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독살된 황후는 즉위식 아침을 다시 산다

3화

새벽빛도 채 들지 않은 제단 복도에서 밀랍 봉인이 뜯긴 자국이 먼저 눈에 띄었다. 리에나는 은제 천을 한 번 훑고 이안의 소매를 잡아당겨 옆 기도실 문고리 뒤로 밀었다.

“걸음 멈춰요.”

“제가 불러놓고 왜 숨기십니까.”

이안이 낮은 소리로 답하며 문틈으로 제단 쪽을 보려 했다. 리에나가 그의 옆구리를 손끝으로 눌러 막았다.

“제단 점검 명목이니 먼저 불은 켜지 말고. 저쪽, 기름 보관함 뚜껑이 열려요.”

제대 위 성화는 작은 불씨로만 타고 있었다. 그 불빛이 은제 천을 지나갈 때마다 실처럼 가는 광택이 굽어졌다. 세라핀이 제단 왼쪽에서 걸어 나왔다. 두 손으로 조그만 유리병을 감싸 쥐고 있었다. 한 손엔 열쇠를 꼈는지, 걸음마다 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기름 함 뚜껑이요. 성화 보관용 은제 천 위에 유리병을 올리려는 것 같은데.”

이안이 긴장한 얼굴로 턱을 당겼다. 복도 끝에서 바람이 한 번 불어오자 등불 없는 어둠에 실내복 자락이 가볍게 들썩였다.

세라핀이 기름 보관함 앞에 멈췄다. 병 마개를 비트는 소리가 제법 크게 울렸다. 리에나는 손바닥을 문고리에 문지르지 않고 천천히 얹었다. 이안이 곁에서 숨을 반쯤 끊었다.

세라핀이 병을 기울이자, 은제 천 위로 액체가 가늘게 번졌다. 불빛 아래 푸른 반점이 솟아나는 것처럼 나타났다. 리에나가 숨을 들이마셨다. 이안이 먼저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거기서 떨어져요.”

이안의 신발이 돌바닥을 세 번 세게 밟았다. 세라핀이 화들짝 돌아보며 병을 떨어뜨릴 뻔했다. 이안은 그녀의 오른 손목을 한 번에 잡아 비틀어 병을 받아 냈다.

“손대지 마세요.”

세라핀이 놀라 몸을 뺐지만 이안의 손이 팔꿈치부터 어깨까지 밀고 들어와 그녀를 제단 기둥 쪽으로 돌려세웠다. 유리병은 이안의 왼손에 옮겨졌다. 뚜껑은 여전히 반쯤 열려 있었고, 투명한 액체가 병 안벽을 타고 천천히 내려갔다.

“확인했어요. 은제 천이 푸르게 변했어요.”

리에나가 제대 앞으로 걸어 들어갔다. 세라핀은 숨이 턱까지 찬 듯 어깨를 들썩였다.

“마마…… 이건, 저는, 검사만——”

“말해요, 뭘 검사했는지.”

리에나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세라핀의 말을 완전히 잘랐다. 이안이 그녀 곁에 서서 세라핀의 어깨를 짚은 채 돌아보았다.

“병은 제가 쥐고 있습니다. 잔여물이 손에 남았을 테니 팔을 들게 두지 않는 게 낫겠어요.”

“손 놔요. 대비께서 부르신 일은 이것과 상관없어요.”

세라핀이 급히 말을 토해 냈다. 유리병이 이안의 손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리에나가 손수건을 꺼내 병 아래에 받쳤다. 푸른 반점은 은제 천 가운데로 번져, 성화 촛대를 향한 기름길 바로 위를 꿰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 대비의 하인은 없어요.”

리에나가 천천히 말했다.

“그러니까 누구 지시였는지 대지 말아요. 나중에 물을 테니.”

세라핀이 아래를 보았다. 손목이 떨리는 것이 은제 천에 그림자를 두 번 지웠다. 이안이 품에서 가죽끈을 꺼내 세라핀의 손목을 돌려 묶었다. 리에나는 봉인용 밀랍 주머니를 제대 밑 상자에서 꺼냈다.

“입구 쪽 근위대를 불러요.”

이안이 고개를 돌려 기도실 방향을 확인했다. 그 순간 제단 바깥 회랑에서 검은 부채가 먼저 보였다.

