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급 감정사, 미공개 가치를 읽는다
1화
폐기 처리장 부설 감정소 경매장의 수은등이 아직 밝았다. 대낮인데도 창 없는 지하라 계단 입구 쪽만 희끄무레하게 번졌다. 한도윤은 뒤쪽 빈자리에 앉아 왼손 주머니 속 나침반을 만지작거렸다. 공기는 눅눅했고, 쇠 녹슨 냄새와 퀴퀴한 곰팡내가 숨을 쉴 때마다 혀끝까지 텁텁하게 달라붙었다.
그 텁텁함이 목구멍 안쪽을 얇게 긁었다. 도윤은 침을 한 번 삼켰다. 혀뿌리까지 눅눅한 입김이 번지는 것 같았다.
계단 쪽에서 바람 한 점 내려오지 않자, 지하 공기는 그대로 눌어붙어 피부 위에 얹혔다. 그는 목덜미를 손등으로 쓸었다. 손등에도 미세한 습기가 배어 있었다.
먼지 낀 배관이 천장을 따라 기어가고, 먼 쪽에서는 낡은 환풍기가 드르륵거리며 돌아갔다. 수은등 불빛은 푸른기를 띤 채 벽면의 오래된 얼룩 위로 번졌고, 그 아래 앉은 사람들의 실루엣을 흐릿하게 갈라놓았다.
실루엣들은 숨을 쉴 때만 움직였다. 누군가는 단말기 화면에 얼굴을 비추고 있었고, 누군가는 어깨를 웅크린 채 사회자 입술을 좇고 있었다. 불빛이 닿지 않는 뒤쪽 구석은 아예 검은 천을 늘어뜨린 듯 막혀 보였다. 도윤은 시선을 걷어 자기 왼손 주머니 쪽으로 내렸다. 천 너머 나침반 테두리가 손가락 마디에 눌리는 감각이 남아 있었다.
진열대 위 E급 고철 잡다발이 천장 조명에 번들거렸다. 녹슨 무기 날조각, 깨진 마석, 군화 밑창, 이름 모를 금속 파편들. 조명 아래에서는 기름기 섞인 손자국이 옅게 얼룩져 있었다. 파편 몇 개는 거의 검게 부식되어 본래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가까이서 보면 표면이 비늘처럼 얇게 들떠 있었다. 전시용 받침 위에 올려진 순서대로 번호가 붙었지만, 그 번호조차 녹에 먹혀 군데군데 뭉개져 있었다. 도윤은 시선을 한 번 더 파편들 사이로 천천히 흘렸다. 조명을 정면에서 받은 쇳조각 하나가 좁게 빛났다 사라졌다.
사회자가 시작가를 불렀다.
“E급 잡다발 10번. 시작가 12만 5천.”
나침반 바늘이 움직였다.
주머니 천 너머로 왼손 손바닥이 따끔했다.
희미한 바람 소리도 아니고, 귀 뒤쪽에서 바로 들렸다.
……뭐지?
도윤의 손가락이 나침반 테두리를 한 번 더 쓸었다. 금속은 차가워야 하는데, 어째서인지 미지근한 온기가 스며 나왔다.
손가락 안쪽으로 퍼지는 온기는 맥박처럼 규칙적이었다. 도윤은 테두리를 감싼 손에 힘을 뺐다. 그래도 열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엄지 밑동을 타고 손목까지 미세하게 번졌다. 그는 허벅지 위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주머니 천이 아주 약하게 들썩이고 있었다.
'잠들지 않은 불씨.'
낮고 늘어진 목소리였다. 도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설 재감정 신청합니다.”
공태식이 옆에서 목을 잡고 웃었다.
“야, 너 지금 고철 더미 부수겠다고? F급이 뭘 본다고, 실수하면 그냥 살 돈에 워치독 실적만 남는 거라니까... 아니야?”
공태식의 웃음소리가 경매장 안의 웅성거림에 섞여 잠시 울렸다. 앞줄에 있던 두세 명이 고개를 돌렸다.
도윤은 주머니 속 나침반의 온기가 손바닥에 남아 있는 것을 느끼며 걸음을 옮겼다.
이 불씨, 아직 살아 있어.
도윤은 사회자 쪽으로 걸어 나갔다.
“수수료 3배 예치하지요. 감정권 주십시오.”
