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품 정리사인데 죽은 A급의 마지막 기억이 읽힌다
4화
착. 목덜미가 먼저 반응했다. 사무실 문이 열리기 전부터 복도 끝에서 밀려오는 구두 소리가 세 개, 아니 네 개였다.
오전 아홉 시 십 분. 정리공사 사무실 유리문 너머로 백승민이 걸어왔다. 평소보다 뒷걸음이 반 걸음 빨랐다.
그 뒤로 검은 정장 두 명. 가슴에 길드 연합 조사팀 패용증을 달고 있었다. 백승민이 문을 잡은 채 나를 돌아봤다.
“한기준. 너 지금 뭐 들고 있냐.”
공문부터 올려놓으시죠, 사장님.
속으로는 이미 계산기를 두드렸다. 어제 밤 그 공문 사본, 오늘은 원본이 오는구나. 그것도 조사팀을 달고.
하루 만에 원본이라.
수수료도 없이 나온 발걸음이 이렇게 무거울 줄이야.
조사팀 중 키 큰 쪽이 서류 봉투를 탁자 위에 놓았다. 봉투 겉면에 ‘귀사 소속 한기준’이라고 찍혀 있었다.
“봐라. 내가 언제 너더러 유품 만지라고 했냐.”
감정서 대조를 위한 것이었고요.
백승민이 봉투에서 공문을 꺼내 펼쳤다. 나는 그 종이를 받아 읽었다.
[길드 연합 홍보·법무 고충 접수 센터]
귀사 소속 한기준의 유품 임의 접촉·조작 혐의로 하청계약을 해지하고 명예훼손 조정을 개시함.
하청계약 해지.
명예훼손 조정.
수수료 정산은…… 어디에도 없네.
“이거 봐라. 내가 말했지. 너 혼자 다 뒤집어쓴다.”
“USB 원본. 지금 여기 있죠.”
백승민이 먼저 움직였다.
“거기 서랍이야, 서랍. 이 새끼가 항상 거기 넣어.”
백승민이 내 책상 서랍 손잡이를 잡았다.
사장님. 그 서랍에 USB 사본만 있습니다. 원본은 따로 보관 중이고요.
“원본이 어딨는데.”
나는 물러서지 않고 폰 화면을 켰다.
“지금 위치 대라는 거야.”
아뇨. 제가 직접 꺼내드리겠습니다.
서랍에서 USB 원본을 꺼내는 동시에 폰 카메라를 켰다. 원본을 조사팀 쪽으로 내밀기 직전, 노트북을 열어 장부 화면을 띄웠다.
어제 확보한 그 화면이 모니터에 떠올랐다.
이걸 여기서 띄운다고?
폰 셔터가 세 번 울렸다.
착.
혈서 사진은 이미 폰에 있었지만 원본 각도로 한 장 더 남겼다.
백승민이 내 손에서 USB 원본을 낚아챘다.
“됐다. 이건 조사팀이 가져가.”
사장님. 그러면 제 검증 절차는요.
“검증? 너 지금 하청 해지 각서를 머리에 이고 있으면서 무슨 검증이야.”
백승민이 USB를 조사팀 쪽으로 넘겼다. 키 큰 쪽이 비닐 봉투에 담아 봉인했다.
“수사 방해는 곤란합니다.”
수사가 아니라 감정 절차입니다.
조사팀이 서로 한 번 보고, 키 큰 쪽이 기록지를 꺼냈다. 내가 말을 이었다.
압수 목록에 ‘USB 원본 1점, 촬영 사본 보관자 한기준’이라고 적어주시면 됩니다.
백승민이 끼어들었다.
“야, 그걸 왜 네가 지시해. 조사팀이 알아서 해.”
사장님.
백승민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 나는 이름을 쓰고 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조사팀이 돌아섰다. 백승민이 문까지 따라가다가 나를 돌아봤다.
“한기준. 알겠냐.”
백승민이 무어라 더 말하려다 입을 닫았다.
문이 닫혔다.
구두 소리가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장부 화면 숫자가 흔들리지 않았다. 212. 14,000. 차이 52.
이제 원본은 길드 조사팀 손에 있다.
내게 남은 건 사진과 사본. 그리고 그 사진을 교차 검증할 다른 기록.
사진 세 장으로 원본을 증명해야 한다.
수수료는 없어도, 일거리는 늘었네.
의자에 앉아 사진을 확대했다. 어제 밤에는 몰랐던 부분이었다.
확대해 보니 ‘3지구 보급’이라는 글자가 장부 하단 주석에 박혀 있었다.
……어라.
이거, 앞선 사건에서 쓸 수 있겠군.
