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걷히는 날, 너에게 닿으면
10화
빗소리가 들렸다. 전날보다는 가늘었지만 여전히 끊이지 않고 처마를 두드리는 소리. 윤하늘은 카운터 앞에 선 채로 문이 닫힌 지 몇 분이 지났는지 몰랐다. 카운터 위 서류 뭉치의 비닐 커버에 반사되던 형광등 빛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천천히 손을 뻗어 서류를 옆으로 밀었다. 그 아래 나무 표면이 드러났다. 왼손이 주머니로 들어갔다.
손가락 끝에 닿는 젖었던 종이가 반쯤 말라 있었다. 꺼내서 카운터 위에 펼쳤다. 습기에 얼룩진 편지 조각. 푸른 잉크가 번져 글자는 군데군데 뭉개져 있었지만, 몇 개는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지 마」
「내가 돌아」
「그날까지」
윤하늘은 숨을 멈췄다. 세 개의 단어가 눈앞에서 떨렸다.
아니야.
그녀는 편지 조각을 뒤집었다. 종이 질감이 너무 얇았다. 오래된 문고본에 끼워져 습기를 머금고, 무게에 눌려 바스러질 듯한 상태. 십 년이라는 시간을 고스란히 머금은 종이.
그리고 그 필체.
길고 곧게 뻗은 획. 받침이 단단하고 초성의 시작이 예리했다. 연필을 짧게 쥐고 힘 있게 눌러쓰는 버릇.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열아홉 살 서지헌이 늘 그렇게 썼다.
윤하늘은 손을 내려다봤다.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왼손 엄지로 검지 손톱을 눌렀다.
깊게. 한 번, 두 번. 세 번째에서 멈췄다.
주머니에 손을 넣으려던 손도, 서류를 치우려던 손도 아니었다. 이 손은 십 년 전에도 떨렸다. 삼촌의 책상 앞에 앉아 편지를 쓰던 그 밤.
십 년 전. 그날 밤도 비가 내렸다.
여름방학이 거의 끝나가던 무렵이었다. 윤하늘은 삼촌의 서점에서 지내고 있었고, 서지헌은 개학 전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며 매일 같이 서점에 들렀다. 그런데 그날은 오지 않았다. 전화도 없었다. 점심이 지나고 오후가 되고 저녁이 되어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밤 열 시가 넘어서 윤하늘은 삼촌의 책상에 앉았다. 삼촌은 일찌감치 귀가한 뒤였다. 서점 안은 텅 비어 있었고 빗소리만이 천장을 때렸다. 그녀는 삼촌의 편지지를 한 장 꺼냈다. 연한 크림색 바탕에 갈색 잉크로 서점 로고가 찍힌 종이.
펜을 들었다. 첫 문장을 쓰기까지 십 분이 걸렸다.
네가 떠나도 나는 여기 있을 거야.
그다음 문장은 한 시간이 걸렸다.
말하지 않아도 나는 네가 무슨 생각 하는지 알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아니었나 봐.
고개를 들었다. 빗줄기가 서점 유리창을 때리는 소리만 들렸다. 그녀는 다시 펜을 쥐었다.
쓴다. 지운다. 다시 쓴다.
지운 자국에 덧쓰다 종이가 찢어질 뻔했다. 마침내 완성된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네가 말해 주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어. 문장을 완성하고 나서 눈물이 났다.
감정이 북받쳐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문장을 쓰는 순간,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오지 않은 이유를. 아버지가, 이 동네가, 온 동네 사람이, 아마 그의 집을 더 이상 그냥 두지 않을 거라는 걸.
윤하늘은 펜을 내려놓았다.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 다시 폈다.
한 번 더 읽었다. 세 문장이 전부였다. 마지막 문장을 덧붙이려던 그때, 서점 전화가 울렸다.
밤 열한 시 사십분. 전화를 받은 건 삼촌의 집에 이미 도착해 있던 윤하늘의 어머니였다.
“아이고, 그 집…….”
어머니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이어서 삼촌의 낮은 목소리. 말소리가 들릴 듯 말 듯 방 안에 깔렸다. 문을 살짝 열었을 때 “밤사이에 떴다더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수화기를 내려놓는 소리. 윤하늘은 방문을 닫았다. 책상으로 돌아왔다.
편지를 다시 들었다. 두 번째로 읽었다. 세 번째로.
