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음검가(斬音劍歌)
6화
곽칠이 죽는다는 게 아니라, 문 밖 서문혁의 기척이 사라진 자리에 곽칠의 숨이 다시 끌려 나갔다는 게 먼저였다.
하진운은 약장 옆에서 몸을 틀었다. 약방 안의 습격자 셋은 아직 칼을 움켜쥔 채였지만, 뒤문 쪽 곽칠의 발소리가 먼저 바뀌었다. 종아리로 땅을 긁는 소리, 그다음 서문혁의 발소리가 문 곁 벽을 짚고 돌아서는 소리가 겹쳤다.
“열쇠를 건네지 않으면 내가 직접 여는 수밖에 없겠구나.”
서문혁의 목소리가 뒤문 너머에서 났다. 가까웠다. 하진운이 뛰었다. 그가 있던 자리의 바닥 파편이 발뒤꿈치에 밀렸다.
참음검이 칼집에서 빠졌다. 그와 동시에 뒤문 손잡이가 바깥에서 뜯겼다. 쇠가 비명을 지르며 문틀에서 떨어져 나갔다. 곽칠이 우물가에서 일어나다 돌계단에 무릎을 찧는 소리를 냈다.
“뒤로!”
하진운이 짧게 외치며 검을 골목 쪽 허공으로 밀었다. 문짝이 안쪽으로 밀려 들어오는 바람에 검끝이 문틀 금속을 스쳤다. 그 사이 서문혁의 몸이 낮게 들어왔다. 왼손 쪽 옷소리가 먼저 바뀌었다. 곽칠의 목으로 가는 소매 자락이 공기를 갈랐다.
왼손. 소리가 명확했다. 오른손에 익은 허리춤 방울 쪽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진운은 곽칠 앞으로 파고들며 옆구리 높이로 검을 뒤집어 쳐 올렸다.
서문혁의 검이 곽칠의 어깨 너머에서 짧게 반원을 그렸다. 하진운의 칼날이 빗나가 벽돌을 긁었다. 곽칠이 헛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끊어졌다. 이어 피가 돌계단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방울 방울 끊어지는 게 아니라 한 번에 쏟아지는 소리였다.
“병법은 늦게 듣는 자를 치는 것이지.”
서문혁이 곽칠의 몸을 밀었다. 곽칠이 옆으로 쏠려 바닥에 꺼졌다. 목젖이 갈라진 뒤였다. 하진운이 한 걸음을 더 뻗었지만 벌써 문틀 쪽으로 물러나는 바람이 옷깃을 스쳤다.
곽칠의 손이 하진운의 장삼 끝을 더듬었다. 힘없이 실뭉치를 눌러 주었다. 종이에 굳은 얼룩이 손가락에 끼는 대신 하진운의 손바닥으로 밀려왔다.
“지게꾼이 죽기 전에 남긴 건 그것뿐이다.”
하진운이 실뭉치를 받아 쥐었다. 곽칠의 손끝이 하진운의 손등을 천천히 긁고 떨어졌다. 그 뒤로 숨이 완전히 끊겼다.
서문혁이 뒤문 밖으로 비스듬히 물러나며 진짜 은방울을 다시 품에 넣는 소리를 냈다. 반음이 옷자락에 쓸려 짧게 울었다.
“그 실뭉치에 있는 것, 다 읽었다. 별 쓸모없는 기록이다. 남은 건 네가 그걸 얼마나 믿느냐일 뿐.”
하진운은 일어서면서 검을 뒤문 쪽으로 곧게 세웠다.
“곽칠이 남긴 소리를 네가 뺏을 순 없다.”
서문혁의 걸음이 골목을 벗어났다. 왼발이 오른발보다 반 균 늦게 디뎌졌다. 그 소리가 옆 담장 모서리를 돌자 하진운은 검을 집어넣고 곽칠의 옆으로 쪼그려 앉았다.
실뭉치 겉에 곽칠의 피가 번져 종이 올이 붙었다. 하진운은 손가락으로 실 끝을 눌렀다. 약방 안에서는 여전히 습격자 하나가 칼을 거두지 못한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나머지 둘은 벽 쪽으로 붙어 발소리를 죽였다.
“소가 약방 문턱이군.”
