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F급 감정사, 나침반이 가격을 속삭인다

2화

방송 시작 버튼 위에 얹힌 강하린의 손가락이 멈춰 있었다.

손끝은 버튼을 눌렀다 뗐다 하지도 않고, 그 위 몇 밀리미터를 떠 있었다. 스튜디오 분홍빛 조명이 그 손등을 비췄다. 일요일 밤. 하린TV 지하 스튜디오.

“수수료 반반에 채널 지분 20%. 어제 네가 부른 숫자 그대로야.”

강하린이 손을 거두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2차 폐기 유물 공개 검증. 내가 폐기 처리장 D구역 출입 허가 받아 놨거든. 다음 주 일요일 오전.”

나는 계산부터 했다. 2차 낙찰이 18억쯤 나온다 치면 수수료 7%에 1억 2천 6백만. 반띵 하면 6천 3백만. 기존 1억 6천 8백은 내 계좌에 이미 꽂혀 있다.

여기서 지분 20%를 더 내주면…… 미래 수익의 20%가 강하린 쪽으로 흐른다.

이거, 장사가 아니라 목줄 아닌가.

“지분 20%는 2차 낙찰 성공 시 10% 추가로 올리면 어떨까요. 지금 확정으로 20%를 드리면 제가 검증 실패했을 때 남는 게 없습니다.”

강하린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니, 잠깐만. 실패할 생각으로 들어오는 거야?”

“실패를 가정해야 수수료가 정확해지죠. 성공하면 20%에 10% 추가. 채널 쪽도 저보다 먼저 이득 봅니다. 조회수는 실패해도 남잖아요.”

강하린이 피식 웃더니 협탁 위 보리차 병을 집어 한 모금 삼켰다.

“너 진짜 장사치네. 좋아, 그 조건으로 가자. 근데 하나만 미리 말하는데.”

병을 내려놓고 그녀가 나를 똑바로 봤다.

“나도 감정사 시험 떨어진 적 있어. 그것 때문에 자격증 사진 퍼진 적도 있고.”

목소리가 반 톤 낮아졌다.

“그때 사진 돌던 거,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야. 넌 시험 이야기 꺼내면서 긴장하는 타입이잖아. 카메라 각도는 내가 잡을게. 손 보여주기 싫으면 평생 안 보여줘도 돼. 대신 입으로 다 말해.”

시선이 내 왼손으로 내려갔다가, 목장갑 위를 스치고 다시 내 얼굴로 올라왔다.

손을 계속 가리면, 시청자들은 그 가린 손을 본다.

독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쁘지만은 않다.

오히려 이쪽이 낫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 전부 설명하겠습니다. 대신 경매 시작 전까지는 제가 선별한 유물을 채널 예고에 통째로 올리지 말아 주세요. 각색은 낙찰 뒤에.”

“그거야 내 채널 컨셉이니까.”

강하린이 배경 음악을 끄고 조명 두 개를 내렸다.

“그럼 다음 주 일요일 아침에 여기서 만나는 거 아니고, 감정소 정문이지? 내가 차 태워줄게. 야, 근데 긴장 풀어. 네가 고른 거, 낙찰만 되면 내가 영상으로 만들어서 백만은 더 뽑아줄 테니까.”

월요일 오전 아홉 시 십칠 분.

헌터 감정소 폐기 처리장 D구역.

비가 오기 전처럼 눅눅한 흙냄새가 밀려들었다.

강하린이 출입 허가증을 단말에 대자 D구역 잠금선이 낮은 경고음을 냈다.

띡.

이 냄새. 폐기장은 몇 번을 와도 적응이 안 된다.

나는 먼저 들어가 오른손 주머니에서 깨진 나침반을 꺼냈다. 왼쪽 목장갑은 낀 채, 나침반은 오른손으로 쥐었다.

“여기 폐기 방어구 파편 쌓인 데는 공식 감정 하면 다 D급 안 나오던 곳이잖아. 뭐가 보여?”

