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급 수리공, S급 검의 진실을 읽다
2화
촬영이 시작됐다고 내가 할 일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금고 문 앞에 쪼그린 채 손등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검은 세단이 헤드라이트를 끄고 온 이유는 하나다. 이 시간에 누가 이 공방에 드나드는지 기록하겠다는 거다.
출입구가 정면으로 찍히면…… 문을 여는 순간, 번호판보다 먼저 얼굴이 남는다.
뒤로 물러났다.
도망치는 건 의미 없다.
공방 자체가 이미 주소지로 박혔다.
“야간 수당부터 계산하자고.”
혼잣말이 바닥에 짧게 깔렸다. 감시를 피할 수 없다면 하던 일을 끝내는 게 먼저다. 선반 서랍에서 지퍼백 두 장을 꺼냈다. 하나는 검 원본 로그를 넣을 외장 카드 보관용, 하나는 확보된 기록 밀봉용이다.
금고를 잠깐 열었다. 태블릿을 꺼내 전원을 켜는 대신 외장 카드만 슬롯에 밀어 넣었다. 몸을 작업대 아래쪽으로 숙였다.
판독 로그 원본 파일을 하나 골랐다. “S의뢰초기판독”.
어차피 복사는 3초다.
[저장 경로]
외장 카드를 밀어 넣고 서랍을 닫았다. 검 원본은 금고 안 그대로다. 당분간은 이게 최선이다.
바보짓이지.
그래도 복원 자체는 지금 손댈 수 있다. 장비만 만지면 화면 없이도 충분하다. 다만 이건 차분한 판독이 필요하다.
[복원 견적] 항목: 삭제 구간 4.0초 추적 복원 공임: 24,000,000원 기간: 6일 상태: 미착수
저 아래 ‘미착수’가 지금은 제일 정직하다. 이걸 ‘착수 중’으로 바꾸는 순간, 강하윤한테 복원 시작 통지가 갈 테고 길드 쪽은 그 타이밍을 노릴 거다.
2천 4백만 원짜리 스위치로군.
철문 덧문은 이미 닫았다. 남은 건 작업대 옆 쪽창과 환풍구였다. 쪽창은 낡은 커튼으로 가렸다.
이 정도면 오늘 밤은 넘긴다.
집 월세보다 무거운 게 목에 걸렸다.
고객님, 참…… 밤샘 근무가 이래서 비싼 겁니다.
……
새벽에 확인하러 나왔다.
검은 세단은 사라져 있었다.
그 자리에 더한 게 와 있었다.
한 손에 태블릿, 가슴에는 카메라.
아니, 이 시간에?
“여기 수리 공방 맞지? 차무열 씨?”
“맞습니다. 아침 인사치고는 직업 분위기가 있는데요, 고객님 아니시죠?”
“아니, 근데 나 기자. 백서진이라고 해.”
밝은 목소리가 문틈으로 밀고 들어왔다. 나는 문을 반만 열었다.
“기자요? 저는 광고비 낼 돈이 밀린 월세보다 없습니다.”
“나 프리랜서라 광고 안 팔아. 강하윤 씨, 어제 여기 들렀지?”
척추를 타고 긴장이 올라왔다. 강하윤을 이름으로 부른다.
내가 검을 의뢰받은 시점을 정확히 찍는다.
우연이 아니다.
동선을 따라온 거다.
“여기 오시는 분들 사생활은 확인해 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내가 오전부터 찾아온 거야. 나쁜 기사 아냐. 오히려 반대야.”
백서진이 태블릿을 반쯤 들었다.
“공식 결론이 장비 결함이잖아. 내가 직접 확인했는데 공개 열람에서 그 검이 빠져 있어.”
잠깐 멈칫했다.
저 정도면 이미 꽤 들어간 거다.
그 검을 공개 열람에서 뺐다는 건…… 길드가 뭔가 숨기고 있다는 뜻 아닌가.
“그러니까 그 검을 맡은 사람한테 검증을 부탁하고 싶어.”
“무슨 검증이요.”
“수리 전 초기 상태를 본 사람만 아는 수치가 있잖아. 수리공 계측 범위 내에서. 예를 들어 파손 표면이 열에너지인지, 물리 충격인지.”
기자답게 잘 고른 질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수치를 줬다간.
내가 그 검을 판독했다는 게 밖에 남는다.
“의뢰인 보호가 먼저입니다. 그거 깨면 저는 수리공으로 코너에 세워지는 수준이 아니라, 밤에 지나가던 검은 차 뒷자리에 태워져요.”
백서진이 잠깐 웃었다.
“아까부터 검은 차가 그렇게 신경 쓰여? 뭐, 여긴 뒷골목이니까.”
