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F급 감정사, 나침반이 가격을 속삭인다

1화

폐기 처리장 D구역은 오전 아홉 시부터 소음이 밀려든다. 파쇄기 돌아가는 소리, 지게차 후진 경고음, 어디선가 떨어지는 금속판 소리. 그 사이로 관리용 단말기가 읽어주는 안내 방송이 끼어든다.

“재평가 가치 100억 원 초과 품목은 정부 귀속 청구 대상입니다.”

귀속이 뭐가 무섭나.

그런 걸 만질 일이 있어야지. 나는 밀린 월세 2개월 치를 손가락으로 접는다. 84만 원 곱하기 2. 오늘 폐기장 정리 수당 7만 8천 원을 받아도…… 모자란다.

배문기 과장이 어제 던진 말이 귀에 남아 있다.

“F급이 감정서를 내겠다고? 서명 자리가 아깝다.”

그 말도 수수료로 환산해 본다. D급 유물 한 건 평균 감정 수수료가 3만 원쯤. 배 과장 말 한마디로 날릴 금액은 없다.

정확히는, 지금까지는 없었다.

장갑 낀 왼손으로 폐기물 컨베이어 옆의 분리 적재함을 훑는다. 오른손 맨손은 조심스럽게 갈고리형 손도구를 쥐었다. F급한테 폐기장 분리 작업은 일상이다. 파편 사이에 끼어 있는 걸 꺼내는 일. 던전에서 나온 부산물 중 등급 판정이 안 나온 것, 귀속 절차가 끝난 것, 그냥 버려진 것.

D구역 12번 적재함에서 손이 멈춘다.

손도구 끝에 걸린 물건 하나. 자루가 반쯤 부러진 단검이다. 날에 붙은 녹과 그을음, 코팅이 벗겨진 손잡이. 일반 폐기물이면 파쇄기로 갔을 물건이지만, 던전 부산물은 일단 감정사 눈을 거친다.

나는 단검을 분리 트레이에 올린다. 무게는 400그램대. 균형은 오히려 좋다. 날의 마모 상태로 보면 실전에서 여러 번 쓰였다. 손잡이 밑동에 각인 비슷한 흔적이 있다.

장갑을 낀 손으로는 잘 안 읽힌다.

F급 공식 감정서 발급 한계는 D급까지다. 이게 C급 이상이라면 내 서명은 못 들어간다. 그 생각을 하자 주머니 속에서 뭔가 미세하게 진동한다.

깨진 나침반 하나. 유리판은 금이 갔고 바늘은 없다. 대신 단검 쪽으로 가져가자 투명한 창이 뜬다.

[감정 결과] 등급: S 예상 낙찰가: 2,400,000,000원 근거: 각성 촉매 반응도 98.7%, 이면 코어 추정

24억.

나는 숨을 들이마신다. 주변 소리가 한 번에 멀어진다.

파쇄기도, 지게차도, 안내 방송도…… 안 들린다.

손끝이 저리다. 24억이면 경매 낙찰가 기준 감정사 수수료 7%. 1억 6천 8백만 원이다.

월세 2개월 치가 동전으로 보이는 숫자.

이거…… 실화야?

이면 코어 추정. 그 부분은 공개하지 않기로 한다. 코어 추정은 S급 감정사가 붙일 법한 결론이다. F급이 내세우면 신뢰를 깎는다. 반응도 98.7%라는 수치는 계측값처럼 보이지만, 이 감정 시스템은 나한테만 보인다.

다른 사람한테 보여줄 수 없다.

곧바로 단검을 D구역 임시 보관함에 넣는다. 보관함 뚜껑을 닫는 금속음이 크게 울린다.

철컥.

열쇠는 내 앞주머니에 넣는다. 그리고 헌터넷 로그인을 생각한다.

인증 게시판은 실명이다. 서명과 타임스탬프가 강제로 붙고, 게시 후 10분이 지나면 정정할 수 없다.

F급 감정사가 S급 유물 예상가를 공개 인증하는 건…… 자살행위에 가깝다.

하지만 조롱은 이미 당했다. 배문기가 내 서명 자리를 아깝다 했을 때부터, 이 건은 돈 문제가 아니라 증명 문제다.

