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폐급 수리공, S급 검의 진실을 읽다

1화

부러진 검이 공방 문을 밀고 들어왔다. 정확히는 검을 든 여자가 먼저였고, 검은 그 뒤를 따라왔다.

문이 열리는 순간 바깥 공기와 함께 골목 특유의 눅눅한 먼지 냄새가 밀려 들어왔다. 천장에 매달린 형광등이 깜빡이며 여자의 실루엣을 한 박자 늦게 비췄다.

……뭐야, 저건.

나는 고장 난 결론을 수리하는 폐급 수리공이다.

작업대 위에는 밀린 월세 고지서가 펼쳐져 있었다. 종이 귀퉁이가 습기를 머금어 살짝 말려 있었다. 월세 3개월분.

손가락으로 숫자를 짚다가 관뒀다. 손끝에 종이의 결이 얇게 밟혔다. 짚는다고 숫자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수리 맡기러 왔다.”

검은 코트의 여자가 작업대 앞에 섰다. 허리까지 오는 검은 머리, 붉은 눈. 못 본 얼굴은 아닌데, 정확히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이 안 났다. 코트 끝에서 물기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바깥은 비는 아니었고, 아마 골목 안개가 옷에 묻은 모양이었다.

여자의 오른손에 들린 검이 시선을 끌었다. 중간이 꺾여 있었다. 칼날의 3분의 2 지점에서 위로 접힌 것처럼 휘어져 있고, 부러진 단면은 거뭇하게 그을려 있었다. 그을린 자리에서는 쇠가 탄 냄새가 아니라 무언가 눅눅하게 삭은 듯한 비린 기운이 올라왔다.

저걸 뭘로 긁었길래…….

“어디서 부러졌습니까.”

“레이드에서.”

대답이 짧다. 나는 손수건으로 손가락을 닦고 검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손수건에 묻은 기름때가 손가락 마디 사이에 얇게 남았다.

“보험 처리는요.”

“안 해.”

“길드 규정상 S급 장비는 길드 전속 수리팀이 맡지 않습니까. 뒷골목 무면허 업체에 오시면 고객님도 저도 곤란한데요.”

여자가 검을 작업대 위에 올려놓았다.

턱.

쇠가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가 공방에 퍼졌다. 작업등이 그 진동에 미세하게 흔들렸다. 먼지 한 점이 형광등 불빛 아래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전속 팀은 못 고친다.”

“확인해보셨습니까.”

“전속 팀은 장비 이력만 읽는다. 파손 상태만 보고 교체하라고 했다.”

그 말에 나는 손을 멈췄다.

장비 이력만 읽는다…….

그럼 이 여자는 이력에 없는 걸 볼 수 있는 사람한테 오겠다는 거다.

내가 그걸 볼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일이 커질 냄새가 난다.

이거 들이밀면…… 수리비보다 처벌이 먼저 밀려오겠군. 뒷골목 수리공이 S급 장비에 손을 댔다는 기록이 남는 순간, 길드 감사팀은 가게 문고리부터 뜯을 테고 나는 아마 그날로 실종계에 이름이 오를 거다.

“무면허 수리는 불법입니다. 뒷골목 시장에서는 묵인되지만, S급 장비를 손대다 걸리면 저는 가게 문을 닫는 정도로 안 끝나요. 고객님, 저한테 무슨 원한이라도 있으십니까.”

“없다.”

“그럼 왜 하필 저한테.”

“이 근방에서 이력의 안쪽을 읽는 수리공은 너뿐이라고 들었다.”

나는 헛웃음을 삼켰다. 그런 소문이 돌 만큼 내가 경솔했다는 뜻이다. 누군가 내 능력을 흘렸거나, 지난번 A급 장비 수리 건에서 누가 눈치챘거나.

어느 쪽이든 지금은 입구가 막힌 골목에서 손님이 찾아온 셈이다. 골목이 막혔다고 팔을 뻗지 않으면, 그대로 벽에 코를 박는다. 이 여자는 내가 팔을 뻗을지, 벽을 뚫을지 보고 온 것이다.

……이 여자, 대체 어디까지 알고 온 거지?

“사고 경위부터 듣고 싶습니다.”

“묻지 마라.”

“수리공은 파손 원인을 알아야 복원 방향을 잡습니다. 고객님은 다쳤을 때 병원에서 '묻지 마라' 하면 진찰이 됩니까.”

