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독살된 황후는 즉위식 아침을 다시 산다

4화

“소환장은 이미 받으셨지요.”

오르가노 백작부인의 목소리가 제단 어귀 계단 아래에서 올라왔다. 리에나가 난간 너머로 몸을 돌리자, 백작부인은 두 귀족원 노인을 좌우에 세우고 서 있었다.

검은 부채를 반쯤 편 백작부인이 첫 번째 디딤돌에 발을 얹었다.

“임시 신분으로 제단 조사권을 행사하신 일부터 짚어야겠습니다. 서두르실수록 자격에 금이 갈 테니 천천히 가시지요.”

칼리안이 난간에서 등을 떼며 반 계단 내려섰다. 그의 손에 들린 귀족원 서한 봉투가 바람에 가볍게 휘었다.

“자격 검토를 제단 앞에서 하자는 건가.”

“회의실은 내일 새벽으로 잡혀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를 먼저 청하러 온 것이지요.”

백작부인이 부채를 횃불 아래로 치켜들었다. 불빛이 제단 쪽 어둠을 일렀다.

“황후 전하께서는 대관 전 임시 신분입니다. 밤새 증거를 옮기고 명령서를 만들었다면, 대관식 전까지 처소에서 나오지 않으셔야 순서가 맞지요.”

리에나는 계단을 한 칸 내려가며 서한 봉투를 칼리안의 손에서 받았다. 구겨진 모서리 하나가 밖으로 접혔지만 펴지 않았다.

“유폐를 말씀하시는군요.”

“보호라고 적으면 폐하께서도 듣기 좋으실 겁니다.”

백작부인이 계단을 오르고, 두 귀족원이 반 발 뒤를 따랐다. 한 명은 장갑 끝을 쥐고, 다른 한 명은 붉은 술을 만졌다.

“증인보호 청원서에는 증인 신변만 적혀 있었소.”

리에나가 말했다.

“지금 말씀은 황후의 이동까지 묶겠다는 것. 근거가 무엇인지요.”

근위대 하나가 칼집을 움켜쥐자 칼리안이 손을 들어 막았다.

“제단 미수 현장은 봉쇄되어 있고, 증거 궤는 폐하의 서명으로 잠겼습니다. 그 안에 든 은제 천과 기름 시료만으로도 오늘 새벽 일을 공개 증명할 수 있어요.”

리에나가 서한 봉투를 들어 보였다. 밀랍 조각이 떨어져 계단에 부딪혔다.

“공개 증명이요? 저는 지금 절차를 말씀드렸습니다.”

백작부인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전하께서는 그 절차를 다시 여는 것과 같군요.”

“대관식은 이미 공개된 의례였어요.”

리에나가 계단을 한 칸 더 내려갔다.

“제단 기름에 은린향이 섞였다면, 대관 자체가 증명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나 보는 앞에서 은제 시약과 기름, 기록을 맞춰 보는 것이요.”

“성화 앞을 검증장처럼 쓰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러니 폐하의 승인을 구할 거예요. 폐하께서 공개 검증을 명하시면 황제의 명령이 되고, 귀족원이 막을 근거도 사라지고요.”

칼리안이 리에나의 옆으로 내려서며 오르가노를 내려다보았다.

“성화 앞에서 증거를 펼친다. 이의가 있나.”

백작부인의 부채가 손끝에서 반 바퀴 돌았다.

“폐하의 명이면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귀족원 통보 없이는 무리한 절차입니다.”

“통보하러 온 게 아니었나. 지금 그 둘을 데리고.”

오르가노가 부드럽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이 대화를 회합 재소집의 근거로 삼겠습니다. 대관식을 공개 검증으로 바꾸는 안건은 원로회의 승인을 구하는 것이오.”

백작부인이 몸을 돌렸다. 두 귀족원이 그녀보다 반 발 늦게 따라섰다.

“회합에서 빠뜨리지 말고 전해 주세요. 대관식 전에 은제 시약과 기름 보관함을 시험할 수 있게 준비하겠다고요.”

오르가노는 돌아보지 않고 계단 아래로 사라졌다. 부채가 옆구리에 반쯤 걸린 채 어둠 속으로 밀려들어 갔다. 근위대 하나가 그 뒤를 잠시 따랐다.

칼리안이 리에나의 손에 들린 서한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구겨진 모서리가 한층 더 젖어 있었다.

제단 준비실로 들어선 것은 오르가노 일행이 제단 담장 밖으로 벗어난 뒤였다. 이안이 낮은 탁자에 검사를 펼쳐 두고 있었다. 그는 마개를 든 손을 멈추고 두 사람을 흘끗 보았다.

“돌아오신 김에 보세요. 하마터면 넣어 둔 채로 지나칠 뻔했어요.”

이안이 기름 보관함에서 회수한 마개 아래 밀랍 종이와 천 사이를 가리켰다. 반달 모양의 얇은 조각이 붙어 있었다.

