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사정사, 사기 확률이 보입니다
3화
“아침부터 실적이 좋네요.”
강하린이 회의실 문을 닫으며 말했다. 손에는 태블릿 한 대. 그 앞에 오지석이 앉아 있었다.
아침부터 회의라니.
이 회의는 출근하자마자 잡혔다.
나는 차민구의 어젯밤 통보를 떠올렸다.
게시자 IP 추적. 오늘 안에 원본.
……그럼 이 회의는 답이 아니고 배석이다.
“아, 팀장님, 이거 실화냐. 저 갑자기 회의래서 지금 두유 사러 가던 길이었는데.”
오지석이 웃으며 말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반음 높았다.
강하린이 태블릿을 테이블에 눕혔다. 화면에는 표 하나가 떠 있었다.
“오늘 IT팀에서 접속 로그 대조 결과가 왔습니다. 헌터넷 게시글 업로드 시각과 사내 클라우드 접속 기록. 아이디 ‘오늘도야근’.”
시간은 새벽 두 시 사십분.
업로드 시각과 똑같았다.
“이 계정 네가 맞지?”
오지석의 웃음이 반쯤 남은 채로 굳었다.
“아니, 그러니까, 잠깐만요. 그 로그만으로는 좀.”
“근거는 두 개예요. 접속 시각 일치. 사내 클라우드 보고서 열람 기록.”
“그거 사내라면 다른 분도 열람 가능한데.”
“원본 열람 권한은 세 명. 서진우 씨, 본인, 나.”
“서진우 씨 접속 기록은 어젯밤 열 시 반. 나는 아홉 시. 그리고 남은 한 명.”
오지석이 손으로 이마를 쓸었다. 손가락 끝에 땀이 반짝였다.
아까부터 손끝이 저렇게 젖어 있나.
“아…… 저는 그냥 팀이 엮일까 봐. 팀을 위해.”
“팀을 위해 보고서를 비공개 게시판에 올렸다?”
“팀장님도 결재함 등록이 막힌 상태였잖아요. 이대로 가면 30억이 그냥 나가요.”
나는 팔짱을 풀지 않았다. 오지석이 나를 힐끗 보며 덧붙였다.
“서진우 형 보고서가 진짜라면 세상에 알려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진짜라면.”
팀을 위해, 라.
절차를 날린 게 팀을 지킨 거라고?
그 말에 강하린이 나를 보지 않고 말했다.
“진위 판단은 사정 보고서의 몫이고, 공개 절차는 회사의 몫이에요. 네 몫은 절차 위반.”
“저는 그런 뜻이 아니라……”
“목적은 확인했고, 절차는 위반이에요. 유출도.”
강하린이 태블릿을 덮으며 똑바로 말했다.
“정식 징계 절차는 차민구 국장이 요구할 거예요.”
“징계요?”
“오늘 진행할 조사가 끝나기 전까지 보류합니다.”
나는 그 단어에서 강하린의 계산을 읽었다.
오지석이 필요한 건 능력이 아니라…… 머릿수다.
“팀장님, 저기요. 그러면 저.”
“조사는 예정대로. 오늘 인원은 너와 서진우 씨.”
오지석이 입을 열려다 내 쪽을 봤다. 나는 일부러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짚이는 대목입니다.”
“이거 사진 보강 차원이면 제가 가도 되긴 하는데.”
“보강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내가 답했다. 오지석의 어깨가 미세하게 위로 솟았다.
“그래서 확인이 필요합니다. 말씀드리기 애매한 가정을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때 회의실 문이 열렸다.
차민구였다.
평소의 기름진 미소는…… 반 정도 남아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여러분.”
그가 문을 닫지 않고 걸어 들어왔다.
“서진우 씨에게 어제 충분히 말씀드렸는데도 회의까지 여시다니. 대단하십니다, 강 팀장님.”
“진행 중입니다.”
강하린이 답했다.
“게시자 확인은 끝났고, 다음 안건은 야적장 접촉 검증입니다.”
“그 야적장 말씀이 자꾸 나오네요. 그쪽은 길드 자산입니다. 관찰 보존 구역은 확인 절차가 필요해요.”
“공단 조사 확인서를 붙이면 하루 안에 열립니다. 오늘 오후 접근 예정.”
“강 팀장님.”
차민구가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허가 주체는 보험사가 아니라 아크베인입니다. 좋게 생각합시다.”
……좋게 생각할 일이 아니지.
오늘 하루, 벌써부터 야근 확정이다.
