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부를 베니 돈이 보인다
2화
아침 여덟 시 사십육 분, 오피스텔 복도 끝 창으로 햇빛이 밀려 들어와 사무실 문틈을 노랗게 태웠다. 나는 어제 넣어둔 서류 가방을 열어 밀린 월세 고지서를 꺼냈다.
계산기를 두드릴 참이었다.
7,842,150원에서 5,200,000원이 더해진 잔액은 13,042,150원.
이 중 290만 원이 밀린 월세고, 사무실 보증금 분배는 다음 달로 밀린다.
월세부터 밀렸는데, 길드 일은 산으로 간다.
……한심하네.
월세가 먼저다, 인마.
노태식은 제 책상에서 자판기 커피를 홀짝이며 나를 봤다.
“야, 근데 어제 그 전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거냐.”
“넘어가진 않지.”
내가 고지서를 접어 서류 가방에 다시 넣으려는데 문이 열렸다.
노크는 없었다.
박세미가 문틈에 어깨를 끼우고 들어왔다. 목에 건 소형 카메라가 앞으로 흔들렸다.
“서 대리님. 헌터넷에 올라온 거 봤어요?”
“무엇이요.”
“세무조정 보고서요. 아크길드 23억 뭐예요. 이거 진짜예요?”
노태식이 안경을 고쳐 썼다.
“또 무슨 사기야, 이번엔 길드 감사라니.”
액정엔 헌터넷 게시글이 떠 있었다.
제목: [장부/세무] 아크길드 S급 안전예산 세무조정 보고서 — 추정 횡령액 23억 4천만 원
본문 아래로 댓글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ㄴ 장부귀신: 표는 봤는데 S급 예산 4개 분기 합산이 38억이 안 넘는다. 23억이면 비율 61%다. 길드가 등급 감사 전에 이걸 조용히 둘 리 없음. 원본 없이 사본으로 뽑은 수치는 휴지.
ㄴ 게이트10년차: 3년 전 동부 4구 게이트 전멸 사고 때도 회계팀은 “이상 없음”이었지. 후속 판결문 안 봤어? 요즘 세무새끼들 장부로 조작질 많이 쳐.
ㄴ 세무돌이: 하청 세무 대리가 S급 길드 장부를 판독? 그게 가능하면 내 통장 잔액부터 판독해봐. 조작 아니면 실적 부풀리기겠지. 수수료 노예가 특종병 걸렸네.
ㄴ 안전예산지킴이: 보급품 없는 던전 어디 아니냐. 돈 있으면 안전장비부터 채워.
댓글들의 조회수는 욕설과 비아냥이 섞여 실시간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이거 올린 계정, 어제 오후에 가입한 새 계정이에요. 링크 확산은 오늘 아침부터 급격히 올랐고요.”
“박 기자님이 흘린 거라면 흘렸다고 해도 됩니다.”
그녀가 배시시 웃었다.
“확산이요. 흘린 게 아니라 확산이에요.”
노태식이 손을 내저었다.
“야, 근데 우리 수수료는? 아크길드가 어제 전화로 보류한다며. 이거 기사 나가면 우리가 더 위험한 거 아냐?”
나는 폰을 들어 댓글을 다시 훑었다.
전부 익명 계정.
하나같이 ‘영수증 노예’라는 말이 반복됐다.
속으로 계산해봤다.
조회수 8만, 댓글 420개.
악플은 수익화가 안 된다.
인플루언서처럼 광고를 붙일 수도 없고, 저걸로 세무조정 수수료가 더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댓글 열 개에 수수료 한 건…… 아닌가.
이런 건 회계사무소에 청구할 수 있을까.
노태식이 계산기를 꺼내 두드렸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길드한테 찍히고 관청 제소까지 각오해야 하는데 남는 게 뭐냐고.”
박세미가 내 쪽으로 턱을 내밀었다.
“서 대리님, 반전 가능해요? 지금 여론은 하나도 안 좋은데.”
나는 서류 가방을 닫았다.
