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F급 감정사, 나침반이 가격을 속삭인다

3화

“좋네요, 공개 선별이면 저한테도 이득입니다.”

입이 먼저 움직였다.

남궁혁이 건넨 단말 화면의 서명 로그 요청 글은 아직 흰 바탕에 검은 글씨 그대로였다.

목덜미부터 열이 올랐다.

손끝까지는 아니고, 귀 뒤쪽.

감정소 이층 소회의실 공기가 닫혀 있었다.

표국현이 계산기를 두드렸다. 초록 액정에 숫자가 몇 번 오르내리다가 멈췄다.

“낙찰가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수수료 동결은 지금부터 효력입니다. 2차 건 수수료 1억 3천90만 원도 묶입니다.”

그가 계산기 옆 버튼을 한 번 더 눌렀다.

화면에 ‘HOLD’가 떴다.

이거…… 진짜 묶인 거야?

“3차 유물 선감정서 제출하시고요. 반출 이력 원본까지 첨부하셔야 재개 검토 들어갑니다.”

배문기가 내 뒤에서 코를 훌쩍였다.

들릴락 말락 한 소리였다.

탁자 위에 식은 보리차 두 병.

“아니, 잠깐만. 공개 검증 채널로 쓰면 되잖아.”

“수수료 동결이요? 좋은 썰이에요. ‘F급 감정사가 수수료 동결 앞에서 3차 공개 선별을 강행한다’ 이거 실화야.”

배문기가 끼어들었다.

“감사 의뢰가 접수된 상태에서 공개 선별이라니, 지금 장난하자는 거냐?”

“장난이라뇨, 과장님. 저한테는 남은 게 그거 하나라서요.”

“선감정서 내겠습니다. 반출 이력도 갖고 갈게요. 대신 공개 선별은 하겠습니다. 오늘 안에요.”

표국현이 계산기를 접었다.

딱.

오늘 안에.

입 밖으로 꺼내고도 심장이 늦게 뛰었다.

“일정 잡아드릴게요. 3차 후보 선별부터 공개 진행으로요.”

강하린이 내 팔꿈치를 툭 쳤다.

“봐봐, 이게 바로 콘텐츠야. 대기실에서 찍던 분위기랑 다르다고.”

그녀가 단말을 꺼내 메모에 무언가 적었다.

하린TV 예고 영상 준비 목록이었다.

끈적한 땀이 밴 뒤였다.

두 시간 뒤, 헌터 감정소 폐기 처리장 D구역.

파쇄기 소리가 멀리서 규칙적으로 끊겼다.

“오빠, 진짜 괜찮은 거야?”

“뭐가.”

“수수료 묶였잖아. 그런데도 선별해? 아, 아닌가?”

“묶인 돈은 언젠가 풀려. 안 풀리면 그건 그거대로 감사 결과가 내 잘못이 아니란 뜻이고.”

나는 손도구로 파손된 관리번호 유물 더미를 들췄다.

오세라가 내 옆에서 태블릿을 켜 관리번호가 안 읽히는 유물을 한쪽으로 모았다.

지게차가 지날 때마다 바닥이 울렸다.

“3차 유물은 이 더미에서 고르는 게 조건이야. 배 과장이 관리번호 있는 건 전부 선점해 놨거든.”

오세라가 입술을 한 번 물었다.

“그 사람, 여기 반출 장부 까서 다 확인했대.”

“그럴 줄 알았지.”

나는 왼손에 쥔 깨진 나침반을 가슴 쪽에서 조금 들어 올렸다.

나침반 바늘이 유물 더미 쪽으로 흔들렸다가, 금방 한 지점을 가리켰다.

……여기야?

차가웠다.

그 근처의 공기가 먼저 달라졌다.

나는 더미 아래쪽에 끼어 있던 손바닥만 한 금속판 조각을 집었다.

표면에 관리번호가 긁혀 지워져 있었고, 가장자리 두 곳이 녹아 붙어 있었다.

그 순간, 장갑 위로 냉기가 스며들었다.

[감정 결과] 등급: S | 예상 낙찰가: 9,980,000,000원 | 근거: 각성 코어 밀도 99.2%

손끝이 아니었다.

