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손해사정사, 사기 확률이 보입니다

1화

인생은 결국 정산이다.

특히 이런 밤은 더 그렇다. 잔해 앞에 서면 모든 게 숫자로 바뀐다.

야간 조명이 검은문 붕괴 현장의 잔해 더미를 비스듬히 잘라냈다. 불빛 아래 먼지가 유리 가루처럼 떠 있었고, 금속 냄새가 찬 공기와 섞여 목 안쪽을 긁었다. 내 손은 이미 철골 조각 위에 얹혀 있었다. 아크베인 현장 통제 요원이 오른쪽에서 걸어온다.

부츠 소리가 깨진 콘크리트를 밟으며 일정한 간격으로 가까워졌다.

허용 시간이 짧다.

손전등 불빛이 내 그림자를 철골 위로 길게 눕혔다.

손끝부터 열이 올랐다.

익숙한 작열감. 판독이 시작되면 언제나 피부 안쪽이 먼저 반응했다.

[손해 판독 창]

대상: 검은문 붕괴 현장 잔해

실제 손해액: 210,000,000원

청구액: 3,000,000,000원

사기 확률: 87.4%

근거 태그: 조작된 파괴 흔적 / 과다 견적 / 중복 청구

숫자가 손바닥에 박혔다.

열이 아니라 바늘로 찍은 것처럼.

30억이다.

실제 손해 2.1억에 청구 30억.

숫자 자릿수부터가 말이 안 된다. 소수점 아래로 숨긴 손해가 아니라, 아예 뒤집어쓴 규모다.

……이게 야근으로 나올 숫자야?

성과급이 3%면 9천만. 공단 포상금까지 붙으면 최대 2억.

야근 수당과는 비교가 안 된다.

손바닥에 맺힌 땀이 철골에 닿아 작은 점을 남겼다.

철골을 더 쥐었다. 쇠의 결이 손금을 따라 눌렸다. 조작된 파괴 흔적. 타격 방향이 일정하지 않고, 절단면이 안쪽에서 밀린 게 아니라 바깥에서 눌린 자국이다.

이건 게이트 붕괴가 아니다.

붕괴 충격이라면 철골 끝이 안쪽으로 휘어야 정상이다.

누군가 정리한 뒤의 모양이다.

겉보기엔 폐허인데, 보험 청구 서류에 맞춘 폐허다.

……이거, 사고로 덮기엔 흔적이 너무 깔끔한데.

잔해 밑에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마치 현장이 숨을 죽이는 것 같았다.

“거기 접근 제한입니다.”

아크베인 요원이 손전등을 내 얼굴에 비췄다. 눈이 시려 고개를 약간 옆으로 틀었다. 나는 천천히 철골에서 손을 뗐다.

“죄송합니다. 야간 조사 권한이 있어서요.”

목덜미가 화끈거렸다. 손바닥에는 아직 잔해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요원이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어깨에 걸친 무전기에서 낮은 잡음이 새어 나왔다.

“명령서 확인하겠습니다.”

나는 회사 목걸이 사원증을 들어 보였다. 요원은 태블릿에 내 이름을 찍고 무전을 들었다.

시간이 없다.

서두르자.

나는 오른손으로 내 태블릿을 꺼내 판독 창을 다시 띄웠다. 수치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손바닥 안쪽으로 더 깊이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서진우 씨. 오늘 접촉 가능 구역은 여기까지입니다.”

“네, 확인했습니다.”

요원이 시선을 거두는 순간, 나는 태블릿에 사정 보고서 초안을 눌러 담았다. 실제 손해액, 청구액, 사기 확률, 근거 태그 셋. 그리고 사내 클라우드 임시 폴더에도 같은 파일을 하나 더 올렸다.

차민구가 상신을 막는다면 태블릿만으로는 위험하다.

분산 저장.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파일명은 날짜와 접촉 지점만 남겼다.

그게 내가 가진 유일한 보험이었다.

철골의 열기는 사라졌다.

손가락 끝만 얼얼하게 남았다.

이제 남은 건…… 결재선이다.

현장은 이미 끝났다. 여기서부터는 사무실 싸움이다.

나는 보고서 초안을 닫고 사무실 복귀를 결정했다. 공식 상신을 넣기 전에, 오늘 밤 이 수치를 살아남게 해야 했다.

보고서를 켠 채로 걷자 화면 불빛이 손에 희게 번졌다.