그리고 찢었다.
세로로 한 번, 가로로 두 번. 여섯 조각으로 찢은 편지를 삼촌의 휴지통에 버렸다. 펜을 닫았다.
방의 불을 껐다. 누워서 귀를 막았다. 빗소리가 더 커지기 전에.
윤하늘은 눈을 떴다. 카운터 위의 반쯤 마른 편지 조각이 그대로 있었다. 푸른 잉크로 ‘―지 마’, ‘내가 돌아’, ‘그날까지’가 적혀 있었다.
아니.
그녀의 손가락이 세 개의 단어를 더듬었다. 뭉개진 글씨 사이에 떨어져 있는 단어들. 「내가 돌아」 그리고 「그날까지」. 마지막으로 「―지 마」.
십 년 전 밤을 다시 떠올렸다.
자신이 썼던 세 문장. 첫 번째는 네가 떠나도 나는 여기 있을 거야. 두 번째는 말하지 않아도 나는 네가 무슨 생각 하는지 알 거라고 생각했어. 세 번째는 네가 말해 주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어. 그리고 이제야 알았다.
이 편지 조각에 쓰인 문장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이건 답장이었다.
자신이 썼던 세 번째 문장의 마지막 구절 ― 네가 말해 주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어. 그 문장을 서지헌은 읽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의 손에 닿기도 전에 찢겨 버렸으니까. 그러나 그는 같은 문장을 썼다. 마치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었다는 듯이.
아니.
그가 쓴 문장은 그것보다 더 앞서 있었다.
「―지 마」는 떠나지 마일까. 아니면 잊지 마. 「내가 돌아」는 내가 돌아올게. 「그날까지」는 그날까지 기다려 줘.
윤하늘은 손바닥으로 편지 조각을 덮었다. 식은땀이 손바닥 안쪽에 번졌다. 그녀는 이 편지가 무엇인지 알았다. 십 년 전 서지헌이 서점의 책갈피 사이에 숨겨둔 편지. 그녀에게 보내려고 썼으나 끝내 보내지 못한 편지.
그리고 그는 지금, 서점을 등지고 빗속으로 사라졌다.
그 편지의 내용을 그녀가 알게 되리라는 걸 전혀 모른 채.
윤하늘은 서류 뭉치 아래로 편지 조각을 밀어 넣었다. 손끝이 여전히 떨렸다. 그녀는 그것을 모른 척하지 않았다. 손을 들어 앞머리를 넘겼다. 이마에 땀이 배어 있었다.
바깥에서는 가랑비가 계속 내렸다. 전날보다는 약했지만 여전히 습기가 높았다. 공기가 무거워 숨이 깊게 들이쉬어지지 않았다.
카운터 위에는 공청회 의견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서지헌이 마지막으로 정렬해 간 서류. 그녀는 표지를 한 장 넘겼다.
서론, 법적 근거, 현행 조례 위반 사항, 재산권 보호 조항. 한 문장 한 문장에 법조문과 판례가 인용되어 있었다.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마다 작은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구청 담당자 확인 필요, 첨부자료 3페이지 참조, 이 부분 읽고 서명하세요.
읽을수록 가슴이 죄여 왔다. 이것은 업무 서류였다. 의뢰인에게 제출하는 최종 보고서. 변호사가 작성하고, 의뢰인이 검토한 뒤 서명하고, 그걸로 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녀는 서류를 덮었다. 공청회 이후로는 만날 일도 없을 거라는 말이 서류 구석구석에 박혀 있는 듯했다.
문이 열렸다.
종이 울렸다.
빗소리 사이로 구두 굽 소리가 들렸다. 윤하늘은 고개를 들었다.
서지헌이었다.
검은 양복은 어깨 부분이 젖어 짙게 변해 있었다. 우산을 들고 있었지만 펴지 않은 채 왔는지 머리카락 끝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안경 렌즈에도 빗방울이 맺혀 시야가 흐려졌을 텐데, 그는 닦지 않았다.
왼손에는 얇은 서류 봉투.
카운터까지 다가오는 걸음이 평소보다 느렸다. 발걸음 사이에 머뭇거림이 끼어 있었다. 그러나 눈빛은 아니었다. 안경 너머로 마주한 눈은 단호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가 서류 봉투를 카운터 위에 올렸다.
“공청회 답변서입니다.”