“추정치만으론 어렵습니다. 원본 전표가 있어야 수치가 단단해져요.”
그 말에 윤가람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럼 원본 보러 가지.”
두 사람이 나를 번갈아 봤다.
노태식이 반쯤 일어나며 헛기침했다.
“저, 헌터님, 지금 아크길드에서 탈취 자료라고 하는데, 우리가 가면——”
“이미 대가를 지불했다.”
윤가람이 짧게 잘랐다.
나는 서류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민규의 전화 한 통으로 끝낼 수 없는 문제였다.
……수수료보다 먼저, 이 고지서부터 처리해야 내 통장이 버틴다.
나는 노태식에게 고지서를 건넸다.
“이거 오후에 은행 가서 월세부터 넣어.”
“뭐? 너 지금 나한테 심부름 시키는 거야, 아니면 겁나서 빼는 거야.”
“반반.”
그 새끼, 받긴 받네.
윤가람이 그녀 앞을 한 발로 막았다.
“넌 여기.”
“취재는요?”
“관청 접수 전엔 현장 인원 줄인다.”
박세미가 입술을 내밀고 폰을 내렸다.
그래도 눈은 나를 따라왔다.
……저 눈빛, 조회수보다 무섭다니까.
나는 회전문을 밀며 사무실을 나섰다.
아크길드 본사 로비에 들어서자, 아침인데도 에어컨 바람이 목 안쪽을 쓸었다.
차민규가 책상에 앉아 있었다.
포마드 기름기가 형광등에 번들거렸다.
그는 일어나며 왼손 약지의 길드장 직인 반지로 책상 모서리를 두드렸다.
똑, 똑.
“서 대리인님. 아침부터 또 오셨네요. 이번엔 어떤 궁금증입니까.”
나는 허리를 조금 굽혔다.
“안전 보급비 원본 전표와 통장 사본 열람 신청서를 제출하려고 합니다.”
차민규가 내 앞에 놓인 의자를 가리켰다.
“앉으시죠. 그런데 말입니다——”
그가 팔짱을 풀며 테이블 위의 서류 하나를 내게 돌렸다.
“어제 보안 로그를 보니까 사본 반출 경로가 두 갈래로 잡혔습니다. 하나는 외부 반출, 하나는 내부 유출. 어느 쪽이든 길드 자산이 동의 없이 나간 건 같고. 여기 자진 각서만 적어 주시면 수수료 문제는 오늘 안으로 풀리는 방향으로 내가 힘써 보겠습니다.”
“각서 내용이 뭔지 확인해도 됩니까.”
차민규가 서류를 밀었다.
장부 불법 반출 시도에 대한 사실확인 및 시정 각서
나는 서류를 읽고 두 가지를 물었다.
첫 번째.
“원본 열람은 어느 조항으로 차단하시는 겁니까.”
“길드 재무 건전성 원칙입니다. 관청 실사 전에는 원본을 외부 대리인에게 열람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
“그럼 7월까지 밀린 수수료 지급 의무는, 보안 로그 조사하고 별개입니까.”
“별개 수순입니다. 다만 돌려주신다면 지급 보류부터 해제하겠습니다.”
속으로 시간당 수수료를 환산해봤다.
520만 원을 받고 이미 열두 번 떼였다.
……각서 한 장에 열두 건이라.
수수료보다 비싼 종이네.
나는 서류에서 손을 뗐다.
“곤란합니다만, 이 각서는 서명할 수 없습니다. 사본 반출 사실부터 저는 확인한 적이 없고, 수수료 지급은 용역 계약이라서 각서와 결부할 항목이 아닙니다.”
그때 윤가람이 앞으로 나섰다.
선금 입금 내역서였다.
금액: 5,200,000원 내용: 세무조정 착수 선급금
“이미 대가를 지불한 검증입니다.”
차민규가 내역서를 집었다.
눈은 좁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입가에 기름진 미소가…… 얇게 번졌다.