“청구 검증 우선순위가 잡혀 있으니 절차는 지킵니다. 재료는 폐기 부품 반출 전표예요.”
강하린이 차민구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폐기 예정 자산의 물리 상태를 확인할 근거가 있어요.”
“그 전표가 어디서 나온 건지 여쭤도 될까요, 서진우 씨?”
내가 답했다.
“제보입니다.”
“제보라.”
차민구가 소리를 낮게 흘렸다.
“말 한 줄로 길드 자산을 열면, 다음 제보는 서진우 씨 책상 서랍에서 나오겠군요.”
……서랍이요.
그림이 선명했다.
야근 추가에 징계까지.
이번 주는 진짜 길어지겠네.
“그건 청구 서류와 무관한 위협이시죠.”
“위협이라니요. 조언이지요.”
내가 허리만 조금 펴며 웃었다.
“조언으로 받아 두겠습니다. 사무국장님.”
“오늘 오후 두 시. 야적장 입구에서 공단 계측 담당과 합류합니다.”
“저는 그 계획을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인정은 필요 없어요.”
강하린이 말했다.
“절차 승인은 공단 확인서로 받습니다. 아크베인은 피보험자 자격으로 현장 입회 요청만 받을 수 있어요.”
차민구의 표정이 처음으로 웃음을 잃었다.
“강 팀장님은 지금 B급 길드를 상대로 절차를 들먹이는 거예요?”
“네.”
강하린은 짧게 답했다.
“수위가 낮아지면 부탁일 텐데.”
“오지석 씨. 오늘 야적장 가는 게 좋겠어요? 이거 무단 접근으로 판단되면 보안 징계 대상이 늘어납니다.”
“아, 그건……”
오지석이 내게 눈을 돌렸다. 나는 그가 대답하기 전에 끼어들었다.
“늦지 않은 판단이시네요. 징계 대상이 늘어나는 속도가 확인서 접수보다 빠르신가 봅니다.”
차민구가 웃음을 다시 붙였다.
“서진우 씨는 남의 일에 참 사려가 깊으세요.”
사려요?
내 통장이 먼저 반응했다.
이번 분기 성과급부터 걱정해야 할 판인데.
“검증은 사정사의 법적 지위로 수행합니다.”
강하린이 말했다.
“지시할 권한은 없어요. 국장님께 받을 말은 없고요.”
차민구가 입을 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게 생각합시다. 결론은 오후죠.”
“오지석 씨, 오늘 정리하실 것 없죠? 요즘 댓글 활동이 바쁘시다니.”
회의실 바깥 발소리가 복도에서 멀어졌다.
그제야 어깨가 내려갔다.
협상 종료.
“공단 확인서는 내가 전자 결재 올렸어요. 오전 중 접수됩니다.”
강하린이 판서하듯 말했다.
“출입 인원은 서진우 씨, 오지석 씨.”
“확인서만으로 입구에서 안 막나요?”
오지석이 물었다.
“막아도 해결합니다. 근거는 폐기 전표.”
강하린이 태블릿을 세우며 덧붙였다.
“사진 보강. 그리고 서진우 씨.”
내가 그녀를 봤다.
“현장 접촉 판독은 혼자 하세요. 무슨 순서로든.”
이건 뭐, 보람찬 외근이네.
나는 웃지 않고 답했다.
“가능한 범위 안에서요.”
복도 쪽에서 오지석의 발소리가 따라붙었다.
내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공단 접수.
트럭이 지나간 자리에 먼지가 천천히 가라앉고, 저녁이 밀려들며 그림자가 길어졌다.
“오늘 안에 원본이요?”
“그렇답니다.”
나는 팀장실 문을 등 뒤로 닫았다.
차민구의 마지막 문장이 귀에 남아 있었다.
좋게 생각합시다, 서진우 씨.
좋게 생각할 일이 하나도 없는데.
“법무팀이 IP 추적이래요. 원본을 넘기지 않으면 공식 이의신청.”
강하린이 태블릿 펜을 내려놓았다.
펜이 굴러가다 멈췄다.
“게시자부터 특정하라는 얘기네요. 우리 쪽이 샌 건지, 밖에서 캡처한 건지.”
“퇴근 전에 IT팀 결과가 나오면 좋겠지만, 차 국장이 기다려 줄 사람은 아니죠.”
“내일 아침이면 압니다.”
강하린이 화이트보드 앞으로 걸어가 ‘동행 인원 2명. 열람 공문 발송 완료.’라고 덧붙였다.
