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폐급 수리공, S급 검의 진실을 읽다

3화

아침 빛이 셔터 틈으로 얇게 밀려 들어와 금고 위 경고장 모서리를 비췄다.

나는 셔터를 반쯤 올려 두고 작업대 앞에 앉아 있었다. 제조사 보안팀이 주소 조회를 시도한 뒤로 잠은 두 시간도 못 잤다. 태블릿 화면은 밤새 켜 둔 채 파일 생성 시각에 멈춰 있었다.

백서진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 크로스백을 옆으로 돌려 태블릿부터 꺼냈다.

“주소, 있다.”

강하윤이 백서진 뒤에서 들어왔다. 검은 코트 자락에서 바깥의 찬 공기가 밀려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잠깐.

주소를 찾았다고?

“김민준. 사고 생존자 중 유일하게 기록을 봤을 사람. 지난밤에 퇴원 기록이랑 통신 기록 교차로 돌렸어.”

백서진이 태블릿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화면에 지도가 떠 있었고, 외곽의 원룸 밀집 구역이 확대되어 있었다.

“여기. 보증금 싼 단기 월세, 본인 명의 아냐. 사촌 명의더라.”

“출처는.”

강하윤이 물었다.

“퇴원 서류에 남은 연락처. 그 번호로 가입된 통신 명의 역추적. 내가 취재할 때 쓰는 경로야. 합법이냐고 묻진 마. 기사용이면 문제없는 정도는 지켰어.”

백서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하룻밤 사이에 사람 하나를 찾아내다니.

취재용 경로라……

입이 안 다물어지네.

나는 지도를 내려다보지 않고 태블릿의 파일 생성 시각을 한 번 더 확인했다. 밤새 달라진 건 없었다. 원본 로그도 그대로였다.

“안전 시험 기간 아카이브는.”

“이거.”

백서진이 화면을 넘겼다. 제조사 S급 안전 시험 일정표가 떠올랐다. 작년 연말 일정이 붉게 표시돼 있었다.

“공식 결론이 말한 시점이랑 안 맞아. 이 아카이브는 제조사 협력업체가 보관하던 거라 공식 발표용 자료랑은 별도야.”

공식 결론이랑 안 맞는 일정표라.

이거 증거력 붙으면 제조사 쪽은 꽤 아프겠는데.

“잠깐.”

강하윤이 손을 뻗어 태블릿을 돌렸다. 지도를 다시 띄웠다.

“혼자 간다.”

“안 됩니다.”

나는 손끝으로 작업대 위의 외장 카드를 두드렸다.

“김민준이 기록을 봤어도 그게 어느 지점의 어떤 값인지 현장에서 못 짚습니다. 판독 없이는 증거력을 못 세워요. 고객님 혼자 가서 무슨 말을 들을 겁니까.”

“내 동료다.”

“그 말이 상대한테 압박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강하윤이 나를 봤다. 눈동자가 붉어서 반사된 화면 빛이 다르게 번졌다.

눈이 충혈되도록 밤을 샜나.

저 눈으로 밤새 뭘 더 훑었을까.

나는 그 시선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갑시다. 어차피 시간당 공임은 나가요.”

강하윤이 태블릿을 밀었다.

“길 안내는 내가 한다.”

“좋습니다.”

백서진이 태블릿을 집어 크로스백에 넣었다.

“아니, 나는.”

“기사 초안.”

내가 말했다.

“주소랑 아카이브는 저희가 가져갈게요. 백 기자님은 공식 결론이 안 맞는다는 걸 정리해 둘 시간이 필요하잖습니까.”

백서진이 잠시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부른 것도 아니고. 알았어. 초안은 내가 오늘 안에 뽑을게.”

백서진이 문을 나갔다. 문 닫히는 소리가 옅게 깔렸다.

나는 허리춤에서 공임을 재는 습관처럼 손가락을 한 번 접었다. 김민준까지 가는 동안에도 이 손으로 직접 짚어야 할 값이 있을 거다.

기록은 남는 법이니까.

……공임 받을 만큼은 남아야지.