오르가노 백작부인이 부챗살을 반쯤 편 채 걸어 들어왔다.

“새벽 기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일 줄은 몰랐습니다.”

백작부인이 제단에 오기 전에 멈추었다. 옷자락을 따라 밀랍 봉인 조각 하나가 굴러와 리에나의 발치에 닿았다. 오르가노는 그것을 보지도 않고 세라핀을 훑었다.

“귀족원은 황실 범죄의 증인을 보호할 청원을 받아 두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저 혼자 왔으나, 서한은 이미 제단 바깥 가드에게 전달됐어요.”

“제압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절차가 빠르군요.”

리에나가 물러서지 않고 백작부인의 부채 쪽을 보았다. 부챗살 사이로 흰 종이가 한 장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빠른가요. 저는 밤새 별궁 근처에서 귀족원 서기의 도장을 기다린 셈입니다. 마차가 이 길을 오가는 동안 소문은 제단보다 빨리 도착하니까요.”

오르가노가 손을 내밀었다. 봉인된 청원서를 내밀었다는 것보다, 증인을 내놓으라는 제스처에 가까웠다.

“귀족원 두 명의 증언을 확보했겠지요.”

리에나가 청원서를 받지 않고 말했다. 오르가노가 부채로 손바닥을 한 번 쳤다.

“벌써 확인하고 싶으신 모양이지만, 그건 인계 뒤 열람하셔도 늦지 않아요. 다만 인계를 늦추실수록 여기 이 시녀가 황후 명의의 불법 심문을 견뎠다는 소문이 더 빠를 거예요.”

“불법이라니요. 현행범입니다.”

이안이 끼어들자 오르가노가 이번엔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부채가 접히는 소리가 이마에 얹히는 숨소리 같았다.

“현행이라면 봉인된 증인 수첩에 목록이 함께 올라가야 옳고, 그렇지 않다면 현행이라는 말은 아직 아무것도 담보하지 못합니다. 심문관께서는 그 절차를 누구보다 잘 알지요.”

세라핀이 고개를 들었다. 리에나와 오르가노 사이에서 몸을 비스듬히 굽힌 채 입을 열었다.

“제발…… 저는 가족이 무사하면 그것으로, 됐어요.”

세라핀은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눈이 붉지 않았고, 목소리만 마지막 음에서 조금 젖었다. 이안이 손에 든 병을 성화 쪽 불빛에 대 보였다. 유리병 안벽에 푸른 잔금이 길게 남아 있었다.

“황후, 인계가 늦어지면 오히려 이 병조차 증거 목록에서 빼앗길 수 있습니다.”

리에나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단, 은제 천은 여기 봉인된 채로 두고, 심문관과 저, 그리고 백작부인이 각각 반응을 확인했음을 기록으로 남길게요.”

오르가노가 미소를 띄웠다. 부채를 활짝 펴서 세라핀의 어깨 위를 지나가게 부쳤다.

“황후께서 기다리지 않으신 분인가 보군요. 기록은 귀족원 서기가 와서 작성하면 됩니다. 마차가 준비되는 동안에도.”

제단 밖에서 바퀴 소리가 가까워졌다. 리에나는 뒷주머니에 넣어 뒀던 은제 반응 시약지를 천에서 손톱만큼 잘라낸 조각에 대 보았다. 푸른 변색은 앞선 사건의 물잔 표본보다 옅었으나 단번에 드러났다.

“은린향이에요. 빛 아래서는 더 뚜렷해요.”

이안이 병을 리에나에게 내밀지 않고 밀랍 종이에 둘둘 말았다.

“그걸 가져가면 끝이 아닙니다. 청원서대로 끌려가면 유리병은 별궁 조사 범위에서 빠질 수도 있어요.”

오르가노가 문 쪽으로 몸을 돌리며 대답했다.

“귀족원에서 보호하는 것은 증인의 진술이지, 현장의 조각이 아닙니다. 증인보호 청원서는 그래서 더 무겁지요. 황후의 잔은 이미 검출이 끝났고, 제단의 천은 황후께서 직접 만져 확인하셨으니까.”

세라핀이 처음으로 리에나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무언가 말하려다 눈을 아래로 내렸다. 오르가노의 손이 세라핀의 묶인 손목을 감싸기 전에 이안이 반 걸음 앞을 막았다.

