

하진운은 손끝으로 검집을 한 번 톡 쳤다. 새벽 잿더미 위로 작은 쇳소리가 퍼졌다.

“그 반 제가 남았다는 걸 집행자들은 독 공급 증거로 듣고, 너는 처방대로라고 답했다. 그럼 그 반 제는 지금 어디 있지?”

소류화가 잠깐 멈칫했다. 목 왼쪽에서 피가 뛰는 소리가 먼저 났다. 열이 몰리는 박동이 아니라, 어떤 말을 고르다가 막힌 호흡 위로 한 번 더 뛰었다. 그녀는 기록을 품에 다시 넣고 옷깃을 여며 안쪽에 눌러 담았다.

“불타고 없어졌습니다.”

“눈앞에서 탔느냐.”

“네.”

하진운은 그 마지막 대답에 귀를 기울였다. 소류화의 호흡이 얕게 갈라졌고, 이내 턱을 살짝 들며 다시 정돈하는 소리가 났다. 그는 한 발 그녀 쪽으로 옮겼다. 아침 바람이 잿더미를 굴렸다.

“방울 소리. 다시 묻는다.”

“모릅니다.”

소류화가 대답했다. 또박또박, 다만 첫 음절이 반 박자 빨랐다. 하진운은 그 침묵의 틈보다 먼저 목 왼쪽의 맥이 한 번 세게 뛰었다가 거짓말을 덮듯 느려지는 걸 들었다. 그는 그녀 옆을 지나 약재골 잔해 쪽으로 몸을 돌렸다.

“거짓말은 두 번 하지 마라 했지. 이제 세 번 이었다. 몸이 기억한다.”

소류화가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의 등이 잿더미 앞에서 잠시 허리를 숙였다. 눌러 담은 기록이 옷매 사이로 삐져나오지 않게 다시 끌어당기는 손끝 소리가 하진운의 귀에 선명하게 남았다.

남쪽 산길로 접어드는 내내 오전 해가 등을 데웠다. 그는 아침에 갈라졌던 소류화의 호흡이 반 보쯤 뒤에서 점차 고르게 가라앉는 것을 들으며 걸었다. 약재골 잿내가 옷깃에서 빠져나가고, 산길 바람이 그 자리를 흙먼지 냄새로 채웠다. 발밑 돌부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굴렀다. 경사가 완만해지고 길가 돌담의 부서진 윤곽이 시야에 잡힐 무렵, 하진운은 왼쪽 귀를 스친 쇳소리에 걸음을 늦추었다.

정오 무렵, 남쪽 산길 초소에 가까워지자 바람이 약초 냄새를 걷어내고 흙먼지 냄새를 실어 왔다. 하진운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뒤로 반 보쯤에서 소류화의 발소리가 따라왔다. 연기를 마신 탓인지 들숨이 얕았다.

초소는 길가에 반쯤 무너진 돌담과 나무 지붕만 남은 구조였다. 지붕 끝에 매달린 풍경(風磬)이 바람에 부딪혀 가볍게 울었다.

그 소리가 하진운의 왼쪽 귀를 지나갔다. 그는 걸음을 세웠다.

방울 소리였다.

서문혁의 은방울과 닮았지만 달랐다. 사부가 죽던 밤 들은 반쪽 소리도 아니었다. 공명이 길었고, 삼중으로 겹치는 여음이 있었다. 요령이 아니라 속이 빈 작은 놋쇠 두 개가 부딪히는 소리.

“멈춰.”

소류화가 걸음을 멈췄다.

초소 뒤편에서 심박 둘이 빨라졌다. 하나는 돌담 오른쪽 아래, 다른 하나는 지붕 잔해 뒤. 숨을 얕게 가르며 손에 무언가를 쥐는 마찰음이 났다.

함정.

“뒤로 세 걸음 물러서서 앉아 있어.”

“무슨 일입니까?”

“묻지 마.”

하진운은 검을 뽑지 않았다. 검집 끝으로 땅을 한 번 짚고, 초소 쪽으로 네 걸음 들어갔다.