강하윤이 먼저 골목으로 나갔다. 나는 금고를 한 번 확인하고 외장 카드를 안주머니에 넣었다. 셔터를 내리고 열쇠를 두 번 돌렸다.

오후 빛이 길게 눕기 시작한 원룸 밀집 구역. 강하윤이 골목 입구에서 걸음을 늦췄다. 건물 옆 계단 안쪽으로 난 반지하 문 앞에서 멈췄다.

지도의 위치와 같았다.

여기…… 반지하라.

햇빛이 이 문턱까진 안 오겠네.

강하윤이 문을 두 번 두드렸다.

안에서 한참 뒤에 소리가 났다.

“누구요.”

강하윤이 옆으로 반 보쯤 서서 말했다.

“강하윤.”

문 뒤에서 숨소리가 멎었다.

잠시 뒤 문이 서너 뼘 열렸다. 김민준이 문고리를 잡은 채 우리를 번갈아 봤다. 건장한 어깨가 움츠러들어 있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가서 말하지.”

강하윤이 말했다.

김민준은 잠시 서 있다가 문에서 손을 뗐다. 반쯤 열린 틈으로 우리가 들어갔다.

좁은 거실에는 라면 박스 두 개와 접이식 의자가 전부였다.

짐을 쌀 시간도 없이 나왔구나.

라면 박스가 가구라니.

“강하윤 씨. 저는 이미 조사관한테도 다 말했어요. 제가 뭘 본 건 아니고요. 그니까 이제 좀……”

“뭘 봤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강하윤이 잘랐다.

“어디에 있는지다.”

김민준의 손이 저도 모르게 옆구리 쪽으로 붙었다. 나는 그 손을 잠깐 보았다.

두려워서 몸이 닫힐 때, 손은 항상 몸 가까이 붙는다.

……지금, 저 손.

“협박받은 사람한테 무작정 내놓으라 하면 안 나옵니다.”

나는 낮게 말했다.

“김민준 씨, 저는 검의 이력을 읽습니다. 공식 결론이 못 본 걸 봤어요. 그리고 지금 제조사 보안팀이 제 공방 주소 조회까지 했고요.”

김민준의 턱이 굳었다.

“저쪽도 이미 움직입니다. 당신이 숨기는 동안에도.”

“저는요. 눈에 안 띄려고 여기 있는 건데. 이제 와서 기록 위치를 불면 저는 끝이에요.”

끝이라.

그 말엔 계산이 없었다. 그냥 몸에 밴 공포였다.

사람 하나, 이렇게까지 몰아넣다니.

저 고객님…… 참.

“그래서 여론부터 만들 겁니다.”

내가 한 걸음 다가섰다. 김민준의 손목 근처에서 긴장이 잔 물결처럼 올라오는 게 보였다.

“기록 위치만 주십시오. 먼저 입맞춤된 여론을 만들어서 당신을 보호할게요. 그러기 전에 원본부터 꺼내면 당신 혼자 증언하는 꼴이 됩니다.”

“그 보호라는 게……”

“보관 중인 위치가 맞는지 확인만 하면 됩니다. 오늘은.”

김민준이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오른손 손등의 화상 자국을 왼손으로 감쌌다.

“저 혼자만은 아니고요.”

한참 뒤였다.

“상욱이 형 집이요. 미망인하고 같이 정리하던 보관함이 있었어요. 거기 상자 밑에.”

강하윤이 김민준의 팔 앞으로 다가섰다.

“이주상.”

김민준의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그 이름에 뭔가가 풀리는 소리가 났다.

턱.

“살아 있었으면 형수님한테 안 맡겼죠. 그니까……”

김민준이 뒷말을 삼켰다.

“주소와 보관함 위치만 다시 불러라.”

강하윤이 말했다.

나는 안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냈다. 만년필로 적을 준비를 하자 김민준이 골목 바깥을 두리번거렸다.

“여기서 부르면 안 돼요. 창문이요.”

강하윤이 곧장 창가로 가 커튼을 당겼다. 내가 메모지를 내밀었다.