사회자가 단말기를 두드렸다. 금액이 표시된 결제창이 도윤의 구형 단말기로 넘어왔다. 도윤이 지문을 눌렀다. 잔액이 빠져나가는 알림이 울렸다.
통장 잔액이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그는 애써 외면했다.
지금 중요한 건 돈이 아니었다.
공태식이 뒤에서 코웃음 쳤다.
“너 이번 달 월급도 못 받았을 텐데, 괜찮아? 진짜 괜찮은 거...”
도윤은 대꾸하지 않았다. 진열대 앞으로 걸어가 사회자가 내민 검정 장갑을 받아 꼈다. 다른 사람들 시선이 뒤통수에 달라붙었다. 맨 앞줄에서는 검은 가죽 코트 차림의 여자가 상체를 곧게 세운 채 도윤을 봤다.
그 여자의 눈빛은 호기심보다는 계산에 가까웠다.
사설 감정은 밀봉을 열지 않는 게 원칙이었다. 도윤은 잡다발 아래 반응판을 빼냈다. 그 위에 나침반을 올려놓았다. 깨진 유리판 너머 바늘이 금속 파편 쪽으로 천천히 돌았다. 손끝 아래로 미세한 저항이 전해졌다.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표면의 문양이 답이다.'
표면의 문양?
도윤이 반응판의 접촉부를 금속 파편에 댔다. 반응판이 푸르게 떨리다가 경계선을 넘어섰다. 중앙 표시창에 붉은 숫자가 떠올랐다.
S급 문양 일치. 순도 99.7%. 촉매 반응 — 잔열 상태.
경매장이 조용해졌다.
환풍기 소리와 누군가의 짧은 숨소리만이 남았다.
그 침묵은 무겁고 끈적했다.
백아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열대 앞으로 세 걸음 걸어왔다. 도윤의 어깨 너머로 반응판 표시창을 봤다.
“이게 지금 S급이라고?”
민채원이 뒤쪽에서 단말기를 들고 반응판 화면을 촬영했다.
“여러분, 자막으로 제대로 잡아야죠. 조회수 나오겠는데.”
사회자가 목소리를 다듬어 안내했다.
“재감정 결과, 촉매 추정 반응 확인. 감정가 재산정 들어갑니다.”
공태식이 벌떡 일어났다.
“아니, 잠깐만. 설마 그거 조작한 거 아니야? 밀봉도 안 열었는데 S급 반응이 무슨...”
공태식이 단말기를 두 번 두드렸다. 관리원 실시간 조회 화면을 띄우더니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말이 되나...”
도윤의 재감정가가 경매 화면에 갱신됐다.
백아린이 바로 입찰 버튼을 눌렀다.
“최고가.”
사회자가 입찰을 반영했다. 다른 참가자들이 뒤늦게 단말기를 두드렸지만 백아린은 가격을 두 번 더 밀어 올렸다.
전광판 숫자가 도윤의 감정가를 훌쩍 넘겼다.
철컥.
숫자가 오를 때마다 뒤쪽에서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낙찰음이 울리는 순간, 도윤의 단말기가 파랗게 변했다.
[워치독 시스템 경고] [해당 감정 건 낙찰가가 감정가의 3배를 초과했습니다.] [감정사 권한 재심사가 자동 발동됩니다.]
도윤의 단말기 화면이 잠겼다. 감정소 앱 아이콘 위로 자물쇠 마크가 떠올랐다.
잠겼다고?
도윤은 화면을 한 번 더 내려다봤다.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뭐 이렇게까지……
공태식이 손가락으로 도윤과 단말기를 번갈아 가리켰다.
“너 그것 봐, 워치독이야. 3배 넘으면 자동이라고... 아니 근데 네가 S급을 어떻게, F급이 그걸...”
나침반이 따끔거렸다.
도윤은 주머니 깊숙이 손을 넣은 채 물러섰다. 손바닥에 닿은 금속 테두리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마치 지금 상황을 알고 있다는 듯이.
……알고 있는 건가.
경매장 옆문이 열렸다.
남색 정장 차림의 여자가 들어왔다. 낮게 묶은 검은 머리가 수은등 불빛에 잿빛으로 반짝였다. 왼쪽 가슴 금장 배지가 흔들리지 않았다. 안경 너머 회색 눈이 반응판과 도윤의 단말기를 순서대로 훑었다.
재심사라.
도윤은 주머니 속 나침반을 감쌌다.
