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F급 감정사의 진짜 가격

2화

손바닥의 열은 식지 않았다.

나침반을 셔츠 안에 넣었는데도 손가락 사이로 뜨거운 맥박이 남아 있었다. 지하 위탁 보관고 앞 통로는 밤 공기인데도 후텁지근했다.

서아린이 통로를 가로막고 섰다.

“그 잔향, 어디서 났는지 아세요.”

“알았으면 벌써 말했지.”

한도윤이 손을 내렸다. 손가락을 한 번 폈다 쥐었다.

열이 빠져나가는 속도가 더뎠다.

뭐야, 이거…….

“그거 아니고. 지금 중요한 건 잔향이 아니라 당신이 왜 여기 있냐는 거야.”

서아린이 턱을 약간 들었다. 검은 장갑 낀 왼손이 몸 옆에서 천천히 접혔다.

“낙찰 정산 뒤에 위탁 보관고 점검이 있습니다. 통로는 제 순찰 구역이에요.”

“A급 감정사가 지하 순찰?”

“오늘만입니다.”

말이 짧았다.

나침반이 넣어진 자리였다.

한도윤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물어봐야 할 게 있으면 물어보세요.”

서아린이 시선을 올렸다. 딱딱한 발음이었다.

“그 반응을 일으킨 물건을 제게 보여주세요.”

“안 됩니다.”

“근거를 제시하세요.”

“개인 장비야. 감정 대상도 아니고.”

피부에 붙은 놋쇠가 식을 생각을 안 했다.

이열, 대체 왜 안 식는 거지?

서아린이 움직이지 않았다.

“폐기 상자가 있던 자리에서 같은 방향 신호가 났습니다. 어제도, 지금도.”

“그래서.”

“국가 봉인 유물과 같은 잔향이에요. 방치하면 안 됩니다.”

한도윤이 짧게 숨을 내쉬었다.

“방치할 생각 없어요. 다만——”

그가 상체를 벽에서 뗐다.

“그 잔향을 추적하려면 국가유물관리국의 봉인 문건이 필요해요.”

서아린의 표정이 굳었다.

“그 문건은 제 가문이 관리하는 기록입니다. 함부로 열람할 수 없어요.”

“알아요. 그래서 조건을 들은 거고.”

“문건 접근권을 주세요. 그 대가로 내가 가진 걸 보여주겠다.”

서아린이 잠시 그를 바라봤다.

“보여줄 물건이 뭔지 말해 보세요.”

“D급 게이트 코어.”

서아린의 손가락이 멈췄다.

“원본을 갖고 있다는 말이에요?”

“제 위탁 보관함에 있어요. 오늘 접수된 것 중 하나.”

한도윤은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코어는 있었다.

다만 감정은 아직이었다.

서아린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F급 감정사가 D급 코어를 감정한다는 건가요. 가문 평판을 걸고 그런 제안을 받을 수는 없어요.”

“공개 검증으로 갑니다.”

“그래서요?”

“어제 단검, 봤죠.”

서아린의 입이 닫혔다.

“E급 잠금이 S급 각성 촉매로 나왔어요. 같은 방식으로 코어를 검증할 수 있어요.”

한도윤이 한 박자 쉬었다.

“실패하면——”

“당신이 원하는 각서를 쓰면 됩니다. 봉인 문건 접근도 안 받아요.”

서아린이 팔짱을 풀지 않았다.

통로에 잠시 소리가 비었다.

지금 이 침묵…….

내가 지는 건가, 아니면 흔들리는 건가.

“각서를 쓴다고 해서 문건 접근권이 생기는 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조건이에요.”

“알아요.”

한도윤이 검지를 세워 보였다.

“하나만 더. 코어는 공개 검증 전까지 반출 안 합니다. 겉면 관찰만 허용해도 충분해요.”

서아린이 눈을 내리깔았다.

발소리를 내지 않고 한 걸음 다가왔다.

“보관함 번호를 대세요.”

한도윤이 위탁 등록증을 꺼냈다. 접힌 종이였다.

“맞는 번호에요.”

