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음검가(斬音劍歌)
7화
아무도 안 오는 곳이 아니었다. 위공탄의 주막은 산길에서 반 리쯤 들어간 골짝에 있었고, 그 지하 저장고만은 강호의 어떤 문파보다도 하진운에게 확실한 밤을 주었다.
계단은 열한 개. 하진운은 발끝으로 그 수를 다시 세며 내려갔다. 술독이 숨을 쉬는 소리가 왼쪽에서 났고, 쥐 한 마리가 오른쪽 서까래를 지나갔다. 공기가 술지게미 냄새로 눅눅했다. 문지방을 넘자 위공탄의 호흡이 바뀌었다.
“왔나.”
“청음검경.”
하진운은 문을 등으로 닫았다. 검집 끝이 흙바닥을 짚었다.
“상편. 꺼내.”
위공탄이 웃는 소리를 냈다. 술기운이 아직 남은, 입천장에 혀가 붙는 웃음이었다.
“인사가 그거냐. 어린 놈이 늙은이한테.”
“소리가 없어.”
하진운이 한 걸음 다가섰다.
“복수표도, 실뭉치도, 그 여자의 발소리도. 지금 나한테 남은 건 사부를 죽인 자의 소리뿐이다. 청음보가 없으면 그 소리의 끝점을 못 잡는다.”
“소류화는 어쨌고.”
“잡혀 갔다.”
위공탄의 술통이 바닥에 내려놓이는 소리가 났다. 나무가 돌에 부딪혀 짧게 울었다.
“무림맹이?”
“독 제조 혐의다. 거짓이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맹인이.”
하진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검집을 들어 술통 있던 자리의 흙을 두드렸다. 빈 소리가 났다. 위공탄의 허리춤에서 나무 술통 뚜껑이 열리는 소리가 따라왔다.
“서문혁이 곽칠을 죽였다. 네가 아는 그 곽칠.”
위공탄의 손이 멎었다. 술통 속에서 액체가 출렁이는 소리만 남았다.
“목이 찢겼다. 내가 못 막았다.”
“그래서.”
위공탄이 술을 한 모금 삼켰다. 삼키는 소리가 평소보다 컸다.
“그래서 청음검경을 꺼내란 말이지. 그거 하나 익힌다고 곽칠이 살아 돌아오나.”
“살아 돌아오지 않아도 소리는 남아 있다. 약방 앞에서 마지막으로 들은 곽칠의 숨소리가 내 귀에 남아 있다.”
하진운이 손을 폈다.
“그 숨 끝에 서문혁의 왼손 검집 소리가 겹쳐 있었다. 그가 내 사부를 죽일 때와 같은 소리다.”
위공탄이 한참을 말하지 않았다. 술통이 바닥을 미는 소리, 그가 자세를 고쳐 앉는 소리, 무릎 관절이 굳은 소리가 순서대로 났다.
“네 사부가 남기고 간 물건이긴 하다.”
“안다.”
“암말 말고 가져가란 뜻이 아니다. 죽기 전에 들려준 말이 있으니까.”
위공탄이 손을 뻗어 바닥을 짚었다. 흙이 손바닥에 눌렸다.
“청음검이란 소리를 벤다고 검이름을 지었지만, 귀를 먼저 만든다. 귀꽃이 피는 순간 목숨을 잃은 맹인이 태반이었어. 네 사부는 그걸 이르고 갔다.”
“귀는 이미 만들어졌다.”
하진운의 검집이 땅을 두들겼다.
“이제 칼을 세울 차례다. 늦으면 무림맹이 실뭉치를 재판부에 올리고, 서문혁이 소류화를 입막음한다.”
위공탄이 심호흡을 한 번 했다. 그리고 손을 흙바닥에서 떼었다.
“술통 밑이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으로 걸어갔다. 쪼그려 앉는 소리, 손톱이 흙을 긁는 소리, 나무 마개가 뽑히는 소리가 이어졌다. 하진운은 그 소리의 층 사이에서 위공탄이 무언가를 캐내는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흙이 무너지고, 옷감이 벗겨지고, 나무 상자가 열렸다.
“여기 있다. 청음검경 상편 원본.”
위공탄이 일어나 하진운 앞으로 건넸다. 나무 목간 세 장이 실로 엮인 뭉치였다. 손으로 만지자 모서리가 닳아 있었고, 옻칠이 군데군데 벗겨져 글자 홈이 손끝에 먼저 닿았다.
“읽는 법은 손가락으로 긁으면 된다. 네 사부가 눈으로 본 맹인이 아니라 손으로 읽는 맹인을 위해 남긴 거다.”
하진운이 목간을 받았다. 무게가 생각보다 가벼웠다.