하진운이 곽칠의 어깨를 반듯하게 바로 눕히며 낮게 중얼거렸다. 아무 대답도 없다는 걸 손으로 확인하지는 않았다. 실뭉치를 다시 움켜쥐고 일어났다.
“너희 셋은 칼을 내려라. 나갈 문은 없다.”
습격자 셋이 숨을 참았다. 그 순간 뒤문 밖 골목 끝에서 서문혁의 은방울이 한 번 길게 울렸다. 온음이었다. 그 소리는 방향을 두 번 틀며 산자락 쪽으로 사라졌다.
곽칠의 숨이 완전히 끊긴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우물가 돌계단 아래서 손톱이 흙을 긁는 소리가 났고, 이내 목 안쪽에서 마지막 공기가 새어 나오는 소리가 멎었다.
하진운은 약방 문지방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실뭉치는 여전히 왼손에 쥐고 있었고, 참음검은 칼집에 반쯤 들어가 있었다. 약방 안의 연기가 흩어지지 않아 소류화의 기침이 가볍게 두 번 이어졌다.
“곽칠이.”
소류화의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그녀가 우물가 쪽으로 옮겨가는 소리가 들렸다. 손이 시신의 어깨에 닿는 결이 곽칠의 옷자락을 눌렀다.
“죽었어요.”
“여기서 기다린다.”
하진운이 문지방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바깥 골목은 그때 첫 닭이 세 번째로 울고 있었다. 동쪽 하늘이 아직 밝지는 않았지만, 밤의 공기가 조금씩 옅어지는 때였다.
그때 골목 저쪽에서 나뭇가지를 밟는 소리가 났다. 발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앞선 사람은 발뒤꿈치부터 땅을 누르고, 두 사람은 한 걸음 거리로 따라붙었다. 칼집이 허리춤에서 규칙적으로 흔들리는 쇠붙이 소리가 섞여 있었다.
무림맹 집행관이었다.
“맹인 검객 하진운인가.”
선두의 남자가 골목 어귀에 멈춰 섰다. 목소리는 쉰 듯하면서도 발성이 고르고, 호흡 속에 내공이 섞여 있어 서거칠게 말해도 음폭이 컸다.
“백무군이다. 무림맹 집행관 백무군.”
“안다.”
하진운이 문지방에서 한 걸음 내려서며 대꾸했다. 뒤쪽 두 사람이 약방 정문과 뒤문 쪽으로 흩어지는 발소리가 들렸다.
백무군이 골목 안쪽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걸음걸이는 바닥을 떼는 순간마다 땅을 한 치씩 밀었다. 상당한 보법이었다.
“이 새벽에 약방 앞에서 시신이 나고, 약장이 넘어지고, 서문 사제의 수하 셋이 피를 흘리며 골목 밖으로 실려 나갔다. 난 그 자리를 온 게 아니라, 그 소식을 처음 듣고 온 놈이다.”
“그 셋은 살아서 보냈다.”
“그것도 들었다. 그래서 바로 온 거야.”
백무군이 하진운의 앞으로 두 걸음 거리에서 멈췄다. 검은 집행관 대복 깃이 밤바람에 펄럭이는 소리가 났다.
“복수표를 냈다고 하더군. 정식으로 접수됐다. 지금 좀 보여라.”
“초안은 여기 있다.”
하진운은 왼손에 든 실뭉치를 품에 넣지 않고, 오른손으로 허리춤에서 접어서 꽂아 둔 두툼한 종이 한 장을 빼서 백무군에게 내밀었다. 백무군이 맨손으로 받아들더니 종이를 펼치는 소리가 골목에 작게 울렸다. 그는 한참 동안 숨소리를 늦추고 종이 위를 훑는 듯했다.
“서문혁의 왼손 검집 소리는 넣었다. 은방울 반음은 어디 있나.”
“방금 빼앗겼다.”
“누구한테.”
“서문혁이다. 이 약방 안에 있다가 가져갔다.”
백무군이 종이를 다시 접으며 코로 숨을 길게 뱉었다. 종이 접히는 모서리 소리가 유난히 느리게 들렸다.
“그럼 넣지도 못 한 증거를 복수표에 쓴 거군.”
“온음이 있던 자리에는 반음이 하나 남아 있었다. 나는 들었다.”
“하 소협.”
