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F급 감정사의 진짜 가격

3화

쇠 냄새가 먼저 들어왔다. 방금 봉인한 압수물 보관함에서 흘러나오는 건지, 아니면 흉터가 달아오르며 올리는 착각인지…… 구분이 안 됐다. 국가유물관리국 남부지부 압수물 검사실은 생각보다 넓었고, 공기는 건조했다.

강유진이 뛰어온 뒤로 사십 분이 지났다. 압수 영장을 든 조사관은 지금 검사실 안쪽에서 서류를 펴고 있었다. 한도윤은 통로 끝에 서서 그쪽을 봤다.

서아린이 한 발 앞에 섰다. 어깨가 팽팽하게 올라가 있었다.

“압수 절차를 그대로 받아들일 생각은 없어요.”

“알아.”

“그럼 조건을 정하죠. 저쪽이 서류를 내려놓기 전에.”

한도윤은 대답 대신 왼쪽 손목을 내려다봤다. 화상 흉터가 셔츠 소매 아래에서 붉게 뛰고 있었다.

아까보다 열이 더 올라 있었다.

나침반이 셔츠 안에서 맥박처럼 눌렸다. 이건…… 반응하고 있어.

‘지금 이건, 우연이 아니야.’

“파편 접수는 못 막아.”

서아린이 고개를 돌렸다.

“막으려는 게 아니에요. 검증 조건을 겁니다.”

“그렇지.”

한도윤이 검사실 안을 다시 봤다. 임지완 조사관은 압수물 보관함 앞에 서서 파편 봉투의 번호표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넓은 검사대 중앙에는 공명 시험대가 덮개를 덮은 채 놓여 있었다.

“이쪽이 조건을 걸면, 저쪽은 기록을 남길 수밖에 없어.”

서아린이 그를 흘끗 봤다.

“이미 계산된 거군요.”

“일단 들어가.”

임지완이 고개를 들었다.

“두 분이군요. 테이아 옥션 지하 위탁 보관고에서 온 감정사.”

서아린이 명함을 내밀었다.

“아스모데우스 A급 감정사 서아린입니다. 방금 압수하신 파편에 대해 공동 검증을 신청합니다.”

임지완은 명함을 받지 않고 영장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압수 절차가 먼저입니다.”

“압수는 인정해요.”

한도윤이 끼어들었다.

“다만 압수물 검사실 안에서, 공명 대조만 한 번.”

임지완의 시선이 한도윤에게 옮아갔다.

“그게 지금 상황에서 무슨 권한으로 가능하다고 보죠?”

“위탁자 동의가 있어요. 공개 성능 검증 근거는 확보했고.”

“공개 검증은 테이아 옥션 안에서나 가능한 얘기지. 여기는 국가유물관리국 남부지부입니다.”

서아린이 한 걸음 더 들어섰다.

“그러니까 절차를 남겨 달라는 거예요. 파편을 보관함에 넣기 전에, 저희가 가져온 파편과 방금 확보하신 파편의 공명 대조를 한 차례.”

임지완이 잠시 그녀를 봤다. 표정이 흔들리지는 않았다.

서류 사이로 압수물 봉투를 밀어 넣으면서 말했다.

“국가유물관리국 압수물은 봉인 후 재개봉에 승인이 필요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대조를 허용한다 해도, 두 분이 낼 수 있는 건 협조 요청이지 권리가 아닙니다.”

“알아요.”

한도윤이 낮게 답했다.

“그 협조를 요청하는데, 각서 받았던 검증 절차가 있어. 이게 외부 감정사의 공적 증명이 필요한 사안이라는 근거는 충분해.”

임지완이 서류를 한 번 훑었다.

“무슨 근거로요.”

“봉인 유물 접촉 사고 데이터에서 검출된 잔향과 같은 반응이에요.”

서아린이 답했다.

임지완이 눈을 가늘게 떴다.

“봉인 유물이요?”

“확정이 아니라 공명 여부를 보려는 겁니다. 승인 없이는 개봉하지 않아요.”

“좋습니다.”

