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폐급 수리공, S급 검의 진실을 읽다

4화

“헤드라이트 꺼.”

강하윤이 낮게 말했다. 말과 동시에 허리에서 검집을 뜯어 세로로 세웠다. 공방 셔터 앞 두 걸음. 그녀의 몸이 문과 헤드라이트 사이를 완전히 가렸다.

나는 작업대 쪽으로 물러나며 금고 문을 어깨로 닫았다. S급 검은 내 오른손에 쥔 채였다.

“고객님, 저쪽 사장님 차량에 계신 분들이 곧 노크하실 텐데요.”

“닥치고 문 잠가.”

강하윤이 뒤를 보지 않고 말했다. 나는 문고리에 손을 뻗으면서도 눈은 셔터 틈에 두었다. 승합차 문이 열리고 구두 소리가 둘, 셋, 일곱. 가로등이 죽은 골목에서 그림자가 길게 밀려왔다.

“아론테크 보안팀입니다. 장비 보안 점검을 위해 들어가겠습니다.”

남자 목소리. 목청만 공손했다. 셔터를 두 번 주먹으로 쳤다. 강하윤은 움직이지 않았다.

“들어오긴요. 여기 공인 수리점도 아니고 보관 동의서도 특정 시간이 없는데, 보안 점검이면 사전 통지서부터 보여주셔야죠.”

내 목소리가 셔터 너머로 나갔다. 바깥이 잠깐 조용해지더니 낮은 웃음이 들렸다.

“무면허가 뭘 알아. 문 열어. 본사 결재 받았다.”

최광수의 목소리였다. 승합차 쪽에 붙어서였다.

“딱까리 주제에 제조사 사칭까지 하면 감당 안 됩니다요. 통지서, 지시서, 신분증. 셋 중에 하나라도 보여주시던가.”

유리창을 탁 하고 때리는 소리가 났다. 아마 서류 봉투였다. 셔터 하단 배수구로 종이 모서리가 들어왔다.

나는 허리를 굽히지 않고 발끝으로 끌어당겨 집었다. A4 한 장. 제조사 앞글자 인감은 흐릿했고, 접수 번호 아래 ‘현장 확인 시 원본 확보 후 인계’가 인쇄돼 있었다.

“가짜네.”

강하윤이 옆에서 종이를 내려다보며 잘라 말했다. 정확했다. 인감 줄이 3밀리쯤 어긋나 있었고, 기기 점검 일시 란이 비어 있었다.

“가짜라도 이분들한테는 이게 협박 한 번 대신하는 종이입니다. 고객님은 뒤로.”

내가 셔터 손잡이를 올렸다. 문이 반쯤 열리자 첫 번째 사내가 곧장 손을 들이밀었다. 강하윤이 그 손목을 쳐 올리는 것과 동시에 무릎으로 복부를 눌렀다. 남자가 반 접히며 셔터 옆 벽에 부딪혔다.

두 번째가 경봉을 빼들었다. 강하윤이 접힌 남자의 어깨를 밟고 나가 팔꿈치로 경봉 쥔 손목을 찍었다. 경봉이 굴러 떨어졌다. 세 번째, 네 번째는 승합차 앞에서 주춤했다.

“문 닫아.”

강하윤이 바깥을 보며 말했다. 나는 셔터를 절반만 내리고 그녀의 옆에 섰다. 그늘에서 나온 남자가 걸음을 멈췄다.

회색 재킷, 보안팀답지 않게 칼라 없는 셔츠. 마성호다. 제조사 쪽 감사대행팀장이라고 들은 얼굴. 판독 의뢰 때 사진으로만 본 얼굴이다.

“보안 점검입니다. 장비 위치 추적 신호가 이 공방을 가리키고 있어요. 합법 업무 방해는 민사로 갑니다.”

마성호가 지시서 사본을 들면서 한 걸음 다가왔다. 나는 그 사본을 받아 등 뒤 작업대 전등에 비춰 봤다. 아까 종이와 같은 접수 번호. 하지만 이건 출력본이 더 깨끗했다. 인감이 반듯했다.

“추적 신호는 저도 궁금하네요. 제가 보관 중인 검은 길드 등록 장비도 아닌데, 무슨 경로로 여기 신호가 잡히는지 원본 지시서 열어서 확인해 주시죠.”

“원본은 차에 있습니다.”

