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품 정리사인데 죽은 A급의 마지막 기억이 읽힌다
3화
공구 가방 위 폰이 뒤집힌 채 진동했다. 발신자 표시는 떠 있지 않았다. 대신 메시지 한 줄이 화면을 밀고 올라왔다.
“나야. 윤가온.”
주소가 붙어 있었다.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다세대 주택가.
사고 이틀 만에 처음 보는 생존 파티원의 이름이었다.
``` 헌터넷 그 글 봤다. 증거부터 봐. 오늘 밤. 늦게까지 깨어 있겠다. ```
증거.
그러고 보니 내가 지금 가진 건 유품 견본과 감정서, 그리고 뜨거운 손바닥뿐이었다.
뭐, 그것도 없으면 정리사가 아니지.
이하린이 의뢰서 원본을 가방에 넣으며 나를 봤다.
“윤가온이에요?”
“그런 모양입니다.”
“같이 갈게요.”
“아닙니다.”
나는 벽에 기댄 공구 배낭을 집었다.
금속 버클이 부딪히며 찰칵, 소리를 냈다.
“유족이 먼저 들어가면, 윤가온은 지금 안에서 마음 정리하고 있던 사람을 길드에 팔았다는 느낌부터 받습니다. 유족 없이 정리사가 가야죠.”
이하린이 뭐라 더 하려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두운 사무실에서 그녀의 목덜미만 희었다.
“제가 이 길에서 믿을 사람이 둘뿐이라요. 그중 하나가 지금 그 사람이니까.”
“……남은 하나는 누군지 묻지 않을게요.”
그게 나라도 부담이고, 백승민이라면 이하린이 잘못된 거다.
정리사가 사람을 믿는 순간, 수수료부터 흔들리는데.
나는 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밤 열 시가 조금 넘었다. 인적이 끊기기엔 이르고, 편의점 하나 사는 시간은 지났다.
“육교 아래 택시에서 내릴게요.”
이하린이 한마디 덧붙였다.
“그 사람, ‘증거는?’ 하고 물을 거예요. 제가 오빠 유품료 정산 서류 들이밀 때 그랬으니까.”
감사하네. 상대의 결이 이제 하나 고정됐다.
나는 사무실 문을 나서며 폰 계산기를 열었다.
택시비가 아깝다.
이게 가치 있는 증거일지, 아니면 빈 배낭 하나 들고 돌아와서 주유비만 까먹을지.
내 앞으로 한 시간짜리 경제 문제다.
윤가온의 임시 숙소는 2층짜리 다세대 주택의 반지하였다. 바깥 계단을 돌아 올라가니 작은 현관등만 켜져 있었다.
문은 내가 손을 대기 전에 안쪽에서 열렸다.
윤가온이 서 있었다. 검은 길드 훈련복 대신 낡은 후드에 트레이닝 바지 차림이었다. 턱 아래 흉터가 어둠에 오목하게 들어가 있었다.
“들어와.”
한 마디였다.
이 집, 캠핑용 테이블 하나가 전부네.
나는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좁은 거실에 캠핑용 테이블 하나, 의자 둘. 탭이 달린 가방이 한쪽 벽에 기대어 있었다.
“읽었냐.”
“헌터넷 글이요.”
“아니. 그 공문.”
나는 가방을 테이블 옆에 내려놓으며 고개를 돌렸다. 윤가온은 형광등 아래에서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내가 꺼낸 폰 화면에는 아까 그 수신 메시지가 그대로 있었다.
“‘명예훼손 게시물 관련, 등록 헌터 및 유족 열람 참고용 공문이 접수되었습니다.’ 여기까지요.”
“증거는.”
왔다.
이하린의 예고는 정확했다.
그럼 이제 내 차례지.
나는 유품 견본 봉투에서 피가 묻은 정산표 한 장을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접착 봉투째라 공기 접촉은 없었다.
“이게 뭔데.”
“1차 유품 정리 때 제가 임시 보관한 견본입니다. 강태오 배낭에서 나온 보급품 정산표 조각. 여기에 212와 14,000이 읽혔어요.”
“남이 쓴 숫자잖아.”
“그 수치가 공적 단가와 곱해져서 2,968,000원이 됩니다. 길드 공식 감정서는 160박스, 2,240,000원. 차이 52박스. 여기까진 제 감정 결과와 서류 대조예요.”
나는 장갑을 벗고 왼쪽 손바닥을 봉투 위에 얹을 준비를 했다.
윤가온이 한 걸음 다가와 내 손목을 잡았다.
“너 지금 그거 만지면.”
“판독합니다. 이 자리에서.”
“조작 아님? 네 손에서 나온 수도 있어.”
“윤가온 님이 지켜보는 앞에서요.”
그의 손이 내 손목에서 떨어졌다.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침이 마르는 소리가 작게 났다.
이거, 분위기가 꽤 서늘하네.
확인하는 순간까지가 긴장의 정점이다.
나는 손바닥을 봉투 위에 댔다.
흉터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 [기억 판독: 강태오 | 잔여 신뢰도 94.3% | 재생 구간 00:06.5]
눈앞이 좁아졌다. 어두운 비탈길이었다. 비가 오고 있었고, 시야 끝에 흔들리는 사람 그림자가 하나.