이동 중 밤공기가 목덜미를 식혔다. 가로등 밑을 지날 때마다 태블릿 화면에 내 얼굴이 비쳤다. 사내 클라우드 임시 폴더에 올린 파일이 동기화 중인지 두 번 확인했다. 사무실 현관문을 지나 내 자리로 걸어가는 동안 태블릿을 열어 보고서 초안을 띄워 두었다.

사무실 불은 내 자리 위 형광등만 켜져 있었다. 모니터 대기 화면 두 개가 어둠 속에서 푸르게 깜빡였다. 강하린이 태블릿을 넘겨받아 보고서 첫 장을 넘긴다. 차민구는 팀장 옆자리에서 자기 커프스를 엄지로 문지르며 기다렸다.

강하린이 화면을 두 번 탭했다.

탭 소리가 빈 사무실에 작게 울렸다.

“실제 손해 2.1억. 청구 30억. 사기 확률 87.4%.”

“현장 접촉 판독입니다. 근거 태그는 조작된 파괴 흔적, 중복 청구, 과다 견적.”

차민구가 내 쪽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웃는 얼굴이었는데 어깨선이 옷 위로 도드라질 만큼 힘이 들어가 있었다.

“서진우 씨, 그간 아크베인 청구 검증은 저희 쪽 우선순위가 별도입니다. 이런 수치가 올라가면 보험사 내부 결재선이 먼저 흔들려요.”

결재선이 흔들린다.

그 말은 곧…… 누군가 그 결재선에서 자릴 지킨다는 뜻이었다.

아, 그렇지. / 이 수치가 올라가면 누군가는 징계 각오를 해야 하니까.

“보험 청구 우선순위가 높다는 말씀이시죠. 그런데 청구액이 30억이면 우선순위 이전에 검증 대상 아닙니까.”

“말을 예쁘게 해도 수치는 수치입니다. 이 보고서, 상신하면 서류 실수로 반려될 거예요.”

강하린이 태블릿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플라스틱이 책상에 닿는 소리가 유난히 단단하게 들렸다.

“서류 실수라면 수정 지시를 내리세요. 어떤 항목인지.”

“계약 등급 산정이 달라요. 검은문 붕괴는 S급 게이트 조사 권한이 있는 길드 사안입니다. 일반 손해사정 보고서가 먼저 올라가면 안 되죠.”

내가 끼어들었다.

차민구의 시선이 내 쪽으로 옮겨 붙었다.

“그럼 아크베인 쪽이 같은 수치를 검증해서 올리면 되는 거고요.”

차민구가 미소를 유지한 채 손가락으로 책상 모서리를 두 번 두드렸다. 목덜미가 옷깃에 닿는 순간 근육이 실룩였다.

스스로 안으로 누르는 것처럼.

저 미소가…… 오늘 야근보다 버겁다.

“서진우 씨, 좋게 생각합시다. 아크베인도 이번 청구를 재검토 중입니다. 서로 교차 검증이 늦어지면 보험사만 좋아요.”

강하린이 일어나 스크린 쪽으로 걸어갔다. “공식 보도는 보류합니다. 상신도 오늘은 안 올려요.”

내가 되물었다. “수치가 이렇게 나왔는데요.”

“아크베인이 먼저 방어 논리를 낼 겁니다. 우리가 먼저 공개하면 계약 등급 분쟁으로 덮여요. 진우 씨, 근거 태그 원본은.”

“태블릿에 있습니다. 클라우드 임시 폴더에도 분산 저장해뒀습니다.”

강하린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차민구의 표정에서 미소가 반쯤 가라앉았다.

손가락이 커프스에서 떨어졌다. 커프스가 책상 끝에 부딪혀 가벼운 소리를 냈다.

……이게 무슨 조합이지.

강하린이 내 쪽을 봤다. “보고서는 사내 클라우드 결재함에 올립니다. 공식 상신 아녜요. 등록만.”

차민구가 턱을 약간 들었다. “그건.”

“서류 실수라는 거, 기록이 필요해요. 닫아둔 채로 두면 안 되죠.”

강하린이 태블릿에서 파일을 결재함에 올리는 동안, 차민구는 내 옆에 서 있었다. 정장 어깨 솔기가 팽팽했다.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서진우 씨, 재검증 자료는 언제든 받겠습니다. 다만 상신은 사고 조사 합동 회의 뒤가 좋겠어요.”

“그 회의 전에 제 자료가 사라지지만 않으면요.”

차민구가 짧게 웃고 퇴근했다. 구두 소리가 복도 밖으로 멀어질 때까지 강하린은 클라우드 폴더를 정리했다.