속으로 한 줄 더했다. 원본이 없는 지금, 사진이 원본이다.
사진이 흔들리면 나도 흔들린다.
오전 열 시가 조금 지났을 무렵, 유리문이 다시 열렸다. 이하린이었다.
“백승민이 여기서 뭐 가져갔어.”
USB 원본입니다.
조사팀과 함께 압수해 갔습니다.
이하린이 한 걸음 들어왔다.
“압수? 그걸 그냥 줘?”
안 주면 제가 하청 해지에 명예훼손 조정까지 한 번에 받습니다.
오늘 공문 원문이 왔어요.
“그럼 증거는. 네 사진만 남았네.”
사진 세 장과 USB 사본. 그리고 그쪽이 가진 것.
“내가 가진 거?”
이하린의 눈이 잠깐 나를 스쳤다. 그녀의 손이 패딩 조끼 안주머니로 들어갔다.
……그쪽도 준비는 하고 왔군.
음성메모 원본. 오늘 공개해야 합니다.
이하린이 폰을 꺼내며 말했다.
“길드 공문 온 날에 올리면 역풍 불지 않아. 나 병원에서도 그런 거 많이 봐.”
역풍은 어차피 저쪽이 먼저 일으켰습니다.
이제는 수치가 아니라 목소리가 필요해요.
이하린이 폰을 탁자에 올렸다. 화면에는 음성메모 파일 하나만 떠 있었다.
“이거 올리면 오빠 마지막 순간이 온 세상에 퍼지는 거야.”
그걸 견딜 수 있습니까.
“견디는 문제가 아니야. 나는 이걸 증거로 내려고 처음부터 갖고 있었어.”
이하린의 손가락이 화면을 눌렀다. 재생이 시작됐다.
강태오의 목소리가 사무실에 깔렸다.
숨이 거칠었다.
“사고가 아니다.”
짧았다.
“USB는 윤가온이 배낭.”
그다음,
“3지구 게이트 원격 잠금 코드 07:14.”
……가온아.
이하린이 멈추지 않고 업로드 버튼을 눌렀다.
“제목은 내가 정했어.”
화면을 보니 ‘A급 강태오 음성메모 전문’이라고 적혀 있었다.
업로드가 끝나고 이하린이 나를 봤다. 폰을 쥔 손이 허벅지 옆으로 떨어졌다.
“이제 물러날 데 없어. 너도 나도.”
나는 폰을 열어 헌터넷을 새로고침했다.
[헌터넷 > 커뮤니티 > 사건제보]
제목: A급 강태오 음성메모 전문
[수정 대목]
ㄴ 게이트개미: 조작 아님? 이 정도면 조작이 더 어렵겠는데
ㄴ E급생존자: 관제 로그와 일치.
코드로 잠그고 박스 빼돌리는 거
그럼 길드 조사부터 열어야지
이하린이 내 폰을 보다가 말했다.
“관제 로그와 일치래.”
이제 여론이 사고사 쪽으로 안 넘어갑니다.
조작 의심으로 기울고 있어요.
이하린이 탁자 옆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그녀의 등이 문 쪽을 향했다.
“한기준. 이제 너는 뭘 할 건데.”
그리고 그 숫자를 심의회에 낼 거고요.
이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ㄴ 게이트개미: 조작 아님?
그 이름이 화면에 박혔다.
잠깐.
이건…… 이름을 타고 불똥이 그쪽으로 붙는 순서다.
윤가온이 이 여론을 보면 어떻게 나올까. 이하린 앞에서 증언 번복서를 내밀까, 아니면 길드 회선부터 끊을까.
나는 댓글을 더 읽지 않았다.
폰을 뒤집어 탁자에 내려놓았다.
이하린의 시선이 그 폰을 따라 내려갔다.
손바닥이 먼저 기억했다.
유품 견본 봉투를 열자,
공기보다 먼저 피 냄새가 올라왔다.
강태오의 배낭 표면. 칼로 두 번 그인 자리. 나는 장갑을 벗고 왼손을 얹었다.
`[기억 판독: 강태오 | 잔여 신뢰도 97.2% | 재생 구간 00:07.4]`
손바닥이 끓었다. 숫자가 뜨거워서가 아니다.
이건…… 판독이 아니라 소화 중이다. 진정해.
`[감정가: 보급품 212박스 × 공적 단가 14,000원 = 2,968,000원]`
손바닥을 떼자 열이 손등으로 번졌다. 지난번보다 길다.
212, 14,000. 그리고 혈서의 차이 52. 계산은 이미 끝났다. 입 안이 바싹 말랐다. 나는 폰 화면을 넘겼다.