대답 대신 걸음을 옮겼다. 나침반 바늘이 떨릴 때마다 방향을 바꿨다. 세 번째 오물통을 지나칠 때, 바늘이 우측으로 3도쯤 기울었다.

멈췄다.

이건…… 반응한다.

청회색 비늘 조각이 박힌 방어구 파편.

겉면은 검게 타 있었고, 크기는 팔뚝만 했다.

나는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시야를 강하린의 신발 쪽에서 파편 쪽으로 옮겼다.

[감정 결과] 등급: A | 예상 낙찰가: 1,870,000,000원 | 근거: 비늘 각성 반응도 91.3%

숫자가 눈 안으로 들어오자 이번엔 호흡부터 가라앉았다.

18억 7천.

수수료는 1억 3천90만. 반띵이면 나한테 6천 5백 45만. 3연속 적중까지 단 2회 남았다.

“이 겁니다. 비늘 각성 반응도 91.3%. 예상 낙찰가 18억 7천만 원으로 보겠습니다.”

강하린이 내 옆에 앉았다. 그녀는 나침반이 아니라 파편을 보고 있었다.

“반응도는 어떻게 아는데?”

“시스템 감정 결과입니다. 세 줄로 뜨는 거, 감정사 본인에게만 보이고 근거는 말할 수 있지만 화면 자체는 공개 못 합니다.”

“그럼 화면 대신 네 목소리로 가는 거네. 좋아, 그게 더 화제야. F급 감정사가 18억 7천 부른다.”

그녀가 방수 파우치를 꺼내 파편을 비스듬히 세웠다. 카메라는 파편의 비늘 반사광만 잡는 각도로 내려갔다. 내 손은 프레임에 없었다.

“이거 지금 촬영해도 돼? 선별 장면만 짧게.”

“경매 시작 전까진 본문에 안 올린다는 조건으로요.”

“알겠어. 야, 근데 너 방금 존댓말에서 숫자 부분만 반말처럼 빨라지더라. 그거 재밌으니까 방송에서도 그렇게 해.”

정오. 사무실 단말 앞이었다.

헌터넷 인증 게시판을 열고 제목부터 쳤다.

┌ [인증] 감정사 한도윤(F) — 제목: 폐기 방어구 파편 감정 결과 │ 본문: 각성 반응도 기반 예상 낙찰가 18.7억. 경매 개시 전 등록. 근거는 감정사 전용 시스템 산출. └ 댓글: “F급이 또 헛소리.”

첫 댓글이 18분 만에 달렸다.

……18분 만에?

“2차 낙찰 시작가가 감정가의 80%에서 열리면 14억 9천 6백만이네. 지금 24억 건은 운이었다는 거 인증하는 거 아니야?”

내가 단말 화면을 내려다보는 동안 두 번째 댓글이 붙었다.

“각성 반응도 91.3%가 무슨 소리냐. 공식 감정서엔 그런 수치 못 올리잖아. F급 인증글이니까 가능한 개소리.”

세 번째 댓글은 더 짧았다.

“1차 우리가 틀렸잖아. 이번에도 지켜보자.”

나침반은 여전히 오른손 주머니 안에 내 손을 얹은 채 있었다.

시스템 창을 댓글에 붙일 수도, 화면을 공개할 수도 없다. 이 인증글은 서명과 타임스탬프만 강제로 박히고, 10분 지나면 정정할 수 없다.

정정 못 한다…… 이대로 가는 거다.

댓글이 더 쌓이기 전에 게시 버튼을 누른 지 이미 10분이 지나 있었다.

그때 새 댓글이 올라왔다.

“세라다: 또 맞췄다. 1차 24억 예상가 스크린샷 올린다. 이번 18.7억도 저장해 둠. 인증글 정정 안 되니까 끝까지 가자.”

스크린샷 썸네일이 댓글 밑에 붙었다. 24억 낙찰 전 예상가 캡처가 그대로 보였다.