……이 여자, 보통 아니다.
“고객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질문은 내가 하는 쪽인데.”
“제조사가 요즘 S급 장비 안전 시험을 언제 했다고 발표했는지, 그것만 알려 주시죠.”
백서진이 고개를 기울였다. 무슨 질문인지 계산하는 얼굴이었다. 시간을 끌진 않았다.
“작년 연말. 그게 왜?”
내가 계산했다. 안전 시험을 통과한 S급 장비가 두 달 뒤 레이드에서 부러지려면, 시험 통과 수치와 실제 파손 기록 사이에 뭔가가 빠져야 한다.
“그 두 달 사이에 장비 이력이 어디서 갱신됐는지 아는 사람은 없겠네요.”
“그러니까 그걸 확인해달라는 거잖아.”
“제가 확인할 수 있는 건 없고요, 고객님께서 확인할 수 있는 게 있으면 그건 당신들 몫입니다.”
나는 문을 조금 더 열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저 조사 방향은…… 내일 내가 익명으로 뿌릴 수치와 붙는다. 아니, 정확히는 붙여야 하는데.
백서진이 태블릿에서 뭔가를 꺼냈다. 종이 한 장이다.
“여기 내 연락처. 넣고 싶으면 써도 돼. 어차피 나는 기록보다 시간을 추는 쪽이라.”
나는 종이를 받았다. 손끝에 거친 필기감이 닿았다.
이 여자가 직접 쓴 메모다.
“명함이 아니라 메모를 주십니까.”
“나 명함 안 만들어. 잘 안 받잖아. 이게 더 잘 봐.”
“연락 안 해도 상관없어. 대신 그 차는 조심해.”
나는 빗장을 다시 걸었다. 손에 든 종이를 폈다.
날짜 몇 개와 발표 제목, 거기에 ‘열람 제한 시점’이라는 메모가 겹쳐 있었다.
제조사 안전 시험 시기가 연말이란 건 확정.
그 순간, 뭐가 먼저 타들어갈까.
“정리해 보자고.”
의뢰 확인서는 서명이 그대로 남아 있다.
허리를 펴고 목덜미를 뒤로 젖혔다.
‘사고 당일 검이 삭제된 구간, 4.0초.’
하지만 익명 제보에는 4.0초라고 정확히 찍지 않을 거다. 소수점과 삭제라는 표현을 빼고, ‘기록이 빈 구간이 있다’는 말만 풀어 놓는다.
“좋아. 미끼 한 장은 던질 수 있겠다.”
헌터넷 접속을 위해 공방 뒤 유심 초기화 폰을 꺼냈다.
문제는 배터리가 없다는 것. 하……
고개를 젖혀 천장을 봤다. 어차피 일은 해가 진 뒤다.
팔을 뻗어 서랍 손잡이를 만졌다. 손이 그대로 멈췄다.
헤드라이트는 꺼진 채. 아침이 와도 같은 자리였다.
한 대가 아니라 두 대였다.
……뭐야.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누가 내 공방 앞을 지키고 있다.
그걸 확인한 뒤에야 금고 문을 열었다. 검부터 빼내지 않고 태블릿을 먼저 꺼냈다. 백서진이 남기고 간 취재 메모가 작업대 구석에 접혀 있었다. 연락처와 함께.
메모를 펴고 ‘외장 카드’라고 적힌 줄을 다시 읽었다.
어젯밤 백서진이 말한 오류 시사.
사본으로 해야 한다. 원본에 손대면, 그때부터 내 공방 로그까지 증거가 된다.
외장 카드에 백업한 파일을 열었다.
검은 여전히 금고 안에 눕혀 둔 상태였다. 이쪽은 사본 안에서만 도는 작업이다.
화면에 판독 로그가 떠올랐다.
``` [판독 로그] 장비명: 미등록 S급 장검 상태: 파손 (중앙부 절단) 전투 기록 계수: 1,842회 아군 공격 잔여 에너지: 18.4% 삭제 구간: 4.0초 ```
삭제된 4.0초.
손가락으로 그 줄을 길게 눌렀다. 사본 파일에서 되살리기 작업을 걸었다.
다만 백서진이 건넨 외장 카드에는 제조사 공용 검증 툴이 깔려 있었다. 그걸로 삭제 구간의 잔상을 복원 시도한다.
화면이 몇 번 깜빡였다.
``` [고급 판독 확장]
잔여 검증 코드: 1 / 3 제조사 단독 잔류: 확인 ```
제조사 단독 잔류.
이건 제조사 서버에서만 남는 검증 코드다. 수리공 개인 공방 툴에서는 읽을 수 없는 값.
