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폐기장에서 시작한 S급 감정사

1화

소각장 굴뚝 그림자가 동쪽으로 짧아질 무렵이었다. 한도윤은 소각 대기 더미 가장자리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더미 아래쪽은 아직 밤사이 습기를 머금어 시커멓고, 위쪽은 첫 열기에 먼지가 일어나고 있었다. 조끼 안주머니에서 깨진 나침반을 꺼냈다.

유리판 금 간 틈으로 바늘이 반바퀴 돌았다.

“또야.”

강민석이 굴삭기 운전석 문에 기댄 채 팔짱을 풀지 않았다.

“이거 내 경험인데, 소각 한 시간 전에 더미 헤집으면 화상 입기 딱 좋다니까.”

한도윤은 대꾸 없이 더미 위로 올라갔다.

눅눅한 재가 장화 밑에서 미끄러졌다.

나침반 바늘이 서쪽 모서리를 가리켰다가 북쪽으로 흔들렸다.

방향이 아니라…… 깊이였다.

'아래다.'

“여기.”

장갑 낀 손으로 세 겹 눌린 폐기물을 들춰냈다. 코일 조각, 녹슨 정화통, 부서진 단말기 케이스. 그 아래로 검은 금속 조각이 반쯤 녹은 플라스틱 뭉치에 박혀 있었다.

“72퍼센트. 잔존 봉인.”

숫자가 먼저 나왔다. 금속 조각을 손바닥 위에 올리자 식탁용 나이프보다 조금 긴 편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표면을 따라 은색 선이 손가락 끝에 달라붙는 느낌으로 남았다.

이 무게로…… 이 밀도라.

뭐 이런 게 소각 대기장에 처박혀 있지?

“S급 반응.” 한도윤이 말했다.

강민석이 운전석에서 내려왔다. 한도윤의 손바닥을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빼고 나침반 쪽을 봤다.

“좌표가 왜 거길 가리켜.”

사내는 욕을 짧게 뱉었다. “야, 너 그거 지금 감정한 거냐. F급 주제에 소각 대기장에서 S급 소리 꺼내면.”

“기록은 한다. 폐기물 감정 건으로.” 한도윤이 더미를 내려왔다. “네가 맡던 구역 아니었나.”

강민석은 허리 공구 주머니에서 손도끼를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거긴 어제 새벽에 들어온 3구역 거다. 누가 작업복 몰래 갈아입고 내 구역에 갖다 박았는지 모르겠다만.”

그가 더미 반대편에 놓인 플라스틱 상자를 발로 밀었다.

턱.

상자 뚜껑이 열리며 푸른빛 코어 한 개가 굴러나왔다. B급. 표면에 흰 균열이 두 줄 그어져 있었다.

“이것도 같이 실려 왔더라. 나침반이 저 검은 걸 집는 순간 이게 움직였다.”

한도윤이 확대경을 들어 코어를 비췄다. 내부에 가는 금속 가루가 떠 있었다.

“재구성 전 단계다. 촉매로 쓸 수 있게 만든 것.”

둘이 같이 실려 왔다?

한도윤은 확대경 너머로 코어를 다시 보았다.

“자랑할 시간 없으니까. 챙겨.” 강민석이 목에 두른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말했다. “소각 돌리면 그 금속 조각이랑 코어 같이 녹아.”

한도윤은 방염 보관 파우치를 꺼내 금속 조각을 넣고 밀봉했다. 코어는 상자째 들어 올려 왼쪽 옆구리에 끼웠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런 물건을 소각 전에 빼내는 건 반출 기록만 남기면 되는 일이었다. 감정 결과가 F급 소견서에 묻히는 것도 익숙했다.

이 금속은…… 그런 물건이 아니다.

봉인 72퍼센트에 S급이라.

한도윤은 파우치를 한 번 더 눌러 확인했다.

“경매장 간다.” 강민석이 굴삭기 열쇠를 꺼내며 말했다.

“천하경매는 등급 물건만 받는다.”