“윤 헌터님. 이 유출 게시글——”
“탈취 자료라며. 그럼 길드 보안팀에 신고해. 지금.”
차민규가 각서를 다시 내 쪽으로 밀었다.
“그게 지금 미지급 수수료와 함께 움직이는 카드라는 걸 잊지 마십시오. 내일까지입니다. 이후엔 관청 제소 건과 유출 혐의를 묶어서 키우겠습니다.”
나는 서류 가방 손잡이에 힘을 줬다.
겉으로는 고개를 숙였다.
……내일까지라.
“잘 알겠습니다. 결론 정리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그가 웃었다. “그래요. 그래야 서로 편합니다.”
나는 등을 돌려 회계팀 문을 나왔다. 윤가람이 한 발 뒤에서 따라나왔다. 로비까지 와서 그녀가 낮게 물었다.
“못 받아낸 거야, 아니면 뺄 구멍을 본 거야.”
“뺄 구멍을 봤습니다.”
“길은.”
“관청 접수입니다.”
수수료를 미지급으로 잡아 시스템 채권부터 깔아놓으면, 원본 열람 압박은 따로 넣을 수 있다. 차민규가 협박 카드를 늘릴수록, 내가 신고할 채권 숫자도 늘어난다. 이번엔 영수증부터 정리한다.
엎드려서 손 벌리는 거랑은 다르지, 뭐.
윤가람이 로비 정문을 밀었다.
내 통장은 누가 돌려놔 주냐. ……농담이고.
정오가 가까웠다. 차민규가 내일 오후까지 잡아둔 사본 반납 기한보다 관청 접수가 먼저다.
프린터가 토해낸 채권 기록 세 장을 세로로 접어 서류 가방에 넣었다.
“야, 나도 가냐.”
“가압류 무서워서?”
노태식이 안경을 밀어 올렸다.
“아니, 민원실 가면 번호표는 내가 뽑지. 너 혼자 갔다가 대기하다 늦잖아.”
혼자 가는 것보다는 낫다. 수수료는 반씩이지만.
헌터관리청 성북 민원실은 점심 직전인데도 줄이 길었다.
나는 그 틈에 시스템 창을 띄웠다.
[세무 대리인 시스템] 채권 등재 확인 - 채권 금액: 5,200,000원 - 채권자: 서도현 - 채무자: (주)아크길드 - 상태: 지급 보류, 채권 등재 완료
번호가 불렸다. 창구 직원이 채권 기록을 펼쳐 봤다.
“아크길드 쪽에서 대리인 자격에 대한 이의제기가 들어와 있어요. 일단 반려 가능성 먼저 확인하시겠어요?”
“아니요. 여기 시스템 채권 등재 상태를 확인해 주시죠.”
잠깐이지만 호흡이 얕아졌다. 관청에서조차 이 난리인데.
차민규 뒤에 뭐가 더 붙어 있을까.
이의제기는 ‘서류 수리 요건 흠결’로 달려 있었고, 민원실에서 요구한 건 채권 등재 시점의 유효성 증빙이었다. 나는 폰을 한 번 더 조작해 신고용 채권 등재 기록을 화면에 받쳐 들었다.
“이의제기 사유가 대리인 자격 결격이 아닌 걸로 확인됩니다. 접수는 수리되고, 채무자 측에는 강제 지급 예고가 나가요.”
그 말 끝나자마자. 시스템 창이 올라왔다.
[세무 대리인 시스템] 채권 접수 완료 지급 예정 착수금: 2,600,000원
노태식이 핸드폰을 두 번 확인했다.
“야, 이거 진짜 들어오는 거 맞냐. 근데 지금 520만 원은 어쩌고.”
“520은 채권 등재분 유지. 260은 강제 지급 예고분.”
“잠깐, 그러면 지금 우리 통장엔 7,842,150원——”
“거기서 지금 520은 선입금으로 이미 들어온 거.”
“아아. 미쳤다.”
아직. 아직 아니다.