임지완이 보관함 문을 닫았다.

“공명 대조 한 차례만. 승인 권한은 없고, 대신 이 검사실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절차는 제가 기록합니다.”

“그걸로 충분해요.”

서아린이 배낭을 열었다. 오늘 아침 남부지부 도착 전에 인쇄해 둔 봉인 유물 잔향 데이터 사본이 나왔다. 종이 묶음과 각서 원본, 그리고 폐기 상자 파편을 눌러 담은 소형 밀폐 봉투.

한도윤은 검사대 옆에서 공명 시험대의 덮개를 걷는 임지완을 지켜봤다. 시험대는 낡은 은색 판이었고, 중앙에 두 개의 홈이 나 있었다.

차민규의 문서가 도착한 건…… 그때였다.

검사실 밖에서 젊은 직원이 조사관을 불렀다.

“조사관님, 남부 감정소에서 팩스 왔습니다. 수신인은 임지완 조사관님이고, 열람 요청에 대한 반려… 아니, 이의 제기인데요.”

이의 제기? 한도윤의 시선이 검사실 입구로 꽂혔다.

‘하필, 지금?’

지금이 무슨 타이밍인데.

흉터가 다시 욱신거렸다.

임지완이 걸어 나가 종이를 받았다. 몇 장 넘기고는 한도윤에게 보여줬다.

“한도윤 감정사가 무단으로 E급 이상 물품을 검증했다는 절차 위반 통보입니다. 차민규 팀장 명의라 적혀 있네요.”

한도윤은 팩스를 받았다.

맨 윗줄 제목이 굵게 박혀 있었다.

징계 신청 무력화 직후에…… 답답해서 쏘아 올린 것 같은 문건이었다.

“이걸로 공동 검증을 막을 생각이네.”

“우선 열람 요청에 대한 이의 제기니까요. 공명 대조 허용 여부에 직접 영향은 없습니다.”

임지완은 팩스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다만 조사 기록에 남기겠습니다. 이의 제기가 접수된 상태에서의 공동 검증이라는 사실을.”

서아린이 팩스를 받아 펼쳤다.

“문제 제기 시점이 정확히 지금이네요. 압수 절차가 시작되니까.”

“노린 거지.”

한도윤이 말했다.

여기서 파편 확인하면 제일 불리한 사람이 차 팀장이니까.

……그걸 알면서도 밀어붙이는 거냐?

임지완이 손을 들어 시간을 멈췄다.

“진행하겠습니다. 정해진 절차대로.”

그가 압수물 봉투 두 개를 시험대 왼쪽 홈에 올렸다. 하나는 테이아 옥션 지하 위탁 보관고 폐기 상자에서 확보한 파편. 다른 하나는 서류상 진동자 출고 말소분.

한도윤이 시험대 오른쪽에 자신의 밀폐 봉투를 내려놓자, 서아린이 조용히 물었다.

“폐기 상자 쪽은 그냥 두시죠.”

“응. 출고 파편이랑 대조부터.”

공명 시험대는 누르는 순간 두 홈 사이로 얇은 마나 라인이 그어졌다.

임지완이 전원을 올리자, 시험대가 낮게 떨렸다.

잠시였다.

왼쪽 두 파편 사이에서 푸른 선이 일어났다.

선은 곧게 이어지다가 한 번 꺾였다.

같은 주파수였다.

시험대 밑 계측 화면에 파형이 겹쳐 그려졌다.

서아린이 화면을 가리켰다.

“일치해요.”

“……똑같네.”

한도윤이 시험대 가장자리를 짚었다.

손끝으로 올라오는 떨림이 흉터 쪽으로 번졌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아니, 이게 어떻게.

출고 말소분이 폐기 상자 파편과 같다고?

임지완이 기록지를 꺼내 적었다.

“공명 대조 결과, 좌측 두 파편 동일 주파수 반응. 오류 범위 내 중첩.”

한도윤이 나침반을 꺼냈다.

