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폐기장에서 시작한 S급 감정사

3화

“국장님.”

진명호가 멈췄다. 반쯤 열린 문 앞이었다.

“제출 전에 서류 보완 요청은 가능합니까.”

한도윤은 탁자 옆에서 진명호의 등을 향해 말했다. 허리는 굽히지 않았다.

진명호가 천천히 돌아봤다. 안경 너머 시선이 한도윤의 조끼, 가슴께에 잠깐 머물렀다.

“서류에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까.”

“아직 검토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간은 내일 09시까지 드렸습니다. 충분하지 않습니까.”

“감정 금지 물건 표기가 안 보입니다.”

한도윤이 압수 통보서 사본을 반쯤 들었다. 종이가 바람에 가볍게 꺾였다.

종이 끝이 조끼 단추에 닿을 듯 말 듯 흔들렸다. 그는 한 장을 더 꺼내 모서리를 맞춰 보았다가, 이내 접힌 부분을 손끝으로 눌러 폈다. 회의실 공기는 건조했다.

조명이 서류 위에 내려앉아 글자 획마다 옅은 음영을 만들었다. 한도윤은 고개를 약간 낮추어 표기란이 있어야 할 위치를 다시 한 번 훑었다. 서예린의 숨소리가 옆에서 짧게 끊겼다.

그녀가 손목을 돌려 손전등을 켜려다 말고, 회의실 중앙등 불빛이 충분하다는 듯 손을 내렸다. 종이 사이로 책상의 나뭇결이 비쳐 보일 만큼 서류는 얇았다.

“어떤 절차로 봉인하는지, 저는 서류에서 확인 못 했습니다. 그걸 검토할 시간을 요청합니다.”

진명호가 보좌관을 돌아보지 않은 채 손만 뒤로 내밀었다. 보좌관이 감시 기록 단말을 꺼내 건넸다.

보좌관의 손목이 미세하게 떨려 단말 모서리가 진명호의 손바닥에 한 번 헛스쳤다. 진명호는 손가락을 오므려 단말을 받아 쥐었다. 보좌관이 반 걸음 물러나며 숨을 삼켰다.

회의실 바닥 타일이 진명호의 구두 뒤꿈치에 눌려 가는 소리가 났다. 벽면 시계 겸용 감시 표시등이 천장을 향해 파랗게 한 차례 점멸했다. 단말을 받아 든 진명호의 손끝이 서류 뭉치 방향으로 짧게 미끄러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회의실 안의 보조 의자 하나가 공조 바람에 등받이를 살짝 들썩였다.

“한 시간.”

단말 위로 디지털 시계가 떠올랐다. 오전 한 시 삼십칠 분.

“이 회의실에 한하여 현장 감시를 조건으로 허용합니다. 제출 시한은 변동 없습니다.”

손가락이 뿌옇게 단말 액정을 스쳤다. 유예 시간이 표시됐다.

진명호가 곧장 덧붙였다.

“한 시간 뒤, 저는 검은 금속 조각이 보관된 장소의 출입을 다시 봉쇄합니다. 인원도 제한합니다.”

“알겠습니다.”

한도윤이 서류를 내렸다. 손끝에 힘을 주지 않았다.

회의실 안이 시계 소리로 얇게 갈렸다. 벽시계도 아니었다. 진명호의 단말에서 초침 하나가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소리였다.

서예린이 유품 케이스 뚜껑을 닫기 전에, 한도윤은 검증실 측정 기록을 먼저 폈다.

“좌표 기록지 줘.”

“여기 있어요.”

서예린이 케이스 안쪽에 붙어 있던 두꺼운 기록지를 빼서 탁자 위에 놓았다. 방금 그가 읽던 기록지였다.

한도윤은 나침반을 꺼냈다. 유리 안쪽이 좌표 하나를 반복해 가리켰다.

“지하 봉인고가 아니야.”

“뭐가요?”

서예린이 되물었다.

“이 좌표, 검증실에서 찍은 것과 이격돼 있어. 평행하게 벗어난 값이.”

한도윤이 기록지 두 장을 나란히 펼쳤다. 하나는 서예린 유품 케이스에서 나온 봉인 좌표 기록. 나머지는 검증실 센서가 남긴 측정 로그였다.

“겹치는 줄 알았는데 같은 축 위일 뿐이야. 실제론 여기.”