서아린이 등록증을 돌려주며 말했다.

“각서는 제가 갖고 있던 표준 서식을 쓸게요. 서명 전에 조건을 읽으세요.”

“지금 쓸 수 있어요?”

“한 장 있습니다.”

한도윤은 그 서류를 받아 펼쳤다.

절차용 문구 사이로 핵심 조항이 보였다.

공개 검증 실패 시, 조건부 문건 접근권을 포함한 일체의 열람 요구를 포기한다.

한도윤이 펜을 꺼내 들었다.

볼펜 끝이 서류 위에서 한 번 멈췄다.

이게 정말 맞는 건가.

아니.

이게 끝이 아니길…….

“조건대로면, 이번 검증에서 D급 잠금이 유지되면 나는 문건에서 손 떼요.”

“네. 대신 코어의 위탁 보관 상태는 유지됩니다.”

“서명하세요.”

한도윤이 이름을 적었다.

손끝 온도가 아직 남아 있어서였다.

서아린이 서류를 접어 안주머니에 넣었다.

“내일 오전, 공개 검증장에서 코어 겉면부터 확인합니다.”

한도윤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보관함에서 꺼내는 건 제가 하죠.”

“좋아요. 반출은 검증 전까지 허용하지 않습니다.”

서아린이 통로 옆으로 비켜섰다.

지하 공기가 한결 차갑게 다가왔다.

한도윤이 그 앞을 지나 계단으로 향했다.

등 뒤에서 서아린의 시선이 잠시 남았다.

……왜 저렇게 오래 보지?

다음 날 아침, 공개 검증장.

겉면은 검은빛이었다.

입회 진행관이 위탁 등록증을 스캔했다.

“위탁자 본인 확인.”

한도윤이 신분증을 댔다.

이번 위탁자는 개인 소장가였다.

서아린이 검증대 반대편에 섰다.

검은 싱글 슈트 차림 그대로였다.

“겉면 관찰만 허용한다고 했습니다. 내부 감응은 제가 제한 조건을 겁니다.”

“그걸로 충분해요.”

“코어가 과포화 상태인지 보는 거예요. 반응판 연결만 하면 됩니다.”

서아린이 진행관에게 절차를 지시했다.

진행관이 코어 케이스를 열지 않은 채 반응판의 근접 감응 모드를 작동시켰다.

검증장 벽의 반응 로그 기록장치가 낮은 소리를 냈다.

윙——

수십 초 뒤, 검증대 위의 반응판에 붉은 선이 교차했다.

“마나 과포화.”

한도윤이 손가락으로 반응판의 교차점을 짚었다.

코어 겉면의 균열이 그 지점과 일치했다.

“D급으로 잠금된 코어가 이런 반응을 내려면, 내부 코어가 최소 B급 이상이라는 얘기예요.”

서아린이 반응 로그를 살폈다.

장갑 낀 손가락이 공중에서 수치를 따라 움직였다.

“잠금 등급보다 높은 반응이 확인되면——”

“후발 재평가입니다.”

한도윤이 똑바로 말했다.

“오늘은 그걸 띄울 거예요.”

차민규가 검증장 입구에서 들이닥쳤다.

넥타이를 쥐고 있었다.

“야, 한도윤. 너 지금 또 무슨 짓이야.”

팀장 명패가 조명에 반짝였다.

“공개 검증 진행 중입니다, 팀장님.”

“들었어. 접수 없이 검증장 열었다고 연락 왔잖아.”

“접수는 지난밤에 했습니다. 위탁자 동의도 있어요.”

차민규가 반응판을 흘겨봤다.

“그게 뭐냐, D급 코어잖아. 이번에도 네가 검증한다는 거야?”

한도윤이 대답하지 않고 반응판의 교차점을 한 번 더 확인했다.

그 순간, 검증대 위의 반응 로그가 푸른 선으로 바뀌었다.

외부 반응판에 숫자가 떠올랐다.

반응 등급 재측정 — D급 잠금 유지 불가. 상위 등급 신호 확인.

……뭐?