“그 검은 금속이 S급 반응이라며.” 사내가 턱으로 파우치를 가리켰다. “F급 감정사가 아니라 기계가 판정하게 만들면 되잖냐.”

한도윤이 그를 봤다.

“네가?”

강민석은 열쇠를 한 번 던졌다 받았다.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이거 내 경험인데, 좋은 물건은 혼자 들고 있다가 제일 먼저 뒤지는 놈이 임자 된다니까. 사람 많은 데다 던져놓고 판부터 붙여.”

한도윤은 파우치를 가슴 쪽으로 당겼다. 나침반은 이미 조끼 안주머니에 넣은 상태였다.

“확인증은 네가 챙겨.”

“확인증은 없다.”

“뭐?”

“센서 로그만 확인한다.”

강민석이 한쪽 눈을 가늘게 떴다. “까다로운 데네.”

확인증 없이…… 센서 로그만.

한도윤은 더미 옆 소각 순번 게시판에서 오늘자 폐기 목록을 한 번 훑었다.

3구역 반입 기록은…… 조회 권한 밖이다.

'없는 기록이라.'

“없어도 간다.”

강민석이 굴삭기 문을 걸어 잠그고 작업장 쪽으로 걸었다.

“걸어서 갈 거냐. 내 트럭 타라. 대신 짐칸에 실리는 순간 몸 조심해, 적재함 바닥에 못 튀어나온 데 있다.”

강민석의 트럭은 검증장 북쪽 주차장까지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들어왔다. 한도윤은 짐칸에서 내려 작업 점퍼에 붙은 먼지를 두어 번 털었고, 강민석은 운전석 문을 닫으며 열쇠를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유리 로비를 지나면서 적재함에서 실려 온 흙이 신발 밑에서 뽀드득 소리를 냈다.

천하경매 센서 검증장은 오전인데도 조명이 전부 켜져 있었다. 흰 빛이 대리석 바닥에 겹쳐 깔렸다. 검증대 옆으로 기자 몇 명과 경매장 직원들이 서 있었다.

강민석이 한도윤 옆에서 허리에 두 손을 얹고 주변을 훑었다.

“사람 많네. 이거 내 경험인데, 공개 검증일수록 말려드는 놈이 제일 고생한다니까.”

“알아.”

한도윤의 왼손이 작업 점퍼 주머니를 눌렀다. 두꺼운 봉투 두 개가 그대로 있었다. 하나는 검은 금속 조각, 하나는 B급 코어. 폐기장에서 꺼낸 지 스무 시간쯤 지났다.

서류상 오늘 오전이 검증 최종 시한이다.

이제 와서 빼긴…… 늦었지.

오세라가 크로스백 끈을 어깨에 건 채 두 사람 쪽으로 뛰어왔다. 사원증이 가슴에서 튀었다.

“저기 한도윤 씨 진짜예요? 그 폐기장에서 나온 거 직접 들고 온 거죠? 제 방송 켜도 돼요? 켜고 싶은데 아직이에요, 아직.”

“센서 앞에서 켜. 지금은 아냐.”

오세라가 휴대폰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며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검증대 왼편에 백호 길드 사람들이 서 있었다. 서예린이 검은 재킷 단추를 잠근 채 오른손에 모노클 체인을 감았다. 백진우는 조금 뒤에서 두 팔을 접은 채 서 있었다.

서예린이 한도윤을 봤다. 인사는 없었다. 그 대신 검증대 반대편으로 시선을 옮겨 진행관을 찾았다.

“제출 물품이 맞는지부터 열겠습니다.”

한도윤이 검은 봉투 두 개를 검증대 위에 내려놓자 담당 진행관이 장갑을 끼고 다가왔다. 봉인 라벨을 확인하고 자루 안을 비췄다.

“폐기물 관리 이력과 반출 서류가 있습니까?”

한도윤은 오세라를 거쳐 받은 천하경매 임시 접수증과 폐기장 쪽 확인 도장을 함께 내밀었다. 지난밤에 강민석이 반출 허가 번호를 불러주고, 오세라가 온라인 접수 창구에 먼저 입력해둔 거였다.