강태오의 목소리가 울렸다.
“가온아.”
“응.”
“내 배낭 안감에 USB를 넣어.”
그리고 발소리. 철제 구조물을 넘는 기어오르는 숨소리.
목에서 올라온 숫자가 점막에 붙었다.
“09-3. 이쪽으로 나와.”
“형, 09-3은 막혔어!”
“가온이 배낭에 USB를 넣어. 그리고 09-3으로. 알겠어?”
나는 눈을 떴다.
손바닥이 봉투에 눌린 채였다.
……지금, 이거.
“뭐 봤는지 말해.”
윤가온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나는 손에 힘을 풀며 폰을 들어 그가 보는 앞에서 녹음 앱을 켰다.
“음성메모로 알고 있던 것과 같은 결입니다. 강태오 씨가 윤가온 님 배낭 안감에 USB를 넣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09-3’이라는 코드를 두 번 지목했어요.”
윤가온이 한 발짝 물러나 등으로 벽에 기댔다.
그는 내 얼굴과 테이블 위 봉투를 번갈아 보더니, 천천히 벽에 기댄 자신의 배낭을 끌어당겼다.
“내 배낭 코드까지.”
“조작 아님?”
내가 그의 말투를 돌려줬다. 그는 내 쪽을 노려보다가 배낭 곁밑을 만졌다.
“코드도 아니야. 저 새끼, 발신기 끄고 불렀어.”
윤가온의 손끝이 배낭 안감 바닥을 짚었다. 무언가를 찾는 손이 아니었다.
존재를 확인하는 손.
봉제선이 실밥과 함께 한 뼘쯤 틈이 벌어진 곳에, 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검은 USB 메모리가 밀봉 비닐에 든 채 박혀 있었다.
윤가온이 그걸 꺼내 책상 위에 올렸다.
딱.
내가 닿으려 하자 그가 몸으로 막아섰다.
“이건 내가 연다.”
“그게 좋죠. 저는 사본만 받으면 됩니다.”
“왜.”
“증거 보존은 원본부터에요. 조작 여부를 시험할 거면 원본을 촬영하고, 촬영본을 먼저 복제해 두는 게 순서니까요. 안 그러면 저도 그 USB를 만진 정리사로 낙인찍힙니다.”
윤가온은 대답 대신 휴대폰을 들어 USB를 촬영했다.
무음 촬영.
그는 이어폰을 휴대폰에 꽂고 USB 리더기를 연결했다. 화면이 밝아졌다.
텍스트 파일과 표 파일이 섞여 있었다. 윤가온이 커서를 움직였다. 손끝이 느렸다.
“이거…….”
화면 속 한 줄이 어둠에 떠 있었다.
``` 3지구 보급 라인 보급품 정산본 – 212박스 × 14,000원 / 공식 감정서 160박스 / 차이 52 ```
똑같았다.
내 판독 숫자와 일치했다. 내가 읽은 게 강태오 마지막 기억의 잔상이라면, 이것은 그가 남긴 실물 회계였다.
차이 52박스.
그 한 줄이면 충분했다.
이제 이 봉투 값은…… 아니, 지금 그게 아니라.
윤가온이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렸다. 나는 폰으로 화면 사진을 찍었다. 그는 USB를 빼서 손에 쥔 채 말했다.
“사본은 내일.”
“그래도 됩니다. 단, 그 전에 저한테 유품 견본 판독 녹음 파일 하나는 가져가게 해주세요. 제가 밤길을 꽁으로 다녔다고 생각하면 어두워서 잠이 안 옵니다.”
윤가온이 처음으로 짧게 웃었다.
그는 내 폰 앞으로 자기 폰을 들어 판독 결과를 다시 보여줬다. 그 화면에는 신뢰도 94.3%, 재생 구간 00:06.5가 그대로 찍혀 있었다.
나는 그를 보았다. 증언 번복을 하라고 강요해야 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그는 이미 물을 들고 있었다.
“내가 이걸 꺼낸 적 없던 걸로 해.”
윤가온이 배낭 봉제선을 손으로 눌렀다. 나는 답을 어깨로 받았다.
“정리사는 그날 개봉된 유품만 정리했고, 생존자가 자기 배낭에서 물품을 발견한 겁니다. 저는 그 뒤에 사본 하나 받아 봤고.”
“그렇게 되면 나는.”
“피해자로 남을 수 있죠.”
나는 의자를 밀어 일어섰다.
윤가온은 여전히 USB를 두 손으로 감쌌다. 손가락에 낀 테이핑의 끝이 흐트러져 있었다.
“갈 길이 어두워서 그러는데, 이 글이 뭘 뜻하는지 확신하십니까.”
“사고가 아니었다.”
그의 목 끝이 일정하게 떨렸다.
더는 내가 할 말이 없었다.
마루를 두 번 디뎌 현관에 닿았다.
사무실에 돌아오니 불이 꺼져 있지 않고 형광등 서너 개가 다 켜져 있었다.
백승민이 문 앞에 서 있었다.
