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verStory

유품 정리사인데 죽은 A급의 마지막 기억이 읽힌다

2화

“서명하세요, 백승민 사장.”

이하린이 내 옆으로 붙어 탁자 건너편을 봤다. 정리공사 사무실은 문을 닫는 순간 아침 햇빛이 사라지고 형광등 냄새가 올라왔다. 흙바람은 아직 내 작업복 밑단에 남아 있었다.

나는 사본을 탁자 위에 펼쳤다. 공식 감정서 대조본을 그 옆에 가지런히 놓았다.

이하린이 내 쪽 서류를 보다가 다시 백승민을 노려봤다.

“유족이 의뢰서 썼으니까, 여기. 그 차이 52를 공식으로 올리기 전에 사장님 확인 먼저 받는 겁니다.”

내가 말했다. 과공손 끝에 정확한 수수료를 얹는다.

“감정가 212박스 곱하기 공적 단가 14,000원. 합계 2,968,000원. 공식 감정서는 160박스, 2,240,000원. 차액 728,000원.”

백 사장님 서명 한 번이면 제 상담이 끝납니다.

서명 한 번에 72만 8천 원이 움직인다.

백승민은 소파에 앉은 채였다. 금목걸이를 만지고 클립보드를 무릎 위에 올렸다. 클립보드는 현장에서 그대로 들고 온 것이다.

“니가 지금 나한테 뭘 요구하는 건데.”

“하청 갱신 조건에서 제가 1차 감정 시트에 실측치를 표기하는 것까지는 문제없다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그 기록을 공식으로 접수할 사람이 필요할 뿐입니다.”

“내가 언제 그런 걸 허락했어.”

백승민이 일어났다. 소파 스프링 소리가 났다.

딱.

그는 내 왼쪽 어깨 너머로 난입한 이하린을 흘깃 보며 말했다.

“그리고 이분은 왜 여기 같이 온 거야. 유족이 사무실까지 쫓아오게 하고, 니가 무슨 정리사야.”

나는 뒤로 반 걸음 물러나며 탁자 끝에 있는 계산기를 이하린 쪽으로 밀었다.

“유족이 먼저 음성메모를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그것부터 들어보시죠.”

160이라는 숫자가 어디서 갈라지는지.

지금 들어야 할 사람은 저쪽이다.

이하린이 폰을 꺼냈다. 화면 보호 필름에 금이 가 있었다. 그녀가 재생 버튼을 눌렀다.

“212…… 14,000…… 차이 52……”

목소리는 작았다. 남자의 목소리였지만 강태오는 아니었다. 이하린이 폰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우리 오빠 동료 생존자요. 사고 이틀 전에 남긴 메모예요. 저는 이걸 오늘 아침에 겨우 열어 봤는데, 이 숫자가 감정서의 160보다 먼저였어요.”

백승민의 손이 멎었다. 클립보드 모서리를 쥔 손가락이 하얘졌다.

“그게 뭐, 음성메모 하나 갖고……”

서명 하나로 덮을 수 있는 숫자가 아닌데.

사장님, 지금 손가락부터 새하얗습니다.

“그러니까 사장님이 서명해서 그 메모가 증거인지, 160이 정상인지 절차로 가리자는 겁니다.”

내가 말했다.

“서명 안 하시면 저는 이대로 헌터넷 사건제보에 올립니다. 조작된 서류보다 제 실측치가 더 정확하다는 증거로.”

내가 이하린을 돌아봤다.

“괜찮으시면, 올리세요.”

이하린이 폰을 집었다. 백승민이 탁자를 짚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야, 헌터넷에 올리면 길드 연합에서 명예훼손 공문이 오는데. 그건 니 책임이야?”

“공문 오면 수수료 정산 내역부터 제출하면 됩니다.”

사장님 통장에 꽂힌 840,000원.

그게 제일 먼저 조회될 거고요.

조작 서류보다 먼저…… 당신 통장이 증명해 줄 겁니다.

백승민이 소파에 다시 앉았다. 소파가 깊게 꺼졌다. 그가 클립보드를 탁자 위에 딱 놓았다.

“우리는 길드 하청이야. 계약도 길드랑 맺은 거야. 니 혼자 수치 올렸다가 160박스 까이면, 우리 다음 하청이고 뭐고 다 날아가.”

까이면요, 사장님.

날아가는 건 제 통장이 아니라 그쪽 갱신 서류죠.

“알겠습니다. 그럼 사장님은 서명 거부로 기록하고, 저는 의뢰인과 사건제보를 진행하겠습니다.”

내가 고개를 숙였다. 예의 바른 인사였다.

속으로는 얼른 계산했다. 백승민이 이 자리에서 서명하면 길드에 먼저 채일 놈은 나다. 서명을 거부해야 160박스 조작이 백승민의 문제로 남는다.

이하린이 백승민 앞으로 폰을 들이밀었다.