사무실로 돌아온 건 아홉 시 오십 분. 자리 앞 단말을 켜자 팬 소리가 크게 돈다. 주변 사람들이 각자 서류 넘기는 소리, 자판 두드리는 소리를 낸다. 나는 헌터넷 인증 게시판에 접속한다. 제목을 입력한다.

'폐기 단검 감정 결과.'

본문은 짧게. 등급 추정 S, 예상 낙찰가 24억, 근거는 반응도 98.7%라고만. 코어 추정은 뺀다.

게시 버튼을 누르기 직전 손가락이 멈칫한다.

10분 뒤면 정정 불가.

이게 최선인가?

나는 숨을 내쉰 뒤 클릭한다.

게시판에 글이 뜬다.

┌ [인증] 감정사 한도윤(F) — 제목: 폐기 단검 감정 결과 │ 본문: S급 추정, 예상 낙찰가 2,400,000,000원. │ 근거: 각성 촉매 반응도 98.7%. └ 댓글: 없음

첫 댓글은 4분 만에 달린다.

“F급이 S급을? 웃고 가요.”

다음 댓글은 6분.

“반응도 측정 장비 있으면 인증샷부터 올려라.”

조회수는 오르는데 비추천이 더 빨리 붙는다. 댓글 알림이 계속 올라오면서 단말 스피커가 짧은 효과음을 반복한다. 사무실 안에서 나 혼자 그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옆자리 직원도 슬슬 화면을 힐끗거린다.

오전 열 시. 댓글 여덟 개. 일곱 개가 조롱이고 하나는 배 과장 지인으로 보이는 C급 감정사다.

“이거 배 과장님이 알면 서명 등록 취소 아니냐?”

그 문장을 본 순간, 나는 오히려 마음이 가라앉는다.

저 이름이 나온 덕분에…… 글이 묻히지는 않겠군.

댓글 알림이 한 번 더 뜬다. 익명이다.

“그 단검 저도 오늘 D구역에서 봤는데 반응도 98.7%가 아니라 91.3% 아니었어요? 그래도 높은 거 맞고, F급이 이걸 공개 인증한 건 용기 있는 일이에요.”

틀린 수치를 말한 뒤에 옹호를 붙이는 어설픈 댓글.

오세라다.

말투 버릇이 댓글에까지 배어 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작게 웃는다. 익명 쉴드라는 게 다 저런 식이면 내 신뢰는 더 깎일 텐데. 그래도 그 댓글이 달리고 나서 조회수가 한 번 더 뛴다.

“91.3%로 확인됨?”

누군가 꼬리 질문을 단다.

내 글은 그렇게 인증 게시판 상단에 떠올랐다. 조롱 7개, 엉터리 쉴드 1개. 배문기 과장 자리가 있는 방 쪽에서 의자 끌리는 소리가 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단말 화면을 그대로 둔다.

10분 정정 제한이 지났다는 타임스탬프.

이제 이 숫자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그 책임이 수수료로 돌아오는 날, 조롱 댓글 하나당 얼마씩 빠지는지 다시 계산한다.

1억 6천 8백에서 7로 나누면, 댓글 하나에 2천 4백만 원.

비싼 댓글이네.

월요일 오후 2시. 헌터 감정소 사무실의 사내 단말 세 대가 전부 경매 중계 화면을 띄우고 있었다. 내 자리는 창가 쪽이었고, 배문기 과장은 자기 방 문을 열어둔 채 자기 단말만 새로고침하고 있었다.

시작가 19억 2천. 호가가 오를 때마다 표국현 대리가 계산기를 두드렸다. 나는 목장갑 낀 왼손을 무릎에 얹고 화면만 봤다.

“21억.”

누군가 중계창에 숫자를 올렸다.

30초 뒤 22억 4천.

표국현이 계산기를 다시 쳤다. “수수료 7%면…… 1억 5천쯤이네.”

“조용히 해.”

배문기가 허리를 굽힌 채 말했다. 목소리에 침이 섞여 있었다.

22억 9천.

잠깐 멈췄다.

23억 5천.

내 오른손이 와이셔츠 팔꿈치 부분을 쥐었다. 꼬박 삼십 분을 올라간 경매가 마지막 30초를 남겼다.

23억 9천에서 호가창이 닫혔다. 시스템이 시작가를 다시 띄웠다.

─ 19.2억 → 24억 낙찰

의자가 튕겼다.

표국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 바퀴가 책상 다리에 부딪혀 두 번 튕겼다.