“술통 밑은 복구해 둬.”
“네가 시킬 일이냐.”
위공탄이 씩 웃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몸을 굽혀 흙을 다시 쓸어 담았다.
등불이 한 번 튀었다. 하진운은 지하 저장고 한가운데 앉아 목간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위공탄이 문고리를 잠그고 등불 심지를 한 칼 내렸다.
“하룻밤이면 되냐.”
“새벽까지.”
“술은 주지 않겠다. 손끝이 흐려진다.”
하진운은 첫 번째 목간을 세웠다. 손가락이 글자 홈을 천천히 밀었다. 세로로 새겨진 문장은 끊어서 읽을수록 문맥이 또렷해졌다.
`호흡은 숨을 감추는 법이 아니라 숨을 듣는 법이다.`
목간 둘째 줄. 손톱이 옻칠 벗겨진 지점에 멈췄다. 그 아래로 세 개의 홈이 깊게 파여 있었다.
`상단은 심박을 짚지 말고 심박 아래를 짚어라.`
`약물로 눌렸을 때도 뛰는 맥은 목 왼쪽 줄기 아니라 겨드랑 아래 두 번째 늑간이다.`
하진운은 손가락을 떼지 않고 그 문장을 세 번 반복해 읽었다. 음각된 글자의 간격을 세는 동안 위공탄이 들이마시는 술 냄새가 다가왔다.
“두 번째 늑간이라.”
위공탄이 낮게 읊조렸다.
“네 사부가 마지막으로 시험했던 자리가 그쪽이다. 약을 먹인 사람한테도 심박이 완전히 숨지 않는 자리.”
“서문혁이 그날 밤 심박이 급하지 않았다. 사부의 시신 옆에서도 숨이 고르다 싶었다.”
하진운이 목간을 내려놓았다.
“그게 이상했다. 살해하는 놈의 심장이 오히려 느려지는 게.”
“약으로 눌렀을 수 있다. 독 만드는 문파니까.”
위공탄이 술통을 비웠다.
“넌 이제 심박 아래를 듣는 법을 배우는 거다. 가슴의 흔들림이 아니라, 갈빗대가 호흡에 밀릴 때 나는 떨림. 그걸 들으려면 상대와 일곱 보 안쪽이어야 한다.”
하진운은 검을 뽑지 않고 손으로 자기 갈비뼈 아래를 짚었다. 두 번째 자리의 맥이 손가락에 먼저 잡혔다. 걸음, 술독 틈의 바람, 등불 심지가 타는 소리, 위공탄의 오래된 관절. 하나씩 밀어내자 그 아래에서 아주 얕은 떨림이 남았다.
“이거다.”
하진운이 손을 떼고 목간 둘째 장을 들었다.
`청음보는 소리의 끝점을 찾는 발이다. 검을 쥔 손이 아니라 귀가 먼저 상대의 소리를 벤다.`
그 아래로 발그림이 손끝에 잡혔다. 발뒤꿈치를 땅에 박고 상체를 내밀지 말 것. 숨소리를 따라 검의 팔꿈치를 내리고, 상대의 숨이 내뱉히는 지점에 칼끝을 세울 것. 허나 그 최후의 자리에 들릴 심박 아래가 있으면 그쪽을 베라는 문장이 보였다.
“발소리를 숨겨도 심박은 숨기지 못한다. 초절정 고수만이 심박까지 늦춘다. 그러나 약으로 심박을 눌렀다면, 늑간 아래 맥은 오히려 세 번에 한 번은 원래 뜀을 남긴다.”
하진운은 목간을 허벅에 세우고 다시 호흡을 굴렸다. 위공탄의 호흡이 지척에서 벽을 타고 돌아왔다. 일곱 보 안.
위공탄의 갈빗대가 옷섶에 닿는 소리가 났다. 그 아래. 하진운은 상체를 틀지 않고 귀만 기울였다. 정확히 여덟 박자 뒤, 위공탄의 오른쪽 갈빗대 아래에서 짧은 떨림이 터졌다.
“술 냄새로 네 목이 먼저 굳었구나.”
하진운이 말했다.
“늙은이 몸 가진 술꾼한테 신공을 시험하고 있냐.”
위공탄이 목을 만지는 소리를 냈다.
“소류화가 잡혀 간 게 내 탓 아니냐는 걸 묻고 있는 건 알겠다. 그 애는 네게 뭘 남겼다.”
하진운은 목간을 모두 옆으로 밀고 손바닥을 무릎에 펼쳤다. 위공탄이 잠시 뒤 구들장 아래에서 무엇인가를 끄집어냈다. 비단에 싼 납작한 묶음이었다.