화면에 잠금 표시가 떴다. 잠금 아이콘 옆에 '열람 전용'이라는 글자가 작게 뜨고, 내 이름이 접속 이력에 남았다.

열람 권한은 팀 내. 등록·수정은 막혀 있었다. 강하린이 자리로 돌아와 말했다.

“내일 재검증 자료 정리하세요. 수치는 유지돼요. 근거가 좀 더 단단해야 상신 성공률이 올라요.”

“단독 공개는 안 되는 겁니까.”

“지금은. 수치가 달라요.”

내 자리로 돌아갔다. 의자 바퀴가 바닥 마감재를 밀며 짧게 끼익 소리를 냈다.

태블릿을 열어 판독 수치 사본을 다시 확인했다.

실제 손해 2.1억, 청구 30억. 성과급은 적발액의 3%니까 1억쯤에서 걸리는 건데, 공단 포상금은 편취 시도액 기준 최대 2억. 합치면…… 야근 몇 년 치다.

숫자를 셀 때마다 차민구의 옆얼굴이 겹쳐 보였다.

차민구가 상신을 막은 순간부터 이 사건은 성과급 0원 코스로 가고 있었다. 아니, 다르게 세보면. 상신만 버티면 포상금 코스다.

퇴근길이 아니라 발령 첫날 같군.

오지석이 옆자리에서 이어폰을 빼며 고개를 내밀었다. “형, 차 국장 표정 봤어? 저거 실화냐, 웃으면서 나가던데.”

“네가 볼 땐 어땠는데.”

“일단 결재함 열리는 거 보고 등부터 뻣뻣해지던데? 퇴근할 때 뒤에서 봤는데 정장 등판 주름 하나 안 잡혔어.”

“특이사항으로 기록해둬.”

오지석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어차피 잔업이야. 나 헌터넷에 검은문 관련 올라온 거 정리 중인데, 아크베인 입장문 없대.”

“없는 게 입장문이지.”

강하린이 퇴근하고 나도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지석만 남았다. 내가 태블릿을 가방에 넣는 동안, 그는 내 자리 쪽을 힐끗 보다가 자기 모니터로 돌아갔다.

뭐, 지금 내 가방 속에 뭐가 들었는지까지 알 리는 없고.

그가 내 가방을 훔쳐 보지 않는 한.

늦은 밤 사무실에 오지석 혼자 남았다. 형광등은 꺼졌고 모니터 불빛만 그의 어깨를 비췄다.

사내 클라우드 결재함에서 파일을 열었다. 원본은 잠겨 있었다. 인쇄도 안 되고 복사 아이콘만 활성화됐다.

오지석이 개인 노트북을 켜서 파일을 열었다. 캡처 세 장. 보고서 전문과 판독 수치 표. 화면에 저장 완료 표시가 떴다.

“사본이면 되지.”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에 건 헤드셋을 벗어 서랍에 넣을까 하다가 그냥 걸었다. 퇴근 카드를 찍는 손이 빨랐다.

이 정도면…… 퇴근이 아니라 도주잖아.

자취방 문을 열고 신발을 벗은 뒤, 노트북을 침대 위에 올렸다. 방 안은 컴퓨터 쿨러 돌아가는 소리만 가득했다. 창밖 가로등 불빛이 얇은 커튼을 뚫고 들어와 침대 한쪽을 비췄다.

헌터넷 로그인 화면이 떠 있었다. 아이디는 '오늘도야근'. 아이디만 봐도 회사원 티가 줄줄 난다.

그 티를 감추기엔 이미 가입 날짜가 오래된 계정이었다.

비밀번호를 치고 자유게시판으로 들어갔다. 게시글 제목을 '검은문 붕괴 사고 — 손해사정 보고서 수치 공개'로 적었다. 본문에 사진 세 장을 붙였다. 게시 버튼을 누르자 계정 인증 팝업이 떴다.

손가락이 멈췄다.

마우스 커서가 게시 버튼 위에서 작게 흔들렸다.

아이디는 고정 닉네임이지만, 활동 내역으로 회사가 추적하면 바로 걸린다. ......올리는 순간 복귀는 없다.

자취방 벽에 붙은 택배 송장이 시야 구석에 들어왔다. 이 주소지로 회사 우편이 오던 집이다.

오지석이 뒷목을 만졌다. 잠시 숨을 들이켰다가 확인을 눌렀다.

화면이 새로고침됐다.

[헌터넷 > 자유게시판]

검은문 붕괴 사고 — 손해사정 보고서 수치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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