백무군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내가 무림맹 집행관으로 일하는 한, ‘들었다’는 소리는 증거가 아니야. 복수표는 소리 증거 세 가지를 표면에 새겨야 요청이 성립한다. 네 말이나 나의 인상으로 채우는 게 아니다.”
하진운이 검집 입구에서 손가락을 뗐다. 그러자 뒤편에서 소류화가 입을 연 기척이 들렸다.
“집행관님, 저 실뭉치는 사체 옆에 있던 게 아니라 약장 아래에서 제가 먼저 확인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처방 흔적이 묻어 있어요.”
백무군이 몸을 반쯤 돌려 소류화를 바라봤는지, 목소리 방향이 바뀌었다.
“네가 소가 약방의 딸인가.”
“네. 소류화입니다.”
“네 아버지는 살해됐고, 그 시신에 남은 검상의 방향과 약방에서 줄어든 반량의 해열 약재가 지금 무림맹 조사에 얹혀 있다. 네가 독을 뺐다는 혐의는 여전히 살아 있다.”
“아버지를 죽인 건 저 검상이고, 아버지의 약재는 반량을 쓸 때마다 기록이 남았습니다. 저 실뭉치에 묻은 얼룩부터 물리면 약재 출처가 나옵니다.”
소류화의 말이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 목소리는 차분해졌지만 끝마다 공기가 짧다.
백무군이 실뭉치 쪽으로 한 걸음 가까이 갔다. 하진운의 손이 실뭉치의 감긴 실 끝을 한 바퀴 더 조였다.
“이걸 증거로 넘겨라.”
“안 된다.”
“이유를 말해 봐라.”
“이건 지금 복수표의 은방울 자리를 메울 유일한 흔적이다.”
백무군이 낮게 웃었다. 웃음소리라기보다 목 속으로 숨을 밀어 넣는 소리였다.
“하진운, 네가 아직 강호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으니 내가 한 번만 말한다. 무림맹 집행관이 증거를 요구할 때 복수자 개인이 ‘내 것이다’를 앞세우면, 인멸·은닉으로 재판부에 올린다.”
“죽은 곽칠이 뒷문 앞에서 서문혁의 수하에게 찔렸다. 실뭉치는 그쪽 일과 무관하다.”
“무관하지 않아. 네 눈에 그리 보일 뿐이고.”
백무군이 손을 뻗었다. 가죽 장갑을 낀 손가락이 공기 속에서 방향을 잡고, 하진운의 왼손목 아래쪽으로 들어오는 기척이 났다. 하진운은 그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백무군이 실뭉치를 받아 쥐자 감긴 실 몇 올이 풀리며 약한 반동이 손끝에 전해졌다.
“복수표 초안도 압수한다.”
“증거 부족으로 멈추는 거냐.”
“일시 정지다. 기각이 아니다. 남은 소리 증거를 다시 표면에 새기면 심사는 이어진다.”
“은방울 증거는 서문혁이 지금 들고 있다.”
“그걸 내 앞에서 다시 증언해도 좋아. 지금은 네 말뿐이면 표를 멈출 수밖에 없다.”
백무군이 뒤쪽 두 사람에게 손짓하는지, 가죽 옷자락이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소가 약방의 여자를 무림맹 임시 구금처로 데려가라.”
집행관 두 명이 약방 안으로 들어섰다. 소류화는 곽칠의 어깨에서 손을 떼고 일어났다.
“하진운 씨.”
그녀가 문지방 근처에서 서서 말했다.
“내가 잡혀 있으면 소가 약방의 일은 처음부터 다시 조사받습니다. 아버지 처방 기록이, 제가 남긴 기록이 살아 있다면 언젠가 들어맞을 겁니다.”
하진운은 돌아보지 않았다. 다만 검집을 쥔 손의 손끝으로 칼자루가 조금 움직이는 소리만 났다.
“가라.”
집행관 둘이 소류화의 팔꿈치를 결박했다. 새끼줄이 옷에 닿으며 꼬이는 소리가 차분하게 이어졌다. 소류화는 발걸음을 헛디디지 않았다.
백무군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약방은 무림맹 저지선으로 봉한다. 네가 발을 들이면 재판부로 끌려간다.”
“실뭉치는.”