한심하네.
공식: 장비 결함.
사본: 삭제 구간 4.0초, 제조사 단독 잔류 검증 1/3.
그 사이에 아군 공격 잔여 에너지 18.4%를 다시 썼다. 이제 남은 건 하나. 이걸 어느 타이밍에 푸느냐다.
수치를 나란히 보니 웃음이 나왔다.
공식 결론대로 장비가 혼자 부러졌다면, 이 검증 코드는 제조사 중앙 서버에 완전하게 세 개가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 4초 삭제를 실행한 쪽의 명령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이거…… 완전히 자백 꼴인데.
검을 꺼낼 필요는 없었다.
수치 비교 메모는 반으로 접어 작업복 가슴 주머니에 눌러 넣었다.
밖은 어느새 어둑해져 있었다.
저녁이다.
세단 두 대는 여전히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
백서진 연락처를 열었다.
익명 제보. 수치 일부만. 판독 능력 얘기는 절대 꺼내지 않는다.
쪽지를 보냈다.
“뒷골목 수리 쪽에서 공익 제보. 삭제 4초 구간, 제조사 단독 잔류 코드 1/3. 공식 장비 결함 결론과 붙지 않는 수치. 원본 출처는 의뢰인 보호 때문에 안 됩니다.”
보내고 바로 로그아웃했다.
답장 안 기다린다. 내가 필요한 건 백서진도 아니고, 이 수치를 일단 공개 여론장에 뿌리는 것.
제조사 보안팀이 수치를 보면 안다.
비대칭 검증 코드의 존재는 제조사 내부 인가자만 아는 값이니까.
그 전에 먼저 움직이는 쪽이 미끼다.
제 발로 걸어 들어와라.
헌터넷 게시판을 열었다.
제목을 썼다.
“장비 결함 공식 결론? 삭제된 4초가 말이 안 되는 이유”
본문은 짧게 자른다.
“먼저 직함을 쓰지 않는 것도 존중하라. 수리 일 하는 사람이다. 첫째, 전투 기록에서 특정 구간 4.0초가 삭제되어 있다. 복원 전 원본 보존 상태에서 말하는 거다.”
등록.
이제…… 기다릴 차례다.
칼댓글은 항상 회의론자다.
`ㄴ회의론자B: 무면허 공방 수법이지? S급 로그를 니가 어떻게 봐. 사기 조작 아냐?`
`ㄴㄴ뉴비D: 말은 되는데 무서움... `
`ㄴ정보충A: 이거 공식 툴론 못 읽는다. 그런데 어떻게 확인했는지가 더 문제임.`
`ㄴ수리왕E: 절단면 재질 검사부터 해. 로그보다 금속 결정 방향이 더 정확해.`
댓글이 한 번에 열 개씩 달리기 시작했다.
조회수는 자정 무렵 47,830을 찍었다. 댓글 217개.
수리공 사기 의혹이 올라왔다.
`ㄴ정보충A: 그것도 무면허에.`
`ㄴ회의론B: 그땐 수리공 흔적 자체가 없어져서 아무도 못 물었는데.`
`ㄴ정보충A: 그러니까 출처가 무면허인 게 문제라는 거다. 증거력이 없어.`
정확하다.
여론전은 시간 싸움.
그리고……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밖을 봤다.
세단 한 대가 천천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목적지를 알 수는 없지만 방향은 분명했다.
남서쪽.
제조사 본사가 있는 쪽이다.
역시나다.
공방 문이 열렸다.
“이 시간에 무슨 영업이십니까.”
최광수가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헌터넷 게시글이었다. 제목은 ‘무면허 공방, S급 검 입고 소문’. 조회수 47,830. 댓글 217개.
“이거 네 가게 이야기 아니냐.”
“글쎄요.”
“딱까리 주제에 S급 장비를 받았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나머지 둘은 전부 공인 등록 up to date고.”
최광수가 가게 안으로 한 걸음 들어왔다.
구두 밑창에 골목 모래가 바닥에 갈렸다.
사각.
“무면허 사기, 공인 서류 위반. 신고 들어가면 네 공방은 오늘로 문 닫아. 그러니까 그 S급 검, 지금 내가 직접 인수하겠다.”
게시글 하나로 공방 주소까지 특정해 온 걸 보면, 여기서 내가 뭘 받았는지 확실히 확인한 모양이었다.
이 아저씨…… 벌써 단속반 마인드네.
나는 금고 쪽에서 한 걸음 물러서며 태블릿을 집어 들었다.
“서면 동의 없이 의뢰품 반출하면 그게 공인 자격보다 먼저 문제 되는 거 아십니까.”