이걸 D급으로 잠가뒀다고?

말이 되는 건가?

“보여.”

한도윤이 낮게 말했다.

전광판이 아니라 검증장 안쪽 계기판에 자동 고시가 떠올랐다.

후발 재평가 접수 — 2회 누적.

차민규가 계기판을 두 번 봤다.

“처음부터 D급치곤 이상했어. 내가 어제 등록 때부터 미심쩍었지.”

……어제는 접수도 안 했으면서.

강유진이 검증장 밖에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거 진짜예요? 완전 대박이네.”

계산기를 두드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수수료만 해도——”

강유진이 액수를 확인하고 잠시 말을 멈췄다.

이걸 왜 이제?

“이거 정산 팀에서 왜 미리 못 잡았대? 저 지금 전화해야 되거든요.”

차민규가 넥타이를 만졌다.

“정산이야 올바르게 잡히겠지. 내가 처음부터 미심쩍었어.”

서아린이 팔짝을 풀고 일어섰다.

“재평가 대기 보관함으로 옮기죠.”

한도윤이 운반 케이스를 닫는 진행관을 바라봤다.

‘좋아요.’

코어는 재평가 대기 보관함에 잠금됐다. 잠금음이 검증장 안에 짧게 울렸다.

통로의 열은 식지 않았다. 한도윤은 셔츠 안으로 나침반을 눌러 넣은 채 서아린을 지나쳤다.

어깨가 스칠 뻔했다. 서아린은 물러서지 않았다.

“폐기 기록은 어디 있습니까.”

“내가 알겠냐.”

“보관고 사무실에 있습니다.”

서아린이 뒤에서 따라붙었다. 구두 소리가 통로 바닥에 짧게 울렸다.

“지금 가면 개방 요청부터 해야 합니다.”

“아까부터 그 잔향 얘기밖에 없네.”

한도윤이 걸음을 세우지 않고 말했다.

“출처 확인 전에는 여기서 못 지나가게 한다더니, 이젠 같이 가잔 건가.”

“달라진 조건이 있으니까요.”

대답이 빨랐다. 한도윤은 돌아보지 않았다.

뭐가 달라졌다는 거지?

……잔향이 아니라고?

오전 늦게, 접수실 안은 경매 정산 문의가 몰렸다. 강유진이 창구 반대편에서 손을 흔들었다. 파란 대여 팔찌가 흔들렸다.

“한도윤 씨, 여기 와보세요. 지금 이거 좀 이상하거든요.”

강유진이 자기 자리 모니터를 돌려 보였다. 접수 화면 하단에 접수 대기 번호가 두 건 뒤바뀌어 있었다.

“순서가 왜 이래요?”

“그게 접수 로그 보니까 어제 등록 때부터 조작 흔적이 있잖아요.”

강유진이 목소리를 낮췄다. 그래도 빠르게 이어졌다.

“수수료 분할도 그때 바로 안 들어왔고. 제가 정산 내역 뽑아봤거든요.”

한도윤은 모니터를 내려다봤다.

“누군데.”

“남부 감정소 쪽 승인 코드예요. 오늘 아침에 징계 신청서도 접수했고.”

“징계?”

“한도윤 씨 자격 위반 건으로요.”

한도윤은 짧게 웃었다. 소리 없이.

내 자격 위반이라.

“그게 왜 여기 접수돼.”

“그러니까요. 테이아는 감정소 징계 접수 창구가 아닌데도 올라왔거든요.”

강유진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순서 조작 로그 사본이었다.

“이거 챙기세요. 나중에 우리 편한 쪽으로 붙자는 거예요.”

우리 편.

한도윤은 종이를 접었다.

어디서부터 꼬인 거지?

접수실 안쪽 문이 열렸다. 차민규가 징계 신청서 회수본을 손에 들고 나왔다. 안경 너머로 한도윤을 보았다.

“여기서 뭐 해.”

“접수 확인이요.”

“됐어. 너랑 할 얘기 없어.”

차민규가 서류를 접었다. 손끝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스윽.

종이가 접히는 소리가 컸다.

