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품 정리사인데 죽은 A급의 마지막 기억이 읽힌다
1화
나는 유품의 마지막 7분을 읽고, 오늘도 그 숫자를 수수료로 바꾼다. 그 7분은 읽는 내내 손바닥을 데우고, 계산이 끝나면 어김없이 차가워진다.
낮. A급 헌터 강태오 사고 현장. 통제선 안쪽은 길드 연합 조사관들이 한 차례 걷어간 뒤였다.
남은 건 흙먼지 뒤집어쓴 배낭 하나와 나, 그리고 사장 백승민. 군화 밑창에 눌린 흙이 마른 잎처럼 일어나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노란 통제선 테이프가 끊어질 듯 퍼덕였다. 공기 중에는 마른 흙과 녹슨 쇠 냄새가 얇게 깔려 있었다.
장갑을 낀 채 배낭 잠금 고리를 벌렸다. 가죽과 땀과 화약 냄새가 섞여 배낭 겉면에 눌어붙어 있었다. A급이라도 죽은 뒤의 소지품은 그냥 물건이다.
버려진 물건치고는 손때가 남아 있다는 점만 다를 뿐. 지퍼가 반쯤 억지로 열려 있었다. 지퍼 이빨 사이로 붉은 흙이 끼어 있어, 누군가 힘으로 잡아당긴 자국이 선명했다.
조사관들이 안에 손 댄 흔적. 안감이 접힌 방향이 서로 어긋나 있었고, 봉제선 바깥으로 실밥이 몇 가닥 삐져나와 있었다. 바람이 불면 실밥이 가늘게 떨렸다.
나는 공식 감정서 항목 외 물건부터 접촉 순서를 바꿨다. 이쪽 일은 먼저 손이 닿는 순서가 곧 기록이 된다. 기록이 감정가를 만든다.
1차 조사 후엔 유품 접촉이 금지다. 하청이 들어온 건 그 뒤다. 그러니까 지금 내 손이 이 안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원래는 절차 위반이다.
길드 연합이 보지 않을 때만 성립하는 일. 지금 이 순간은 통제선 안쪽이 고요해진 틈이다. 통제선 밖에서는 조사관 차량의 경광등만 규칙적으로 붉게 깜빡였다.
끈 묶인 보급 박스 한 축, 우측 어깨 안감이 불룩했다. 배낭 안쪽은 보급품 상자 모서리로 빳빳하게 부풀어 있었다. 내 손이 그 틈으로 들어가는 순간, 왼쪽 손바닥이 화끈했다. 상자 모서리에 눌린 배낭 천이 장갑 위로 미끄러지며 열을 남겼다.
베였다.
얇은 철사 끝이다. 장갑 위로는 안 느껴질 정도로 곱게 갈린 이면 날. 손에서 피가 났고, 그와 동시에 상처가 달아올랐다. 핏방울이 장갑 안쪽에 번지기 시작했다. 따끔한 통증보다 먼저, 손바닥 전체로 열이 퍼져나갔다.
고인의 마지막 감정이 각성한 유품이다.
……이걸 그냥 만져버렸네.
익숙한 시스템 문구가 눈앞을 덮었다.
[기억 판독: 강태오 | 잔여 신뢰도 97.2% | 재생 구간 00:07.4]
눈앞이 뒤집히듯 어두워졌다. 배낭 속 냄새가 순간 사라지고, 서늘한 창고 안 공기가 폐를 채웠다. 누군가의 손이 보급 박스를 세고, 내 귀에 숫자가 꽂혔다. 창고 바닥의 냉기가 장갑 밑 상처로 스며드는 듯했다.
212. 14,000. 52.
……이걸 지금, 공짜로?
“기준아, 뭐 해. 재봉 뜯기 전에 감정서부터 확인하랬지.”
백승민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현장 클립보드를 손바닥으로 치면서 다가온다. 그는 클립보드로 이마에 번들거리는 땀을 눌렀다. 그의 손바닥에 눌린 먼지 자국이 클립보드 위에 옅게 번졌다.
“사장님, 벌써 손 들어갔습니다. 1차 조사가 끝난 유품이라고요.” “니가 뭘 알아서.” “몰라도 제 할 일은 합니다. 감정가부터 정리하죠.”
나는 손등으로 이마를 닦지 않았다. 손바닥의 열이 식기 전에는 아무 데도 대지 않는 게 버릇이다.
나는 장갑을 벗어 왼쪽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장갑 안쪽에는 이미 붉은 얼룩이 반 손바닥만큼 퍼져 있었다. 흉터가 아니다. 오늘 막 생긴 상처 특유의 습한 열이 손바닥을 욱신거리게 했다.
오늘 새로 생긴 상처가 벌겋게 부어 있었다.
이 상처가 뜨거운 동안엔 숫자가 읽힌다.
계약서에 없는 보너스 감각. 손바닥의 열이 식기 전에 머릿속 숫자를 정리해야 했다.