“이, 이거 실화야?”

내 폰이 먼저 울렸다. 이어서 사무실 단말 로그인 계정으로 같은 알림이 떴다.

``` [KB국민은행] 2,400,000,000원 입금 (감정 수수료 168,000,000원) ```

와……

숫자를 그대로 읽는데도 머릿속이 멍해졌다. 24억.

표국현이 내 폰 화면을 빼앗듯 들여다보더니 계산기를 다시 두드렸다. 숫자를 거꾸로 눌렀는지 '168,000,000'이 화면에 다섯 번 찍혔다.

“과장님, 수수료 1억 6천 8백! 1억 6천 8백이에요!”

배문기는 대답이 없었다. 새로고침 아이콘이 원을 그리는 게 유리 너머로 보였다. 서른 번쯤 돌린 뒤에야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딸깍.

반출 장부 캡처 창이 바탕화면에 반쯤 열렸다. 배문기는 그걸 보고 다시 경매창을 열었다가, 장부 캡처를 닫았다. 파일명이 작업표시줄에 남았다.

“과장님.”

내가 고개를 돌렸다.

“낙찰 수수료는 감정소 규정대로 7% 전액이 감정사 통장으로 들어오는 게 맞습니까. 제가 얼마를 떼는지 궁금해서요.”

배문기의 손이 마우스 위에 멎었다.

“네가…… 폐기 처리장 반출 장부는 제대로 썼다 이거지.”

“네. 어제 결재 올린 그대로요.”

배문기가 내 쪽을 보지 않고 모니터만 노려봤다. 입을 한 번 벌렸다가 코를 훌쩍였다.

“나중에 보자.”

……뭐지.

표국현은 그 사이 계산기 화면을 내 쪽으로 들이밀며 폰 카메라로 인증샷을 찍고 있었다. “이거 F급 첫 낙찰 24억 스크랩해도 되지? 인증글 댓글 분위기 지금 뒤집혔잖아.”

내가 뭐라 하기 전에 사무실 출입문이 열렸다.

강하린이 폰을 번쩍 들고 들어왔다. 검은 전술 재킷 소매가 바람에 휙 말려 올라갔다.

“한도윤 씨! 폐기 단검 낙찰 영상 다운받았거든. 이거 봐봐, 막판에 23억 9천에서 입찰 시간 끊기고 전광판 갱신되는 장면!”

배문기가 강하린을 힐끗 보다가 단말 전원을 껐다.

“여긴 지금……”

“아, 배 과장님 계셨네요. 잠깐 데려갈게요.” 강하린이 내 팔을 붙잡았다. “저녁 6시 라이브 직전인데 지금 스튜디오 가야 돼요.”

배문기가 한숨을 길게 들이쉬었다. 내가 그쪽을 한 번 더 보니 이미 자기 가방 끈을 말아쥐고 있었다.

저거, 단단히 삐었네.

강하린의 스튜디오는 지하 1층, 종전 상가 건물 구석방이었다. 방송용 조명 두 개가 꺼진 채 천장에 매달려 있었고, 협탁 위엔 반쯤 찬 보리차 병이 서 있었다.

강하린이 협탁 반대편 의자를 내게 밀어주고는 자기 자리에 앉았다.

“공동 기획 하자. 어차피 이번 낙찰, 내 채널 구독자가 절반은 만들었잖아.”

나는 손등으로 이마를 닦았다. “강하린 씨, 저는 F급입니다. 인증글 세 개 연속 적중해야 재심사 청구권이 생기는데, 지금 두 개 더 보여 줘도 사람들은 우연이라 읽을 겁니다.”

“아니, 잠깐만.” 강하린이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그래서 공동 기획이 필요하잖아. 내 채널 검증 접근 붙이면 우연 소리는 지워져. 이거 실화야, 조회수 지금 실시간 4만 7천이야.”

4만 7천.

손끝이 뜨거워졌다.

조명 스위치가 벽에 붙어 있었다. 강하린은 말하면서도 손가락으로 스위치를 두 번 눌렀다 껐다. 불빛이 깜빡이며 천장의 마이크 선을 비쳤다.

“방송에 뭘 공개할 생각입니까.”

“2차 폐기 유물 공개 검증. 내가 폐기 처리장 D구역 출입 허가 받아 놨거든. 일요일 오전. 거기서 네가 눈으로 고르는 걸 라이브로 돌리는 거야.”

나는 목장갑을 벗었다. 왼쪽 검지의 은색 링이 조명 아래서 반짝였다.