세라다.

그 익명 아이디로 저장해 둔 캡처에는 올린 시각이 함께 찍혀 있었다. 시각은 1차 인증글 게시 3분 뒤.

……3분 뒤라고?

그 뒤로 조롱 댓글들이 뜸해졌다. 못 박은 댓글 하나가 끝에 붙었다.

“지분 계산은 나중에 하고, 2차 낙찰까지 14일 남았다. 18.7억 못 넘기면 그때 인증글 내려 달라.”

나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단말을 닫지 않았다.

14일. 그 안에 18억 7천이 경매장에서 호가를 부르는지가 검증된다.

그리고 수수료는 1억 3천90만. 성공하면 그중 반은 강하린 몫이고, 지분 10%가 추가로 그쪽으로 넘어간다.

“월세보다 비싸네.”

혼잣말이 사무실 공기를 짧게 갈랐다.

이틀 뒤 저녁. 헌터 옥션 경매장의 형광등이 여섯 번 깜빡였다.

경매 전광판은 아직 직전 품목을 비추고 있었고, 내 옆자리에서 강하린이 무릎 위에 폰을 뒤집어 놓았다. 배문기는 두 줄 앞, 표국현은 계산기를 반쯤 꺼낸 채 앉아 있었다.

두 번째 인증품, D구역에서 내가 골라낸 부러진 손거울은 시작가가 14억 9천 6백만 원으로 붙었다.

“이번 건 낙찰가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15억 넘기는 순간 수수료 1억 넘습니다.”

표국현이 몸을 앞으로 숙이며 말했다.

“조용히.” 배문기가 침을 삼켰다. “경매 시작도 안 했다.”

강하린이 내 어깨를 손등으로 쳤다.

“저기, 라이브 켠다고 하면 시청자 더 몰릴 것 같은데. 지금 실시간 4만 7천이거든.”

“여기는 방송 허가 구역이 아니니까요.”

“아쉽다. 다들 새로고침만 하고 있잖아.”

정확했다. 배문기는 단말 새로고침, 표국현은 계산기 리셋 버튼을 세 번 눌렀다. 나는 목장갑 낀 왼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깨진 나침반이 손등에 닿았다.

경매사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울렸다.

“다음 품목. 폐기 처리장 D구역 출처, 각성 촉매 추정 반투명체. 관리번호 소실분.”

손거울의 사진이 전광판에 올라왔다.

유리 대부분은 깨져 있었고, 테두리만 각성 흔적 때문에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이걸…… 15억?

주머니 속 손이 저절로 나침반을 움켜쥐었다.

시작가 14억 9천 6백만 원.

호가가 올랐다. 15억 7천. 16억 2천. 화면 숫자가 튈 때마다 표국현의 계산기가 짧게 울렸다.

“17억 4천!”

표국현이 자리에서 반쯤 일어나다 앉았다.

배문기는 단말을 새로고침했다. 나는 화면 속 호가와 내 호흡을 맞추지 않으려고 허벅지에 힘을 줬다.

18억 1천.

18억 5천.

경매사가 ‘10초’를 외쳤다.

18억 7천만 원.

전광판 숫자가 멈췄다.

내 폰이 진동했다.

[KB국민은행] 187,000,000원 입금 (감정 수수료 13,090,000원)

……들어왔다.

표국현이 계산기를 두드렸다.

“낙찰가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18억 7천의 7%가 1억 3천90만 원. 이게 말이 된다고? 폐기장에서 나온 게 연속 두 번?”

그가 계산기를 흔들었다.

“수수료만 두 번 합쳐서 2억 9천990만 원입니다, 한도윤 씨.”

내가 대답하기 전에 폰이 한 번 더 울렸다. 헌터넷 알림.

인증 글 아래 자동으로 박힌 텍스트가 보였다. ‘연속 적중 2회 인증. 수정 불가. 감정사 서명 로그 기록.’

