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참음검가(斬音劍歌)

3화

뒷문 밖 흙바닥에 흘린 핏방울이 채 마르기 전이었다. 서쪽 산길을 따라 쫓아오는 발소리 여섯이 바람을 등에 업고 밀려왔다. 밤이 깊어 개울물 소리가 유난히 컸고, 그 너머로 낡은 나무문 틈새에서 주모의 웃음소리와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겹쳤다.

하진운이 문짝에 손끝을 대고 멈췄다.

“안쪽에 사람이 많다. 술독이 오른쪽 벽을 따라 일곱 개, 가운데 기둥 뒤로 취한 놈 셋이 붙어 있다.”

소류화가 허리를 굽혀 숨을 몰아쉬었다. 옷자락에서 연기 냄새가 났다.

“들어가도 됩니까. 이 시간에.”

“뒷문으로.”

하진운이 문을 밀었다. 문고리가 없는 쪽이어서 경첩이 세 번 끊어져 울렸다. 부엌 옆 골목으로 난 문이었고, 안쪽은 장작 냄새와 뜨거운 물기가 남아 있었다. 벽에 기댄 나무판들이 흔들렸다.

“누구야.”

뒤란에서 위공탄이 빈 술독을 굴리다 몸을 일으켰다. 한쪽 눈을 가린 검은 안대가 달빛에 번들거렸다.

“저 왔습니다.”

소류화가 먼저 낮게 말했다. 위공탄이 헛기침을 한 번 했다.

“약방 아가씨네. 그 뒤에 선 소리는 누군고.”

“하진운이다.”

위공탄이 손에 묻은 술지게미를 옷에 닦았다. 발소리가 뒤란 깔판을 두 번 밟았다.

“들어와. 문 앞에 서 있으면 마을 개들이 짖는다.”

하진운은 안으로 들어서지 않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주막 본채 쪽에서 술잔이 넘어가는 소리와 주사위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한꺼번에 들렸다. 오른쪽 벽 바깥으로는 지하로 이어지는 돌계단의 공동이 울렸다.

“지하 저장고가 낫다.”

위공탄이 피식 웃었다.

“귀 좋은 놈은 좋겠다. 눈 감고도 집을 보니.”

곧이어 낮은 신음 같은 웃음이 이어졌다. 위공탄이 허리에 찬 나무 술통을 두드렸다.

“저장고는 빈 통만 있지. 올라오는 길 한 개고.”

“좋다.”

위공탄이 뒤란 바닥에 놓인 나무뚜껑을 들어 올렸다. 흙과 누룩 냄새가 섞인 공기가 올라왔다. 계단은 좁고 돌이 울퉁불퉁했다.

“아가씨부터 내려가.”

소류화가 계단을 내려갔다. 발밑에서 지푸라기가 부스러졌다. 하진운이 뒤를 따랐다. 위공탄은 뚜껑을 닫기 직전 고개를 내밀고 낮게 말했다.

“어린 놈. 여기까지 온 건데 술값은 받을 거다.”

“나중에.”

“나중이 언제고.”

뚜껑이 덮였다. 위공탄의 발소리가 뒤란을 가로질렀다. 하진운은 어둠 속에서 소류화의 숨소리를 뒤편에 두고 천장을 향해 귀를 세웠다.

위층에서 문이 열렸다. 여럿이 마루를 밟는 소리가 났고, 칼집이 갑옷 옷고름에 스치는 금속음이 섞였다.

“주막 주인.”

먼저 온 자의 목소리가 굵었다. 사십 대 초반, 오른발이 왼발보다 반 치 짧게 땅을 끌었다. 위공탄의 대꾸는 한 박자 늦었다.

“손님이시면 앉으시지. 술은 식엇다만.”

“아까 산길에서 도망친 남녀를 찾는다. 맹인 검객과 의원 여자. 이 길밖에 없었다.”

하진운은 저장고 계단 아래로 두 걸음 옮겼다. 소류화가 어깨를 벽에 붙였다. 그녀의 목덜미 쪽에서 맥박이 빨라졌지만 호흡은 끝까지 가늘었다.

위층에서 위공탄이 술통을 조금 기울였다. 술이 바가지에 차는 소리가 났다.