“보관함 번호 같은 건 없고요. 형수님 집 거실 서랍장 옆 선반이요. 그 안에 의료 서류 정리한 박스가 있고, 바닥에 두꺼운 테이프로 붙여 논 게 하나 있어요.”

김민준이 작게 덧붙였다.

“죽은 형 백업 로그는 거기 있어요.”

나는 적었다. 구, 동, 호수, 서랍장 옆 선반. 의료 서류 박스, 바닥 테이프.

메모지를 반으로 접어 안주머니에 넣었다. 외장 카드와 나란히 눌려 자리 잡혔다.

이제 이 종이 한 장이…… 사람 하나와 맞먹는 담보다.

공임이 아니라 목숨값이라.

“여기 남는 게 낫습니다. 우리가 다녀온 뒤 연락하겠습니다.”

김민준이 튀어나온 입술을 손끝으로 문질렀다가 멈췄다.

“저 있잖아요. 그거 꺼내면…… 저만 위험해지는 거 아니잖아요.”

“당신만 위험해질 순서까지 몰아간 건 이미 저쪽입니다.”

나는 현관 쪽으로 몸을 돌렸다.

강하윤이 김민준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복사본은.”

“그 근처엔 없어요. 저한테도 없고.”

김민준이 양손을 들어 보였다. 나는 그 손을 확인하고 문을 열었다.

계단을 오르자 오후의 짧은 그늘이 골목을 반쯤 덮고 있었다. 강하윤이 나보다 두 걸음 앞서서 걸었다.

“공방까지 갔다가 움직인다.”

“주소부터 확인하죠.”

나는 메모지를 꺼내지 않았다.

이미 접힌 종이의 모서리가 안주머니에서 단단하게 눌리고 있었다.

한 사람의 전부가, 지금 내 옆구리에 있다.

……이게 시급 얼마짜리 무게?

골목을 빠져나와 큰길을 따라 공방 방향으로 걷는 동안 해는 더 기울었고, 두어 번 버스 정류장을 지나친 뒤 상가 건물 뒷문 계단을 올랐다. 공방 안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금속 냄새가 났다.

공방 문을 걸어 잠그고 돌아섰을 때, 강하윤은 이미 작업대 앞에 서 있었다. 백업 로그 위치 메모를 수리대 모서리에 펼쳐 놓고 검과 나란히 놓는 참이었다.

“메모대로면 은신처 서랍 안쪽. 그런데 그 위치는 오늘 아침까지 비어 있었어.”

“김민준 씨가 옮겼겠죠. 자기 목숨 담보로 잡은 건데 한곳에 오래 둘 사람 아닙니다.”

한곳에 오래 뒀다간, 어느 날 아침 그냥 사라지는 거니까.

그것도 모르고 서랍만 뒤지고 있었을 우리였다.

태블릿을 켜 사본 파일을 열었다. 강하윤의 시선이 화면 위에서 멎었다.

“복원 돌린다.”

“지금 여기서요. 사본으로요.”

검 원본은 금고에 세워 둔 채였다. 장갑 낀 채 검자루를 짧게 쥐고 판독 자세를 잡았다.

저장 카드를 태블릿 옆 슬롯에 밀어 넣자 공방 안 공기가 조금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장비 이력이 검에서 태블릿으로 옮겨 붙었다.

드드득.

기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면에 로그가 풀리기 시작했다. 1,842번째 전투 기록까지 되감기며 삭제 구간 앞에서 멈췄다. 손가락으로 해당 구간을 눌렀다. 복원 실행.

[판독 로그] 아군 공격 지점: 3곳 (각도 17°·22°·31°) 외부 명령 잔여 코드: 3줄 비대칭 검증 코드 오차: 0.03% 삭제 구간 복원: 완료

숫자가 화면에 박혔다.

……뭐야, 이거.

이걸 공임으로 치면 얼마야? 저장 카드에 자동으로 들어가는 복원 로그를 확인하고, 화면을 강하윤 쪽으로 조금 돌렸다.

“뭘 봤냐.”

강하윤이 묻는 속도가 평소보다 반 걸음 빨랐다.