“그럼 가져오시고요. 그 사이에 도난 신고부터 접수하겠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 무단으로 셔터 밟고 문 잡은 분들, 골목 CCTV에 다 남았을 테니.”

부실한 공장지대라고 CCTV 하나 없을 거라 생각하나 본데, 여긴 그 점 때문에 오히려 맞은편 포목점에서 자비로 두 대 달았다. 가게가 아니라 내 공방 유리 방향으로. 밤마다 불 켜져 있는 게 수상하다고. 참 고마운 이웃이다.

마성호의 턱선이 조금 뒤로 당겨졌다. 최광수가 그 옆에서 소리를 낮춰 뭐라 붙이더니 마성호가 손을 들었다.

“주소 조회부터 잘못됐을 수 있겠네요. 오늘은 이만하죠. 대신 지금 문 밖에 있는 장비 압수 의사가 없다는 확인서에는······.”

“압수요? 제가 문 열고 검 꺼내서 가져가시라 한 적 없는데요. 확인서 쓰실 거면 무단출입 시도한 일시와 인원수부터 적으셔야죠.”

최광수가 입을 열었다. “야, 이 씨가······.”

“사장님, 나중에 청구서 갑니다. 공방 영업 외 시간 무단출입 대응 비용으로요. 37만 원.”

최광수와 마성호가 동시에 나를 봤다.

“·····뭐?”

“새벽에 불려 나와 문 잠그고 보안 점검 받아 주고 관리비 떼인 것까지. 다 계산해서 보내드릴게요. 서류 정리됐으니까 이제 가서 임무 끝내시죠.”

나는 등에 낀 땀을 닦을 엄두도 안 내고 셔터를 완전히 내렸다. 쇳소리가 어둠을 갈랐다. 몇 초 뒤 승합차 문 닫히는 소리, 뒤늦게 시동. 헤드라이트가 벽을 훑고 사라졌다.

강하윤이 작업대 옆으로 와서 검을 내려놓았다. 어깨너비로 발을 벌리고 나를 마주 봤다.

“이제 알았어. 왜 먼저 말 안 했지.”

“뭘 말입니까.”

“지금 작업대 위에 띄워. 어디까지 읽었는지.”