“봤수. 오늘 밤만 해도 산길에 바람이 세서.”

“바람 소릴 묻는 게 아니다.”

“바람에 실려 가는 사람들도 있수. 동쪽 논둑 쪽으로 까마귀 떼 일어나던데.”

추격자의 발이 마루에서 한 번 더 끌렸다. 칼자루를 쥐는 가죽 소리가 났다.

“동쪽이라 했나.”

“서쪽 들판이지. 물이 많아서 발소리 안 남는 쪽으로 갈 놈들이면.”

위공탄이 바가지를 내려놓았다. 나무가 나무를 누르는 소리가 이어졌다.

“저는 동쪽엔 못 갑니다요. 다리 아픈 기척이라도 나면 귀 밝은 맹인한테 들킵니다.”

잠시 뒤 추격자 여섯이 마루를 떠났다. 말발굽이 서쪽 들판 쪽으로 멀어졌다. 위공탄이 부엌 문을 걸어 잠그고 뒤란으로 돌아와 뚜껑을 두드렸다.

“나왔어. 한잔들 하지.”

위공탄의 내실은 천장이 낮고 바닥이 남쪽으로 조금 기울어 있었다. 벽 한쪽에는 약장이라 부르기 민망한 나무 선반이 어지럽게 박혔고, 반대쪽에는 술통과 찻잔이 놓인 작은 탁자가 있었다. 기름걸레 냄새와 약초 냄새가 뒤섞였다.

소류화가 위공탄의 오른손등을 살폈다. 화상 자국이 손가락 마디까지 번져 있었다.

“이 손은 언제 다치셨나요.”

위공탄이 손을 내버려 두며 소매를 걷었다.

“오래됐어.”

“지금이라도 소주로 씻고 연한 소염 약초라도 붙여야 합니다. 아물 때 제대로 안 붙인 화상은 해마다 갈라집니다.”

소류화가 약통 끈을 풀었다. 위공탄은 처음엔 손을 빼려다 금세 멈췄다.

“내가 의원한테 손 내미는 것도 오랜만이구나.”

소류화가 그을린 자리 주변을 누르며 붓기를 확인했다. 손끝이 안정적이었다.

“약재골 불은 언제 처음 보셨습니까.”

위공탄이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북쪽 하늘이 붉어서. 연기가 동쪽으로 쏠리는 걸 보고 곡식 대신 물이나 끓였지.”

“약방과 아버지에 대해 혹시 아시는 게 있나요.”

하진운이 탁자 앞에 앉은 채로 고개를 돌렸다. 소류화의 질문은 이어졌다.

“이번 화재 전에 약방을 지나던 사람이나, 약재를 나르던 이들은 없었습니까.”

위공탄이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컵을 내리는 소리가 느렸다.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고.”

다시 한 모금이 이어졌다.

“내가 사는 게 수치스러운 날은 많다. 그래도 이번에는 뒷문 닫지 않겠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바람이 지붕을 스치며 벽에 박힌 나무판을 두어 번 울렸다.

위공탄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내 딸 이야기다. 떠들다 가버린 게 아니라, 내가 못 지켰다.”

소류화가 약초를 빻던 손을 멈췄다. 위공탄의 호흡에서 술 냄새가 짙게 깔렸지만 목소리는 오히려 또렷했다.

“강호에 있을 때 일이야. 복수를 원하는 사람이 오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 그런데 문짝 하나 못 지켰어.”

위공탄이 허리에 찬 나무 술통을 내려다봤다.

“그러니 이번에는 두 놈을 끝까지 숨긴다. 뒤란 뚜껑 아래도 좋고, 이 내실도 좋다.”

그가 일어나 문을 걸어 잠갔다. 빗장이 문설주에 두 번 걸렸다. 세 사람의 숨소리만 남은 방 안에 술잔이 식는 기척이 아주 작게 났다.

하진운이 술잔을 밀었다.

“은방울 반쪽.”

위공탄이 눈을 깜빡였다.

“뭘 묻는 게냐.”

“사부가 죽던 밤에 난 소리다. 알고 있으면 말해라.”