여자가 나를 똑바로 봤다. 눈동자가 붉어서인지 시선이 유난히 오래 박혔다. 그 붉은빛이 형광등 불빛을 흡수했다가 천천히 밀어내는 것 같았다.

“사고 당시 4초. 기억이 비어 있다.”

“그게 전부입니까.”

“그 이상은 줄 게 없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캐물으면 문을 닫고 나갈 여자다. 아니, 검만 들고 나가면 나는 굶는다.

“선금 500만 원. 계좌이체로 먼저 받겠습니다.”

“수리비는.”

“전체 견적은 판독 뒤에 나옵니다. S급이니까 공임만 5,000만 원에서 시작할 겁니다. 복원 추가분은 따로고요.”

여자는 대답 대신 코트 안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코트 안쪽에서 희미하게 장비 냄새가 났다. 사람 피부에 밴 금속 냄새와 가죽 냄새가 섞인, 헌터 특유의 냄새였다.

이체가 끝나는 데 걸린 시간, 채 1분이 안 됐다.

[의뢰 완료 알림] 입금 확인: 5,000,000원 의뢰인: 강하윤 (S급) 품목: 장검 1점 / 파손 등급: 치명

화면에 뜬 이름을 보고 나는 속으로 계산을 마쳤다.

강하윤.

국가 전략 자산으로 분류되는 S급 헌터다. 이런 인물이 무면허 공방에 검을 맡기러 오다니, 전속 팀이 못 고친다는 말이 허풍이 아니라는 뜻이다.

수리비 5,000만 원이면…… 내 월세 삼십삼 개월치다.

사흘 밤 새우면, 3년 월세가 한 방에 들어온다.

“확인서 쓰고 가시죠. 서명 없으면 저는 이 검을 손댈 수 없습니다.”

내가 서류용지를 내밀자 강하윤은 펜을 받아 이름을 썼다. 글씨가 칼날 같다. 휘는 데가 없다. 펜 끝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공방 안에 유난히 크게 들렸다.

“판독이 끝나면 복원 견적부터 보내겠습니다.”

“언제.”

“늦어도 사흘 안에는.”

강하윤은 내 말에 답하지 않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검은 코트가 움직일 때마다 붉은 실 장식이 목에서 흔들렸다.

“한 가지만.”

문 앞에서 그녀가 멈췄다. 돌아보지 않았다.

“이 검에서 읽은 건 나한테만 보고해라.”

……이거, 사흘 안에 끝내야 사는 거다.

“고객님, 그건 의뢰 확인서에 명시된 조건입니다.”

강하윤은 내 대답이 끝나기 전에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힌 뒤에도 그녀가 서 있던 자리에는 짙은 검은빛 잔상이 잠시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공방에 검 냄새와 탄 냄새가 남았다. 나는 작업대 위의 부러진 검을 한참 들여다봤다.

월세 3개월분.

선금 500만 원이면 2개월치와 이자, 그리고 다음 달 수도요금까지 정리된다.

……겨우 그 정도로 숨통이 트이는 인생.

고지서를 접어 서랍에 넣고 작업등을 켰다. 서랍 안에서 고지서가 다른 고지서들과 부딪히며 바스락거렸다. 부러진 검의 단면에 불빛이 스며들었다.

이 끊긴 데 안쪽에 뭐가 들었는지.

그리고 강하윤이 지운 4초가 뭔지.

그게 다음 견적서 가격표다.

덧문부터 내렸다.

골목 쪽 창으로 가로등 불빛이 얇게 새어 들어왔지만, 그건 참고 견딜 수준이다. 덧문이 내려가면서 창틀에 쌓인 먼지가 조금 떨어졌다.

여섯 달.

밀린 월세가 정확히 그만큼이다.

오늘 선금 받았다고 웃을 수 없는 숫자가 머릿속을 돌다가, 작업대 앞에 섰다.

“S급 한 자루, 재미 좀 보겠습니다.”

장갑을 낀 손으로 검을 받치고 판독 자세를 잡았다.

장비에 손이 닿는 순간, 흩어져 있던 이력이 숫자로 올라온다.

아무에게도 이 광경을 보여줄 수 없다는 걸 떠올리자 입꼬리가 먼저 올라갔다. 장갑 너머로 검이 내 손 온도를 빨아들였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무언가가 손바닥을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

손가락은 이미 검의 몸통을 훑고 있었다.