[감정가: 보급품 212박스 × 공적 단가 14,000원 = 2,968,000원]
숫자가 머릿속을 밀고 올라왔다. 마치 재생 구간이 끝나기 전에 서둘러 계산을 끝내야 한다는 압박처럼. 나는 허리 공구 가방에서 감정용 루페를 꺼내 배낭 안쪽을 비쳤다. 루페의 금속 테가 손바닥 상처에 닿아 차갑게 눌렸다.
내부 코드 스티커가 세 장. 일부가 칼로 긁혀 지워졌다. 칼날이 지나간 자리는 스티커 코팅이 들떠 있었다. 160이 정상적으로 보이도록 조작된 흔적.
공식 1차 감정서에는 160박스로 적혀 있을 거다.
그럼 52박스는…… 누가 삼켰는데? 숫자가 사라진 자리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남았다.
현장 클립보드에 그대로 꽂혀 있었다. 백승민의 손때가 클립보드 모서리에 번들거렸다.
“사장님, 공식 1차 감정서 여기 있군요.” “그래. 160박스. 우리도 그거 따라가면 돼. 괜히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백승민이 클립보드를 가리켰다. 나는 사본을 한 장 꺼내 감정서 옆에 펼쳤다. 펜으로 내가 본 숫자를 적었다. 사본 용지가 바람에 날리지 않게 손바닥으로 눌렀다.
212 × 14,000 = 2,968,000.
“이게 뭐야.” “실측치입니다. 공식이 160박스라면, 차이는 52박스. 금액으로 728,000원.”
백승민이 계산기를 꺼내 두드렸다. 계산기 액정이 흔들렸다. 그의 짧은 손가락이 212를 치고 14,000을 곱했다. 계산기 버튼이 눌리는 소리가 현장의 흙바람 소리보다 크게 들렸다. 그의 손끝에서 담배 냄새가 가볍게 떠올랐다.
액정에 2,968,000이 떴다.
딱, 하고.
“내가 언제 그걸 인정했어. 길드 협력 업체가 공식 뒀는데 하청 주제에 딴 숫자 내면 누구 책임이야. 니 책임이야, 한기준.” “그럼 이 차이는 공식 감정서 이의신청 사유로 올려도 되는 겁니까.” “야, 니가 뭘 올려. 그건 니가 알아서 해.”
백승민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손에 든 계산기를 놓지 못했다. 엄지가 2,968,000 위를 한 번 더 문질렀다. 그의 엄지가 액정에 남긴 땀자국이 숫자 위에 번졌다.
728,000원이 그 손가락 밑에서 맴돌고 있네.
그 순간 내 휴대폰이 울렸다.
[한빛은행 입금 840,000원 / 적요: 유족 사례금+감정 수수료]
입금 알림. 월세가 밀렸던 통장에 84만 원. 화면 밝기에 비친 내 얼굴이 잠깐 멈췄다. 손바닥의 열이 휴대폰 액정을 타고 눈까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반지하 3개월 치다.
아니, 밀린 가스비까지 내면 2개월 반.
겨우 2개월 반.
……수수료가 상당하네, 이건. 일한 만큼 받는 게 이 바닥에서는 드문 일이니까. 나는 숫자와 숫자 사이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나는 알림 화면을 백승민 쪽으로 기울였다. 액정이 흔들리지 않도록 손목에 힘을 줬다.
“사장님, 입금 확인했습니다. 이번 건 수수료가 상당하네요.”
목소리가 정확하게 나갔다. 나는 떨리지 않게 성대를 조인 채 말했다.
“뭐야, 840이나 들어왔어? 우리 기준 잘했네. 역시 이번 건은 내가 하청 따고 오길 잘했지.”
백승민의 얼굴이 순식간에 풀렸다. 계산기는 바지 주머니에 넣고, 클립보드는 겨드랑이에 꼈다. 그의 겨드랑이에 낀 클립보드에서 사본 한 장이 바람에 흔들렸다.
나는 계산기를 켜서 그를 향해 보여줄까 하다, 그냥 말로 눌렀다.
“사장님. 212박스로 정산됐다는 겁니다. 공식 160박스 기준이면 이 수수료가 안 나옵니다. 유족 사례금 7만에 160박스의 3%면 67,000원. 제 몫이 이렇게 나오려면 212박스가 기초 자료로 들어간 거예요.”
백승민의 목에 금목걸이가 이유 없이 반짝거렸다. 그는 입을 열었다가 클립보드를 손바닥으로 두들겼다. 금목걸이의 반짝임이 목덜미의 땀에 흐려졌다. 그가 목을 만질 때마다 옅은 금속 냄새가 났다.
“그건…… 정산 시스템이 알아서 한 거니까. 우리는 하청이야. 하청은 하청답게 확인만 하면 돼.” “그럼 저는 이 기록 사본을 보관하겠습니다. 하청답게 확인할 일이 있을 테니까.”
사본을 내 쪽으로 반 접어 공구 가방에 넣었다. 백승민이 뭐라 덧붙이기 전에 배낭 지퍼를 다시 잠그려던 내 손이 멈췄다. 통제선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저 멀리서 조사관들의 무전이 짧게 터졌다.
“거기. 시체 청소부죠?”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여자였다. 연두색 수술복 상의에 검은 패딩 조끼.