“감정사 한도윤 씨, 재심사 출석입니다.”
서하진이었다. 국립유물관리원 수석 감정관.
“지금 이동하는 게 좋겠습니다. 낙찰 물건은 보관금고로 인계하고요.”
도윤은 단말기를 주머니에 넣었다.
“입증 기회는 주는 겁니까?”
서하진이 그를 봤다.
“재심사는 권한 정지에 대한 검증 자리입니다. 별도 입증 절차를 요구하신다면 절차 규정에 근거해 신청하셔야 합니다. 아직 그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고요.”
백아린이 끼어들었다.
“관리원 분, 잠깐만.”
서하진이 고개를 돌렸다.
“태하 길드 백아린입니다. 이 사람 재심사 통과하면 우리 쪽 자문 계약 제안할 거고요.”
백아린은 도윤을 똑바로 봤다.
“한 달치 자금밖에 없다. 통과 못 하면 제안 없어.”
한 달치.
도윤은 제안서를 향해 손이 가는 걸 멈췄다. 지금 이 순간에 계약이라니.
정신이 다르게 생겼어.
“서면으로 주십시오.”
“지금 넣을게.”
백아린이 안주머니에서 접힌 서류를 꺼내 도윤에게 내밀었다. 태하 길드 자문 계약 제안서. 도윤은 걷어 들었다.
“검토해 보겠습니다.”
서하진이 검증 대기실 쪽으로 걸어갔다. 도윤이 따라가자 백아린도 가죽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뒤를 밟았다. 공태식은 경매장 안에 남아 단말기를 두 번 더 확인하더니 손을 내렸다.
도윤의 왼쪽 눈에 검은 점 같은 게 스쳤다. 금색 고리처럼 좁게 번졌다 사라졌다.
도윤은 고개를 숙여 눈을 비볐다.
이건…… 뭐지.
계단 옆 검증 대기실은 반쯤 유리로 막혀 있었다. 서하진이 문을 열어 두고 안으로 들어섰다. 대기실에는 검증대 없이 긴 탁자와 의자 네 개, 벽면 모니터가 있었다. 탁자 표면은 얇게 긁힌 자국이 나 있었고, 모니터 아래에는 서류 케이스 하나가 놓여 있었다.
서하진이 손목 단말기를 켜 재심사 절차를 열었다. 도윤과 백아린을 의자에 앉혔다.
“낙찰가는 보관금고로 인계됩니다. 워치독 발동 건은 감정사 권한이 일시 정지된 상태로 재심사반에 회부돼요. 출석 일정은 곧 통보됩니다.”
도윤은 계약서를 펼치지 않고 손에 들고만 있었다. 나침반이 주머니 속에서 온기를 띠었다.
다시 데워진다.
서하진이 손목 단말기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카메라 렌즈가 위를 향했다.
“소지품 하나를 확인해야 합니다.”
도윤이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근거입니까?”
“경매장에서 사용하신 개인 감정 보조 기구가 절차 기록에 남았습니다. 재심사 대상 감정 행위에 쓰인 물건은 보관 상태 확인이 가능합니다. 이건 규정상 의무가 아니고 감사관의 권한이에요.”
백아린이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빨리 확인하시죠. 저는 이 사람 답만 있으면 되니까.”
도윤은 나침반을 꺼냈다. 깨진 유리판, 닳은 금속 테두리. 서하진이 장갑을 끼고 나침반을 모니터 아래 밝은 곳에 두었다. 단말기 카메라를 켜고 금속 테두리를 확대했다.
확대된 영상이 벽면 모니터에 떠올랐다. 나침반 테두리의 금속 문양이 크게 보였다.
서하진의 손가락이 멈췄다.
“이 문양.”
서하진이 단말기 화면을 잡다발 인계 전 기록 사진과 나란히 띄웠다. 촉매 파편 표면 문양이 좌측에, 나침반 금속 테두리가 우측에 뜨자 곡선과 모서리가 겹쳤다.
도윤의 호흡이 가늘게 새어 나왔다.
이걸…… 겹쳐?
“확인하겠습니다.”
서하진이 배율을 다시 올렸다. 문양 하나하나가 같은 각도로 끊겼다.
똑같다.
도윤은 입술을 다물었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백아린이 팔짱을 풀고 탁자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서하진이 천천히 도윤에게 시선을 옮겼다.
“촉매 표면과 같은 문양입니다. 어디서 났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