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폐기장에서 시작한 S급 감정사

2화

확인증은 손에 쥔 순간부터 무게가 달라졌다.

한도윤은 천하경매 센서 검증장 한쪽에서 여전히 울리는 알림음을 뒤로하고, 조끼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깨진 나침반의 유리면이 손가락에 닿았다.

바늘은 아직 지하 쪽을 향해 힘 없이 떨고 있었다.

강민석이 옆에서 낮게 숨을 내쉬었다.

“저기, 이거 내 경험인데. 지금 여기서 그거 꺼내는 거 아니다.”

“안다.”

한도윤은 나침반을 다시 넣었다. 방향만큼은 기억했다.

검증장 오른쪽 아래, 정확히 네 번. 지하 폐기 구역 옆 관측로 쪽…….

서예린이 먼저 움직였다. 경매장 직원에게서 원본 로그를 받아 든 그녀가 검증대 모니터 앞을 떠나 한도윤 앞에 섰다.

“한도윤 감정사. 지금부터 드릴 말은 백호 길드의 공식 제안으로 받아 주세요.”

모노클 체인을 손가락으로 한 번 비틀어 감았다.

“오늘 센서 재분류 건은 등급 기관 공동 책임으로 기록됐어요. 그런데 책임 조항만으론 당신의 몸을 보호하지 못합니다. 절차가 끝난 뒤의 일은 경매장이 관여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백호 길드가 당신을 3건 검증 조건으로 보호하겠습니다. 검증하는 동안 길드가 당신의 신변과 조사 중인 물품을 관리해요.”

강민석이 어깨를 들썩였다.

“야, 그거 좋은 거 아냐? 이게 진짜라면……”

“조건이 있다.”

한도윤은 서예린의 눈을 보았다. 옅은 회색빛이 검증장 조명 아래서 푸르게 꺾였다.

“3건 중 1건은 내가 정한다.”

“근거를 물어봐도 될까요.”

“내가 가진 것 중에 유품이 하나 있다. 그걸 먼저 감정한다.”

서예린의 손이 멎었다.

모노클 체인이 바닥으로 처졌다.

“무슨 유품인지 아직 말하지 않았어요.”

“네가 말 안 해도 된다.”

한도윤은 검증대 쪽을 한 번 보았다. 센서 로그가 계속 화면에 떠 있었다. S급 각성 촉매 불완전체. 그 아래로 오세라의 채팅창이 겹쳐 보였다.

“그 물건에서 나는 소리가 들리니까.”

“감정사에게 소리가 들린다는 건 알겠는데, 제 오빠가 남긴 물건은 국가 감정 불가 판정을 받은 물건입니다.”

서예린이 한 걸음 다가왔다.

“그런 물건을 F급에게 맡기는 건 저도 절차 위반이에요.”

“안다.”

“근거가 있어요?”

“그 물건을 열기 전에, 네가 먼저 나를 검증해야 할 거다. 그게 1건.”

서예린이 그를 한참 보았다. 백진우가 그 뒤로 느릿하게 걸어왔다. 대검 케이스가 허벅지에 닿을 듯 말 듯 흔들렸다.

“F급 하나 계약하는 데 근거가 필요한 건 맞는데.”

백진우가 팔짱을 끼며 한도윤을 내려다봤다.

“꺼내 봐. 네가 정한 1건.”

“여기서.”

“여기가 장비 갖춘 데야.”

서예린이 끼어들었다.

“회의실에서 하겠습니다. 공개된 곳은 곤란해요.”

백진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검증장 직원들이 서류를 정리하는 소리가 바닥을 긁었다.

한도윤은 확인증을 다시 꺼내 접었다.

종이 모서리에 열이 남아 있었다.

계약서부터 받아야 한다…….

백호 길드 회의실은 북쪽 건물 3층에 있었다. 검증장에서 차로 십여 분. 시간으로는 오전이 한참 전이었다. 회의실 창문으로 오전의 빛이 얇게 들어와 긴 탁자 위에 깔렸다.

한도윤은 문 옆에서 유품 케이스를 내려놓았다. 서예린이 직접 가져온 케이스였다. 검은 합판에 은색 자물쇠가 두 개.

“열기 전에 한 가지만 확인할게요.”

서예린이 회의실 문을 잠그고 돌아섰다.

“이 물건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말해 주세요.”

“아무것도 모른다.”

“그럼 왜 1순위로 지목했어요.”