바람이 돌담 모서리를 넘으며 방울을 다시 때렸다. 소리가 초소 입구에서 세 번 흔들렸다. 그 사이 두 심박이 한 박씩 더 뛰었다.

그는 몸을 낮췄다. 오른발이 흙을 밀었다.

소리가 끝나는 지점을 벤다는 것은 소리가 나기 전에 그 끝을 아는 것이다. 방울이 세 번째 여음을 남기는 순간, 하진운은 이미 돌담 오른쪽 아래로 들어가 있었다.

습격자의 단도가 허공을 갈랐다. 하진운은 그 소리를 따라 몸을 비껴, 검집으로 상대의 오른손목을 쳤다. 뼈가 울리는 짧은 소리. 놋쇠 방울이 땅에 떨어졌다.

뒤편의 둘이 동시에 뛰어나왔다. 왼쪽은 칼, 오른쪽은 몽둥이. 발소리가 일렀다. 칼을 쥔 자가 오른손으로 참음검을 노리고, 몽둥이를 쥔 자는 소류화 쪽으로 몸을 던졌다.

하진운은 몸을 반 회전시켜 칼날을 검집으로 쳐올렸다. 금속이 갈리며 불꽃 소리가 났다. 그대로 앞으로 파고들어 오른 무릎으로 상대의 옆구리를 찍었다. 숨이 터져 나오는 소리와 함께 칼이 흙에 떨어졌다.

몽둥이가 소류화를 향해 내리꽂히려는 찰나, 하진운은 검집을 던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몸을 비틀었다. 오른손이 몽둥이의 끝을 잡아챘다.

손바닥에 마찰열이 올랐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하진운은 몽둥이를 잡아당겨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그대로 어깨로 상대의 흉부를 밀쳐 초소 돌담에 부딪히게 했다. 벽돌이 어긋나는 소리가 났다.

세 명이었다. 하나는 손목이 꺾여 바닥에 엎드렸고, 둘은 돌담 아래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칼을 뽑지 않은 걸 다행으로 알라.”

하진운은 세 명의 허리끈을 그들의 옷으로 묶었다. 벗겨낸 옷소매를 찢어 손목과 발목을 서로 엇갈리게 결박했다. 한 명이 신음하며 몸을 비틀었지만 결속은 흔들리지 않았다.

“소류화.”

“네.”

소류화가 돌담 근처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났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숨끝에 가벼운 떨림이 실려 있었다.

“여기 떨어진 것들을 읽어라.”

소류화가 옷자락을 여미며 초소 안으로 들어왔다. 시선이 땅을 훑는 기척이 났다.

“이건…… 방울입니다. 요령 두 개가 맞붙은 모양입니다. 안에 추는 없습니다. 소리만 나게 만든 것이네요.”

“가짜로군.”

하진운은 땅을 짚어 방울을 주웠다. 놋쇠가 손바닥에 차갑게 닿았다. 안이 비어 있어 무게가 없다. 그는 방울을 도포 안주머니에 넣었다.

“칼집도 있습니다.”

소류화가 말했다.

“왼쪽 돌담 아래에요. 가죽이 낡았는데, 겉에 검은 천이 감겨 있어요. 칼은 없고, 칼집만요.”

하진운은 그쪽으로 걸어가 손을 내려 칼집을 만졌다. 입구가 좁고 길이가 길었다. 안쪽이 습하다. 칼집 입구의 마모가 한 방향으로 몰려 있었다.

왼손.

“왼손잡이의 칼집이다.”

“이걸 두고 간 겁니까?”

“아니다.”

하진운은 칼집을 들어 허리에 꽂지 않고 소류화에게 내밀었다.

“네가 들어.”

“왜 저한테요?”

“이 칼집의 주인한테는 우리가 산길에 도착하기 전부터 움직였다는 증거가 필요하다. 들고 있어.”

“역시 처음부터 저를 의심하고 계셨군요.”

“들은 대로만 말하고 있어.”

소류화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칼집을 받는 소리가 났다. 품에 넣지 않고 손에 들었다.