나는 허리춤에서 복원 로그 저장 카드를 뽑아 태블릿에 꽂았다. 화면이 천장 형광등 아래서 천천히 밝아졌다.

``` [판독 로그] 대상: 미등록 S급 장검 전투 기록 계수: 1,842회 아군 공격 잔여 에너지: 18.4% 외부 명령 잔여 코드: 3줄 비대칭 검증 코드 오차: 0.03% 삭제된 구간: 4.0초 ```

강하윤이 허리를 숙였다. 손끝이 아니라 시선으로 화면을 더듬었다. 외부 명령 잔여 코드 세 줄에서 눈이 한 번, 두 번 갔다.

“검증 오차. 지연값. 이거 다 감사 증거로 쓴다.”

“그 전에 한 가지 정리하죠. 제가 눈치챘으면서 바로 보고 안 한 건 사실입니다. 판독 전까지는 흥정 재료로 보려고 했고요.”

“사과해.”

“·····공임에서 십오 퍼센트 빼겠습니다. 검증 끝나고 복원 완료 공임이랑 다 합쳐서. 이 정도면 거래치고 공정하죠.”

강하윤이 허리를 곧게 폈다. 그 키가 무척 가깝게 느껴졌다.

“사과는?”

“손해 본 거 정확히 계산해서 드린다니까요. 사과는 그 계산서에 붙은 세금 같은 겁니다. 됐잖아요, 환급도 아니고.”

그녀가 내가 내민 태블릿을 집어 들었다. 로그 화면을 캡처했다.

“원본 지시서는 어딨어.”

“보관 금고 두 번째 칸입니다. 방금 확인했고요. 스캔본이랑 원본이랑 대조해서 접수 번호까지 맞췄습니다.”

“사본 보내.”

내가 노트북을 열자 그녀가 자기 단말을 작업대 위에 밀었다. 진동이 한 번 울렸다. 전송 완료.

“검은?”

“금고에 이중 잠금 겁니다. 하나는 제 패스코드, 하나는 고객님 지문용 임시 잠금으로요. 제가 몰래 못 빼게.”

나는 금고 안쪽에 검을 뉘이고 내부 트레이에 완충 패드를 덧댄 다음, 바깥 잠금장치를 먼저 채웠다. 강하윤이 그 위에 지문 잠금 모듈을 닫는 걸 보고 나서 금고 문을 잠갔다.

철제음이 짧게 두 번.

“좋다.”

강하윤이 어깨를 돌리며 문 쪽으로 걸었다. 나는 금고 손잡이를 한 번 더 당겨 잠금을 확인했다. 그녀가 걸음을 멈췄다.

“차무열.”

“네, 고객님.”

“너, 이번 일 대가 제대로 받아. 이거 끝나면.”

나는 금고 손잡이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세상에, 마침내 청구서보다 먼저 대가 얘기를 꺼내는 고객도 있네.

셔터 밖 헤드라이트가 멎었다. 엔진 소리는 죽지 않았다. 나는 강하윤의 팔뚝을 짧게 잡았다.

“뒤문. 보관함부터.”

강하윤은 내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검집을 한 번 옆구리에 붙이고 셔터에서 가장 먼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작업대 왼편 금고 문을 열어 S급 검을 빼냈다.

검집은 강하윤이 가져왔다. 카드 한 장을 가슴 주머니에 밀어 넣자 플라스틱 모서리가 젖은 작업복 안쪽에 닿았다. 복원 로그 저장 카드. 이게 지금 이 공방에서 제일 비싼 물건이다.

“둘 다 든다.”

강하윤이 뒤문 빗장을 벗기며 말했다. 한 손엔 자기 검, 다른 손엔 S급 검. 나는 멱살 잡힌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어휴, 보관료가 오늘로 이틀째네요. 고객님.”

뒤문을 나서자 공방 앞 가로등은 전부 꺼져 있었고, 차량 두 대가 셔터 정면을 비추고 있었다. 우리는 골목 반대편 상가 쪽 화단 뒤로 몸을 낮췄다. 공방 정문에서 발소리가 흩어지는 게 들렸다.

“먼저 갑니까, 고객님.”

강하윤이 대답 대신 검 두 자루를 한쪽 어깨에 걸었다.

“김민준한테 간다.”

같은 날 오전. 김민준이 보낸 위치는 지난번 골목 안쪽 2층 문이 아니라 그 옆 단독 주택 반지하였다. 지시서 사진을 받고 나서 옮긴 모양이다. 도착했을 때 그는 문틈으로 얼굴 절반만 내밀고 있었다. 오른손은 문고리, 왼손은 점퍼 안주머니.

“여기 문 열면 안 돼요. 증언하면 저까지······.”

“지시서에 이름 있다.”

강하윤이 말을 잘랐다.

김민준의 목울대가 두 번 올라갔다. 그가 점퍼 안주머니에서 조그만 비닐 팩을 꺼냈다. 손끝에 힘을 주면 부서질 것처럼 얇았다.

“백업 로그는 유족 집에 있고요. 이건 제가 사고 이튿날 따로 뺀······ 저장칩 하나요.”

“열어 봅니까.”

김민준이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는. 하여간 그래서 이걸 드리는 거고요.”

“조건.”

내가 받으며 말했다. 저장칩은 손바닥에 올려도 무게가 없었다.

“감사에서 증언하면······ 신변 보호해 준다, 그거 말고. 제 이름이 지시서에 있으면 저는 이미 안전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조건은 보호가 아니라······.”

김민준이 문틈 너머 복도를 한 번 돌아봤다.