“소류화가 잡혀 가기 전에 맡긴 거다.”
“실뭉치.”
“그래. 기록 뭉치. 무림맹에 가져간 것보다 앞서 네게 써 둔 것이 있다.”
비단을 풀었다. 실뭉치가 손끝에 걸렸다. 매듭은 세 갈래로 갈라져 있었고, 각각 다른 굵기의 실이 감겨 있었다. 하진운은 손가락으로 매듭을 하나씩 세었다.
“첫 매듭. 은방울 반 칸. 끈은 붉다.”
소류화가 진짜 은방울을 보았다는 기록이었다. 반이 깨져 온음이 되지 않는 소리. 서문혁의 허리춤에서 나던 온전한 방울 소리와 같지 않다.
“둘째. 왼손 검집.”
경례검무에서 하진운이 확정한 소리와 같은 순서로 실이 감겼다. 오른손 아닌 왼손이 검집을 당길 때 나는 마찰음의 길이였다.
“셋째. 약물 아래 심박.”
매듭이 유독 촘촘했다. 소류화가 약방에 남긴 반용량 기록과 같은 손놀림이었다. 하진운은 두 번째 매듭 안쪽에 약방 처방 기록의 냄새가 남은 것을 느꼈다.
“복수표 원본을 새긴다.”
하진운이 검집 끈을 풀었다. 바닥에 펼친 모직 위에 검집으로 안을 짚지 않고, 왼손을 뻗어 벽 아래서 주운 돌조각을 쥐었다. 실뭉치 매듭 하나를 손끝으로 눌러 간격을 옮기며 바닥에 은방울 소리의 파형부터 그었다.
“소리는 이름이라 새길 수 없다. 실매듭으로 증거를 대신한다. 반쪽 은방울.”
다음 줄. 왼손 검집 마찰음.
“이거.”
그다음 줄. 약물 아래 심박.
“초안은 무림맹에 압수됐으니 원본이 필요한 것이다.”
위공탄이 말했다.
“이제 복수표가 성립되나.”
“소리 증거 세 가지가 순서대로 새겨졌다.”
하진운이 허리를 세웠다. 손끝에 돌가루가 묻었다.
“이걸 사부의 위패 아래 건다. 서문혁을 부를 명분은 그걸로 충분하다.”
“서문혁이 안 오면.”
“온다.”
하진운이 바닥에 새긴 복수표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돌가루가 달라붙었다.
“진짜 은방울이 자기 품에 있으니 그 방울이 다시 그 자리에 걸리는 걸 버티지 못할 거다. 그놈은 증거를 빼앗긴 뒤 남는 방울의 소리가 무서운 놈이다.”
다음 날 해질녘. 하진운과 위공탄은 복수표 원본을 수레에 실었다. 소리는 흔들리지 않도록 밀가루 포대 사이에 모직을 깔고 복수표를 눕혔다.
사부의 폐쇄 사당은 산 절벽을 등진 옛 법당이었다. 문은 잠겨 있었지만 위공탄이 샛길 바위 지문을 만져 후문을 열었다. 귀뚜라미 소리만 감기고 바람이 먼지만 밀었다.
법당 안은 촛불 하나 없이 돌로 꽉 찬 공간이었다. 하진운이 위패 앞 바닥의 돌기둥에 손을 댔다. 복수표 원본을 그 아래 벽에 세워 걸었다. 위패에서 오래된 향 냄새가 났다.
하진운은 위패 앞에서 허리를 굽혔다.
“사부. 소리가 세 개 남았다. 반쪽 은방울, 왼손 검집, 약물 아래 심박. 그 끝을 이곳에서 벤다.”
목소리는 반말이 아니라 낮은 존대였다.
위공탄이 물러나며 말했다.
“전갈은 사당 아래 외길 초석에 표식을 남기겠다. 서문혁이 확실히 지나는 길이냐.”
“제례장에서 이 사당으로 오는 샛길은 하나다.”
하진운은 법당 문 안쪽에 등을 돌리고 섰다. 위공탄의 발소리가 후문 밖으로 사라졌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사당 밖 길에서 바람과 함께 무엇이 울릴 것이라는 걸, 하진운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앞주머니에 넣어 둔 청음검경 상편의 목간이 옷섶을 눌렀다. 갈빗대 아래 맥이 뛰었다. 손가락이 검집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국진소리 하나 없이 저녁이 내려앉는 사당 길에, 아주 멀리서 은방울이 한 번 울었다. 하진운은 그 잔향의 끝나는 지점을 센다.
둘.
그리고 가까워진 은방울이 사당 문 밖 일곱 보 앞에서, 정확히 멎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