한도윤은 조끼 안에서 나침반을 꺼냈다. 깨진 뚜껑이 열리고 바늘이 움직였다.

유품 케이스 쪽으로, 정확히 기울었다.

“이게 먼저 반응했다.”

서예린이 케이스와 나침반을 번갈아 보았다.

“그게 제 오빠의 물건과 반응한다는 물리적 증거가 있어요?”

“지금 여기서 만든다.”

한도윤은 회의실 한쪽에 놓인 기록지를 집어 들었다. 검증실에서 가져온 모눈 용지였다.

나침반을 케이스에서 한 뼘 거리에 두고, 바늘 끝을 기록지 위에 맞췄다.

이거…… 반응이 너무 정확한데?

바늘이 기록지 위에서 멈추지 않고 떨었다.

유품 케이스 쪽을 가리킨 채로.

바늘이 힘 없이 흔들렸다. 서너 번 반복되다가…… 케이스 오른쪽 모서리 쪽으로 끝을 눕혔다.

“좌표가 찍혔다.”

“한 번으로 믿기 어렵네요.”

“그럼 세 번.”

한도윤은 나침반 위치를 바꿔 가며 두 번 더 반응을 기록했다. 바늘은 매번 같은 모서리를 가리켰다.

좌표가 일치했다.

서예린이 군더더기 없이 다가왔다. 숨을 한 번 고르고 자물쇠를 열었다.

케이스 안이 드러났다.

낡은 금속판 하나가 감청색 천 위에 얹혀 있었다. 가로로 긴 판. 오른쪽 아래 모서리에 은색 선이 한 줄 지나갔다.

한도윤의 손이 멎었다.

검은 금속 조각.

……같은 은색 선이었다.

나침반이 케이스 안쪽을 향해 바늘을 곧추세웠다. 다만 그 끝은 금속판을 넘어, 케이스 바닥 천을 찌를 듯 기울었다.

“금속판 자체가 아니라, 그 아래 봉인 좌표와 겹친다.”

한도윤은 기록지를 들어 금속판 옆에 갖다 댔다. 방금 찍은 좌표가 판의 오른쪽 아래 모서리와 거의 일치했다.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 정확하다.”

그 말이 허공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정확하다…… 우연이 아니라고?

순간 한도윤은 손끝을 꽉 쥐었다. 이 정확도는, 검증장에서도 못 본 수치다.

“이 물건은 감정 불가 판정을 받았어요. 국가유물관리국 직인이 있어야 재감정이 가능합니다.”

서예린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그런데 왜 당신의 나침반이 반응하는지, 저는 그게 가장 두려워요.”

“그거면 됐다.”

한도윤은 나침반을 거두며 그녀를 보았다.

“네가 이 물건을 맡긴 순간부터, 너와 나는 같은 좌표를 쫓는다.”

서예린이 금속판을 다시 케이스에 넣으면서 천천히 뚜껑을 닫았다.

닫으려다 멈췄다.

“이 물건만은 재감정해 주세요. 계약 검증 1순위로 기재하세요.”

그녀가 계약서를 들어 탁자 위에 펼쳤다. 백진우가 팔짱을 낀 채로 다가와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어유, 이래서 F급 하나 고른다고 길드 간부가 직접 유품까지 여는구나.”

백진우가 케이스를 보지 않고 서류만 훑었다.

“검증 실패하면 무효. 그 조항 넣는다.”

“좋아.”

“세 건 중 한 건 실패해도 계약 해지. 어때.”

“해지해도 된다.”

백진우가 뚜껑 덮인 케이스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거, 실패하면 누구 책임이야.”

“감정 못 하면 내가 국장 직인을 받아 온다.”

회의실이 잠깐 조용해졌다.

국장 직인?

서예린이 고개를 들었다.

“국가유물관리국 국장?”

“진명호.”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끼익.

“여기 계신 줄은 몰랐군요.”

진명호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뒤에는 정장 차림의 보좌관 한 명이 서류 봉투를 들고 따라왔다. 오세라의 생방송 알림이 복도에서 휴대폰 하나로 울리고 있었다.

그는 회의실 중앙까지 와서 봉투에서 서류를 꺼냈다.

“국가유물관리국이 오늘 오전 센서 기록과 폐기장 반입 경위를 확인했습니다. 그 결과 한도윤 씨가 소지한 검은 조각에 대해 압수 절차를 통보합니다.”

압수 절차.

한도윤의 눈썹이 움찔했다.

여기까지 온다고?