“내일 오전 야적장 접촉은 예정대로예요. 차 국장의 전화는 업무 외 압박으로 기록하고, 오늘은 갑니다.”
“기록이요?”
“민원성 발언은 시간과 수신자를 남겨야 해요. 나중에 문제가 되면 순서가 필요하니까.”
강하린이 내 얼굴을 보지 않고 말했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팀장님 뭐래, 서진우 씨?”
“내일 야적장 정상 진행. 오지석 씨는 준비하고 오라니까.”
“나 지금부터 준비한다. 안전조끼 두 벌 찾아놨고.”
저장을 누르고 최예린의 쪽지를 서랍 깊숙이 밀어 넣었다.
내일이면…… 성과급이 아니라 배당률이 잡히겠지.
아스팔트 위로 금속 가루가 반짝였다.
“손해사정팀 두 분이요?”
“서진우입니다. 열람 공문 보내드린 건이요.”
“오늘 관리사무소에서 이 분이 출입 등록해 드릴 겁니다. 정각 이후에는 구역 폐쇄라 정확히 한 시간 반입니다.”
보안요원이 출입록을 내밀었다.
오지석이 먼저 펜을 받아 이름을 썼고, 나는 공단 손해사정 조사 확인서를 펴서 보여줬다.
“안전조끼 착용은 필수고, 폐기 구역 안에서는 사진이 이력관리 대상입니다. 임의 보관품은 반출 금지예요.”
오지석이 안전조끼를 입으며 중얼거렸다.
“사진도 이력관리면 우리가 찍는 것도 다 남는 거 아니냐.”
“촬영 목적은 공단 조사 확인서에 포함돼 있어요. 지금 등록한 시간부터 괜찮습니다.”
보안요원은 더 반박하지 않았다.
우리는 관리사무소 오른쪽 철조망을 따라 걸었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폐기 동력부 토크 컨버터.
아크베인은…… 이것조차 야적장에 처박아뒀다.
“서진우 씨, 이거 사진 보강이지? 각도랑 부품 번호 위주로 찍으면 되나.”
“사진은 나중에. 접촉부터 하겠습니다.”
오지석이 눈을 크게 떴지만 나는 먼저 부품 쪽으로 갔다.
오늘 조사는 내가 원래 정한 순서가 있다.
사진이 먼저가 아니다.
판독을 먼저 띄운 다음, 수치와 부품 번호를 같이 담는 것.
나는 안전장갑을 낀 채 토크 컨버터 옆면에 손바닥을 대었다.
[손해 판독 창] 대상: 폐기 동력부 토크 컨버터 실제 손해액: 210,000,000원 청구액: 3,000,000,000원 사기 확률: 91.7% 근거 태그: 동력부 결함 은폐 / 사고 전 열화 흔적 / 정격 출력 도달 기록 부재
숫자가 눈에 박혔다.
87.4%보다 올라갔다.
이거, 이제 변명할 구석이…… 없는데.
나는 손을 부품에 그대로 둔 채 천천히 수치를 읽었다.
“실제 손해 2.1억. 청구 30억. 사기 확률 91.7%.”
“뭐라고?”
오지석이 폰을 꺼내 들었다.
“근거 태그 세 개. 동력부 결함 은폐, 사고 전 열화 흔적, 정격 출력 도달 기록 부재.”
“이거 실화냐, 이래도 서류 실수라고 우길 수 있나. 찍는다. 서진우 씨, 그 손 그대로 있어.”
오지석이 부품 외형부터 촬영을 시작했다.
나는 창을 닫지 않고 손등으로 부품 번호를 훑었다.
번호 일부가 열에 그을려 있었다.
“아크베인은 이 토크 컨버터를 사고 뒤 임의 보관했다. 성적서에는 시험 기록이 아예 없어. 그러면 왜 30억 청구에 올라갔겠냐.”
91.7%.
사고 전부터…… 정해져 있던 숫자다.
오지석이 촬영을 잠깐 멈췄다.
“이 수치면 도끼질꾼도 조작이라 못 하겠는데? 91.7이면 댓글이 터질 수준이지.”
보안요원이 다가와 팔을 올렸다.
“저기요. 이 부품은 사고 뒤 임의 보관품으로 지정된 겁니다. 사진 촬영은 아크베인 담당자 승인 없이는 제한됩니다.”
“말씀 정리하면, 절차가 있다는 거죠?”
나는 손을 부품에서 떼며 보안요원을 정면으로 봤다. 상대가 반 걸음 물러났다.
“저희는 공단 조사 확인서로 들어왔습니다. 임의 보관품이라도 관찰 보존 구역 안에 있고, 확인서에 촬영 목적이 포함돼 있어요.”
