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F급 감정사의 진짜 가격

1화

“위탁 등록은 받았는데, 공개 검증은 안 됩니다.”

테이아 옥션 본장 접수창구. 유리 칸막이 안쪽에서 경매사가 등록증을 밀어 돌려보냈다. 한도윤은 손가락 두 개로 등록증을 짚어 세웠다. 개장 전 본장은 접수용 조명만 켜져 있었다.

“F급 감정사가 요구할 수 있는 절차가 아닙니다.”

한도윤이 고개를 약간 틀었다.

“자격이 아니라 물건 보세요. E급 잠금 낡은 단검.”

“그래서요? F급 자격으로는 공개 성능 검증 신청 자체가 반려됩니다.”

뒤쪽 대기선에서 차민규가 다가왔다. 남부 감정소 팀장. 넥타이를 조이며 한도윤의 어깨 너머로 접수창구를 살폈다.

“한도윤 씨, 이거 수수료도 안 나오는 위탁이야. 검증은 무슨.”

“팀장님은 일단 보세요.”

한도윤이 등록증을 들어 올렸다. 백훈의 단검 위탁 등록증. 물품명 옆에 ‘F급 추정·E급 잠금’이라고 찍혀 있었다.

차민규가 혀를 찼다.

“잠금 등급이 E급이면 E급이지. 여기서 검증 열면 우리만 수수료 손해야.”

“그거 아니고, 잠금은 최초 감정 기준이에요. 검증은 별도 절차고.”

“그러니까 F급 자격으로 왜 통과가 돼.”

한도윤은 접수창구 옆 절차 안내판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공개 성능 검증 신청은 위탁자 동의가 있으면 등급과 무관해요. 동의서 여기 있고.”

백훈이 진열장 곁에서 걸어 나왔다. 전투 재킷 앞주머니에서 접힌 동의서를 꺼내 접수창구에 올렸다.

“내가 냈어. 이 단검, 우리 아버지 거야.”

경매사가 동의서를 펼쳤다. 백훈의 서명과 지문이 찍혀 있었다. 경매사가 잠시 칸막이 안쪽 시스템을 조회했다.

“위탁자 동의는 확인됐지만, 검증장 사용 수수료가 본 위탁 수수료보다 높습니다. 진행할까요?”

차민규가 한 걸음 끼어들었다.

“잠깐, 검증장 열면 경매 순서 밀려. 오늘 본장 일정 있잖아.”

“개장 전 검증이에요. 본장 일정에는 영향 없습니다.”

“그래도 반출 보험하고 배치 인력… 한도윤 씨가 이거 다 감당할 거야?”

한도윤은 칸막이 안의 개장 전 시계를 올려다봤다. 오전 일정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시간이 없다.

그가 한 발 물러섰다.

“못 감당할 건 없고요. 수수료는 제가 접수해요.”

차민규는 팔짱을 풀지 않았다.

“검증에서 E급 잠금 유지되면, 그냥 낡은 단검으로 끝나. 경매장 수수료도 못 건져. 그 손실은?”

“팀장님은 수치만 보고 계시네요.”

한도윤이 백훈을 돌아봤다. 백훈은 접수창구 앞에 두 발을 붙이고 서 있었다. 표정은 급하지 않았지만 목덜미가 붉어 있었다.

“백훈 씨, 검증 열어도 돼요?”

“열어.”

백훈이 짧게 답했다.

한도윤이 다시 경매사를 향했다.

“공개 성능 검증 요구합니다. 위탁자 동의 확인됐어요. 검증 수수료 접수해 주세요.”

경매사가 동의서와 등록증을 가지런히 모았다. 시스템에 절차를 입력하는 소리가 났다.

타닥.

“백훈 님 동의서, 공개 검증 승인 확인서 작성합니다. 수수료는 검증장 반응 로그 기준 부가 항목 포함입니다.”

한도윤이 결제 단말을 내려다봤다. 금액이 찍혔다.

제법 나오네.

그는 말없이 단말에 손을 댔다.

승인 확인서 위로 ‘접수 완료’ 글자가 떠올랐다.

차민규가 뒤에서 한 번 더 제지했다.

“검증 시작하면 취소 안 돼. 알지?”

한도윤은 등을 돌린 채 짧게 답했다.

“네.”

이제…… 멈출 수 없다.

보안 통로는 접수창구 뒤쪽에서 검증장까지 이어졌다. 한도윤이 안내 카드를 받아 출입구에 댔다. 백훈이 반 발짝 뒤에서 따라왔다. 복도는 개장 전이라 인적이 없었다.