“형수님이랑 유족들한테 제 이름으로 감사 불출석 소환장이 안 가게 해 주실 수 있으면.”

“야,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다.”

강하윤이 앞으로 나섰다.

“대신 감사 전에 김민준 진술을 위원장 직속 재조사 자료로 먼저 넘긴다. 유족은 뒤에 배치된다. 그 약속은 내가 한다.”

김민준이 조금 숨을 들이켰다. 손가락이 문고리에서 미끄러졌다.

“그럼······ 증언, 생각해 보겠다가 아니라. 감사에 나갈게요.”

“증거는?”

“저장칩이요.”

그게 오전에 손에 쥔 첫 번째 칩이었다.

오후, 공방 사무실. 백서진이 셔터 안쪽에 접이식 테이블을 펼쳐 두고 노트북을 올렸다. 화면은 헌터넷 커뮤니티 실시간 창에 걸쳐 있었다. 최광수는 벽 쪽 의자에 앉아 목을 풀고 있었다. 아침 일로 목덜미가 뻐근할 법도 하게.

백서진이 USB를 노트북에 꽂으며 말을 빠르게 이었다.

“아니, 근데 이거 미쳤다. 아론테크 연말 안전 시험 공문이랑 부상 기록이 한 세트로 묶여 있네. 공문 원본 조회 접수 번호까지 있어.”

최광수가 목을 그만 풀었다.

“내 장부가 아닌데 왜 자꾸 거기로 끌고 가냐.”

백서진이 노트북을 돌렸다.

“이게 뭘까. 접수 번호랑 관인 자리가 같은 서식인데.”

최광수가 화면을 들여다봤다. 표정이 차갑게 굳는 대신 입가가 바깥으로 당겨졌다. 나는 그 입가를 보며 중얼거렸다.

“대표님, 땀 닦으시겠어요.”

최광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도로 앉았다.

“딱까리 주제에······.”

“감사에서 뭘 말하라는 거냐.”

이번에 말한 사람은 최광수였다. 백서진이 기사 초안 파일을 열었다.

“연말 시험 때 아론테크가 장비 점검을 명목으로 생존자 서버 접속 기록을 봤다는 거. 거기 부상 보고서가 일부 빠져 있다는 거. 그리고 최 대표 공인 면허 갱신할 때 로비 들어간 게 접수 번호로 이어져 있다는 거. 이것만 사실확인하게.”

최광수가 내 쪽을 빤히 봤다.

“너, 이게 무면허가 할 짓이냐.”

“무면허라서 보관료로 말씀드리죠. 오늘 감사 증언 못 하시면, 제가 아론테크 쪽에 지시서 사진 먼저 보낼 겁니다. 그땐 대표님 핸드폰 발신 기록도 공임 외 항목이 되는 거고요.”

최광수의 어깨가 한 번 꺼졌다.

“내가 말이야, 업계 30년인데······.”

“30년이면 이제 정산하실 때도 됐네요.”

백서진이 기사 제목을 수정했다.

“로비 실태까지 넣는다. 제목은 ‘안전 시험 뒤 사라진 부상 기록, 공인 공방 대표가 확인한 접수 번호’ 어때. 좀 길지?”

나는 뒤로 물러서며 손등으로 이마를 닦았다.

“기사 나가기 전에 최 대표 목소리 팩스로 하나 받아 두시죠.”

저녁, 공방 출입구. 정인혁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검은 양복에 목덜미가 곧은 사람이었다.

뒤로 협회 사법팀 차량 한 대가 통제 테이프를 대기시킨 채 서 있었다. 백서진이 셔터 앞에서 노트북을 접었다. 최광수는 사무실 안에 남아 있었다.

“보전 절차로 원본 검을 협회 인증 창고로 옮기게 됐습니다.”

정인혁이 말했다.

나는 작업대 금고를 가리켰다.

“로그 체크섬 먼저 보시죠. 원본이 여기 보관된 뒤 외부 반출은 없었습니다. 공방 내 검증이 아니면 저장 상태를 책임질 수 없습니다.”

정인혁이 검집 봉인 부위를 손전등으로 비추며 확인했다. 우리가 출입구 사이에 선 채 백서진이 노트북에 체크섬 화면을 띄웠다. 정인혁이 수치를 두 번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공방 보관 유지. 다만 출입 통제를 겁니다.”

정인혁이 보관함에 보전 봉인을 붙였다. 봉인지가 금고 문 손잡이에 닿자 정전기처럼 소리가 났다. 내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이 보관함 열쇠는 오늘부터 내 주머니에서 가장 무거운 쇳조각이다.

백서진이 노트북을 다시 펼쳤다. 헌터넷 실시간 창에 알림이 붉게 올라왔다.

“아론테크가 성명 낸대. 차무열 판독 조작 의혹 언급한다고.”

회의론자B의 댓글이 그 아래 달렸다.

“복원 로그 자체가 원본과 체크섬 다르다며? 이건 본사가 먼저 공식 성명 내면 수리공 쪽이 증명해야 되는 판이야.”

백서진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말했다.

“야, 성명 전에 내가 기사 먼저 올려야 된다.”

나는 보관함에서 손을 떼며 혼잣말을 뱉었다.

“어휴, 제가 왜 이러고 살까.”

셔터 밖, 협회 차량 경광등이 꺼졌다.

폐급 수리공, S급 검의 진실을 읽다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