진행관이 두 장을 겹쳐 바코드를 긁자, 검증대 오른쪽 모니터에 문자가 떴다.

‘B급 코어 1점 / 미확인 금속 파편 1점’

그때 진명호가 뒤에서 걸어 나왔다.

구두굽 소리가 검증장에 또렷이 번졌다.

“국가유물관리국 지침상, F급 감정사의 사설 의뢰 검증은 센서 우선순위에서 후순위입니다.”

진명호가 한도윤 쪽을 보지 않은 채 말했다.

“해당 물품은 국가유물관리국의 압류 후속 목록에 있던 것이고, 신고 처리도 아직입니다. 검증을 개시할 수 없습니다.”

한도윤의 손가락이 검증 신청서 모서리를 눌렀다.

이 인간, 처음부터 막을 셈이군.

“조항 확인하고 와서 왔다. 등급 기관이 검증 책임을 지는 조항.”

진명호가 처음으로 한도윤을 내려다봤다.

사각 안경테가 조명을 삼켰다. 반짝이지 않았다.

“근거가 있나요?”

한도윤은 천하경매 규정집 사본을 대지 않고 손가락으로 검증대 화면을 가리켰다.

“여기. ‘센서 검증 결과가 감정사 등급과 다를 경우, 책임은 등급 기관에 있다’고 붙어 있지. 그 위에 서명할 거야.”

“그 책임은 국가 등급 기관의 사후 심의를 전제로 합니다.”

“사후든 뭐든 책임진다며.”

진명호가 검증 신청서 윗부분을 훑었다. 말 속도는 그대로였다.

“F급 자격으로 해당 코어의 직접 감정 권한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신청서 서명은 가능하나, 검증 개시 허가권은 제게 있습니다.”

또 막혔다.

허가권이라…….

한도윤은 허가권을 넘보지 않고 진행관에게 몸을 돌렸다.

“등급 기관 책임 조항을 두 번 확인시켜 줘.”

진행관이 규정집을 펼쳤다. 오세라가 자기 휴대폰 너머로 그 페이지를 비췄다.

“센서 검증에서 감정 결과가 자격 등급을 벗어나는 것으로 나올 경우, 해당 검증의 신뢰 판단은 등급 기관과 경매장 공동 책임으로 이관됩니다.”

진행관이 두 번째 줄을 한 번 더 읽었다.

“검증 신청인은 서명으로 확인합니다.”

“좋아.”

한도윤은 검증 신청서 사인란에 이름을 눌러 썼다. 힘을 빼고, 짧게.

서명 완료.

이걸로…… 막을 수 없지.

손목시계 소리가 규정집 넘어가는 소리에 겹쳤다.

“서명했다. 검증해.”

진명호가 신청서를 들춰 확인했다.

시간이 두어 박자 벌어졌다.

그 사이 오세라가 생방송을 켰다.

딩동.

방송 알림음이 검증장 천장에 흩어졌다.

“여러분, 지금 천하경매 센서 검증장입니다. F급 감정사 분이 직접 폐기장에서 가져온 코어를 검증하러 오셨고, 지금 서명 막 끝났습니다.”

백진우가 그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시끄럽네.”

그 말에 오세라가 휴대폰을 살짝 내렸다가 다시 들었다. 생방송 화면은 그대로였다.

검증대가 덮개를 닫았다. 센서가 작동했다.

낮은 진동음이 바닥을 타고 와 한도윤의 발목까지 올랐다. 진행관이 화면을 지켜봤다. 화면 가운데 숫자가 세 번 바뀌었다.

“B급 마나 코어. 초기 분류 유지.”

한도윤 옆에서 강민석이 코로 짧게 숨을 내쉬었다.

“뭐야, 그냥 B급이네.”

진명호가 돌아섰다.

그때 화면 오른쪽에 경고문이 하나 겹쳐 떴다.

`분류 재조정 중 — 등급 기관 공동 확인 요청`

숫자가 다시 올라갔다. B급에서 A급을 건너뛰고…… S급 예비 분류 칸에 깜빡였다. 옆에 ‘각성 촉매 불완전체’라는 표기가 붙었다.