서예린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절차가 생략됐어요. 현장 압수에는 사전 통보와 국장 직인 날인이 먼저입니다.”

“통보서는 여기 있습니다.”

진명호가 서류를 탁자 위에 밀었다.

직인은 찍혀 있지 않았다.

없잖아.

서예린은 눈을 가늘게 떴다. 국장이 직접 와서, 직인도 없는 종이 한 장만…….

“감정 금지 물건으로 의심될 경우, 사본 제출과 자진 보관 유예를 먼저 요청해야 합니다. 지금 요구는 그 절차를 건너뛰고 있어요.”

“국가 차원에서 그렇게 판단하면 서류는 나중에 보완해도 됩니다.”

“그 규정이 어느 조항에 있어요?”

서예린이 목소리를 낮췄다.

“국장께서 지금 들고 있는 통보서에는 감정 금지 물건 표기가 빠져 있어요. 그러면 압수 요구의 근거가 달라지죠.”

진명호가 잠시 말을 멈췄다.

백진우가 그 사이에 회의실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등 뒤 대검 케이스를 감싼 손에 힘이 들어갔다.

케이스 안쪽에서 낮은 진동이 한 번 올라왔다.

……칼이 아니었다.

백진우가 손을 뗐다.

뭐야, 이 느낌.

“잠깐.”

한도윤이 백진우의 손끝을 보았다.

그 진동.

검증장에서 센서가 검을 쓸던 때와 같은 방향에서 올라왔다.

서예린은 통보서 사본을 들고 계속 말했다.

“압수는 내일로 미뤄 주세요. 저희도 서류를 검토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조각이 감정 금지 파편이라는 정황이 있다면, 내일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습니다.”

“정황뿐이잖아요. 그게 실제로 어떤 물건인지 확인한 기록도 없어요.”

“그러니 국가가 확인하겠다는 겁니다.”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뜻이에요. 오늘 압수는 못 합니다.”

진명호가 한도윤을 향해 몸을 반쯤 돌렸다.

“내일 09시까지 검은 조각을 자진 제출하십시오. 물리적 압수와 연행은 그때로 유보하겠습니다.”

그가 통보서 원본을 집어 봉투에 넣었다.

“제출하지 않으면 강제 봉인 집행입니다.”

진명호가 회의실 문을 향해 돌아섰다.

한도윤은 탁자 위에 놓인 기록지를 집었다.

방금 서예린의 유품과 겹친 좌표가 그 위에 그대로 찍혀 있었다.

일치하던 지점이 두 개.

지하 봉인고.

조각이 가리킨 곳과……

같은 사선 안이었다.

강민석이 회의실 쪽문에 몸을 비스듬히 기댄 채 그를 불렀다.

“한도윤. 잠깐.”

한도윤은 기록지를 접어 안주머니에 넣고 천천히 걸어갔다.

쪽문 밖 복도는 어두웠다.

유리문 너머로 오세라가 경매장 로비에서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 나침반. 어디서 주웠어.”

“폐기장.”

“대답은 알고 있다. 그보다.”

강민석이 목에 두른 수건으로 얼굴을 한 번 문질렀다.

“그 전 주인. 나 봤다니까. 감정하다가 죽는 거.”

“알고 있었어.”

“아니, 네가 모르는 게 하나 있어.”

강민석이 복도 끝을 한 번 보고 목소리를 낮췄다.

“그 사람, 물건 이름을 입에 올리려다가 죽었어. 그걸 내 눈으로 봤다. 두 번은 말 안 해.”

한도윤은 등을 벽에 붙였다.

말을 입에 올리려다가……

이번에도, 그 모양이냐.

“자세한 건.”

“말 못 해. 나도 그 자리에서 도망치느라 다 못 봤어.”

“그럼 왜 지금 말해.”

“이번 일이 그때랑 똑같이 가고 있으니까.”

강민석이 그의 어깨를 한 번 쥐었다 놓았다.

“그만둬라. 누가 곱게 보낸대도, 결국 그 조각 근처에서 너 혼자야.”

너 혼자.

그 말이, 벽처럼.

밀려왔다.

한도윤은 조끼 안주머니를 만지며 다시 회의실 쪽을 보았다.

백진우가 아직 진동하던 검집을 벽에 기대 세우고 있었다.

서예린은 통보서 사본을 들고 유품 케이스 앞에 서 있었다.

“늦었어.”

한도윤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폐기장에서 시작한 S급 감정사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