“의뢰품? 서면 동의? 네가 그런 걸 운운할 자격이나 있냐.”
“있고 없고는 협회가 정할 일이고, 손님한테 받은 물건은 손님 서명 없이는 한 뼘도 못 옮깁니다. 저는 공임 시간당 환산해서 보관료를 받는 사람이라.”
밤에 찾아와서 행패 부리는 것도 공임으로 치면…… 얼마 나올까.
“며칠째 보관 중이냐.”
“기계적으로는 오늘로 이틀째입니다.”
“그럼 보관료가 얼마라는 거냐.”
“S급이라 시간당 계산하면, 대략 2,400만 원 공임을 6일로 나누면 하루 400만. 이틀이면 800만 원부터 시작이고 보관료는 상한 없이 붙습니다.”
최광수가 코웃음을 쳤다. 목걸이 장식이 목덜미 아래서 짤랑거렸다.
“이 자식이 지금 장난하나.”
“장난은 아니고, 고객님께서 직접 반출을 원하시면 그 시간당 보관료부터 정산하셔야 한다는 겁니다. 제 가게는 밑 빠진 독이라서요.”
하루 800만부터.
그걸 지금 결제하겠다고?
공임 시급으로 치면…… 대충 계산이 안 서네.
나는 작업대 앞으로 걸어가 의뢰 확인서를 집어 들었다.
“아, 그리고 이거. 손님 서명 원본인데 최광수 사장님 성함은 한 글자도 없습니다. 이걸 왜 남한테 넘겨야 합니까.”
서류를 태블릿 위에 얹어 최광수 눈앞에 보이게 돌려 놓았다.
“네가 뭘 받았는지 내가 왜 직접 확인 못 하겠냐.”
“그 물건을 왜 이 시간에 확인하려는지부터 들려주시죠.”
최광수가 바지 주머니에서 접힌 A4 한 장을 꺼냈다.
“경고장이다. 내일까지 제출 안 하면 접수한다.”
찰칵.
서류가 작업대 위에 떨어졌다.
“그리고 신고 예고도 여기다 해 둔다. 그땐 협회 조사관이 직접 올 테니 그 S급 검을 계속 갖고 있기나 하던가.”
한 시간 안에 헌터넷.
아니, 잠깐. 조사관 오기 전에 이 쪽 선반부터 치워야 하잖아.
최광수가 문 쪽으로 돌아섰다.
나는 서류를 집어 들었다. 종이가 아직 미지근했다.
“최광수 사장님.”
발걸음이 멎었다.
“경고장 접수처가 저기 쓰신 주소 맞죠. 협회 말고 그 아래 ‘최광수 공방 대표’로 되어 있던데.”
최광수의 목이 굳었다.
뭐지, 이 반응.
등줄기가 아니라 손끝부터 식는다.
“이런 걸 고객한테 들이밀면, 검 주인한테 직접 얘기할까요? 아니면 사장님이 알아서 가실까요?”
“네가 뭘 안다고……”
“안다고 하면 곤란해지실 것 같은데요.”
최광수는 한참 서 있다가 별 말 없이 문을 밀고 나갔다.
승합차 문이 닫히는 소리가 골목을 울렸다.
나는 문을 걸고 작업대 앞에 섰다.
서류를 접어 금고 위에 올렸다.
태블릿을 꺼내 사본 파일을 열어 확인했다.
원본과 대조할 것도 없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서랍 맨 아래, 낡은 파일철 사이로 손을 밀어 넣었다.
두꺼운 봉투 하나가 잡혔다.
과거 각성 실패 판정지.
인적사항 위칸, 판정 결과 F급 미만. 그러나 그 아래 수치표에는 없어야 할 값이 하나 늘어서 있었다. 판독파 지수 0.00이 아니라, 자릿수만 어긋난 수치가 줄곧 찍혀 있었다.
종이를 반쯤 꺼내다 손이 멎었다.
확인하는 순간, 못 본 척은 끝난다.
그 수치를 확인하면…… 지금은 안 하던 생각까지 해야 할 것 같았다.
파일을 다시 서랍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 순간, 태블릿 화면 위로 공방 의뢰 알림창이 떠올랐다.
[의뢰 알림] 제조사 보안팀이 의뢰 등록 주소 조회를 시도했습니다.
화면을 들어 최광수가 남긴 경고장 옆에 가져다 놓았다.
하나씩 온다.
“하나씩 오네.”
나는 공방 셔터를 내렸다. 금고를 열어 검 원본을 세워 확인하고, 태블릿 사본을 다시 열어 파일 생성 시각까지 거슬렀다. 둘 다 그 자리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