“세라핀의 오른손 새끼손톱이 벗겨져 있었잖아요. 그 조각이 여기 눌려 떨어졌어요. 마개를 열 때 보관포에 끼었던 모양이에요.”

그가 집게로 조각을 유리 접시에 옮기고 은제 시약을 부었다. 푸른 기운이 조각 가장자리에서 번졌다.

“은린향 잔여물 맞아요.”

리에나가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봉인할 수 있겠어요?”

“지금 목록에 넣을게요. 손톱 조각은 시약 반응 기록과 같이, 마개와 보관포는 따로요.”

이안이 작은 봉투 두 장을 꺼내 풀을 발랐다. 은제 천에 남은 푸른 반점은 검게 가라앉아 있었다.

“대관식에서 공개 검증을 하기로 했어요.”

리에나가 말했다.

“오르가노 백작부인이 그걸 두고 회합을 연다면, 준비할 시간은 넉넉하지 않겠어요.”

“짧아도 충분해요. 현장은 봉쇄됐고, 증거는 당신 손에 있으니.”

이안이 봉투를 궤 안에 가지런히 놓았다. 문가에는 근위대 두 명이 서 있었고, 레오니드가 복도 끝에서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오르가노 일행은 마차에 올랐습니다. 근위병이 대문 밖 길까지 따라갔고요.”

“회합 준비를 핑계로 움직일 거다. 대관식 전까지 제단 인원은 통제 유지.”

레오니드가 물러나자 칼리안이 문을 닫았다. 준비실 안에 리에나와 단둘이 남았다. 창밖으로 성화 불빛이 창틀 위를 가늘게 스쳤다.

칼리안이 창가 목록 옆에 멈춰 섰다.

“너는 이 아침을 이미 살았나.”

리에나가 목록을 넘기던 손을 세웠다. 종이 모서리가 손끝에서 조금 밀렸다.

“질문이 너무 늦으셨네요.”

“그래서 묻는다. 네 대답이 길어질수록 이곳의 증거가 더 확실해야 하니까.”

리에나는 몸을 창가로 반쯤 돌렸다. 칼리안의 붉은빛이 도는 눈동자가 성화 불빛과 닿아 짧게 타올랐다.

“가정해 볼게요. 폐하께서 그때 독잔의 액체만 검사하셨다고요. 잔에 든 물이 증류수뿐이어도, 세라핀이 검사 후 잔 안쪽을 닦아 은린향을 남겼다면 은제 시약이 늦게 반응했을 거예요. 그날 아침에는 그 차이를 확인할 시간이 없었겠지요.”

칼리안의 시선이 목록 위로 천천히 내려왔다.

“추측인가.”

“추측이에요. 다만 잔이 지금 없다면, 검사가 끝난 자리에서 손때가 지워진 순서를 짚어야 해요.”

리에나의 손에 들린 종이가 아래로 곧게 늘어졌다가 천천히 젖어 반점을 남겼다.

“네가 처음부터 잔을 그렇게 본 이유가 됐군. 은린향도, 세라핀도, 제단의 시간까지.”

“폐하께서는 제가 그 모든 걸 만든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제가 한 건 그걸 견디는 것뿐이었어요.”

칼리안이 그녀 쪽으로 한 걸음 옮겼다. 성화의 빛이 둘 사이를 비껴 갔다.

“더 묻지 않겠다. 다만 대관식에서 그 검증을 직접 열어. 귀족원이 뭐라 하기 전에.”

“정말 그 명령을 내리실 거예요?”

“이미 내렸다.”

칼리안은 준비실 안쪽 작은 탁자로 걸어가 빈 영장지를 꺼냈다.

“성물고 수색 영장도 지금 써 두겠다. 사라진 왕실 독각 기록을 대관 전까지 확인해야 해.”

“성물고요?”

“이안이 그쪽으로 갔을지도 모른다고 했소.”

칼리안이 펜을 들고 영장지에 서명했다. 잉크가 번지기 전에 손이 중간을 한 번 눌렀다.

“이안을 불러라. 레오니드에게도 영장 사본을 쥐여 줄 테니 바로 가게.”

리에나가 창가에서 몸을 떼며 그를 불렀다.

“폐하.”

칼리안이 고개를 들었다.

“아직은 임시 황후일 뿐이에요. 그래도 오늘 이 검증은 제가 열게 해 주세요.”

칼리안이 영장지를 막 건조시키려다 멈췄다.

“네가 열지 않으면 내가 연다. 그걸로 충분하나.”

리에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젖은 목록이 창틀에서 마르기 시작하며 반점이 옅어졌다.

오르가노의 성물고는 별채 지하로 내려가는 돌문 뒤에 있었다. 레오니드가 낮은 초롱을 들고 내려섰다. 이안이 허리의 증거 궤 열쇠를 한 번 만지고 문틀을 확인했다. 습기와 밀랍, 묵은 향이 섞인 냄새가 계단 입구부터 올라왔다.

“저택 하인은 전부 안뜰로 물려놨고 문은 두 명이 지킵니다.”