……뭐야, 이거.

숨이 반 박자 늦게 멎었다.

나는 손도구를 내리고 그 금속판 조각을 두 손으로 감쌌다.

오세라는 내 얼굴을 보다가 말을 접었다.

99.8억. 수수료 7%. 6억 9천 8백 60만.

월세가 몇 달치냐, 이거. 서울 반지하 84만 원짜리 월세로 83개월.

웃음이 목까지 차올랐다가 기침으로 나왔다.

“오세라, 이것 봐.”

“뭐, 뭐야? 이거 관리번호가 아예 없는데.”

“그러니까 좋은 거지. 배 과장 장부에 없는 물건이라도 시스템 이력은 남을 테니까.”

나는 오세라의 태블릿을 끌어당겨 해당 유물의 던전 유입 일자와 폐기 반입 기록을 조회했다.

화면에 반입 코드가 굴러다녔다.

이거 실화야.

“여기, 이중 백업해.”

“내 단말에? 그건 사내 기록이라 오빠 권한으로도 무단 저장이면 문제 안 돼? 아, 아닌가.”

“감사가 걸려 있는 내가 단독 보관하면 분실이다. 너한테 사본 하나가 있으면 원본이 사라져도 대조할 게 남아.”

“그럼 난, 이번엔 댓글 알바 말고 진짜 백업이네.”

오세라가 얼굴을 펴려다가 다시 긴장한 표정으로 내 뒤쪽을 봤다.

발소리가 끊겼다.

코 훌쩍이는 소리.

“거기 뭘 만지고 있어.”

배문기였다. 감정소 밤색 가운을 입은 채, 아까 소회의실에서보다 두 걸음 더 가까이 들어와 있었다.

손에는 반출 장부용 단말.

“선별 중입니다, 과장님.”

“선감정서 제출 전 폐기장 실물 임의 접촉이 금지는 아니냐? 요즘 후배들은 참 감을 모르네. 내가 너 때는 말이야, 유물은 눈으로 익히는 게 먼저였다.”

그가 내 손의 금속판 조각을 봤다.

시선이 그대로 멈췄다.

나는 물건을 분리 적재함에 내려놓지 않고 가슴 쪽으로 들었다.

“관리번호 없이 반입된 유물로 보이네.”

배문기가 단말을 들어 뭔가를 검색했다. 화면이 두어 번 새로고침됐다.

이마에 얇게 땀이 올라왔다.

긴장인가…… 아니, 초조함인가.

“기록 오류다. 여기 장부엔 이 무게 유물이 삭제된 게 아니라 누락으로 나와.”

“누락이요?”

“그러니까 압수다. 관리번호 없는 유물은 둘 수 없어. 내가 장부 관리자니까.”

오세라가 내 소매를 뒤에서 살짝 잡았다.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번엔 진짜 저울질할 시간이군.

“압수하시면 그때는 이중 백업 로그를 못 보시는 걸로 하시죠.”

배문기의 손가락이 멈췄다.

“뭐?”

“이 물건, 반입 이력이 있어요. 관리번호가 긁혔을 뿐이에요. 시스템 기록엔 남아 있고, 지금 오세라 단말에 사본도 있습니다.”

오세라가 태블릿을 두 손으로 가슴에 안았다.

나는 배문기에게서 한 걸음 물러서며 손등이 다시 식는 걸 느꼈다.

배문기가 자기 단말로 이력 조회를 했다.

화면이 위에서부터 천천히 갱신됐다.

사라진 관리번호 구간이 붉게 표시됐다.

“이거…….”

그래서 이번엔, 얼마치야.

“과장님 장부에서 삭제된 걸 복원했을 뿐입니다. 불법 반출 정황으로 공개 감사 다루시면 안 그래도 묶인 수수료에 감사 문항이 더 늘어나요.”

오세라가 반 박자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굳은 얼굴로 백업 로그 화면을 배문기 쪽으로 밀었다.

배문기는 단말을 두 번 다시 새로고침했다.

세 번째엔 손가락이 헛돌았다.

화면에 ‘조회된 감정소 반출 원본 대조 일치 1건’이 떠 있었다.