“재판부 증거고에 보관한다. 산을 내려가기 전에 네가 내게 직접 넘겨받을 일은 없어.”
백무군이 골목 어귀 쪽으로 몸을 돌렸다. 집행관 둘이 소류화를 앞세우고 걸어가는 소리가 멀어졌다. 소류화는 뒤돌아보는 기척을 남기지 않았다.
하진운은 약방 앞에 홀로 남아 문짝에 박힌 쇠사슬 흔적에 검 끝을 한 번 대었다가 뗐다. 골목 밖에서는 소류화를 실은 발소리가 점차 작아져 갔고, 머리 위에서는 첫 닭이 길게 한 번 더 울었다.
하진운은 품 안에서 복수표 초안이 있던 자리를 손끝으로 눌렀다. 이제 종이는 없고, 실뭉치도 없고, 진짜 은방울도 서문혁의 품에 있었다.
그는 약방 뒤편, 서쪽 산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위공탄의 주막으로 가는 길이었다.
약방 앞 바닥엔 부서진 약상자의 널빤지가 부러진 발뒤꿈치 모양으로 남아 있었다. 하진운은 그 앞에서 몸을 돌리지 않았다.
곽칠의 시신은 무림맹 인부들이 우마차에 실어 갔다. 바퀴가 돌부리에 걸릴 때마다 짚단이 미끄러졌다. 소가 약방 정문은 반쯤 뜯긴 채 봉쇄 끈이 가로질러 있었다. 끈을 매던 집행자의 손끝에서 갈대가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백무군의 발소리가 약방 앞에서 열 걸음쯤 물러나더니 멎었다. 허리춤에서 종이 뭉치가 옮겨지는 소리가 났다. 복수표 초안이었다.
“복수표는 오늘부로 멈춘다. 증거를 다시 갖추기 전까지 단죄는 없네.”
하진운은 대꾸하지 않았다. 검집 위에 올린 손가락만 곧게 펴져 있었다.
“실뭉치도 가져간다. 이 반용량 기록이 독 공급의 시비를 가릴 것이다.”
백무군이 뒤로 한 걸음 더 갔다. 소류화의 팔목에 걸린 포승이 바닥을 끌지 않도록 그녀의 보폭이 좁아졌다. 신발이 흙을 밀 때마다 멀어지는 간격이 일정했다.
“하 소협.”
소류화였다. 목소리는 차분했고 어깨는 약방 쪽으로 반쯤 틀어져 있었다.
“약장 아래 선반은 그대로예요. 맨 안쪽을 버티던 돌이 돌아가 있어요.”
집행자가 포승을 한 번 당겼다. 소류화가 걸음을 옮겼다. 열두어 걸음 뒤 그녀의 발끝이 멎었다.
“무림맹에 가서도 그 소리는 못 잊을 거예요.”
하진운은 턱을 약방 쪽으로 돌렸다. 목덜미가 뻣뻣했다.
“가 봐라.”
소류화의 신발이 다시 움직였다. 발뒤꿈치가 땅에 닿는 지점이 얕아졌다. 인파가 몰려오는 골목 어귀에서 그 소리가 다른 발소리들과 겹쳐지기 시작했다. 옷자락 스치는 소리, 칼집 부딪히는 소리, 누군가 낮게 기침하는 소리 사이로 그녀의 걸음만 조금씩 좁아졌다.
하진운은 그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 몸을 앞으로 숙였다. 무릎에 힘이 풀리는 게 아니라, 땅이 덜 단단한 쪽으로 중심이 실렸다. 검집 끝이 돌바닥을 짚었다. 이윽고 소류화의 발소리가 인파의 발소리보다 한 박자 빠르게 사라졌다. 방향은 남쪽 큰길이었다.
약방 앞엔 끈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만 남았다. 집행자 두엇이 봉쇄 끈을 매만지다가 하진운 곁을 지나갔다. 한 사람이 걸음을 멈추려다 윗사람의 손짓을 받고 물러났다.
하진운은 무릎을 굽혔다. 오른손이 여전히 검집을 쥐고 있어 땅을 짚지 못했다. 그는 왼손을 쓰지 않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도포자락이 약방 문지방에 쓸렸다. 복수표가 없었다. 실뭉치도 보이지 않았다. 소류화의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손끝에 남은 것은 참음검의 검집 표면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