“봐요. 1차 감정서 원본이 이거죠? 160박스 곱하기 14,000. 여기까지는 길드 서류가 알아서 계산해 놨네요.”

백승민이 감정서 원본을 탁자 위에 펼쳤다. A급 1차 조사 물품이라는 인쇄 머리말이 형광등에 비쳤다. 그의 짧은 손가락이 ‘보급품 160박스 × 14,000원 = 2,240,000원’ 줄을 짚었다.

“여기 160은 공식이잖아.”

그 손가락이 160에서 52로 내려가다 멈췄다.

백승민이 입을 열다 말고 물컵을 집었다. 목덜미에 땀이 솟아 금목걸이 아랫부분이 번들거렸다. 나는 그가 물을 마시는 동안 이하린에게 짧게 말했다.

“사장님이 저렇게 멈칫한 건 52가 보인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서면 남깁니다.”

백승민의 손에 쥔 종이컵이 구겨졌다.

퍽.

“헌터넷 카페 아이디 뭐로 쓸 거야. 혹시 너, 조작된 프로그램으로 수치 짜깁기하려는 거 아니냐.”

이하린이 폰을 세로로 세웠다. 화면에 음성메모 파일과 파형이 보였다.

“게시물 제목은 ‘A급 강태오 유품 감정서 전문 떴다’ 할 거예요. 이 음성메모 7초짜리 일부 들어가고, 1차 감정서 대조 사진 한 장. 끝.”

“끝이 아니라 그 다음에 길드 공문이 오잖아!”

백승민이 외쳤다. 목소리가 허스키하게 갈라졌다.

“한기준, 너 지금 사무실에서 나가기 전에 이거 하나만 생각해 봐. 너 정식 감정사도 아니고, 길드 인맥도 없잖아. 니가 아무리 정확해 봐야 하청 샌드백이야.”

그 말이 내 월세보다 먼저 귀에 들어왔다.

“……맞습니다.”

나는 탁자 위의 서류를 정리하며 말했다.

“그래서 이번 건 수수료로 제 월세부터 밀어 넣어야 하는데, 그게 728,000원.”

겨우 그 차이에 하청 갱신이 걸려 있는 셈입니다.

월세 한 달. 그게 이 사건의 무게였다.

이하린이 게시판 앱을 열었다. 화면이 파랗게 변했다.

“올려요.”

백승민이 종이컵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물이 바닥에 조금 튀었다.

“기다려 봐. 내가 언제 안 올리라고 했냐. 지금, 지금 올리지 말고.”

“말리지 마세요.”

이하린이 말했다.

“서명이 없으면 게시부터 할게요.”

그녀의 검지가 미리 작성해 둔 게시글로 가 있었다.

이대로 올라간다.

“이 글에 내가 첨부 허용하는 건 1차 감정서 대조 전문까지입니다.”

내가 이하린에게 말했다. 그녀가 끄덕였다.

백승민이 일어나려다 허리춤에 낀 수첩이 바닥에 떨어졌다. 수첩에서 종이 한 장이 삐져나왔다.

“야, 한기준. 마지막으로 묻는다. 정말 헌터넷에 저거 올리면, 우리 둘 다 이번 건에서 손 떼는 거다.”

그 종이, 저게 뭐지.

“사장님, 제가 손 떼는 순간 이 212박스 실측치는 정리공사 공식 서류가 아니게 됩니다. 그럼 저는 사건제보 말고 목격담으로만 남겠네요.”

내가 허리 공구 가방을 탁자 옆 의자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차라리 그게 낫겠습니까.”

백승민이 대답 대신 폰을 꺼내며 중얼거렸다.

“아 몰라. 니가 알아서 해.”

목격담이라. 수수료는커녕 사고 기록에도 안 남는 거다.

[헌터넷 > 커뮤니티 > 사건제보] 제목: A급 강태오 유품 감정서 전문 떴다 본문: 오늘 개봉된 강태오 유품 배낭, 1차 감정서에는 보급품이 160박스로 찍혀 있다.

공적 단가 14,000원 기준 2,240,000원.

그런데 사고 이틀 전 동료가 남긴 음성메모에는 ‘212박스, 14,000, 차이 52’가 남아 있다.

첨부: 1차 감정서 보급품 항목 확대 사진, 음성메모 7초 일부

ㄴ 게이트개미: 조작 아님? 수치가 너무 정확한데

ㄴ 게이트개미: 근데 그 배낭 유족이 마음대로 만질 수 있는 거 아니지? 감정인 번호는 어디 있냐

ㄴ E급생존자: 212박스 공적 단가 14,000원, 오차 0.4박스면 진짜다. 이거 소수점 안 맞으면 조작 맞음

ㄴ 퇴사한길드원: 이거 예전 3지구 보급 라인에서 같은 수법 나왔음. 수량 미리 내려서 차액 빼먹는 거

ㄴ 오늘도던전출근: 유족 입장에서 길드 공지부터 확인하셈

사무실 컴퓨터 화면이 자동 새로고침되며 댓글이 달라붙었다.