목소리는 건조했다. 지문과 지문 사이에 어떤 온도도 끼어 있지 않은.
“원본 한 부, 사본 두 부. 사본은 위원들에게 배부할 용입니다. 원본은 내일 직접 제출하시면 됩니다.”
윤하늘은 대답하지 않았다. 봉투를 집어 들지도 않았다. 그저 그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안경 너머 눈가에 닿았다. 붉게 충혈된 흰자위. 수면 부족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서지헌은 잠시 기다렸다.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말을 이었다.
“발언 등록은 이미 마감되었습니다. 서면 진술서로 제출하는 절차를 밟았고, 심의 위원들에게는 사본이 사전 배부될 예정입니다. 공청회 당일 추가 발언 기회가 주어질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답변서 마지막 장에 구두 진술 요청서도 첨부했습니다.”
“필요하면 읽어 보십시오.”
윤하늘의 손가락이 카운터 모서리를 짚었다.
“……여기까지네요.”
서지헌의 눈빛이 한 번 깜박였다.
“네?”
“공청회 답변서까지. 발언 등록까지. 할 수 있는 건 다 해주셨다는 거죠.”
짧은 숨을 고르는 텀이 있었다.
“이제 끝이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서지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오른손이 가방 손잡이를 꽉 쥐었다 풀었다. 안경 렌즈에 맺힌 물방울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끝이라기보다는.”
한 글자 한 글자 사이의 간격이 길었다. 그가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할 수 있는 일을 마쳤습니다. 남은 것은 그것뿐입니다.”
“그것뿐.”
윤하늘의 입가가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그렇다면 이 서류는 뭡니까. 마지막 성의인가요. 아니면, 마지막 책임인가요.”
순간, 서지헌의 안경 뒤에서 무언가 번쩍였다. 분노인지, 상처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그가 입을 열었다.
“부탁드립니다.”
서지헌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달랐다.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톤.
“마지막까지 비아냥대지 말아 주십시오.”
윤하늘의 어깨가 올라갔다.
“제가 무슨 의도로 여태 이 일을 해 왔는지 모르시는 것도 아닐 테고, 이 답변서를 작성하는 데 며칠이 걸렸는지도 모르시지 않을 겁니다. 그걸 알면서도 일부러 그러시는 거라면, 저로서는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만.”
존댓말이었다. 완벽하게 절제된, 법정에서나 쓸 법한 극존댓말. 한 글자 한 글자가 칼로 자른 듯 정확했다. 어미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때문에 오히려 모든 감정이 날이 서서 드러났다.
“이것으로 저의 업무는 종료되었습니다.”
서지헌은 한 번 숨을 들이쉬었다. 젖은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카운터 위 서류 봉투에 작은 얼룩을 남겼다.
“공청회는 내일 오후 두 시입니다.”
그는 가방을 다시 한 번 꽉 쥐었다. 허리를 숙여 목례했다. 예순 각도쯤 되는, 변호사가 법정을 떠날 때 하는 그 인사.
몸을 돌렸다.
윤하늘은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의 발걸음이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구두 소리가 마룻바닥을 네 번 울렸다. 우산을 쥔 손이 문고리에 닿았다.
“서지헌 씨.”
그가 멈췄다. 등이 보였다. 젖은 양복 어깨가 미세하게 들썩이고 있었다.
“……아닙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다. 말하기 전에 숨을 고르는 텀이 길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서지헌은 돌아서지 않았다. 그의 손이 문고리에 얹힌 채 굳어 있었다. 잠시였다. 그는 문을 열었다.
빗소리가 밀려들었다. 가랑비였지만 바람이 불어 빗방울이 출입구 안쪽까지 흩날렸다. 서지헌은 우산도 펴지 않은 채 빗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미 젖은 양복 어깨가 더 짙게 물들었다. 검은 우산이 펼쳐지지 않은 채 그의 손에서 흔들렸다.
열 걸음쯤.
그가 잠시 멈춰 섰다. 우산을 펼 듯이 팔을 올렸다. 그러나 펴지 않았다. 다시 팔을 내렸다. 고개를 숙인 채로 빗속에 서 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다시 걸었다.