“4초짜리 진실이요. 공임으로 치면 한 5,000만 원쯤 되겠네요.”

“숫자를 말해.”

“아군 공격 지점 3곳. 각도 17도, 22도, 31도. 외부 명령이 세 줄 남았고요. 검증 코드 오차는 0.03퍼센트.”

강하윤이 메모를 집어 들었다. 기억 공백 4초, 외부 명령 지연 0.4초. 그 숫자들이 화면의 숫자와 나란히 놓이는 게 보였다.

“일치하냐.”

“지연 0.4초. 내가 잃어버린 4초와 맞아.”

4초가…… 여기 있었다. 문이 열렸다.

최광수였다. 벨 소리 대신 문 닫히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딱까리 주제에 아직도 불 켜고 있네. 무면허 수리 의뢰 받은 거, 내가 모를 줄 알았냐.”

최광수의 시선이 작업대 위를 훑었다. 태블릿, 메모, 검. 화면이 보이는 위치까지 걸음을 옮겼다.

기다렸다는 듯이.

“사장님, 들어오실 거면 노크부터 하셔야죠. 제 가게가 조용한 동네라.”

“조용하긴. 헌터넷에 니 이름이 그냥 올라왔더라. 무면허가 S급 검을 만지고 있다고.”

나는 태블릿을 최광수 쪽으로 밀었다. 화면이 그대로 보였다. 0.03%부터 사라지지 않았다.

“보십쇼. 제가 손대면 안 되는 물건인지.”

최광수가 화면을 내려다봤다. 처음엔 입꼬리가 올라갔다.

“위조다. 그런 수치가 어디 기록으로 남냐. 무면허가 장난친 게 뻔하지.”

“그럼 어느 항목이 위조인지 짚어 주시죠. 공인 공방 대표님이시니까.”

최광수가 손가락을 들다가 화면에서 눈을 뗐다. 0.03%라는 숫자가 있던 자리에서 시선이 더 움직이지 않았다. 짧았다. 입을 다시 열 때는 침부터 한 번 삼켰다.

꽉 막혔네.

공임 0원짜리 여론 광고로 쳐 줬다. 제조사가 이걸 보게 되면, 원본을 가지러 오게 될 거다. 그 전에 여기서 최광수를 거쳐 가는 게 제일 빠르다.

강하윤이 검자루를 짚었다. 손은 검이 아니라 검자루 끝에 짧게 닿았다.

“위조면 네가 지금 뭘 보고 멈췄지.”

최광수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니가 뭘 알아. 이건······.”

“오차 0.03퍼센트. 기억 공백 4초. 외부 명령 지연 0.4초.”

강하윤이 숫자를 말하는 동안 최광수의 휴대폰이 울렸다.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진동음이 작업대를 타고 났다.

땅. 땅. 최광수는 휴대폰을 쥔 채 뒤로 물러났다.

“오늘 밤에 정리해라. 검은 원본이 있어야 끝난다.”

“누구한테 보고하시게요. 제조사 보안팀은 벌써 제 주소를 조회하던데요.”

최광수가 문을 열었다. 밖이 어두워서 그런지 어깨가 더 굽어 보였다.

“딱까리 주제에······.”

말을 끝까지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고 한동안 골목 쪽 인기척이 없다가, 차 문이 세게 닫히는 소리가 났다.

강하윤이 여전히 검자루를 짚고 있었다. 시선은 닫힌 문 쪽이 아니라 태블릿에 남아 있었다.

“공식 발표. 장비 결함. 전부 조작이네.”

“확신해도 됩니까.”

“4초가 여기 있으니까.”

차 문이 다시 열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셔터 틈으로 밖을 봤다. 최광수가 승합차 안에서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있었다. 입 모양이 더듬어 읽혔다.

“원본을 압수해.”

가로등이 꺼졌다. 하나씩이 아니라 공방 앞에 늘어선 것들이 동시에. 그 직후 헤드라이트가 공방 문을 정면으로 비추었다.

폐급 수리공, S급 검의 진실을 읽다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