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F급 감정사, 미공개 가치를 읽는다

2화

“문양 확인까지는 기록으로 남습니다.”

서하진이 단말기를 도로 집어 들었다. 확대된 금속 테두리가 벽면 모니터에서 지워졌다. 모니터의 잔상이 한 박자 늦게 사라지며, 회색 벽에 희끄무레한 빛무리만 남았다.

도윤은 나침반을 내려다봤다. 주머니 속에서 꺼낼 때보다 유리판의 흠집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검증실 특유의 푸른 조명 아래, 금속 테두리의 미세한 긁힌 자국들이 실금처럼 일어나 있었다.

유리판 아래 바늘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손가락 끝은 굳어 있었다.

……이미 알고 있다?

그 바늘이 가리키는 쪽을.

대체 뭘 봤기에.

백아린이 먼저 걸음을 옮겼다. 구두 굽이 재심사장 바닥을 두 번 울렸다. 첫 번째 소리는 가볍게. 두 번째 소리는 좀 더 또렷하게 공간을 갈랐다.

탁. 토독.

그 소리가 벽에 부딪혀 돌아오는 동안, 아무도 말을 잇지 않았다.

“내일 오전. 장소는 여기서 한 시간 거리.”

도윤이 고개를 돌렸다. 백아린의 목소리에는 재심사 결과를 이미 아는 사람 특유의 느긋함이 배어 있었다.

“무슨 말입니까.”

“재심사장. 워치독 절차상 원물 검증 있잖아. 늦지 마.”

백아린이 검증 대기실 문을 밀고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는 생각보다 작았다.

조용하다.

그녀가 남기고 간 구두 굽 소리만 복도에 잠시 남았다가 스러졌다.

도윤은 나침반을 손에 쥔 채 멈춰 섰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문 쪽에 가 있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서하진이 다시 도윤 쪽으로 반 걸음 다가왔다.

“감정사 권한은 재심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일시 정지 상태입니다. 내일 원물 반응 재현을 요구할 수 있어요.”

“요구는 누가 합니까.”

“재심사 대상 감정사 본인.”

도윤이 나침반을 주머니에 넣었다. 천천히, 그러나 망설이는 기색 없이 손가락을 펴서 유리판이 옷 안쪽에 닿게 했다. 서하진의 시선이 그 주머니에 머물렀다.

얼굴이 아니라, 주머니.

시선의 무게가 도윤의 손 움직임 전체를 좇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문양은 추후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촉매 원물과의 동일 계통 여부는 재심사장에서 가려질 거예요.”

도윤은 한숨을 삼켰다. 서하진의 말은 예고인지 경고인지 모를 만큼 평온했다.

이 사람, 보통이 아니네. 도윤은 그런 사람을 상대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말의 속도가 아니라 침묵의 방향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국립유물관리원 산하 워치독 재심사장은 지하 2층에 있었다. 복도 끝 검은 문을 지나자 회의용 테이블과 검증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곳은 일반 회의실보다 훨씬 넓었다.

그런데도 좁았다.

기계 장치들과 배관이 천장을 타고 지나가, 공간이 실제보다 눌려 보였다.

도윤은 문가에 서서 자리를 훑었다. 테이블 모서리마다 옅은 마모 자국이 있었다. 수많은 재심사가 그 앞에서 오갔다는 흔적이었다.

여기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무너졌을까.

심사석엔 오세준이 먼저 앉아 있었다.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다리를 꼬고 있었고, 목 앞쪽으로 단말기를 비스듬히 들고 있었다. 손에는 워치독 재심사 단말기.

오세준이 턱짓으로 맞은편을 가리켰다.

“왔으면 앉아.”

도윤은 회의 테이블 쪽으로 걸어가지 않았다. 검증대 앞에 섰다. 검증대와의 거리를 가늠하듯 한 번 멈춰 섰다가 몸을 돌렸다.

“원물 반응 재현을 요구합니다.”

오세준의 눈썹이 올라갔다. 나침반이 있는 주머니를 확인하는 눈치였다.