그의 작은 눈이 더 작아졌다.

땀 냄새가 풍겼다.

“이게 내 장부 문제라고 단정할 수는 없어.”

단정이 아니라…… 이미 절차 직전인데.

“압수를 계속하시면 단정이 아니라 절차로 갑니다. 공식 감사 재신청하실 거면 제가 막지 않아요.”

나는 천천히 더 무거운 쪽으로 말을 떨어뜨렸다.

“대신 지금 이 유물, 공개 선별 대상으로 유지합니다. 배 과장님 반출 장부 원본과 제 백업 로그를 같이 붙여서요.”

배문기가 입술을 말았다.

단말을 가방에 넣었다가 다시 꺼냈다.

그러다 아무 버튼도 누르지 못하고 손을 내렸다.

“나중에 보자.”

그가 돌아섰다. 걸음이 조금 빠르다.

코 훌쩍이는 소리가 세 번, 네 번 이어지다 파쇄기 소리에 묻혔다.

오세라가 내 옆에서 숨을 길게 내쉬었다.

“오빠, 이거 진짜 위험했어. 너 괜찮아? 아, 아닌가…….”

“지금 계산 중이야. 네 태블릿에 저장된 백업 로그 하나가 우리 수수료보다 더 세게 일했네.”

나는 금속판 조각을 천천히 완충재 있는 이송함에 올렸다. 손등은 여전히 뜨거웠다. 열이 손끝으로 내려가며 가라앉았다.

99.8억이면 정부 귀속 청구 기준인 100억에 근접한다.

아직 넘지 않았지만……

한 끗 차이다.

30일 청구가 뜨면……

이 모든 게 백지가 된다.

나는 폐기 처리장 안내 방송이 또 귀속 규정을 틀기 전에 오세라 쪽으로 몸을 돌렸다.

“선별 일정, 표국현한테 확정 문자 보내. 3차 후보는 이걸로.”

“이걸로? 정말?”

오세라가 태블릿 화면을 두 번 확인했다. 시스템 이력에 백업 완료 표시가 떠 있었다.

“사람들한테는 반출 이력 대조 중인 유물이라고만 해. 금액은 아직 아무도 몰라야 해.”

나는 물끄러미 금속판 조각을 내려다봤다. 감정사 전용 시스템 창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잔상처럼 [근거: 각성 코어 밀도 99.2%]가 눈꺼풀 안쪽에 남아 있었다.

깜빡, 하고 사라졌다.

강하린이었다면 이걸 보고 뭐라 했을까.

아마 “이거 실화야” 한 번 던지고 스튜디오 예고부터 뽑았을 거다.

멀리서 D구역 정문이 열리며 환기가 도는 소리가 났다.

휘익.

차가운 공기가 무릎 쪽을 훑었다. 나는 오세라에게 한 번 더 말했다.

“이 유물 보이는 곳에 두지 마. 선감정서 제출 전까지는 네 태블릿과 이송함 위치만 추적돼야 해.”

“응. 나, 오늘 저녁까지 여기 있고. 아, 아닌가.”

“아니. 넌 먼저 올라가. 나도 곧.”

오세라가 두어 발짝 갔다가 멈췄다.

“오빠.”

“응.”

“……이번에는 내가 백업 맡은 거, 제대로 해도 되는 거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이송함 덮개를 이마 높이까지 들어 확인하고, 다시 닫았다.

손끝에 남은 온기.

그걸로 99.2라는 숫자가……

조금은 견딜 만하게 느껴졌다.

저녁이 내려앉은 헌터넷 관제실. 손끝의 온기는 이미 식어 있었고, 모니터의 푸른 불빛이 어깨에 얹혔다.

경매장 대기실을 먼저 나선 쪽은 배문기였다. 감사 의뢰 제출 완료 알림을 가방에 넣고, 나를 보지 않은 채 어깨로 문을 밀었다.

복도 쪽 발소리가 멀어질 때, 강하린이 내 옆에서 숨을 내쉬었다.