“1차 감정서가 160박스로 눌렸는데, 실제 보급품은 212박스입니다.”
이하린이 내 옆에서 공문을 구겼다. 종이가 쥐어지는 소리가 유품 보관대 유리문에 부딪혔다. 그녀의 눈이 먼저 흔들렸다.
“이게…… 오빠 마지막 기록이냐.”
그녀는 묻는 게 아니라 확인하고 있었다. 목소리 끝이 종이처럼 접혔다.
“07:14. 오빠가 마지막으로 남긴 숫자지?”
나는 보관대 유리문을 닫았다. 열이 오르는 왼손을 폰 뒤쪽에 감췄다. 아직도 손가락이 저리다. 구겨진 공문이 이하린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네, 유족분.” 내 목소리가 기계처럼 정확했다. “강태오 님이 남기신 마지막 기록 중 하나로 보입니다.”
속으로는 달랐다. 판독 신뢰도 97.2%. 이 숫자가 거짓일 확률보다, 이 손이 먼저 지질 확률이 낮다.
정산이나 확인하자. 나는 은행 앱을 열었다. 어젯밤에 확인한 그대로였다.
`[한빛은행 입금 840,000원 / 적요: 유족 사례금+감정 수수료]`
“유족 앞에서 하는 말인데.” 윤가온이 나를 똑바로 봤다. “너 환불받고 이거 덮을 생각이면, 여기서 접어.”
“정산 내역은 이미 받았고, 덮을 거면 사본부터 안 남겼습니다.”
“증거는?”
또 그 말. 이번엔 내가 보여줄 차례다. 나는 보관대를 턱으로 가리켰다. 견본 봉투, 장부 사진, 혈서 숫자가 같은 선 위에 놓여 있었다.
“유품 판독에서 나온 마지막 기록이 07:14예요. 강태오 님 혈서에 남은 숫자도 같은 조각에서 나왔고요. 1차 감정서만 160박스로 눌려 있어요.”
이하린이 들고 있던 공문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윤가온 씨가 알고 있는 것, 이제 말해야 하지 않아요?”
윤가온의 목 끝이 움직였다. 그는 장갑을 낀 내 왼손을 내려다봤다. 흉터 위로 열이 비치는 걸 그는 알 터였다.
……알고도 모른 척한 거냐.
이 자식, 지금까지 입 다물고 있던 이유가 따로 있는 거 아냐?
나는 폰을 넘겨 입금 내역과 장부 사진을 나란히 띄웠다.
“07:14는 게이트 원격 잠금 코드로 추정됩니다. 그 시각에 강태오 님이 남긴 숫자예요. 이게 조작이면, 길드가 저에게 돈을 먼저 보냈을 리가 없죠.”
윤가온이 한 박자 늦게 폰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아니, 늦은 게 아니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손가락을 접은 거였다.
그는 허리춤에서 접힌 서류를 꺼냈다.
“증언 보완서다.”
표지가 젖어 있었다. 손에 쥔 지 오래였다. 이하린이 그것을 받을 때 그의 팔이 살짝 떨렸다.
“내가 1차 조사에서 몰랐다던 진술, 번복하겠다. USB는 강태오 선배가 내 배낭에 넣은 것이다.”
뒤늦은 진술이라.
감사장에선 순서가 중요한데.
그걸 이제 꺼내면…… 지금까지 쌓은 장부가 먼저 밀려난다.
윤가온이 자기 폰을 꺼냈다. 화면에 ‘길드 조사팀’이라는 발신자가 떠 있었다. 그는 통화 버튼을 누르는 대신, 손가락으로 밀어 끊었다.
그 짧은 동작에 테이핑이 한 번 들썩였다.
“내가 숨긴 게 아니라 몰랐다.”
이하린이 증언 보완서를 접혔던 방향 그대로 폈다. 그녀의 손가락이 서명 위에 멎었다.
턱.
나는 그 손을 보면서, 이 서류가 감사장에서 어떤 순서로 증거가 될지 세고 있었다. 서명 하나에 몇 개월치 장부가 기우는 자리니까.
이거…… 수수료 정산 전에 뒤집힐 판인데.
그때, 내 폰이 울렸다.
보관대 위에서. 줄이 아니라 무거운 종이 같은 진동이었다.
턱.
이하린과 윤가온이 동시에 내 폰을 봤다. 나만 늦게 집어 들었다.
`[길드 연합 감사관: 백승민 제출 증거에 따라 한기준 감정인 자격 정지 예고를 통보합니다.]`
화면이 반쯤 기울어 세 사람 눈앞에 그대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