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참음검가(斬音劍歌)

5화

첫닭이 골목 끝에서 두 번째로 울었다. 소가 약방 앞 처마는 아직 밤의 축축한 연기 냄새를 머금고 있었다.

약방 안 서랍 하나가 닫혔다. 종이를 집는 소리가 멎고, 세 사람의 숨이 동시에 낮아졌다. 하진운은 검집 입구를 누른 손가락에 힘을 뺐다.

“안쪽 약장 아래다. 한 명이 거기로 간다.”

소류화가 골목 바닥에 손을 짚었다. 그녀의 치맛자락이 흙을 끌었다.

“곽칠이 올 거예요.”

하진운이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누구냐.”

“약방 지게꾼이요. 아버지 생전에 일을 도왔어요. 제가 여기 온다는 걸 알면 문을 열어 줄 거예요.”

하진운은 골목을 건너 약방 뒷벽 쪽으로 몸을 붙였다. 안쪽에서는 벽 쪽 서랍이 다시 열리는 소리가 났다. 세 번째 서랍이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여기 온 걸 아느냐.”

소류화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 사이 안쪽에서 탕약 선반의 종이 포장이 찢어졌다.

“저한테 은방울 이야기를 한 사람이에요.”

하진운의 손가락이 검집 입구에서 떨어졌다.

“지금 말해라.”

“어렸을 때, 약방 문턱에서 방울 소리를 들었어요. 아버지가 앓아누운 뒤였어요.”

소류화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골목 너머 어디선가 빗자루로 마당을 쓰는 소리가 났다. 첫닭이 쓰는 소리가 아니라 사람의 동작이었다.

“모른다고 한 건 아버지한테 누가 올까 봐였어요.”

하진운은 그 말을 듣고도 몸을 돌리지 않았다. 약방 안에서 세 번째 사람이 약장 앞에 쪼그려 앉는 소리가 났다.

“곽칠은 어디 있느냐.”

“약방 뒤 우물가에 있을 거예요. 제가 위험할 때 거기서 기다리라고 했어요.”

“그 지게꾼이 진짜 은방울을 안다고.”

“네.”

소류화가 손으로 벽을 짚고 일어났다. 무릎이 옷자락을 끌었다.

“약장 아래 빈자리에 숨겼다고 했어요. 은혜를 갚고 싶다고.”

하진운이 약방 뒷벽에서 한 걸음 떨어졌다. 안쪽 세 사람의 움직임이 약장 앞에 모이고 있었다. 서랍이 아니라 바닥을 더듬는 소리가 났다.

“약장 아래를 먼저 뒤진다. 곽칠이 놓친 게 있으면 거기서 들킨다.”

“막아야 해요.”

“아직 아니다. 그 셋이 방울을 찾는지, 다른 걸 찾는지 봐야 한다.”

약방 안에서 손가락이 나무판을 긁었다. 바닥의 먼지가 밀리는 소리가 났다. 하진운이 고개를 골목 끝으로 돌렸다.

“우물가로 간다. 곽칠을 빼낸다.”

두 사람은 처마를 끼고 약방 뒤편으로 돌았다. 뒷벽 밖에는 키 낮은 회화나무가 서 있었고, 그 너머로 우물 테두리가 어렴풋이 드러났다. 우물가 돌계단 아래, 몸을 웅크린 사내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소 의원님!”

사내는 중년에 가까운 얼굴이었고 어깨가 떡 벌어졌다. 손에 멜대를 쥐고 있었지만 끝이 땅에 닿지 않게 세워 쥔 모양이었다. 하진운이 사내의 숨소리를 들었다. 공포가 섞인 호흡이었지만 거짓은 없었다.

“목소리 낮춰라.”

하진운이 말했다. 곽칠이 숨을 삼키고 입을 다물었다. 소류화가 곽칠 앞에 반 보 서서 말했다.

“약방 안에 세 사람이 있어요. 서문혁 쪽이라고 들었는데, 저 사람이 확인하고 있어요.”

곽칠이 약방 쪽을 힐끗 보다가 하진운의 눈가리개를 보았다. 어둠 속이라 표정은 분명하지 않았지만 멜대를 다시 쥐는 소리가 났다.

“제가 알지요. 그 서랍들 며칠 전에 제가 다 정리했습니다.”