하진운은 결박된 세 명을 돌아보았다. 의식은 있었다. 하나는 어금니를 꽉 물었는지 호흡이 코로만 나왔다. 다른 하나는 아직도 몸을 움직여 결박을 시험하고 있었다.

“너희를 보낸 자가 서문혁이냐.”

대답이 없었다.

“대답하지 않아도 좋다. 이미 방울 소리로 알고 있다.”

하진운은 바람이 지붕 잔해를 스치는 소리를 들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추격이 이 길을 따라 올 것이었다.

“가자.”

“어디로요?”

“위공탄의 주막이다. 이 길에서 서쪽으로 반 리쯤.”

“제가 왜 거기까지 가야 하는 겁니까.”

소류화가 한 걸음 물러서는 소리가 났다. 칼집을 가슴 앞으로 올려 쥐는 바스락거림이 따랐다.

“방울 소리를 확인하기 전까지 너를 혼자 두지 않겠다고 했다.”

“저는 약방에 가야 합니다. 약재를 뒤지고 불 낸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또 올지 모르니까요.”

“네가 지키는 약방이 아니잖다. 불이 난 약재골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기록은 제게 있습니다.”

소류화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아버지가 남긴 처방 기록을 지키는 게 제 몫입니다. 약방을 비우고 도망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그 기록은 어디 있지?”

소류화는 대답을 늦췄다. 옷깃 안쪽에서 종이가 접힌 소리가 아주 작게 났다.

“품에 있습니다. 안 비워두고 가져왔습니다.”

“그거면 약방은 빈 껍데기다.”

하진운이 초소에서 나와 산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사람들이 노리는 것도 그 기록일 테니 소지한 네가 약방에 있으면 불만 더 붙을 뿐.”

소류화가 숨을 한 번 내쉬었다. 발끝으로 돌부리를 차는 소리가 났다.

“그럼 하는 수 없군요. 가는 동안 진맥이라도 하시죠. 연기를 너무 많이 마셨습니다.”

“걷기나 바로 해라.”

결박된 세 명이 뒤에서 다시 몸을 움직였다. 하진운은 그 소리를 들었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이 산길 초소를 지나는 사람이 곧 나타나 풀어주거나, 추격해 온 무리가 발견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이번 판단에는 필요 없다.

산길은 점점 바람이 세어졌다. 나뭇가지가 시간마다 서로 부딪혀 가늘게 갈라지는 소리를 냈다.

소류화가 반 보 뒤에서 걷고 있었다.

“방울 소리는 들었습니까.”

하진운이 앞을 향해 물었다.

“초소에서요?”

“아니. 지금까지 네가 들은 방울 소리.”

발소리가 한 박자 더 늦었다. 돌을 밟는 무게가 뒤꿈치로 쏠렸다.

“모른다고 했는데 또 물으시니까…….”

“거짓말할 때 너는 숨을 먼저 들이쉬고 내뱉는다. 목으로 공기가 넘어가는 소리가 다르다.”

소류화가 걸음을 멈췄다. 하진운도 멈췄다.

바람이 산등성이를 넘으며 두 사람 사이를 지나갔다.

“들었습니다.”

소류화의 목소리가 아주 낮았다.

“어렸을 때, 아주 잠깐.”

“언제.”

“기억나지 않습니다. 정말입니다. 아버지가 문을 닫기 전부터 방울 소리가 있었다는 것만 알 뿐.”

하진운은 귀를 닫지 않고 들었다. 심박은 빠르지 않았다. 거짓말 특유의 목맥박 변화가 없었다. 다만 숨이 얕아졌고 손가락 끝이 옷고름을 긁는 소리가 났다.

“이 방울은 가짜였다. 앞으로 가짜가 더 나올 것이다.”

하진운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네가 들었다는 은방울 소리를 기억할 때까지 내 칼이 너를 감시한다.”

소류화는 대꾸하지 않았다. 바람에 실려 오는 칼집의 낡은 가죽 냄새가 두 사람의 발걸음 사이에 남았다.

참음검가(斬音劍歌)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