백승민이 모니터를 노려봤다. 이하린이 옆에 서서 게시글을 열었다.

“E급생존자가 오차까지 계산했잖아.”

이하린이 말했다. 나는 화면을 읽었다. E급 생존자는 등록 헌터 번호와 활동명만 봤다. 녹색 아이콘이었다.

오차 0.4박스.

이건 그냥 댓글이 아니다.

숫자가 소수점까지 정확하다.

“이 댓글, 지금 내 의뢰서보다 더 센 근거예요.”

내가 이하린에게 말했다.

“이게 살아 있는 헌터 증언 하나를 얻는 것보다 가벼워요. 160박스에 딱 멈추는 게 아니라 소수점까지 212로 딱 떨어진다는 거.”

댓글 하나에 2,240,000원?

아니, 이건 그 반대다.

숫자가 증거를 대신 말하고 있었다.

“흥분하지 마세요. 아직 길드 공문이 법적 조회보다 빠르거든요.”

백승민이 화면에서 게이트개미 댓글을 짚었다.

“이거 봐. ‘조작 아님? 수치가 너무 정확한데’ 이거 다는 거 봐. 여론이 무조건 우리 편은 아니잖아.”

게이트개미가 헌터넷에서 길게 썼다.

ㄴ 게이트개미: 이 글 다 유출로 덮으면 유족이 제일 먼저 명예훼손 걸린다. 길드 연합 공문 오는 거 순식간임

ㄴ E급생존자: 공문 오면 좋지. 그때는 정식 감정인 번호랑 공적 단가표부터 까면 된다

ㄴ 퇴사한길드원: 3지구 쪽 보급 반장들 다 짤렸다고 들었는데 그 패턴 그대로네

ㄴ 오늘도던전출근: 근데 유족 글에 감정인 면허 빠져 있음. 이 부분 먼저 인증해야 함

내가 모니터 밑으로 손을 뻗어 마우스를 쥐었다. 백승민이 내 손목을 잡으려다 놓쳤다.

“뭐 하려는 거야.”

“댓글까지 제가 답할 필요 없고, 의뢰서 대표 감정인 란에 제 면허 예정 번호 대신 ‘미등록’으로 남기려는 겁니다.”

나는 화면을 닫았다.

“어차피 제가 등록 감정 사이넘버로 누르지 않은 것도 이번 사건에서 유리합니다.”

감정인 자격 란이 1차 조사 하청 정리사 기록으로 남아야 160박스 조작이 길드 내부 문서로 올라가니까.

그게 이번 건의 핵심이니까.

백승민이 나를 봤다. 눈이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니가 지금 사람을 뭘로 아는 거냐. 내가 언제 그 서명 안 한다고 했어. 그러니까 헌터넷부터 내려.”

등록 헌터도 아니면서 서명부터 닦달이다.

“이미 도착한 것 같은데요.”

이하린이 내 폰을 가리켰다. 내 허리 공구 가방 위에서 화면이 밝게 떠올랐다. 나는 폰을 뒤집어 놓았었다. 알림 소리가 짧게 울렸다.

……수신 확인이라.

“길드 연합에서 발송한 수신 확인이네요.”

이하린이 말했다. 나는 폰을 집었다. 화면에는 메시지 하나. 발신지는 길드 연합 홍보·법무 고충 접수 센터로 찍혔다.

‘명예훼손 게시물 관련, 등록 헌터 및 유족 열람 참고용 공문이 접수되었습니다. 열람 링크 발송 예정입니다.’

역시 오는군.

“수수료부터……”

백승민이 모니터를 켠 채 중얼거렸다. 그는 계산기를 눌러 728,000원을 지웠다가 다시 눌렀다.

“수수료부터 정리하게. 나 지금 52박스 때문에 사무실이고 나발이고 다 잃을 판이야.”

“사장님, 그 말이 이번 건에서 제일 정확하십니다.”

내가 폰을 뒤집어 다시 올려뒀다.

공문 예고까지 왔고, 열람은 내일로 미뤘다. 하루 사이에 저 게시글이 사라지면 유족 쪽에 불리하게 남을 텐데?

그럼 저 공문이 유족을 겨누는 칼이 되는데.

이하린이 내 쪽으로 한 걸음 오며 짧게 말했다.

“공문 열어볼 거죠, 한기준.”

“오늘은 안 엽니다. 공문은 도착 예고까지가 제 사건이고, 열람은 내일 제가 유족 대리인 적힌 사본으로 확인하겠습니다.”

내가 탁자 위의 감정서 대조본을 집었다.

“지금 제가 남길 숫자는 수수료가 아니라 ‘차이 52’입니다.”

유품 정리사인데 죽은 A급의 마지막 기억이 읽힌다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