시스템 창이 작업대 위 허공에 떠올랐다.

[판독 로그] 장비명: 미등록 S급 장검 상태: 파손 (중앙부 절단) 전투 기록 계수: 1,842회 아군 공격 잔여 에너지: 18.4% 외부 명령 잔여 코드: 3줄 삭제 구간: 4.0초

숫자에 눈이 멈췄다.

아군 공격 잔여 에너지 18.4%.

몬스터한테 맞아 부러진 검이 아니란 뜻이다.

외부 명령 잔여 코드는 또 뭐고.

손끝을 검의 절단면 가까이 댔다. 단면에서 미세한 열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아니, 열이 아니라 그을린 자리에서 무언가가 사라질 때 남는 흔적 같은 것이었다.

삭제된 4.0초.

누가 지웠다.

장비 이력에서 4초를 통째로.

손등부터 목덜미까지 서늘하게 식어 내려갔다.

이건 등급 문제가 아니다.

검이 부러지기 직전에 뭔가 있었고, 그걸 아무도 못 보게 지워버렸다.

심호흡 대신 혀로 입천장을 쓸었다.

이윽고 이어서 뜬 창을 봤다.

[복원 견적] 복원 공임: 24,000,000원 특수 재질 할증: 별도 소요 기간: 6일 비고: 삭제 구간 복원 시 추가 장비 필요

2,400만 원.

월세 여섯 달분이다.

복원 공임 한 방이, 공방이란 이름의 구멍 난 창고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걱정을 한 번에 덮었다.

그것도 별도 비용 붙는 특수 재질은 제외한 값이다.

계산기 따위 필요 없었다.

2,400만 원 나누기 6개월.

월 400만 원.

이 구멍 가게 월세가 그렇다.

복원만 시키면 반년치 집 걱정이 사라진다.

수리까지 들어가면 S급 장비 공임으로 이 동네에서 한 계절은 따뜻할 수 있다.

……잠깐, 좋아할 때가 아닌데.

하지만 고객한테 2,400만 원부터 청구하면, 이 검에 달린 비밀이 먼저다.

태블릿을 켜서 판독 로그 원본을 그대로 밀어 넣었다.

백업 파일 이름은 “S의뢰초기판독”.

여기에 아까 본 숫자가 전부 박혔다. 화면에 숫자가 떠오를 때마다 손가락 끝이 조금씩 긴장했다.

검은 아직 만지지 않았다.

복원 전 상태 그대로, 작업대 위에 밤새 눕혀 둘 셈이었다.

의뢰 확인서를 태블릿 옆에 가지런히 붙여 두고, 강하윤 번호를 찾았다.

복원 견적 확정 문자를 보내려던 참이었다.

“복원 공임 2400만 원. 수리비는 별도.”

이 한 줄이면 됐다.

삭제 4초, 아군 공격 잔여 에너지 18.4%.

그건 아직 내 패다.

강하윤한테 확실한 흥정 재료가 생길 때까지 꺼낼 생각이 없었다.

문자가 쓰이려던 그 순간, 공방 정면 유리를 무심코 올려다봤다.

길가에 검은 세단 한 대가 붙어 있었다.

헤드라이트는 꺼져 있었다.

운전석 창이 반쯤 내려가 있었다.

차 문짝 아래, 길드 표식이 가로등 불빛에 번들거렸다.

아.

이 시간에?

내 손이 먼저 움직였다.

태블릿 화면을 끄고 검부터 들었다.

의뢰 확인서를 태블릿 위에 엎은 채 구석 금고 쪽으로 몸을 숙였다.

금고는 작업대 뒤 낡은 선반 밑에 있다.

선반에는 먼지가 앉은 못 상자와 녹슨 줄이 몇 개 굴러다녔다. 금고 손잡이는 손에 닿자마자 싸늘하게 젖어 있었다.

자물쇠 두 번.

철컥.

손이 스스로 익숙하게 돌아갔다. 쇳소리가 공방 바닥에 낮게 깔렸다.

검을 세워 넣고, 태블릿을 그 위에 눕혔다. 금고 문을 밀어 닫는 순간, 밖에서 희미하게 렌즈가 꺾이는 소리가 났다. 카메라가 초점을 잡는, 그 작은 기계음. 검은 세단이 공방 출입구를 정면으로 노리고 있었다. 헤드라이트가 꺼진 채, 조용히 촬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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