셔츠 안에서부터 달아올라 있던 놋쇠 몸체가 손바닥 위에서 붉게 변했다. 바늘이 반 바퀴 돌다가 오른쪽 홈, 그러니까 테이아 옥션에서 가져온 폐기 상자 파편을 향했다.

“이쪽이.”

한도윤이 침을 삼켰다.

“아까부터 계속 신호를 보내던 쪽이야.”

나침반 바늘은 파편 위에서 미세하게 흔들렸다.

서아린이 눈을 좁혔다.

“그 말은, 폐기 상자 파편이 진동자와 같은 봉인 유물 공명체라는 뜻이에요.”

“비슷해. 확인해 봐.”

한도윤의 목소리가 잠겼다.

임지완이 왼쪽 홈에서 진동자 파편을 들어 올렸다.

“폐기 상자 파편과 직접 대조하겠습니다.”

“잠깐.”

차민규의 목소리가 검사실 문 쪽에서 들렸다.

“절차가 잘못됐어.”

차민규였다.

남부 감정소 팀장용 진회색 정장 조끼가 먼지가 앉은 채로 문간에 서 있었다. 안경이 조금 내려가 있었다.

임지완이 동작을 멈췄다.

“차민규 팀장이시군요.”

“서명 대조도 안 된 물건을 같은 시험대에 올려? 위생 문제고 절차 문제야. 게다가 F급 감정사가 왜 국가유물관리국 압수물 앞에 서 있는 건데.”

한도윤은 돌아서지 않았다.

지금 이 타이밍에?

이의 제기 팩스가 막 도착했는데, 벌써 여기까지 온 거야?

“위탁자 동의 확인부터 하세요. 그리고 저 파편 둘, 아까 대조 끝났어요.”

“네가 뭘 알아? 내가 처음부터 이 파편들 미심쩍다고——”

차민규가 검사실로 들어서려 했다.

임지완이 팔을 들어 진로를 막았다.

“검사실 안으로는 제가 승인한 인원만 들어옵니다. 차 팀장님은 밖에서 하세요.”

“아니, 지금 이의 제기 팩스…….”

“받았어요.”

임지완이 기록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의 제기 내용은 이미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그 팩스 때문에 잠깐.”

“뭡니까.”

임지완이 기록지 한 장을 검사실 벽면 스크린에 띄웠다.

“차 팀장님이 요청하신 열람 제한 근거 중에 출고 기록 확인이 있더군요. 진동자 출고 말소 날짜가 3년 전으로 되어 있는데, 지금 이 자리에서 출고 대장 원본을 병렬 확인하게 됐습니다.”

스크린에 두 장이 나란히 붙었다. 왼쪽이 차민규가 제출한 폐기 기록, 오른쪽이 남부지부 압수물 출고 대장 원본.

차민규가 안경 위로 두 화면을 번갈아 봤다.

“이걸 지금 왜 띄우는 거야. 나는 절차 위반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서아린이 스크린 앞으로 걸어갔다.

“폐기 기록의 서명과 출고 대장 원본의 서명을 대조해 보세요.”

“무슨……”

차민규가 말을 멈췄다.

스크린에 확대된 서명 두 개가 떠올랐다.

뭐야, 저건.

오른쪽 출고 대장의 서명은 또박또박한 정자였다. 왼쪽 폐기 기록의 서명은 가파른 사선으로 휘갈겨져 있었다.

사람이 다르다는 걸 모르는 눈은 없었다.

서아린이 낮게 말했다.

“출고 말소 당시 결재자가 아닌 사람이 폐기 결재란에 서명했습니다. 기록상 출고 물품이 폐기된 시점의 실무 책임자 서명과도 달라요.”

차민규가 넥타이를 움켜쥐었다.

“거기 서명 형태가 다르면 어쩌라는 거야. 현장에서 대리 결재가 오갈 수도 있는 거고.”

“절차 위반 무단 감정이면, 이것도 절차 위반 서류입니다.”

한도윤이 시험대 옆에서 말했다.

차민규가 그를 노려봤다.

“네가 나한테 절차 이야기를 해.”

“서류에 남는 이야기뿐인데요.”

임지완이 기록지를 정리하며 덧붙였다.