곽칠의 말이 빨라졌다.

“소 의원님 아버지께서 지고 다니시던 실뭉치, 제가 넣어 뒀습니다. 약장 아래 맨 안쪽입니다. 은방울은 그 위에 얹어 뒀지요.”

하진운이 곽칠에게 가까이 섰다.

“그 방울을 네가 봤느냐.”

“봤지요. 은색에 반이 깨졌습디다. 끈이 붉었어요. 흔들면 남은 반쪽만 울렸습니다.”

소류화의 손이 옷깃을 쥐었다. 하진운은 그 소리를 들었다. 손가락이 옷깃을 쥐는 소리였다. 필 때의 떨림은 없었다.

“약장 아래 맨 안쪽이다. 세 사람 중 하나가 이미 그 앞에 있다.”

“제가 앞장서지요.”

곽칠이 멜대를 우물 옆에 세웠다.

“놈들이 무서워할 것 없습니다. 제 멜대질도 강호에서는 겁을 살 만큼——”

“네가 가면 바로 죽는다.”

하진운이 길을 막았다.

“여기서 이 사람만 보고 있다. 약방 뒤문을 연다. 안이 닫히면 우물가로 데리고 나와라.”

곽칠이 입을 열다가 소류화의 눈빛을 받고 고개를 숙였다. 하진운은 다시 약방 뒷벽으로 붙어 귀를 열었다.

안쪽에서 누군가가 약장 아래를 손으로 훑었다.

“비었다.”

낮고 짧은 말이었다. 두 사람이 걸음을 멈췄다. 나머지 한 사람이 종이 포장을 탁자 위에 올렸다.

“실뭉치만 있군. 은방울은 어디로 갔어?”

“큰아드님께 먼저 보고해라. 오래 전에 약장을 열어 본 놈이 있었던 거지.”

세 사람이 모였다. 하진운은 그들의 무게 중심이 약장 앞에서 문쪽으로 옮겨 가는 것을 들었다. 한 사람이 허리춤에서 쇠붙이를 빼는 소리도 났다.

“곽칠, 뒤문이 어느 쪽이냐.”

“약장 오른쪽 벽에 있습니다. 지금은 빗장이 걸려 있을 겁니다.”

하진운이 소류화의 팔을 잡지 않고 그녀의 소매 끝을 검집으로 눌렀다.

“뒤문 앞에 숙여 있어라. 열리는 소리가 나면 곽칠을 우물가 바깥으로 돌려 보내라.”

말과 동시에 하진운은 뒷벽에서 몸을 떼고 골목 모서리를 돌아 약방 정면 쪽으로 붙었다. 안쪽 세 사람이 약장을 마저 뒤지는 동안 그는 골목 바닥의 부서진 기와 조각 하나를 집어 약방 정문 옆 담장 너머로 던졌다.

탁, 소리가 났다. 세 사람의 주의가 정문으로 쏠렸다. 그 틈에 하진운은 뒷벽의 작은 창 아래를 지나 뒤문 앞에 이르렀다.

“문고리는 없는 놈이지.”

혼잣말처럼 짧게 뱉고 그는 뒤문 빗장을 듣는다. 쇠가 나무에 걸린 소리가 좁았다. 그가 문틀 아래로 손을 넣어 빗장 끝을 밀자, 마른 나뭇가지 하나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안쪽에서 한 사람이 멈췄다.

“뒤문이야.”

세 사람이 뒤문 쪽으로 돌았다. 그러나 하진운은 이미 문을 한 뼘 열고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문 너머로 흘러드는 첫닭의 희미한 빛이 그의 검집 끝에 닿았다.

“손 대지 마. 약장 아래에서 물러나.”

하진운의 목소리가 약방 안을 가른 순간, 정문 밖 골목에서 낯익은 발소리가 들렸다. 왼발이 오른발보다 반 균 늦게 디뎌지는 걸음걸이였다.

“시끄럽군, 사제. 제집 서랍까지 열었다는 소문이 진짜로군.”

서문혁의 목소리가 문 밖에서 들려왔다. 세 사람이 숨을 죽이고 물러섰다. 하진운은 검을 뽑지 않았다.

“서문 대제자. 제례장 수습은 마쳤느냐.”

“덕분에 늦었지. 그래서 보낸 사람들이 미리 일하고 있구나.”