보안요원이 무전기를 들었다.
오지석은 그 틈에 촬영을 끝내고 저장 버튼을 눌렀다.
“저장 완료. 부품 번호랑 진술 각도 여러 장. 괜찮지?”
“괜찮습니다.”
나는 부품 더미에서 두 걸음 물러나 토크 컨버터 안쪽을 유심히 보았다.
사고 전에 갈라진 금속이 보였다.
사고로 생긴 균열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건 서류 실수로 덮을 수치가 아니다.
성과급 0원짜리 실수와는 무게부터 다르다.
이번 건은 책상물림이 아니라 증거로 정산한다.
이 부품 하나로 청구 서류 전체를 다시 세울 거다.
사무실에 돌아오자 해가 거의 저물어 있었다.
강하린은 우리가 촬영본과 진술을 전달하기도 전에 회의실로 부르라고 했다. 오지석이 원본을 띄우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거 오늘 찍은 건데, 팀장님 이 부품 번호 보이세요? 접촉 장면이랑 같이 있어서 수치가 그냥 나온 것 같은 느낌이 아니라니까.”
“수치는 서류에 없던 수치인데, 어디서 나왔습니까.”
“현장 접촉 판독입니다. 증거보관실 파편보다 조금 더 올라갔고, 근거 태그가 세 개 떴어요.”
“공단 제출용으로는 표현이 좀 달라야 해요. 판독 창 얘기는 빼고, 부품 상태와 촬영 각도로 가는 겁니다.”
강하린이 회의실 모니터로 촬영본을 넘겼다.
그때 회의실 문이 밀렸다.
차민구였다.
“늦은 시간까지들 고생 많으십니다, 서진우 씨, 강 팀장님.”
강하린이 모니터 쪽에 몸을 붙였다. 차민구는 자리에 앉지도 않은 채 촬영본을 두어 장 넘겼다.
“이 부품은 사고 뒤 임의 보관된 거라 아크베인 입장에선 근거로 쓸 수 없습니다.”
그가 손을 허공에 올리며 웃었다.
“그런데 수치가 맞아떨어지는 게 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서진우 씨가 접촉한 부품에서 그런 수치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요.”
차민구는 손등으로 이마를 두 번 닦았다.
지금 이 사람, 땀을 닦는 건지 시간을 버는 건지.
내 쪽으로 흘리는 땀 한 방울도 특이사항이다.
나는 의자를 강하린 옆으로 옮기며 말했다.
“말씀하신 ‘이상하다’는 어떤 근거인지 모르겠습니다. 성적서가 빠져 있고, 부품엔 사고 전 열화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걸 어떻게 서류 실수라고 정리하시는 건지.”
차민구가 모니터에서 한 발 물러났다.
“공단 감사 신청을 검토하죠. 좋게 생각합시다.”
회의실 문이 닫히기 전에 내가 한마디 더 붙였다.
“아크베인이 공단 감사를 먼저 요청해 주시면 저희는 동행 제출로 가면 됩니다.”
차민구는 뒤를 보지 않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저 사람, 지금 물러난 게 아니라 판을 옮긴 거다.
한발 물러나서 우릴 감사장 안으로 밀어 넣으려는 거다.
오지석이 문 쪽을 보며 웃었다.
“방금 그거, 서류 실수 프레임은 완전히 찢어진 거 아니냐?”
강하린이 촬영 파일 사본을 만들어 저장했다.
“흥분하지 마세요. 이걸 헌터넷에 지금 올리면 조작 의혹 역풍이 더 큽니다. 공단 제출 문건이 먼저예요.”
오지석이 아쉬운 얼굴로 폰을 내려놓았다.
“제출용 물증은 아직 부족합니다. 접촉 수치는 공식 양식에 못 써요. 부품 상태 감정서를 다시 뽑아야 하고, 아크베인이 임의 보관이라 우기는 부분을 공단이 어떻게 볼지가 더 급해요.”
강하린이 남은 문건을 하나씩 정리했다.
나는 회의실 안을 한 번 돌아봤다. 차민구는 떠났지만 30억짜리 서류 복사본이 테이블 위에 흩어져 있었다.
야근 수당도 못 받을 판에…….
이게 다 특이사항으로 박제될 거다.
그때 업무폰이 울렸다.
[공단 감사 안내: 아크베인 보험청구 우선순위 위반 신고]
폰 화면이 혼자 켜졌다. 강하린과 오지석이 동시에 폰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