한 손에는 공문 사본.
“내가 언제 여기까지 오라고 했냐.”
“밤이 늦었으니 내일 보고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이거.”
백승민이 공문을 탁자 위에 던졌다. 종이 두 장이 미끄러져 벽에 부딪혔다.
……종이가.
벽에 부딪힐 만큼, 세게.
나는 허리를 굽혀 집어 들었다.
``` 수신: 정리공사 참조: A급 고 강태오 유족 제목: 명예훼손 및 하청계약 해지 예정 통보
본 통보 수령 후 24시간 내 유족 접촉 중단 및 추가 감정서 제출을 금한다. 위반 시 하청 계약 해지 및 손해배상 청구. ```
문서 모서리에 길드 연합 직인이 번져 있었다.
하필 번졌다. 그것도 직인이.
“야, 이거 보면 아직도 유족이랑 붙어다닐 거냐.”
백승민이 내 쪽으로 손가락질했다. 손가락이 힘없이 떨렸다.
아니, 떨리는 건 손가락이 아니었다. 그가 쥔 계산기였다.
사장님 손에서 계산기가 떨린다?
그건 공문보다 먼저 봐야 할 품질검수 항목이다.
“사장님. 이 공문은 제 유족 접촉을 막는 문서가 아닙니다.”
“뭔 소리야. 접촉 중단이라 써 놨잖아!”
“여기 ‘유족’이요. 유족 이하린 씨는 어제 이미 의뢰서를 썼고 오늘은 귀가했습니다.”
저는 생존자, 윤가온 님하고만 있었습니다.
백승민의 얼굴이 순간 풀렸다가 다시 구겨졌다. 그 얼굴은 계산기 액정보다 빨리 움직였다.
“그, 그래도 추가 감정 금지라니까. 너 이제 2,968,000원 얘기 꺼내지도 마.”
“제가 꺼내기 전에 3지구 길드가 먼저 꺼낸 물건이 있더군요.”
공문 접수 전에 발견된 거니까…… 이 조항하고는 무관합니다.
“뭘.”
“발견된 겁니다.”
나는 공문을 탁자 위에 똑바로 놓았다. 모서리를 가지런히 맞추고, 정리공사 영수증 한 장을 그 위에 올렸다.
내일 윤가온의 사본을 수령하면.
이 탁자는 유족 청구 문서로 덮일 것이다.
“백승민 사장님.”
내가 과공손으로 그를 불렀다.
“24시간 내 유족 접촉 중단이라. 그 말은 24시간이 지나면 유족도 감정서도 다시 움직인다는 뜻이에요.”
백승민이 내 공문 위 영수증을 형광등에 들어 올렸다. 그 숫자가 무슨 의미인지 몰라 눈만 껌뻑였다.
나는 그가 공문을 다시 접기를 기다리며 폰을 열었다. 은행 앱이었다. 오늘 밤의 택시비와 견본 촬영 시간을 수수료로 환산 중이라는 걸 감추려고, 백승민이 듣지 못할 만큼 작게 중얼거렸다.
“사흘 안에 72만 8천 원 갚자가 아니라, 차이 52를 법원 가기 전에 정리하면 2,968,000원이에요.”
이게 안 보이면, 사장님도 저도 평생 통에 있지 못하고요.
그가 집어 올린 영수증은 감정서 대조용 기록 사본이 아니었다. 편의점 계산표였다. 나는 그걸 다시 내려놓으며 말했다.
“내일 윤가온 님을 만나서 사본을 받아 지갑 뒤에 넣겠습니다. 그게 진짜 계산표입니다.”
백승민이 공문을 말아 자신의 소매 끝으로 넣었다. 그 손등에서 땀이 미끄러지는 게 보였다.
땀까지 보인다.
오늘 같은 밤에, 그것도 사장님 손등에서.
“니가 지금 사람을 뭘로 아는 거냐. 내가 언제 그 공문 돌리라고…….”
그가 문을 열다가 잠깐 돌아봤다.
나는 공문 사본을 다시 가지런히 정리하고 있었다.
“이 일이 말짱해지면 너 수수료 재계산해.”
그건 지금까지 백승민이 한 말 중에서 가장 정확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문이 닫혔다.
……이제야 공기가 좀 지나간다.
나는 잠시 앉아 있었다. 유품 견본에서 나온 목소리. 09-3이라는 퇴로 코드. 윤가온의 떨리던 목 끝. 그리고 이 사무실에 떨어진 공문 한 장.
폰을 뒤집으니 어두운 화면에 발신 메시지가 다시 떠올랐다.
‘24시간 내 유족 접촉 중단 및 추가 감정서 제출을 금한다.’
그럼 이 메시지는 기한이야, 금지가 아니라.
나는 그 문장을 소리 내서 또박또박 읽었다. 잘 들어라. 나는 유족 접촉 자체와 감정서 제출을 잠깐 멈추는 대신, 생존자의 배낭에서 나온 물건을 사본으로 받아 이 테이블 위에 올릴 것이다.
그 공문 한 장이 길드 연합을 다시 조사하게 만들 줄은, 그날은 나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