“서류 심리가 먼저다. 절차가 다르지.”

“서류로는 입증이 안 됩니다.”

“입증은 이미 경매장에서 끝났잖아. 워치독이 그걸 재심사하는 거고.”

오세준이 단말기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작은 소리가 났다.

톡.

오세준은 손가락을 펴서 단말기 위에 가지런히 얹은 뒤, 고개를 약간 숙여 도윤을 올려다보듯 말했다.

“F급 감정사가 자기보다 두 등급 높은 부산물의 정식 감정 보고서를 못 내는 건 알지. 사설 감정으로 S급 반응을 낸 것도 이미 과해. 여기서 네가 더 요구할 건 없어.”

여기서 물러나면 끝이다.

도윤은 검증대 가장자리를 똑바로 내려다봤다. 손끝이 차갑게 식은 채였다.

도윤은 나침반이 든 주머니를 짚었다. 금속 테두리가 손바닥 쪽으로 눌렸다. 그는 주머니를 움켜쥐지 않았다.

‘서류 심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원물을 열어 봐야 합니다.’

‘그건 관리원 소관이다. F급이 원물에 손대는 건 아니고.’

백아린이 회의 테이블에서 몸을 돌렸다. 앉아 있으면서도 상반신을 충분히 틀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서면 심리는 시간 낭비인데. 촉매 확보해야 하거든요.’

오세준이 백아린을 보지 않았다.

‘태하 길드 부길드장이 재심사 절차에 참견할 자린 아니고.’

백아린이 피식 웃었다.

‘참견 아니고 방청. 관리원장님.’

도윤이 오세준을 똑바로 봤다.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반응 재현을 공식 검증대에서 하게 해주십시오. 제가 감정한 값이 맞는지, 관리원이 직접 확인할 기회를 달라는 겁니다.’

오세준의 손가락이 단말기 모서리를 한 번 톡 쳤다. 톡. 딱 한 번.

재심사장 안이 조용했다. 공조기 낮은 소음조차 멎은 듯했다. 모두가 오세준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하진이 심사석 옆에서 일어났다. 서류철을 손에 든 채 몸을 반쯤 돌렸다. 그녀가 향한 쪽은 오세준이 아니었다. 도윤이었다.

‘절차상 재심사 대상 감정사가 원물 검증을 요구하면, 감사관의 입회 아래 공식 검증대를 개방할 수 있습니다. 단, 검증 중 원물 무단 접촉이 없어야 합니다.’

서하진이 도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원장님, 조건부 허용이 가능합니다.’

오세준의 표정은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뒤, 턱짓이 떨어졌다.

‘좋아. 검증대 열어. 대신 원물은 관리원 촉매 보존 용기째 올려라.’

도윤이 검증대 쪽으로 걸어갔다. 두려움과는 다른 긴장이었다. 심장이 아니라 손바닥이 먼저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뒤에서 공태식의 목소리가 났다.

‘진짜 열리네······.’

민채원이 방청석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화면이 검증대로 향했다. 두 손으로 휴대폰을 단단히 쥐었다. 줌 버튼은 한 번만. 검증대 프레임이 화면 안에 들어왔다.

서하진이 검증대 측면 패널을 조작했다. 조작부의 푸른 표시등이 몇 개 켜졌다. 천장 쪽 레일이 작은 기계음을 내며 움직였다. 투명 보존 용기가 천장 레일을 따라 내려왔다. 그 안에 촉매 파편이 있었다. 벽면의 조명이 유리 용기 표면을 스치자, 파편의 날카로운 단면이 짧게 번뜩였다.

오세준이 말했다.

‘반응값은 상임 진행관이 확인한다. 다른 사람은 수치 못 건드려. 절차가 다르지.’

도윤은 나침반을 꺼내지 않았다. 주머니에 넣은 채로 손만 올렸다. 반응판 위에 손을 올리지 않았다. 몇 센티미터 거리에서 멈췄다.

‘물리 반응만 재현합니다. 접촉하지 않겠습니다.’