검증장은 사방이 흰 실험 패널이었다. 중앙에 검증대. 벽 한쪽에 반응 로그 기록장치가 붙어 있었다. 입회 진행관 한 명이 접수된 단검을 운반 케이스에서 꺼내 검증대 위에 올렸다.

“위탁자 본인 확인.”

백훈이 신분증을 꺼내 보였다. 진행관이 스캔하고 검증대 모서리의 각성 촉매 반응판에 연결했다.

한도윤은 검증대 앞에 섰다. 겉으로 보이는 건 낡은 단검이었다. 손잡이 가죽은 닳고, 칼날에는 녹에 가까운 검은 얼룩이 얇게 앉아 있었다.

이게 정말 E급 잠금일까?

“개방 전 외관 기록부터.”

진행관이 카메라를 조정했다. 한도윤은 한 걸음 물러났다.

“백훈 씨, 유언이라는 거. 여기서 밝혀야 검증 절차에 실려요.”

백훈은 단검을 내려다봤다.

“아버지가 이거 주면서 ‘쓰지 말고 지켜만 두라’ 했어. 해방 직전까지 품에 넣고 다녔고.”

백훈이 왼쪽 손바닥을 펼쳤다. 반응판 옆 소독패드를 집어 닦고, 진행관이 건넨 채혈침을 엄지에 댔다.

“검증 시료는 위탁자 혈액. 각성 촉매 반응은 열을 동반하니 접촉 후 물러서세요.”

백훈이 피를 단검 날에 떨어뜨렸다.

검증대 위 반응판이 즉시 붉은 선을 그었다.

고주파음보다 낮은 떨림이 검증장 바닥을 울렸다.

기록장치가 반응 로그를 뽑기 시작했다.

서아린이 검증장 출입구 안쪽에서 나타났다. 검은 슈트 차림 그대로, 손에는 라이선스 카드를 쥐고 있었다.

“아스모데우스 소속 A급 감정사 서아린입니다. 반응 잔향 기록을 신청합니다.”

한도윤이 그쪽을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기다린 거예요?”

“아니요. 검증 승인 내역이 본장 공유 로그에 떴습니다.”

검증대에서 단검이 달아올랐다. 검은 얼룩이 마치 호흡하듯 밝아졌다.

손잡이 가죽을 감싼 황동 장식이 조각나며 떨어져 나갔다.

반응 로그가 마지막 줄을 출력했다. 진행관이 로그를 들어 올렸다.

“등급 잠금 E급… 각성 촉매 예외 적용. S급 반응 확인.”

조용하던 검증장에 배기 팬 소리만 돌았다.

S급?

지금…… S급이라고?

서아린이 한 걸음 다가와 반응판의 잔향 수치를 기록했다. 그녀의 장갑 낀 손가락이 단말 위를 두 번 지나갔다.

차민규가 보안 통로에서 뛰어 들어왔다. 호흡이 가빴다.

“뭐야, 지금 S급 반응이 나왔다고?”

백훈은 대답 없이 검증대 옆 반응 로그를 끌어안았다. 두 팔로 서류 뭉치를 가슴에 눌렀다.

“아버지가 이거라서 쓰지 말라 했구나.”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검증장에 그대로 울렸다.

쓰지 말라는 게…… 이런 뜻이었나.

한도윤은 반응 로그 사본을 집어 들고 칸막이 옆 공고 게시판이 보이는 자리로 걸어갔다.

본장 쪽으로 연결된 공고 화면에 후발 재평가 고시 준비 창이 떠 있었다.

차민규가 따라오며 어깨 너머로 화면을 봤다.

“이거… 내가 처음부터 그 단검 미심쩍었어. E급 잠금치곤 날이 이상하다 했지.”

한도윤은 돌아서지 않았다.

“보세요, 팀장님. 이게 순서예요.”

공고 화면에 ‘후발 재평가 고시 접수’가 떠올랐다.

차민규가 넥타이를 만졌다.

“거래 수수료는 재평가 기준으로 다시 잡히나?”

검증대 옆에서 강유진이 소형 정산기를 두드렸다.

스커트 뒤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내 낙찰 예상 금액을 적었다.

“여기부터 시작이야. S급이면 0 하나 더 붙어.”

차민규의 얼굴이 굳었다.

0 하나?

곧 웃음 쪽으로 바뀌었다.

“좋아. 이대로 본장 반송이야, 반송.”

한도윤은 승인 확인서를 접어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반응 로그 사본은 검증장 기록 담당에게 서명받아 돌려받았다.

서아린은 잔향 기록을 마치고 장갑을 다시 여몄다.

그녀가 한도윤에게 반 발짝 다가섰다.