노태식이 계산기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거 들어오면 보증금이랑 월세 계산부터 하자. 야, 진짜…… 나 그날 서류 그거, 그 조작 건 때문에 가압류 올까 봐 계속 걸렸어.”
그날 서류 조작.
그 새끼, 아직도 그 생각부터 하네.
가압류는 어림없지.
사무실 독립을 준비하던 시절, 노태식이 거래처 요구에 못 이겨 매출 세금계산서 한 건을 수정한 적이 있었다. 발각됐고, 벌금과 소액 채권이 남았다. 지금도 가끔 가압류 소리가 나온다.
“온다니까 계산은 나중에, 가자.”
사무실 문을 열자 윤가람이 책상 앞에 서 있었다.
내 휴대폰이 꺼져 있던 시간에 차민규가 윤가람 쪽에 고소 이미지를 뿌린 모양이었다.
그녀가 테이블 위로 폰을 밀었다.
화면에는 아크길드 법무팀 명의의 메시지 스레드가 떠 있었다.
‘세무 대리인 허위 기재 고소 예정. 사본 반환 기한은 오늘 오후까지입니다만…… 윤가람 헌터님 입장도 복잡해지실 텐데요. 고소장 초안은 확인용으로만.’
윤가람이 손가락 두 개로 폰을 탁 밀어 닫았다.
화면이 아래로 넘어갔다.
“세무조정 선금이 사라진 게 아니냐.”
“빠지면 바로 말했을 겁니다.”
나는 서류 가방에서 관청 접수증과 채권 기록 출력본을 꺼내 책상 위에 펼쳤다.
“오늘 정오 접수 완료. 강제 지급 예고분 260만 원.”
윤가람이 접수증을 짚었다.
손등에 힘줄이 얇게 떠올랐다.
“원본을 못 구하면 내가 배신한 게 된다.”
목소리가 낮았다.
“그래서 먼저 움직인 거 아녜요.”
접수증을 보다가 나를 봤다.
흰자위가 조금 붉었다.
“이걸로 아크길드를 압박할 수 있냐.”
“지금 창엔 채권 접수 완료, 지급 예정 260만 원이 떠 있어요. 이게 먼저 움직인 증거죠.”
나는 시스템 화면을 그녀 앞으로 돌려 보였다.
차민규가 지급 예고를 받는 순간, ‘내일 오후까지 가져와’ 같은 말은 관청에 우선순위가 밀린다.
260만 원이면 시간을 산 거다.
비싼 시간인데…… 그나마 입금 전에 끝내야지.
“증거는.”
[세무 대리인 시스템] 채권 접수 완료 지급 예정 착수금: 2,600,000원 지급 예정일: 접수일로부터 영업일 기준 2일 이내
윤가람이 그 화면을 한참 보다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임시 확인이다.”
그녀가 검집 근처에 손을 얹었다.
검은 장갑 끝이 아니었다.
손가락 끝이 검집 겉면을 가볍게 눌렀다.
힘이 빠진 손이지만, 검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노태식이 사무실 한쪽에서 계산기를 두드린다.
“사무실 독립은 또 뒤로 미네. 이것도 받아봐야 가압류부터 정리하고, 보증금 맞추려면 한참 남아.”
윤가람이 그 소리를 들었다.
대꾸는 하지 않았다.
내 사무실 책상 위 아크길드 S급 장부 사본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종이 모서리에 피가 번진 자국이 딱지처럼 마른 채였다.
저게…… 이제 협상 카드가 아니라 증거물이 된 건가.
문자가 왔다.
폰 화면이 혼자 켜지며 알림이 떴다.
아크길드 법무팀. 제목 옆에 첨부 표시가 붙어 있었다.
열었다.
‘회계 증거 위조 고소장 초안’이 떴다.
고소 대응도 시간당 수수료로 받아야겠군.
수수료…… 오늘만 몇 번째야.
나는 웃었다.
폰을 닫아야 하는데 손가락이 아래로 한 번 더 튀었다. 초안이 움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