“대리 결재는 시스템에 사유가 남아야 합니다. 이 서류에 사유 기재가 없어요. 그래서 이의 제기보다 이 폐기 기록이 먼저 조사 대상이 될 것 같습니다.”

차민규가 검사실 문 앞에서 한 발 물러났다.

얼굴이 굳었다. 금니가 보이지 않았다.

이거…… 말려들겠는데.

말이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서아린이 임지완에게 다가섰다.

“공명 대조를 계속하죠.”

“좋습니다.”

임지완이 진동자 파편을 시험대 오른쪽 홈으로 옮겼다. 한도윤의 폐기 상자 파편과 같은 홈이었다.

두 파편이 서로의 반대편에 놓이자, 시험대가 붉은 점멸을 시작했다.

두 번째 반응은 첫 번째보다 강했다.

계측 화면의 파형이 서로를 덮으며 산 모양으로 솟구쳤다.

우웅—

시험대 진동이 검사실 바닥까지 번졌다.

임지완이 계측기를 잡았다.

“동일 주파수. 중첩 폭이 더 깊어졌습니다.”

서아린이 눈을 감지 않았다.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풀린 목소리로 물었다.

“어머니 실종 때 압수됐던 물건과 같아요. 이 진동자는 그 봉인 유물의 공명체였어요.”

한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침반이 손에서 뜨거웠다.

폐기 상자 파편이 시험대 위에서 스스로 떨고 있었다.

차민규가 한 걸음 더 물러섰다.

마치 검사실 공기가 자기 쪽으로 무너지는 걸 피하는 것 같았다.

“조사관.”

한도윤이 낮게 불렀다.

“이거 기록 남기세요. 봉인 유물 공명체 두 개. 하나는 3년 전 폐기됐고, 다른 하나는 어제 보관고에서 회수된 거.”

“이미 기록하고 있습니다.”

차민규가 팩스를 집어 들었다.

“여기서 나가도 되는 거지? 나는 징계 검토 준비도 있고.”

임지완이 그를 보지 않고 말했다.

“퇴실하셔도 됩니다. 다만 국장 보고 전에 서명 경위서를 제출하는 게 순서일 수 있어요.”

차민규가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복도로 사라지는 발소리가…… 처음보다 빨랐다.

서아린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한도윤은 그 짧은 소리를 들으며 시험대 위 두 파편을 봤다.

“이제 차 팀장 서명 경위서 기다릴 수도 없고.”

“공동 조사 일정을 확정하는 게 먼저예요.”

서아린이 말했다. 검은 장갑을 낀 손이 기록지를 다시 폈다.

임지완이 시계를 보고 나서 답했다.

“제가 국장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폐기 서명 불일치와 공명 검증 기록까지 묶어서. 두 분은 이번 주 안에 후속 조사 범위를 정리해 주시죠.”

검사실 밖 복도에 한동안 아무도 없었다.

차민규가 왔던 자리에는 그가 버리고 간 팩스 한 장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한도윤이 팩스를 주워 접었다.

손끝에 쇠 냄새가 남아 있었다.

왜 버리고 간 거지.

“우리도 출고 대장 원본 열람을 공식화해야 해.”

“필요해요. 그래서 조건을 걸어야죠.”

서아린이 배낭을 챙기며 답했다.

◇ ◇ ◇

차민규는 남부 감정소 후문으로 들어와 지하에 내려갔다. 복도 끝 개인 금고 앞에서 잠시 뒤를 확인한 뒤, 열쇠를 두 번 돌렸다.

철컥.

금고 안쪽 서랍에서 작은 명함 한 장이 나왔다. 손때가 눌러붙은 사설 헌터 연락처였다.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번호 세 개가 연하게 찍혀 있었다.

그는 번호를 저장하다가 멈췄다.

손가락이…… 번호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입막음.”

차민규가 혼자 중얼거렸다.

이게 정말 필요한 짓인가.

“여기까지 온 이상, 조용히 묻어야지.”

금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복도에 낮게 번졌다.

F급 감정사의 진짜 가격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