검증대 위에서 촉매 파편이 희미하게 빛났다. 잔열처럼. 도윤이 반응판에 손을 근접시키자, 유리벽 안쪽 지시등이 파랗게 켜졌다.

나침반이 주머니 속에서 뜨거워졌다. 화상처럼 강하지 않았다. 허벅지 옆구리 쪽으로 열이 퍼졌다. 이내 심장박동이 그 열에 맞춰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도윤은 눈을 감지 않았다. 촉매 표면을 똑바로 보며 나침반이 말하는 쪽으로 손의 각도를 조금 틀었다. 손목이 아주 작은 각도로 꺾였다. 계산한 각도가 아니었다. 주머니 속 나침반의 진동이 전하는 방향 그대로였다.

‘잠들지 않은······.’

값은 오지 않았다. 단어가 혀끝에서 흩어졌다. 대신 바늘이 움직이는 감각. 나침반 유리판 아래에서 바늘이 부드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도는 느낌이 손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진실에서 가까워진다. 이건…… 정말 이걸 따라가도 되는 걸까.

검증대 반응 그래프가 위로 튀었다. 첫 번째 계단. 두 번째 계단. 그래프는 쉬지 않고 올라갔고, 계기판의 숫자가 빠르게 회전했다.

관리원 기준 S급 반응선을 넘어섰다. 순간, 재심사장의 공기가 달라졌다.

상임 진행관이 손을 들었다. 화면과 도윤의 손을 번갈아 확인했다. 손바닥을 펴 들어 공식 신호를 보냈다.

‘반응값 확인. S급 기준 상회. 재현 성립입니다.’

공태식이 검증대 수치를 두 번 들여다봤다. 입가가 바싹 마른 듯 두 번 벌어졌다.

“이게······ 말이 되나.”

민채원이 화면을 확대했다. 렌즈가 반응 그래프를 정확히 포착했고, 반응 그래프와 수치가 프레임 안에 가득 찼다.

오세준의 오른손이 단말기를 다시 움켜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화면을 꺼뜨리지는 않았다.

“상임 진행관.”

“예, 원장님.”

“재심사 결과는?”

“워치독 재심사 기준에 따라 감정사 권한 정지 해제를 상정합니다.”

오세준이 단말기를 내려다봤다. 꺼진 화면에 자신의 얼굴이 검게 비쳤다.

이걸로 끝인가.

“……그렇게 해.”

서하진이 재심사 절차 번호를 불러 확인했다. 워치독 경고 로그가 해제로 전환됐다. 도윤의 이름 옆에서 ‘일시 정지’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회의 테이블로 백아린이 먼저 돌아왔다. 그녀는 의자에 앉지 않고 테이블 모서리에 서류 봉투를 올렸다. 서류 봉투에서 계약서를 꺼내 도윤 앞에 펼쳤다.

“촉매 확보 때까지 전속으로 자문해. 감정 범위는 우리 길드가 지정하고.”

도윤이 서류를 넘기지 않았다. 첫 장의 조항을 눈으로 읽었다. ‘전속’이라는 단어가 주변 문구보다 짙은 잉크로 인쇄된 것처럼 눈에 들어왔다.

전속이라.

“전속은 안 됩니다. 자문 범위도 제가 한정합니다.”

백아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F급 감정사가 조건 붙여?”

“감정 수수료는 건당 계약. 등급을 근거로 감정 범위를 전면 위임받지 않습니다.”

백아린이 짧게 웃었다.

“한 줄로. 한 달 동안 태하 길드 전속 자문. 착수금 절반 선지급. 어때.”

도윤이 서류의 빈칸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종이가 아주 얕게 눌리는 소리가 났다.

“전속이 아니라 우선 자문. 태하 길드 수탁 건은 제가 확인할 수 있는 것만 받습니다. 수수료는 건별 감정가의 일정 비율. 착수금은 절반.”

“됐어. 사인해.”