발걸음이 빨라졌다. 우산은 끝내 펴지 않았다. 가랑비는 점점 굵어져 그의 실루엣을 희미하게 만들었다. 길 모퉁이를 도는 순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윤하늘은 문이 닫힌 뒤에도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바람이 들어찬 서점 안은 평소보다 더 쌀쌀했다. 가랑비 소리가 천장을 두드리는 박자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그녀는 카운터로 돌아왔다. 서류 봉투를 손으로 짚었다. 봉투 위에 떨어진 물방울 얼룩이 점점 번지고 있었다. 닦지 않았다.
손을 거둬 서랍을 열었다. 편지 조각을 집어 들었다. 「내가 돌아」 그리고 「그날까지」. 마지막으로 「―지 마」.
서랍에 넣으려다 멈췄다.
다시 읽었다. 이번에는 다른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번진 잉크 아래 간신히 남아 있는, 그녀가 처음에 놓친 한 글자.
「너」
그 앞뒤로는 완전히 지워져 있었다. 그러나 그 한 글자만 또렷했다. 「너」.
너를 잊지 마. 너에게 돌아갈게. 그날까지 너를.
윤하늘은 손바닥 안에서 편지 조각을 접었다. 작게, 더 작게. 손금 안에 들어갈 만큼.
심장이 빨리 뛰었다. 그녀는 심호흡을 한 번 했다. 두 번. 손이 떨리는 것을 스스로 느꼈다. 떨림이 편지 조각에서 손목으로, 손목에서 팔로, 팔에서 가슴으로 번져 갔다.
그녀는 서둘러 서류 봉투를 열었다. 답변서 첫 장을 넘겼다. 두 번째 장, 세 번째 장.
빠르게 손끝으로 페이지를 훑었다. 그가 남긴 포스트잇 메모를 하나하나 읽었다. 「이 부분 참조」, 「법적 근거」, 「구청 확인사항」.
사적인 말은 한 줄도 없었다. 단 한 글자도. 그녀가 찾고 있던 흔적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답변서를 내려놓았다.
서점 안을 둘러봤다. 책장 사이, 카운터 밑 서류함, 창가에 쌓인 책 더미, 구석에 놓인 골판지 상자. 그가 남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포스트잇과 답변서와 물방울 얼룩뿐.
지하창고로 내려가는 계단을 응시했다. 어제 강다은이 발견한 편지 조각은 저 아래, 젖은 상자 밑에서 나왔다. 나머지 조각이 아직 저 아래 있을지도 몰랐다. 그녀는 계단으로 한 걸음 옮겼다가 멈췄다.
발견한다고 해도, 이미 편지 내용은 거의 지워졌을 것이다. 그녀가 손에 쥔 조각조차 세 단어와 한 글자만 남았다. 나머지는 전부 습기에 녹아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십 년 전 그가 이 편지를 써서 책갈피에 숨겼다. 그녀에게 보내려고. 그리고 그녀는 그가 떠난 직후 자신의 편지를 찢어 버렸다. 그가 쓴 편지는 발송되지 못했고, 그녀가 쓴 편지는 찢겨 버렸다. 두 개의 편지 모두 주인에게 닿지 못한 채 십 년을 책과 습기 속에 묻혀 있었다.
윤하늘은 카운터로 돌아왔다. 의자에 앉았다. 손을 펴서 편지 조각을 내려다봤다.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편지를 펼쳤다.
「―지 마」 「내가 돌아」 「그날까지」 「너」
그녀는 이 네 개의 조각을 가슴께로 가져갔다. 심장 위. 젖은 옷감 너머로 종이가 차갑게 닿았다.
눈을 감았다.
십 년 전 서지헌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열아홉 살, 대학 합격증을 막 받아든 그가 서점 카운터 앞에서 “합격했어요” 하고 웃던 목소리. 이 년 뒤, 아버지가 망한 뒤에는 더 이상 듣지 못한 목소리. 그리고 오늘, 극존댓말로 “더 이상 제가 개입할 이유가 없겠군요” 라고 말했던 바로 그 소리였다.
눈을 떴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렸다. 바깥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서지헌이 사라진 길 모퉁이에는 이제 아무도 없었다. 젖은 아스팔트가 가로등 불빛을 반사하며 깜박이고 있었다.
윤하늘은 편지 조각을 가슴에서 떼어내 접었다. 네모반듯하게, 단단히. 주머니 깊숙이 넣었다.
공청회는 내일 오후 두 시.
시간은 아직 남아 있었다.
그녀는 답변서를 덮었다. 가랑비는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장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