“근거는 충분하네요. 다만 이 잔향은 일반 각성 촉매와 달라요. 기록은 제가 보존하겠습니다.”

한도윤은 그 말에 시선만 짧게 주었다.

“그거 아니고, 기록은 경매장 공용 로그로도 남아요. 필요하면 열람하세요.”

서아린은 대답 대신 단말을 접어 재킷 안쪽에 넣었다.

한도윤은 검증장 출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본장 방향 안내등이 켜져 있었다.

본장 전광판이 바뀌었다. 낙찰가가 기존 감정가를 넘어서자 반송된 단검의 재경매가 끝나는 순간, 전광판 하단에 후발 재평가 고시가 떠올랐다.

차민규가 단상 쪽에서 손을 들었다.

“고시 보류 요청합니다. 검증 절차와 경매가 같은 날 겹쳤으니 순서 정리가 먼저입니다.”

입회 진행관이 본장 시스템 화면을 확인했다.

“낙찰가와 동시 자동 고시 항목입니다. 수동 보류 권한이 없습니다.”

차민규의 손이 허공에서 멎었다.

이게……

보류가 안 된다고?

전광판에는 후발 재평가 1회가 적혀 있었다. 진명 감정사 관련 규정이 작은 글씨로 따라붙었다.

후발 재평가 3회 누적 시 임시 승급.

한도윤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낙찰구역을 등지고 서서 전광판을 올려다봤다.

“네가 뭘 알아?”

차민규가 고개를 돌려 주변을 향해 말했다. 목소리가 한 톤 낮았다.

“F급 손에 넘어가기엔 반응부터 범상치 않았지.”

강유진이 정산구역에서 나와 전광판 앞에 섰다. 손에 낙찰 수수료 정산 내역을 쥔 채였다. 그녀가 금액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일, 십, 백, 천만. 어디 보자, 이건 우리 상한가 다시 쓴 거 아니야?”

한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른쪽 허리춤의 루페를 만지작거리다 손을 뗐다.

열기가 남아 있었다.

왜 이게 아직 뜨겁지.

주머니에서 손을 빼며 몸을 돌렸다.

“어딜 가.”

강유진이 뒤에서 물었다.

“지하.”

“보관고는 폐쇄됐을 텐데.”

“출구 쪽이야.”

한도윤이 짧게 답하고 걸었다. 뒤에서 백훈이 정산구역을 나오며 매각 정산 확인증을 접고 있었다.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게 시야 끝에 걸렸다.

한도윤은 손만 들어 보였다.

지하 위탁 보관고 앞 통로는 조명이 어두웠다.

한도윤이 통로로 내려서자, 가슴께가 눌리는 것처럼 뜨거워졌다.

목에 건 깨진 나침반이 붉게 달아올랐다.

놋쇠 몸체가 셔츠 안쪽에서 열을 냈다.

한도윤은 걸음을 멈추고 오른손으로 나침반을 감쌌다.

뜨거웠다. 손바닥이 화끈거릴 만큼.

이건……

어제랑 똑같은 반응이잖아.

지하 보관고 방향, 좌측 끝 출구 옆이었다. 어제 폐기한 상자가 놓여 있던 자리.

거기다.

“그거.”

뒤에서 목소리가 났다.

서아린이었다.

통로 입구에서 서 있었다. 검은 장갑을 낀 왼손이 몸 옆에 붙어 있었다.

“방금 반응.”

서아린이 한 걸음 다가왔다. 보라색 눈이 나침반을 감싼 한도윤의 손에 닿았다.

“국가 봉인 유물과 같은 잔향이 납니다.”

한도윤은 나침반을 셔츠 안으로 밀어 넣었다.

손바닥에 남은 열이 옷자락으로 번졌다.

그 잔향을 왜 네가 알아?

“출처를 확인하세요.”

서아린이 막아섰다. 한도윤과 보관고 사이, 통로 중간이었다.

“그거 아니고.”

한도윤이 낮게 말했다.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

열이 가시지 않았다.

“어제 폐기한 상자 봤다고는 안 했지.”

“묻지 않았습니다.”

“상자 있던 자리야.”

한도윤이 턱으로 보관고 옆을 가리켰다.

개봉하지 않았다.

확인만 했다.

서아린이 시선을 옮겨 그 자리를 봤다.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폐기 상자에서 봉인 유물 잔향이 났다면.”

“지금 여기서 말할 얘긴 아냐.”

“근거를 제시하세요.”

서아린이 고개를 돌렸다. 딱딱한 발음이었다. 두 사람 사이 통로는 그대로였다. 나침반은 셔츠 안에서 붉은 열이 식지 않고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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