그가 손가락으로 기록지 하단을 짚었다. 선 하나가 관측로 번호 없이 남서쪽으로 꺾여 있었다.

“불안정 던전 폐기 구역 옆이잖아요.”

서예린이 가까이 와 기록지를 내려다봤다. 그녀의 모노클 체인이 종이 위에 가는 그림자를 만들었다.

“네 오빠 유품, 지하 봉인고와 불일치야. 이건 관측로 쪽에서 찍혀야 할 좌표.”

“그러면 조각이 가리킨 곳은요?”

“같은 사선인 건 맞아. 다만 거리 차이가 있어.”

한도윤이 나침반을 들어 시선 높이에 뒀다. 깨진 방위계가 기록지 위로 미세하게 떨다가 멎었다. 범위를 벗어난 것처럼.

나침반 가장자리의 황동 테가 손가락 뼈에 닿는 감촉이 차가웠다. 안쪽 유리가 기록지의 좌표선 위를 스치며 희미한 각도를 반사했다. 서예린은 숨을 멈춘 채 바늘 끝만 따라 시선을 옮겼다.

바늘이 한 차례 떨림을 남기고 남서쪽 모서리 근처에서 힘을 잃었다. 한도윤은 나침반을 조심스레 내려 기록지 옆에 놓았다. 금속 케이스 밑바닥이 탁자에 닿자 아주 작은 소리가 났다.

기록지의 접힌 자국이 바늘 방향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가 손끝으로 그 자국을 한 번 문지르자 조각 보관함 쪽의 은색 선이 다시 손등 위로 짧게 어른거렸다.

“조각하고 유품은 서로 다른 깊이에서 반응해. 지하 봉인고를 지나는 사선 하나가 저 밖으로 빠져나가.”

이내 붉은 바늘이 기록지의 남서쪽 모서리를 치고 다시 되돌아갔다.

“감정 금지 물건 이름은 안 나와. 좌표만 이렇게 남아.”

한도윤이 품에서 조각 보관함을 내려놓았다. 은색 선이 희미하게 손끝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나침반이 보관함 쪽으로 기울었다.

이름은 주지 않았다.

대신 좌표만, 더 깊게 가리켰다.

“잠깐.”

백진우가 검집에서 손을 떼며 일어났다. 검집은 여전히 벽에 기대어 있었다.

“그 보관함 방향에서, 아까 이거 울렸다.”

그가 대검 케이스를 손가락으로 톡 건드렸다. 금속음이 길게 나지 않고 뚝 끊겼다.

“얼마나?”

한도윤이 물었다.

“한 박자. 진동이라기보다…… 안쪽이 들썩였어.”

백진우가 검집을 세워서 탁자 쪽으로 조금 밀었다. 진명호가 단말에서 시선을 뗐다.

“케이스 안에서 공명했단 말이죠.”

서예린이 받았다.

백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각 보관함이랑 같은 방향. 나도 느꼈으니까 확실해.”

그가 조각 보관함을 가리켰다. 검지가 허공에서 멎은 각도가, 한도윤이 방금 기록한 사선과 거의 같았다.

진명호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 검을 열어 보시겠다는 겁니까.”

“안 열어. 진동 온 건 사실만.”

백진우가 팔짱을 다시 꼈다.

“아, 그리고 그 촉매 조각. 이거랑 같은 선에서 반응한 게 이번이 처음이야.”

다른 금속엔 조용했다.

검집이 벽에서 반 뼘쯤 떨어진 자리에 서 있었다.

진명호의 단말이 회의실 출입 기록을 찍어 냈다.

강민석이 쪽문 쪽에서 한숨을 삼키며 벽에 붙었다.

등이 벽지에 닿자 옷깃이 눌리며 바스락거렸다. 그는 손바닥으로 넥타이 매듭을 두어 번 내리누르다가 백진우 쪽을 곁눈질로 살폈다. 백진우는 검집 근처에 선 채 손끝으로 허공의 각도를 잰 듯 천천히 팔을 뻗고 있었다.

강민석은 입을 벌리려다 다시 다물고, 벽에서 등을 떼며 한 발짝 옆으로 붙었다. 구두 밑창이 타일을 조금 밀면서 짧은 마찰음을 냈다. 그는 그 소리가 크게 들렸을까 봐 목까지 움츠렸다.

백진우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회의실 공조 바람이 강민석의 앞머리를 치고 지나가자, 그는 손등으로 이마를 한 번 닦아냈다.