“테이아에서 반려했나 보네요.”

“반려 아니야. 내가 회수한 거야.”

“2차 후발 재평가 자동 고시가 뜬 뒤에요?”

차민규는 대답하지 않았다. 넥타이 매듭을 쥐었다 놓았다.

“네가 뭘 알아? 이번 건은 절차 문제라고.”

“그럼 서류를 왜 들고 나오세요.”

한도윤은 그가 접은 서류를 봤다.

“철회 확인 도장 있으면 보여주세요. 없으면 반려죠.”

차민규의 뒷목이 굳었다.

시끄러워질 거야, 이건.

그는 한도윤과 강유진 사이로 한 걸음 지나갔다.

“시끄러워.”

문이 닫혔다. 강유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한도윤은 로그 사본을 접어 허리춤에 꽂았다.

올라온다는 건, 누군가 밀어줬다는 거다.

오후가 되자 지하 위탁 보관고 쪽 공기가 달라졌다. 한도윤이 계단을 내려가는데 복도 끝에서 신호등 같은 붉은 불이 깜빡였다.

출구 옆 폐기 표시등이었다. 나침반은 다시 열을 냈다.

한도윤은 걸음을 늦췄다. 셔츠 안쪽이 뜨거워졌지만 손은 주머니에 두었다.

이 열, 또 시작이군.

보관고 사무실 문이 열려 있었다. 서아린이 책상 위로 서류를 펼쳐 두고 서 있었다. 은발이 관등 아래서 푸르게 굴절됐다.

“접촉 사고 데이터를 열람했습니다.”

한도윤이 문간에 섰다.

“어머니 실종 단서라고.”

서아린이 고개를 들었다.

“그건 제가 말한 적 없는데요.”

“아까 통로에서 잔향 얘기할 때 표정 보고 한 소리야.”

서아린이 잠시 그를 보다가 서류를 돌렸다.

“폐기 상자 방향과 남부지부 압수물 동선이 교차합니다. 3년 전 E급 진동자 유사 공명 기록도 여기 남아 있고요.”

“진동자라고?”

“공명체로 추정합니다. 기록에는 E급 진동자라고 적혀 있지만, 공명 폭이 여기 조건과 비슷해요.”

한도윤이 다가섰다. 서류에는 동선이 겹치는 지점이 붉게 표시되어 있었다. 날짜는 3년 전이었다.

3년 전…….

“근데 왜 지금 보여주지.”

“아까는 근거가 모자랐어요. 지금은 같습니다.”

서아린이 장부를 덮었다. 표지 모서리에 각서 원본이 얹혀 있었다.

“원본을 확인하시죠.”

한도윤이 왼쪽 손목을 만졌다. 화상 흉터가 붉게 올라왔다.

욱신, 욱신거렸다.

“그 전에 하나만.”

서아린이 문을 막아섰다.

“보관고 안에서는 제가 연 순서대로만 확인합니다. 손대지 마세요.”

“그거 아니고, 이 흉터가 왜 이러는지부터 확인하고 싶은데.”

서아린의 시선이 그의 왼쪽 손목에 머물렀다. 손가락 끝이 서류를 한 번 더 쥐었다 폈다.

“그러려면 원본 앞으로 가야 합니다.”

한도윤은 손목을 내렸다. 흉터는 여전히 붉었다.

이건 우연이겠지.

아니, 우연일 리가 없어.

둘은 보관고 통로로 나갔다. 출구 옆 폐기 상자 자리가 가까워질수록 흉터가 더 붉어졌다.

한도윤이 폐기 상자 앞에 멈췄다. 서아린이 그의 옆에 섰다.

“이거다.”

한도윤이 낮게 말했다. 목소리가 약간 잠겨 있었다.

여기구나.

그 순간, 통로 입구 쪽에서 뛰어오는 소리가 났다.

“한도윤 씨!”

강유진이었다. 파란 대여 팔찌가 흔들리며 달려왔다.

“국가유물관리국 조사관이 압수 명령 들고 왔다고요!”

F급 감정사의 진짜 가격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