배문기가 단말을 새로고침했다.

한 번 더.

그리고 입을 다물었다.

그의 목덜미가 단말 빛에 파랬다.

“과장님.” 내가 준비한 말로 시작했다. “감사하겠다고 여쭈러 온 건 아니고요. 정산이 두 건 다 확정됐으니 오늘은 퇴근하겠습니다.”

배문기가 단말을 새로고침했다. 움직일 줄 몰랐다.

강하린이 내 폰을 낚아채려다 관뒀다.

“야, 연속 적중 2회면 등급 재심사 청구권까지 얼마 안 남았네. 이거 실화야?”

“하나 남죠. 다음 인증 전엔 좀 조용히 지내려고요.”

“왜? 조용히 지내기엔 채널 각도가 아까워. 오늘 밤 공지 올리자.”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쪽 출입문이 열렸다.

검은 후드 셔츠에 군용 팬츠. 남궁혁이 경매장 대기실 쪽에서 걸어왔다. 손에는 운영자용 단말.

강하린이 반쯤 돌아섰다.

“아니, 잠깐만. 저 사람 우리 뒤에서 언제부터 있었어?”

남궁혁은 우리 테이블 앞에 서서 단말을 돌려 보였다.

화면엔 감정서 서명 로그의 빈칸이 열려 있었다.

“근거는?”

나는 왼쪽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았다.

이거, 못 본 걸로는 못 넘어가겠네.

“이미 인증 글에 수치가 있습니다. 반응도 98.7%요.”

“공식 계측값은 아닙니다. F급 감정서 단독 발급 한도도 넘었고.” 남궁혁의 목소리가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서명 로그 공개를 요청합니다.”

그가 단말을 한 번 더 넘겼다. 헌터넷 등록 화면이 떠 있었다.

제목: ‘한도윤 감정서 서명 로그 공개 요청’.

“지금 올립니다. 경매장 시스템 접속 권한은 제가 갖고 있으니 청구가 아니라 절차입니다.”

배문기가 그때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도 할 얘기가 있다.” 그가 나를 보지 않고 말했다. “수수료 동결 감사 의뢰를 감정소에 낸다. 첫 건부터 이번 건까지. F급이 S급 추정 물건을 두 번 연속 맞히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니까.”

강하린이 웃음을 감췄다.

“배 과장님이요? 지금?”

“감사는 요청할 수 있다. 네가 싫어도.” 배문기의 단말 화면이 잠깐 기울었다. 거기엔 감사 의뢰서 제출 완료 알림이 떠 있었다.

내가 배문기의 얼굴을 봤다. 그는 단말을 자기 가방에 밀어 넣으며 입술을 말았다.

자기 반출 장부 캡처가 감사 때 언급될까 봐 무서운 거겠지.

나는 그 입술이 다시 열리기 전에 숨을 골랐다.

좋아. 둘 다 오늘 밟아주자.

“좋네요. 둘 다 오늘 하시죠.”

강하린이 내 소매를 잡았다.

“야, 미쳤어? 서명 로그 공개 요청이랑 수수료 동결이 지금 같이 들어오는데 좋네가 나와?”

“공개 검증이 이미 시작됐으니 피할 이유가 없습니다. 제가 가진 건 수수료 두 건과 인증 두 건이에요. 숨길 게 없으면 동결 풀립니다.”

내 목소리가 내 생각보다 빠르고 낮았다.

남궁혁이 단말을 탁 소리 나게 접었다.

“등록 완료.”

그가 화면을 내 쪽으로 들이밀었다.

“근거를 대라. 지금이 아니라 검증 댓글에서도.”

배문기가 그 다음을 받았다.

“감사 의뢰 접수됐다. 수수료는 결과 나올 때까지 묶인다.”

나는 숨을 한 번 더 들이켰다.

월세보다 비싼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F급 감정사, 나침반이 가격을 속삭인다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