“그거 계속 열었다 닫았다 하지 마라.”

“안 위험해.”

백진우가 짧게 답했다.

“위험하면 내가 제일 먼저 알아.”

……진짜 저 자식.

강민석이 입술만 달싹였다.

뭐가 저렇게 자신만만한 거야.

한도윤이 서류 사본을 펼쳐 휴대폰으로 찍었다.

진명호가 곧바로 말했다.

“국가유물관리국 업무 서류를 촬영하는 것은 승인 범위에 없습니다.”

서예린이 통보서 사본을 탁자에 밀어 넣었다.

“그럼 직접 보시겠어요? 여기 표기가 없어요.”

그녀가 사본 한쪽을 집어 들며 진명호에게 보였다.

“감정 금지 물건 표기란이 아예 비어 있습니다. 국장님, 이대로 봉인 절차를 강행할 수 있어요?”

“절차는 저희가 판단할 문제입니다.”

“근거가 있어요? 압수 근거 서류에 대상 등급 분류가 안 적혀 있어요.”

진명호가 대답 없이 보좌관을 돌아봤다.

보좌관이 고개만 숙였다.

서류가 이래도 된다고?

서예린이 한도윤에게 손을 내밀었다.

“휴대폰 주세요. 제가 오세라 씨한테 보낼게요.”

“왜 오세라입니까.”

진명호가 낮게 물었다.

“제보 검증이니까요. 경매장 쪽에 우선 접수 기록이 남아 있는 촬영본이 필요해요.”

서예린이 한도윤 휴대폰을 받아 해당 화면을 열었다.

전송 버튼을 누른 뒤 오세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예린입니다. 제가 지금 촬영본이랑 좌표 이격치를 보낼 테니 제보 전에 검증부터 해 주세요.”

수화기 너머로 오세라의 말이 빠르게 흘러나왔다.

서예린이 한 번 듣고 휴대폰을 건넸다.

“확인해보겠대요.”

한도윤은 휴대폰을 받아 다시 서류 위에 놓았다.

전송 표시가 맨 위에 세 개로 떠 있었다.

진명호가 손을 들어 회의실 문을 가리켰다.

“유예 시간이 다 되고 있습니다.”

벽면의 잠금 장치가 파랗게 들어왔다.

문틀마다 가는 경계선이 지그시 올라왔다.

“한 분씩, 회의실 밖.”

이걸로…… 끝이라고?

한도윤이 조각 보관함을 줍고 나침반을 조끼에 넣었다.

기록지 두 장은 서예린이 가방에 넣었다.

문이 열리며 복도 불빛이 밀려왔다.

진명호의 단말 시계가 마지막 유예 시간을 지워가고 있었다.

◇ ◇ ◇

바람 빠진 베개를 한쪽 무릎으로 누른 채, 오세라는 자택 방에서 노트북을 열었다.

방 불은 켜지 않았다.

룸미 윗부분만 막판에 남긴 시험공부용 불빛이 침대 시트를 하얗게 떠올렸다.

화면에 서예린이 보낸 촬영본이 크게 떠 있었다.

손가락이 트랙패드를 두 번 움직였다.

압수 통보서.

위에서부터 천천히 훑는데, 분명히 빈칸이 하나 눈에 밟혔다.

감정 금지 물건 표기.

“어라……”

오세라가 고개를 화면 앞으로 바짝 당겼다.

적혀 있어야 하는 칸이 백지였다.

서류 끝자락까지 내려 봐도 대상 등급 분류가 없었다.

이게 말이 돼요?

“이거 진짜예요.”

그녀가 좌표 이격치 파일까지 열었다.

지하 봉인고와 불안정 던전 폐기 구역 사이, 관측로 일대가 붉은 선으로 느리게 반짝였다.

노트북 아래 숨겨 둔 아이디를 꺼내 로그인하고, 폴더 하나를 열었다.

룸미 불빛이 꺼졌다.

배터리가 떨어진 것이었다.

화면 빛만 오세라의 얼굴을 아래에서 들췄다.

그녀가 익명 계정 창을 열었다.

업로드 표시가 세 번 깜빡였다.

제목을 적고, 촬영본을 얹었다.

“공개 재감정을 요구합니다.”

댓글이 달린 것은 정확히 40초 뒤였다.

“이 서류, 원본 대조 가능한 분. 공개 재감정 요구 함께 합니다.”

폐기장에서 시작한 S급 감정사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