“가죽끈은 풀지 말고 가세요. 도주 시도가 아니더라도 두 손이 묶여야 증인 신병이 안전하게 인계됩니다.”

“잘 알겠습니다. 마차 밖에 두었던 보온용 망토도 가져오고요. 새벽 공기가 꽤 차네요.”

오르가노가 부채를 접어 세라핀을 이끌었다. 리에나는 제대 난간에 손을 얹었다. 세라핀이 문간에서 한 번 뒤를 돌았다.

손이 묶였으나 목까지 움직여 리에나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 인사가 끝이었다. 제단 밖에서 마차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증거 봉인을 부탁해요. 기름 보관함과 은제 천, 마지막으로 부채가 지나간 난간까지.”

리에나가 말하자 이안이 병을 제대 위 작은 궤에 눕혔다.

“먼저 새벽 근위대가 와야 합니다. 제단 서쪽 출입구에 불이 붙기 시작했어요.”

적막보다 빠르게 석제 바닥에 장화 소리가 울렸다. 근위대가 제단 입구를 막고 횃불을 밝혔다. 라탄 바스켓에 담긴 증거 궤가 그 빛 아래서 뚜껑을 반쯤 열었다. 잠시 뒤 칼리안이 들어섰다. 잠복 자체를 몰랐던 그가 횃불 냄새를 맡으며 제대를 훑었다.

“다녀서, 오고.”

칼리안이 짧게 인사를 대신했다.

“무슨 상황이지.”

“세라핀이 기름을 바꿔 넣으려 했고, 은제 천 반응으로 은린향이 확인됐어요. 이안이 유리병을 확보했어요.”

리에나가 말했다. 칼리안은 바로 묻지 않고 증거 궤 근처로 가 엎드려 뚜껑 안쪽의 은제 천 조각을 봤다.

“병은 어디 있소.”

“궤 안입니다. 오르가노 백작부인이 세라핀을 데려갔어요.”

칼리안의 시선이 제단 출입구를 거쳐 마차가 떠난 쪽을 향했다.

“귀족원 청원을 받았다는 거요.”

“예.”

리에나가 증거 궤 옆에서 한 걸음 옮겼다.

“내가 이안에게 시켜서 은제 천 반응 부분만 보존했어요. 이제 필요한 건 백작부인이 가져가기 전 여기 전부를, 특히 기름 보관함과 오르가노가 두고 간 부채를 밀봉하는 거예요.”

칼리안이 곧게 섰다.

“지시하지 마라.”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명령하지 않았다.

“제안으로 들을 테니, 근거부터 대시오.”

리에나가 증거 궤 안의 병을 가리키려다 손을 멈추었다. 대신 은제 천의 푸른 반점을 손등으로 가리켰다.

“아까 그녀가 기름 함 뚜껑을 열고 병을 기울였어요. 제가 서약서 원본을 품에 넣은 채로요. 그 서약 때문에 저만큼 이 범행을 막는 데 불리한 사람이 없으니, 제가 부탁드려요.”

칼리안이 제대 난간 앞으로 와 리에나와 마주 섰다. 횃불이 그의 눈동자를 붉게 비추었다.

“이번 조사권은 황후에게 있다 하더라도, 증거 봉인 명령은 황제 이름이 있어야 귀족원이 손 못 대.”

“압니다. 그래서 폐하께 서명을 구하는 거예요.”

리에나가 낮고 분명하게 말했다. 이안이 두 사람 곁에서 순서를 기다렸다가 궤를 내려다봤다.

“서명 명령서에 제단 기름 보관함과 부채, 그리고 이 병을 한 목록으로 묶어 두는 항목을 넣어요.”

이안의 말투가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호송 경로. 오르가노가 청원서를 내민 위치에서 마차가 곧장 귀족원으로 갔는지는 근위대 초소 기록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칼리안이 제대 위 얇은 문서지와 붓을 꺼내 근위대장에게 손짓했다. 레오니드가 문 옆에서 잉크병을 건넸다. 칼리안이 쓰기 전에 리에나를 봤지만, 묻지는 않았다.

“너는 지금 이 자리에서 포기하지 않을 방도를 골랐군.”

“네.”