레오니드가 수색 영장을 문지기에게 내밀었다. 문지기가 열쇠 뭉치에서 세 번째 열쇠를 빼 돌리자 찬 공기가 흘러나왔다.

이안이 먼저 들어섰다. 성물고 안은 기름 등이 반쯤 켜져 있었고, 벽 선반마다 봉인 천을 덮은 보관함이 줄지어 있었다.

“독각 기록이 여기 숨었다면, 열람 범위 밖으로 옮긴 뒤에도 꺼내 본 흔적이 먼저 보일 겁니다.”

긴 탁자를 훑던 이안의 손이 멎었다. 접힌 검은 부채가 탁자 모서리에 놓여 있었다. 제단에서 오르가노가 쥐던 것과 같은 자개 장식이 불빛에 반사됐다.

“부채부터 봉인해요. 제단 것과 한 쌍일 수 있어요.”

레오니드가 장갑 낀 손으로 부채를 유리 상자에 넣자, 이안이 밀랍 종이를 덮고 봉인 끈을 돌렸다. 탁자 아래 서랍에서는 성물고 출입 대장이 나왔다. 이안이 최근 열흘치를 펼치자 지난 새벽 시간대 한 줄이 비어 있었다. 먹이 번진 자리에 다른 날짜를 덧쓴 흔적이 남아 있었다.

“출입 기록을 지웠네요. 이 안에서 뭔가를 꺼낸 저택 사람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안이 선반 쪽으로 갔다. 중간 높이 선반의 납작한 상자 하나만 봉인 천이 반대로 덮여 있었다. 그가 천을 걷자 푸른 밀랍 조각이 상자 뚜껑 위로 떨어졌다. 상자 안에는 가죽 등이 갈라진 기록첩 한 권이 들어 있었다.

“왕실 독각 기록이에요. 대비궁으로 옮겨졌다는 기록은 사본 장부에만 남고 원본은 여기 있었네요.”

이안이 책장을 넘기지 않고 옆면의 봉인 줄을 끌어당겼다. 은제 막대로 첫 장을 눌러 펴자 검은 장부선 위에 빼곡한 기록이 드러났다. 그가 멈춘 지점에는 모레노 가문의 옛 하인 앞에 은린향 제조자라는 표기가 남아 있었다.

“제조자가 여기 적혀 있어요.”

레오니드가 입구를 힐끗 보았다.

“걸린 사람이 오기 전에 서두르지요.”

이안이 기록첩을 봉인 상자에 넣고 부채 상자와 나란히 두었다.

“두 상자를 들고 바로 황후궁 서재로 갑니다. 저는 유리병과 향 시료를 합쳐서 증거 궤에 목록을 붙이고 따라갈게요.”

“부채 안쪽 자개 틈에서 난 향은 제단 기름 보관함과 같은 계통인지 시약으로 확인했어요. 반응이 남아 있어요.”

황후궁 서재에는 아침 해가 창틀 위 반쯤 걸쳐 있었다. 검은 부채 상자와 독각 기록첩이 놓인 탁자 앞에 리에나가 서 있었다. 이안이 은린향 유리병과 같은 제조실 향 시료를 탁자 끝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레오니드가 상자 하나를 밀어 열었다. 근위대장의 전령 인장이 밀랍에 눌려 있었다.

“이번 수색 영장을 주선한 사람도 근위대장입니다. 그동안 조사 시간을 먼저 알려 준 전령 인장과 같은 모양이에요.”

리에나가 인장을 들어 뒤집자 익명의 전갈이라 여겼던 서한의 밀랍 자국과 인장 테두리가 겹쳤다.

“그 정보가 칼리안의 것이었다고, 지금 실증한 거군요.”

레오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리에나가 상자를 내려놓고 서재 저편을 보았다. 칼리안이 문간에서 한 걸음 들어서 있었다.

“화내지 않을 거야. 지금은 그 정보 덕에 여기까지 왔어요. 다만 다음부터는 전령을 먼저 보내지 마요.”

칼리안이 탁자 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기록첩 위로 손을 뻗지 않았다.

“대관식에서 증명하겠다고 하면, 귀족원이 그 자리를 막으려 들 거다.”

“받아들이게 하면 돼요.”

리에나가 서기에게 제출할 증거 목록을 직접 적기 시작했다. 독각 기록 원본, 검은 부채 봉인, 기름 보관함 명판 흔적, 세라핀 손톱 잔여물, 은린향 유리병이 차례로 올라갔다. 이안이 옆에서 증거 궤 번호를 함께 적었다.

오후가 되기 전 귀족원 서기 한 명이 서재로 들어왔다. 그 뒤로 오르가노 백작부인이 서재 문가에 섰다. 서기는 목록을 두 번 뒤집어 보고 사본에 접수 도장을 찍었다. 리에나가 접수증을 받아 품에 넣고 말했다.

“대관식에서 오르가노 백작부인의 독을 증명하겠어요. 공개 검증으로요.”

독살된 황후는 즉위식 아침을 다시 산다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