병원 냄새를 페퍼민트 향으로 겨우 눌렀고, 손톱은 짧고 거칠었다. 귀 옆 잔머리가 흙바람에 붙어 있었다. 그녀의 운동화 끈은 흙에 절어 있었다.
통제선 밖에서 길드 연합 보조요원이 막아서는 걸, 그녀는 어깨로 거의 밀치다시피 걸어 들어왔다. 멀리서도 그녀의 목소리에는 유족 특유의 급한 발성이 실려 있었다.
“강태오 유족입니다. 유품 만지는 거, 제가 보고 왔어요.”
이하린이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눈썹이 먼저 움직였다.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지만, 목소리엔 이미 열기가 실려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내 손목의 피 묻은 장갑 위에 가서 박혔다.
“당신이 한기준인가요. 오빠 배낭, 방금 당신이 열었죠.” “유족분, 먼저 신분 확인부터.” “신분 확인? 내가 유족인 건 왜 물어보는데. 오빠 유품 앞에서 그딴 절차가 나와요?”
뒤따라 들어온 백승민이 내 어깨 뒤에서 소리만 냈다. 그는 소리만 내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여기 통제 구역인데, 유족이면 정식 채널 통해서……” “당신은 입 다물고 있어요. 나는 저 사람한테 묻는 거니까.”
이하린은 말을 끊고 다시 나를 봤다. 공문 어투로 받으면 오히려 불이 붙을 상대였다. 나는 장갑을 낀 채 손을 내려 배낭에서 거리를 뒀다.
손바닥의 열이 장갑 너머로도 느껴져, 나는 주먹을 살짝 폈다 쥐었다. 상대의 말을 끊게 두면 안 된다. 유족은 숫자가 아니라 절차에 먼저 화가 난다.
“보호구 착용하고 결손 부위 확인만 했습니다. 접촉 이력은 감정서에 기록됩니다.” “오빠 유품을, 내 허락 없이, 함부로 만졌어요. 그걸 지금 자랑하자는 거예요?”
그녀의 문장이 길어졌다. 끝의 질문이 날이 섰다. 문장이 길어질수록 그녀의 호흡은 오히려 짧아졌다.
“일한 만큼 수수료가 나왔으니, 이제 퇴장하시죠. 유족분.” “퇴장? 내가 왜요. 시체 청소부가 오빠 가방에서 뭘 꺼내 봤는지부터 말해요.”
“저는 이 현장의 하청 성립 여부와 무관하게, 보이는 실측치만 기록했습니다. 공식 1차 감정서에 160박스. 실제 보이는 수량은 212박스. 차이는 52.”
이하린의 호흡이 한 번 끊겼다. 숫자를 따라 읊을 때마다 그녀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의 눈이 잠깐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나를 올려다봤다.
“212…… 14,000…… 차이 52.”
그녀가 주문처럼 숫자를 따라 읊었다. 내 손끝이 멈췄다. 사본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 사람, 이 숫자를 이미 어디선가 들은 거다. 그건 일부러 꺼내지 않았다. 나는 사본을 가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익숙한 숫자를 읊는 방식이, 나처럼 판독을 외우는 사람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보여줘요. 그 기록.” “드릴 수 없습니다. 정식 의뢰 절차 없이는 기록 사본을 유족이라고 해도 임의 교부할 수 없습니다. 1차 조사 물품이라 길드 연합 관리 대상입니다.” “조작된 감정서보다 당신 입에서 나온 숫자가 뭐가 달라요?”
이하린이 배낭 앞으로 한 걸음 더 들어왔다. 길드 연합 보조요원이 팔을 뻗었지만 그녀는 몸을 비틀어 피하며 계속 나를 봤다. 통제선은 이미 반쯤 무너졌다.
백승민은 뒤에서 연합 조사관 번호를 겨우 읽으며 전화를 들었다. 통제선 밖에는 구경꾼이 한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구경꾼 중 하나가 휴대폰을 꺼내 드는 게 보였다.
“당신 입에서는 212. 공식 서류에는 160. 그 차이 52를, 증명하란 겁니다.” “증명은 다음 신청 건으로 잡으십시오. 오늘은 현장 마감이라.”
나는 허리 공구 가방을 매만지며 뒤로 물러섰다. 흙바람이 다시 불어 이하린의 앞머리를 흔들었다. 손바닥이 아직 뜨거웠다.
판독의 숫자는 남겨 놓는 것이 맞고, 사본은 지금 이 손에 있어야 길드 재조사 근거가 된다. 이 사람이 여기서 더 소리치면 나는 사본을 내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백승민에게 접수로 기록해야 한다. 그게 내 몫이다. 감정 업자가 아니라 기록 업자가 되는 것.
“오빠 유품 함부로 만진 시체 청소부가, 이제 와서 절차 타령이요?”
이하린의 목소리가 통제선 안을 가로질렀다. 그녀의 검은 포니테일이 흙바람에 옆으로 흩어졌다. 백승민이 휴대폰을 흔들며 뭐라 외쳤지만 내 귀에는 이하린의 마지막 요구만 남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땅에 붙어 있던 먼지를 일으킬 만큼 낮고 단단했다.
“증명하라고요.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