“나 촬영본 편집하러 스튜디오 간다. 서명 로그 공개되면 링크 보내.” 그녀가 내 소매를 놓으며 말했다. “공개 검증, 지고 오지 마.”

지고 오면……

수수료가 아니라 채널 지분부터 까인다.

나는 그 말을 속으로 삼켰다.

강하린이 먼저 나가고, 남궁혁은 자기 단말을 조끼 안주머니에 넣으며 뒤를 돌았다.

“관제실로 갑니다. 오늘 밤 안으로 로그 대조를 끝내겠습니다.”

내게도, 남은 사람들에게도 아닌, 통로 중간쯤에 대고 말하는 소리였다.

“저는요?” 내가 물었다.

“기다리십시오. 결과는 헌터넷에 뜹니다.”

그가 걸어 나갔다.

나는 2초쯤 그 목덜미를 보다가 반대로 걸었다.

헌터넷 관제실은 경매장 서쪽 별관 3층에 있다. 남궁혁은 지문 한 번, 목에 건 보안 카드 한 번, 그리고 전면 유리문 옆 천장 카메라를 한 번 올려다보는 것으로 출입 절차를 끝냈다.

안쪽 책상엔 밤 근무 입회 진행관 한 명이 앉아 있다가 그가 들어오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운영자님, 순찰 기록은 방금 넘겼습니다.”

“오늘 로그 열람 있습니다. 헌터넷 인증 서버 쪽 접속이요.” 남궁혁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누구도 이 화면 뒤에 서지 마십시오.”

입회 진행관이 고개를 끄덕이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남궁혁은 자기 운영자용 단말을 책상 위에 눕히고, 유선으로 관제실 단말에 연결했다.

헌터넷 인증 서버의 서명 로그 창이 떴다.

내 최근 인증 두 건의 서명, 타임스탬프, 발급 라인 추적 코드.

한 줄씩 올라왔다.

그는 먼저 타임스탬프부터 눌렀다.

“등록 시각은 인증글 작성 시각과 3초 차이.”

작게 중얼거렸다.

수정 금지 구간 안쪽이었다.

다음으로 서명을 눌렀다. 전자 서명 해시가 뜨고, 그 아래로 발급 라인이 분리되어 나왔다.

L-0233.

작은 글씨였다. 남궁혁의 손가락이 그 줄에서…… 멈췄다.

……또 L 라인?

7년 전 사건 기록을 백업 서버에서 불러왔다. 나란히 띄운 화면. 가짜 감정서 아홉 건의 발급 라인 목록이 왼쪽에, 방금 기록이 오른쪽에. 번갈아 훑던 그가 두 파일을 겹쳤다.

같은 라인이 그대로 포개졌다.

“이번에도 같은 라인이야.”

숨이 얕아졌다.

이걸 그대로 넘긴다고?

남궁혁은 겹친 화면을 캡처하지 않았다. 로그 원본과 7년 전 기록의 해시값만 별도 파일로 추출했다. 파일명도 없이. 암호화 키는 관리자용 보안 카드와 지문을 한 번에 넣어 생성했다.

저장이 끝나자 단말 연결을 끊고, 잠깐 뒤로 기댔다.

의자 등받이가 뒤로 1cm쯤 밀렸다.

“확인했습니다.” 남궁혁이 관제실 안쪽을 향해 말했다. 입회 진행관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다만 조작 용의자로는 안 갑니다.”

근데 이번엔……

저장된 증거 파일을 열지 않은 채 폴더째 잠갔다.

“협회 감사로 보내면 라인 하나를 용의자 감정사에게 덮고 끝납니다. 7년 전과 같습니다.”

그가 화면을 끄며 덧붙였다.

“그러니 이번엔 공개 재감정으로 올립니다.”

라이닝 무너지는 걸 지켜봐야 하니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끼 지퍼를 목까지 끌어올렸다.

등을 보이는 채로 입회 진행관에게 업무 인계를 남겼다.

“순찰 기록 한 번 더 뽑아 제 앞자리에 두십시오.”

마지막 문장이 관제실 안에 짧게 가라앉았다. 남궁혁은 손을 내려 화면을 다시 켜지 않았다.

F급 감정사, 나침반이 가격을 속삭인다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