검증장의 말소리가 전부 끊겼다.

방송 알림음만 작게 계속 울렸다.

한도윤의 눈이 화면에 박혔다.

……S급?

오세라가 휴대폰을 검증대 쪽으로 곧게 밀며 걸어왔다.

“이거 진짜예요? 여러분 보이세요? 지금 센서가 S급 불완전체로 다시 잡고 있어요. 화면 그대로예요.”

진행관이 확인 버튼을 누르기 전에 센서 로그가 공개 화면 하단으로 풀렸다. 진명호가 한 발 다가서 로그를 읽었다. 입을 열었다 닫았다. 검지로 안경을 한 번 밀어 올린 그대로였다.

강민석이 한도윤의 어깨 너머로 화면을 보며 손을 내저었다.

“확인증부터 받아놔. 이런 데는 말 빨라야 뺏긴다니까.”

퍽.

경매장 직원이 코어를 진공 케이스에 넣어 임시 보관함으로 옮겼다. 진행관이 한도윤에게 재감정 확인증을 내밀었다.

종이가 아직 인쇄기 열을 머금고 있었다. 이름, 품목, 재분류 결과, 시간이 전부 떠 있었다.

이게 다 내 코어라.

서예린이 한도윤 옆으로 왔다. 모노클 체인을 접어 손바닥에 모았다.

“해당 코어가 정말 불완전 촉매인지는 기록만으로 부족해요. 원본 로그를 전부 요청할게요.”

“내가 뽑아서 줄게.”

“아뇨. 경매장 담당자에게 직접 받겠어요.”

서예린이 검증대 모니터를 눈으로 짚었다. 화면에는 방송 채널 접속 숫자가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백진우가 느릿하게 검증대 쪽으로 왔다. 등 뒤의 대검 케이스가 허벅지에 닿을 듯 말 듯 흔들렸다.

“코어, 아까 신청서에 매각 동의했지?”

“검증하면 경매장 보관 후 공개 매각. 동의는 했다.”

“좋아. 내가 구매 예약.”

백진우가 한 박자 멈췄다가 대검 쪽으로 손을 보냈다.

“이 검, 방금 센서 돌릴 때 잠깐 울렸다.”

그가 검 손잡이를 감싼 채 한도윤을 봤다.

“기분 탓일 수도. 어쨌든 그 코어, 내가 첫 줄에 넣는다.”

검까지 울렸다고?

한도윤은 백진우의 손등을 한 번 내려다봤다.

진명호는 이미 두어 걸음 물러나 있었다. 결과가 뒤집힌 것보다, 자기 권한 밖의 ‘재분류’가 공개된 게 걸리는 것처럼 보였다. 검은 장갑을 벗지 않은 손으로 증표 안쪽을 한 번 만진 뒤 몸을 돌렸다.

오세라가 마이크 쪽으로 숨을 붙고 말을 눌러 담았다.

“F급 한도윤 씨, 반전이에요. 지금 이 로그 제 채널에 고정하고 클립 뜨는 중입니다.”

방송 장비가 다시 알림을 켰다. 채팅이 빠르게 올라갔다. 한도윤은 확인증을 안주머니에 넣고 검증대 옆으로 반 걸음 물러섰다.

왼쪽 조끼 안쪽에서 깨진 나침반을 꺼냈다. 뚜껑을 제끼자 바늘이 움직였다. 금속 조각처럼 힘 없이 떨다가 검증장 오른쪽 아래, 경매장 건물 동선상 지하 쪽을 가리켰다.

방향이 정확히 서너 번 반복된 뒤 바늘 끝에 옅은 좌표가 떠올랐다.

지금 이걸 가리키는 건……

강민석이 한도윤의 손안을 들여다봤다. 이마에 땀이 한 줄 내려앉았다.

“저긴 소각도 못 하는 불안정 구역이잖아.”

그가 욕을 낮게 삼키듯 뱉었다.

폐기장에서 시작한 S급 감정사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