이 링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

방송 카메라가 이 손을 비추면 링이 찍힌다.

“제 감정 방식은 비공개입니다. 카메라 가까이 대면 곤란하고요.”

“그래서 조건이 있는데.” 강하린이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쳤다.

탁.

“수수료 50 대 50. 채널 지분 20% 주고. 2차 낙찰 성공하면 내가 채널 검증 각도 전부 손에 넣어줄게. 낙찰 장면, 감정 장면, 인증글 타임스탬프까지.”

“수수료 반으로 쪼개면 제가 가져가는 게 50%입니다. 지금 혼자 100%인데 왜 반을 줍니까.”

“내 채널 없이 24억 갔어? 조회수 4만 7천이 경매장 호가를 밀었잖아.”

이게 맞는 말이라 더 얄미웠다.

나침반 수치를 공개하지 않는 한, 여론 없이는 24억 낙찰도 없었다.

“지분 20%는 셉니다.” 내가 말했다. “2차 낙찰 성공 시 채널 지분 10% 추가. 대신 수수료 50 대 50은 그때부터고, 첫 방송에서 제 손이 화면에 잡히면 계약 없던 걸로.”

강하린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웃었다. 실눈이 접혔다.

“너 지금 손 보호 조건처럼 말하는데, 그거야 뭐 카메라가 손 안 찍게 세팅하면 되지. 좋아. 지분 10% 추가도 걸자.”

그녀가 폰을 들어 낙찰 영상을 틀었다. 전광판에 24억이 갱신되는 장면이 스피커를 통해 울렸다.

“이거 라이브 오프닝에 틀 거야. 사람들 반응 장난 아닐 걸.”

반응?

지금 내 심장도 장난이 아닌데.

“라이브 세팅부터 확인하시죠. 저는 카메라 각도랑…… 조명 위치 좀 봐야 하니까.”

강하린이 자리를 차고 일어나 조명 스위치를 정확히 세 개 켰다. 스튜디오 중앙의 의자가 환하게 드러났다.

“여기 앉아.” 강하린이 의자를 가리켰다. “오늘 라이브 진짜 열어야겠다. 아니다, 잠깐만. 넌 F급인 게 오히려 좋아. 사람들이 'F급이 24억?' 이렇게 들어오거든.”

사람들이 그렇게 들어와서 내 손을 찾기 시작하면…….

나는 어떻게든 보여 주지 않고 넘어가야 한다.

계산을 하니 어깨가 가벼워졌다.

수수료 반을 주는 것도 그 검증 각도에 대한 지분이라고 치자. 월세보다 비싼 조건이지만, 지금은 이게 저렴하다.

강하린이 마이크 테스트를 시작했다.

카메라 앵글은 협탁 쪽.

내 손이 프레임에서 잘리는 구도였다.

“자, 한 번 해보자.” 강하린이 마이크를 내 쪽으로 기울였다. “오늘 제목은 ‘F급이 24억을 만들었다’ 아니면 ‘폐기장에서 나온 24억’?”

“전자가 낫겠습니다. 사람들이 낮게 보고 들어왔다가 금액에 멈추는 제목이요.”

“너 말 잘하네. 그런데 나 라이브 켜면 반존대야. 시청자 보는 데서 반말하면 채널 이미지 흔들리거든.”

“저는 원래 공식 자리엔 존대입니다. 걱정 마세요.”

강하린이 배경 음악을 틀었다.

스튜디오의 빛이 분홍빛으로 바뀌었다.

그녀가 낙찰 영상의 마지막 장면, 24억 전광판을 배경 화면에 띄웠다.

가겠지. 이제.

'……진짜 가는 거야?'

“가는 거야. 오늘 같이 라이브한다.”

강하린이 방송 시작 버튼에 손을 얹으며 선언했다.

그 손끝이, 살짝 멈칫했다.

“여러분, 우리가 인증했던 폐기 단검, 24억에 낙찰됐습니다. 이거 실화예요. 그리고 이 자리, 폐기 단검 감정사 한도윤 씨랑 공동 기획 라이브로 시작합니다.”

F급 감정사, 나침반이 가격을 속삭인다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