리에나가 받았다. 칼리안은 붓을 세 번 찍어 날짜 없이 내용만 썼다. 기름 함, 유리병, 푸른 반점 은제 천, 검은 부채, 제단 난간 봉인. 그리고 이안의 호송 경로 추적 권한. 끝에 ‘황후가 보관하고 황제가 집행한다’고 한 줄을 남겼다.

“확인하시오.”

리에나가 서류를 읽고 이안에게 넘겼다. 이안은 두 번 훑고 궤 앞에서 서명 보좌인이 되었다. 칼리안이 인장을 찾기 위해 옷깃을 젖혔다. 손이 왼쪽 가슴 휘장에 닿는 동안, 리에나는 흘러내린 밀랍 조각을 밟지 않으려 신발을 살짝 돌렸다.

“봉인이 끝나면 황후부터 떠나.”

칼리안이 서명과 인장을 마치고 증거 봉인 명령서 한 부를 접어 그녀에게 건넸다.

“이제 이 서한이 귀족원에서 온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든 것임을 그들이 알게 될 테니, 새벽 안에 조사를 끝내.”

“그렇게 할게요.”

리에나가 명령서 사본을 품에 넣으려는데, 제단 어귀 쪽에서 근위대 하나가 새 문서 봉투를 들고 계단을 올라왔다.

“귀족원 서한입니다.”

모두가 그 봉투를 보았다. 그러나 리에나는 먼저 이안과 함께 증거 궤를 기름 보관함 앞으로 옮겼다.

이안이 라탄 궤를 열어 오르가노가 흘린 부채의 잔여 조각을 면보에 받쳤다. 부채를 펼칠 때 은근한 유향 냄새가 났다. 리에나가 기름 보관함 덮개를 들어 올리자 그 틈에서 같은 향이 조금 더 진하게 번졌다.

“같은 향이에요. 기름 보관함 안과 부채에 말이에요.”

이안이 두 면보를 각각 유리병 곁에 놓고, 보관함 테두리의 흠집을 손가락으로 훑지 않고 은제 막대로 눌렀다.

“명판 흔적입니다. 모레노 가문 옛 하인이 장만한 제조실 도구에 찍혀 있던 것 같은데, 확정은 아니고요. 보존하죠.”

리에나가 그 흔적을 작은 왁스로 덮어 목록에 올리게 했다. 증거 궤가 잠기고 나자 은제 천의 푸른 반점은 밀랍 종이를 통해 은은하게 남았다.

“이제 충분해요.”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궤는 근위대 두 명이 들고, 이안은 다음 조사 항목을 받아 제단 기름 보관함 앞에 남았다.

리에나와 칼리안이 제단 어귀 진입 계단까지 내려온 것은 하늘이 막 푸르게 변하기 시작한 때였다. 아래쪽에서 오르가노의 마차가 갓등 두 개를 밝힌 채 천천히 움직였다. 세라핀은 창밖으로 보이지 않았다. 마차 바퀴가 돌에 닿는 소리가 계단 아래까지 이어지다가 방향을 꺾어 사라졌다.

근위대가 귀족원 서한을 칼리안에게 다시 내밀었다. 칼리안이 봉인을 뜯지 않고 리에나에게 건넸다.

“읽어. 네 이름이 적혀 있을 거다.”

리에나가 칼날로 봉인을 가르며 펼쳤다. 서한 위에는 귀족원의 직인이 찍혀 있었고, 첫 문단부터 임시 황후 자격 검토를 시작한다는 문장이 보였다.

“기한은 담겼요?”

리에나가 서한을 접으며 답했다.

“내일 새벽, 귀족원 회의실에서 청원서 대질에 참석하라고 적혀 있어요.”

칼리안이 서한을 받아 다시 접어 봉투에 넣었다.

“오르가노가 잠깐 서 있던 자리까지 증거로 묶었다. 궤는 닫혔고.”

그가 난간에 손을 얹었다. 리에나도 반 걸음 나아가 사라진 마차의 등을 내려다봤다. 등불은 지고 어둠이 한 번 더 짙어졌다. 새벽 공기가 서한 봉투의 밀랍 냄새를 제단 꼭대기 쪽으로 밀어 올렸다.

독살된 황후는 즉위식 아침을 다시 산다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