위공탄이 탁자에 손등으로 툭, 툭, 두어 번 내려쳤다. 화상 자국이 있는 쪽이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어린 놈, 술값부터 내놔라.”

소류화가 반사적으로 위공탄의 손을 내려다봤다. 하진운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술값은 갚는다. 다만 지금은 답이 먼저다.”

위공탄이 길게 웃었다. 웃음이 술기운에 부서졌다가 다시 붙었다.

“이거 참, 칼 가진 놈이 돈 얘기를 꺼내니 겁이 안 나네.”

잠시 뜸을 들이더니 위공탄이 말을 이었다.

“십 년 전 살해 사건을 아는 자가 어디 많겠나. 다만 장터 소문으로 하나 남은 게 있어.”

“소문을 말해라.”

“그 밤, 은방울 소리가 반만 났다고 들었어. 한 번 울릴 때 끝까지 다 울리지 않고 반에서 끊기는 소리.”

하진운의 손가락이 검집 위에 놓였다. 관절이 조금 굳었다.

“출처는.”

“술에 취한 무림맹 전서기 하나가 흘렸어. 이튿날 정신 차리고는 없던 일로 하더군. 그뿐이야.”

소류화가 무릎 위에서 옷고름을 말았다. 심박이 한 차례 빨라졌다가 가라앉았다. 하진운은 그 소리를 들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지금 사문 서문혁의 은방울은 반이 아니다. 온음이 났다.”

위공탄이 술을 따르다 말고 술통을 탁자 옆에 내려놓았다.

“귀가 그것까지 가르냐.”

“그래서 못 벤다.”

하진운이 검집에서 손을 뗐다.

“하나만 더 묻는다.”

“뭘.”

“청음검경.”

위공탄의 움직임이 멎었다. 술기운이 반쯤 걷힌 듯 손이 탁자 모서리를 더듬어 잡았다.

“그건 사부가 가르치지 않았나.”

“상편만 있었다. 하편은 갈라진 뒤 행방을 모른다. 그런데 지금 네게서 청음검경을 익힌 자의 호흡이 들린다.”

방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 소류화가 약통 고리를 쥔 손에 힘을 풀었다. 위공탄이 몸을 일으켜 선반 아래쪽을 더듬었다. 그러다 다시 앉았다.

“상편만 있다면 거기까지다. 복수표에 필요한 게 부족할 뿐이지.”

“어디 있느냐.”

위공탄이 오른손 엄지로 탁자의 금을 밀었다.

“내 대답 대신 내가 가진 자리만 말하지. 술통 밑바닥에 있다. 꺼내지 않는다.”

“왜.”

“술에 절은 말년을 보내는 내가 꺼내면, 강호의 귀가 열린다.”

하진운이 더 묻지 않았다. 위공탄이 말을 비웃었다.

“생각보다 순하네. 칼로 찌르지 않고.”

“너는 나한테 술을 줬다.”

위공탄이 다시 웃었다. 이번에는 짧았다. 소류화가 약을 빻는 절구질을 이어갔다. 규칙적인 돌 소리가 세 사람 사이에 잠깐 박혔다.

하진운이 무릎에 복수표 초안을 펼쳤다. 종이를 누르는 소리가 바스락거렸다.

“내일 밤, 문파 제례장.”

위공탄이 고개를 들었다.

“왼손 검집 소리를 확인한다. 서문혁이 직접 검무를 할 때.”

“오냐, 그러면.”

위공탄이 술을 한 모금 삼키고 술통을 벽 쪽으로 밀었다.

“날이 밝기 전 술지게미 수레로 실어가자. 제례장 뒤 창고에 빈 지게미 통이 여러 개 있다. 축문지를 실은 수레들은 앞문으로만 들여보내니 창고 쪽은 비어 있을 거다.”

“가능하냐.”

“내가 사는 게 술장사지. 제례일에 쓸 술 절반은 우리 항아리에서 간다.”

하진운이 손끝에 침을 묻혀 복수표 초안의 한 칸을 눌러 썼다. 종이 위로 손가락이 지나가는 소리가 거칠었다. 글씨를 마친 뒤에도 먹물이 밴 자리를 손끝으로 한 번 더 눌렀다.