서하진이 옆으로 다가와 계약서 원본을 요구했다. 계약서를 넘겨받기 전, 그녀는 도윤과 백아린의 서로 다른 펜과 서명 위치를 확인하듯 테이블 위를 한 번 훑었다.

“관리원 규정상 재심사 현장에서 체결되는 민간 자문 계약은 감사관의 이행 검토 확인을 남기는 것이 원칙입니다. 원본을 확인하겠습니다.”

백아린이 서류를 서하진에게 넘겼다. 서하진이 조항을 살핀 뒤 감사관 단말기로직인을 남겼다. 단말기에서 짧은 서명음이 두 번 났다.

“이행 검토 확인만 남깁니다. 계약 내용에 대한 보증은 아닙니다.”

도윤이 계약서 하단에 이름을 썼다. 백아린이 그 옆에 서명했다.

“착수금은 오늘 들어간다. 계좌 확인해.”

봉투를 접는 소리가 의외로 작았다.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겨우 첫발을 뗐다. 하지만 그 첫발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계약서 종이 한 장보다, 지금 주머니 속의 나침반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이건 시작일 뿐이다.

검증대 옆에서 도윤이 나침반을 챙겼다. 손가락이 유리판에 닿자 아직 미열이 남아 있었다. 열은 사라지지 않고 맥박 쪽으로 번지고 있었다.

순간, 손안이 붉어졌다. 그 붉은색은 나침반 밖에서 생긴 것이 아니었다. 유리판 아래에서 피어오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침반의 바늘이 소리 없이 반전했다. 바늘이 도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대신 금속 테두리가 미세하게 울렸고, 불그스름한 기운이 테두리를 따라 퍼졌다. 그 빛은 손가락 사이로 스며들며 도윤의 손등 피부를 붉게 물들였다.

도윤의 왼쪽 눈 앞이 아른거렸다. 시야 가장자리에 금색 고리가 번졌다. 고리는 얇은 금속선처럼 떠올랐다가, 숨 한 번 들이쉬는 사이에 넓어졌다.

화면인지 눈앞인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 스쳐 가는 것 같은 잔상. 형체는 없었고, 어깨 너머로 지나가는 공기의 방향만 남았다. 하지만 그 잔상은 도윤이 서 있는 검증대 주변이 아니라, 아주 낯선 공간에서 겹쳐 보였다.

뭐지, 이건?

도윤은 검증대 뒤로 물러나며 손바닥으로 왼쪽 눈을 눌렀다. 눈알이 뜨겁게 뛰는 듯했다. 손바닥을 댄 채 잠시 숨을 멈췄다.

금방 가라앉았다. 붉은 기운은 시야에서 빠르게 걷혔고, 왼쪽 눈에 남은 압박감만 볼 밑까지 저릿하게 내려갔다.

숨을 내쉬려는 순간.

“그 나침반.”

서하진이 검증대 앞에 서 있었다. 언제 다가왔는지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그림자가 검증대 옆으로 길게 누워 도윤의 신발 끝까지 닿아 있었다.

도윤이 시선만 돌렸다. 고개는 반대쪽으로 향한 채, 눈동자만 서하진을 향했다. 왼쪽 눈의 충혈이 남아 있는 듯 시야가 약간 따가웠다.

“비켜 주십시오.”

“그 나침반 어디서 났는지 지금 설명해요.”

서하진의 목소리는 낮고 또박했다. 한 글자씩 끊어서 말하지 않았지만, 문장 전체가 검증대의 금속에 반사되듯 또렷하게 도윤에게 박혔다. 무테 안경 너머 회색 눈이 도윤의 왼쪽 눈을 정면으로 보고 있었다. 그 눈은 유리 너머의 촉매 파편보다 더 차갑고 정확해 보였다.

도윤은 입을 다물었다. 손에는 나침반, 눈에는 아직 금색의 열이 남아 있는 듯했다. 손가락 사이로 나침반의 테두리가 여전히 미약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들켰다.

서하진은 그 진동까지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도윤은 대답 대신 나침반을 쥔 손에 힘을 조금 더 주었다. 그 작은 움직임이 서하진의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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