“약장 아래, 비어 있었다.”

하진운이 말했다. 그 소리에 서문혁이 걸음을 멈추었다.

하진운은 뒤로 반 걸음 물러서며 소류화와 곽칠이 숨은 뒤문 쪽 벽에 어깨를 붙였다. 안쪽에서 세 사람이 문가로 흩어졌다. 서문혁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

서문혁이 천천히 말했다.

“빈 걸 확인하고도 알아, 하진운. 네가 복수표에 새겨야 할 방울 소리가 어디 있는지는 소리가 아니라 내 손안에 있어.”

골목 끝에서 바람이 불었다. 서문혁의 발밑에서 은방울이 짧게 울렸다. 온음이 아니었다. 방울 소리의 앞부분이 잘린 것처럼 반쯤 지워져 있었다. 어린아이 손목에 차면 한 번에 반만 울릴 듯한, 낡고 얇은 잔향이었다.

하진운의 손이 검집 위에 놓였다.

“약방 안에 사람이 있다. 인질로 만들고 싶진 않느냐.”

서문혁이 문지방 밖에서 미소 짓는 기척을 냈다.

“사제, 저 문 밖으로 나와 봐라. 그러면 진짜 반쪽 소리를 들려줄지도 몰라.”

“듣지 않아도 네 손에 있는 줄 안다. 하지만 그건 아직 복수표가 못 된다. 온음이 될 때까지 너를 놓지 않겠다.”

하진운이 검을 반 뼘 뽑았다. 약방 안 세 사람이 벽 쪽으로 물러서는 소리가 두 겹으로 겹쳤다.

서문혁이 문 밖에서 방울을 흔들었다. 이번에는 소리가 끝까지 이어졌다. 반음이 확실했다. 사부가 죽던 밤 피바람 사이로 사라졌던 바로 그 소리였다.

“들리는 게 소리뿐이라니 너는 지금 그 소리 하나에 목숨을 걸겠지.”

“밖에서 지껄여라. 내가 나가면 그 셋은 여기서 죽는다.”

곽칠이 뒤편에서 우물 쪽으로 기어가는 소리가 났다. 소류화는 숨을 막았다. 서문혁의 발소리가 문 앞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은방울 소리가 옷자락 사이로 한 번 더 눌렸다.

“오늘은 안 나온다면, 저 문을 닫아 두어도 넌 이미 갇힌 거야.”

서문혁의 말이 끝나자마자 정문 쪽에서 무거운 나무가 끌려와 문짝을 가로지르는 소리가 났다. 뒤문 손잡이에도 쇠사슬이 감기는 소리. 그가 온 방울 소리는 점점 골목 어귀 쪽으로 멀어졌다.

“실뭉치는 내가 가져간다, 사제.”

약방 안 세 사람이 뒤문과 정문 사이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밖으로 나가려면 놈들부터 지나가야 해.”

하진운이 소류화 쪽으로 몸을 낮추며 말했다. 소류화는 더 이상 떨지 않았다. 다만 손끝이 약통 끈을 감아쥐고 있었다. 곽칠의 숨소리가 우물가 돌계단 아래서 들렸다.

하진운은 약방 바닥에 떨어진 서랍의 파편 하나를 발끝으로 밀었다. 소리가 약장 왼쪽에서 났다. 그 순간 한 사람이 칼끝을 그쪽으로 돌렸다.

참음검이 울었다. 칼을 뽑는 소리가 아니라, 칼집을 나온 얇은 금속이 공기를 가르며 상대의 손목 칼끝을 밀어 올리는 소리였다.

소리가 겹쳤다. 칼이 바닥에 떨어지고, 서문혁이 물러난 골목 밖에서 진짜 은방울이 마지막으로 반음만 울렸다가 사라졌다.

하진운은 약장 아래로 손을 뻗어 실뭉치를 집었다. 해독 약재가 눌려 굳은 얼룩이 손끝에 닿았다. 곽칠이 뒷문 앞에서 낮게 부르짖었다.

“문이 밖에서 잠겼습니다!”

약방 안에서 세 사람이 어둠을 등지고 다시 칼을 겨누었다. 밖에서는 서문혁의 발소리가 완전히 골목 밖으로 사라졌다.

참음검가(斬音劍歌)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