소류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반 아래에 놓인 약장 서랍을 하나 열었다. 말린 약초가 스쳤고, 안쪽에서 깨진 단지 하나가 달그락거렸다.

“이 단지.”

위공탄이 돌아봤다.

“뭘 찾았나.”

“해독약 단지입니다. 남은 양을 보니 반쯤 비어 있어요.”

그녀가 단지를 들어 올렸다. 마개를 여는 소리가 났다. 하진운이 귀를 그쪽으로 돌렸다.

“화재 전에 이 약을 쓴 흔적이 있는지 알 수 있습니까.”

소류화가 단지 입구를 코에 가까이 댔다.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안쪽에 묻은 잔여물이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양을 보면 반을 두 번에 나눠 마셨을 수도 있고, 한 번에 반만 썼을 수도 있습니다.”

그녀가 옷 속에서 반량 처방 기록을 꺼내 옆에 펼쳤다. 이미 읽힐 대로 읽힌 종이였다.

“반 용량, 투여 시점 불명. 단지 표면에 탄 그을음 없음.”

소류화는 그 사실을 처방 기록의 빈 여백에 적었다. 기록 위에 다른 쪽지를 덧댄 것이 아니라 원래 종이의 가장자리에 눌러썼다. 위공탄이 잠시 그 모습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기록은 지금밖에 못 남긴다. 내일은 수레 밑에 숨느라 손을 못 써.”

하진운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검을 무릎 옆에 세워 두고 복수표 초안을 반으로 접었다.

“술지게미 수레는 언제 출발하느냐.”

위공탄이 창문 틈을 손끝으로 눌렀다.

“닭이 두 번 울고 난 뒤다. 제례는 밤이 깊어서 열리니 그 전에 창고에 들어가면 된다.”

“창고 안에서 대기한다.”

“숨는 데는 익숙할 거다. 어린 놈은 가만히 있는 법부터 배웠을 테고.”

하진운은 대꾸하지 않았다. 소류화가 약장 서랍을 닫았다. 그녀의 발이 저장고로 향했다.

“나는 아래에 가 잇겠습니다.”

위공탄이 빗장을 풀며 말했다.

“지하로 내려가. 새벽에는 부엌에서 잡곡 떡 찌는 소리가 시끄러우니 거기서 자는 게 낫다.”

그가 문을 열어 주었다. 소류화가 먼저 나가 돌계단을 내려갔다. 하진운이 검을 들고 뒤를 따라 일어났다.

“청음검경은 꺼내지 않는다.”

하진운이 내실 문 앞에서 말했다.

“너는 나한테 술을 줬다. 그러니 지금은 안 연다.”

“봐주는구나.”

위공탄이 술통을 어깨에 걸치며 어두운 뒤란을 향해 말했다.

“하지만 내일 제례에서 검집 소리를 확인했다면, 그 뒤 물을 건너게 될 거다.”

하진운이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어둠이 깊었고 저장고 바닥의 짚 냄새가 올라왔다. 소류화가 이미 벽 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녀의 약통 끈이 빈 술독 옆에 닿으며 한 번 가볍게 울렸다.

하진운은 입구에서 세 발짝 떨어진 곳에 앉아 검을 옆에 내려놓았다. 위공탄의 발소리가 내실로 들어가고, 문이 다시 걸렸다. 주막 뒷문 밖으로는 바람이 서쪽 들판을 훑고 지나갔다.

“복수표 초안에 뭐라고 눌러썼소.”

소류화가 어둠 속에서 낮게 물었다.

“왼손 검집 소리. 제례 검무에서 확인한다.”

하진운은 손끝으로 종이 겉면을 한 번 쓸었다. 이미 마른 글씨였다. 소류화가 지푸라기를 조금 끌어다 어깨 밑에 괴었다.

“닭이 두 번 울면 술지게미 수레가 올 거요.”

그녀가 말했다.

“자는 척해도 나는 내려가는 소리 듣습니다.”

하진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저장고 천장 너머로 부엌의 잡곡 냄새가 새어 내려왔다. 그는 복수표 초안을 품 안에 넣고 검을 다시 세웠다.

참음검가(斬音劍歌)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